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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4의 게시물 표시

Robot Dreams(2023): 관계의 본질에 질문을 던지는 애니메이션

    매일 같은 일상입니다. 그는 TV 속의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죠. 식사 시간이 되면 찬장에 있는 냉동식품을 꺼내어서 전자레인지에 넣습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그 음식을 먹구요. 문득 외로움이 몰려옵니다. 그는 자기 아파트 건너편 집을 바라봅니다.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네, 그들은 연인입니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아있지요. 그는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서 얼른 리모컨을 집어서 TV를 켭니다. 이리저리 돌리다가, 신기한 물건에 눈길이 갑니다. 로봇이네요. 말하고 미소를 짓는 로봇 말입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로봇 조립 세트를 주문합니다.   Pablo Berger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Robot Dreams(2023)' 의 시작은 그러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대사가 없어요. 감탄사와 효과음은 있지요. 아, 음악이 정말 좋습니다. 영화 내내 미국의 팝 그룹 Earth, Wind & Fire의 명곡 'September' 가 흐릅니다.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곡이에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인 Dog와 로봇에게도 말입니다. 주인공이 정말로 Dog가 맞냐고요? 맞아요. 주인공은 'Dog', 달리 이름이 없어요.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애니메이션은 개와 로봇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개는 집으로 배달된 로봇 조립 세트를 완성합니다. 로봇은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하지요. 개와 로봇은 이제 일상을 함께 하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가 됩니다. 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Setember를 로봇이 좋아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함께 길을 걷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죠. 여름이 오자, 개는 로봇을 해변으로 데려갑니다. 수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 그런데 로봇이 좀 이상합니다. 움직이질 않아요. 그래요, 금속으로 만들어진 로봇의 몸에 물이 들어가서 녹이 슬어

2024년 1월에 본 영화들 리뷰: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 바비(Barbie, 2023),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바비(Barbie, 2023), 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 감독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영화 '오펜하이머 (Oppenheimer, 2023) ' 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다. 그렇게 긴 영화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영화는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펜하이머( J. Robert Oppenheimer, 1904-1967) 의 일대기를 다룬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은 정교하게 배치된 3개의 시간 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짜나간다. 오펜하이머가 대학생 시절이었던 때부터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오펜하이머에게 오욕과 수치를 안겨준 1954년의 청문회, 오펜하이머의 반대자 루이스 스트로스(Lewis Lichtenstein Strauss)의 1959년 청문회가 그것이다. 놀런은 이렇게 시간대를 교차시켜 보여주는 데에 재미를 붙인 것 같기도 하다. '덩케르크(Dunkirk, 2017)' 에서도 그런 걸 써먹은 적이 있다.   그런 내러티브적 변형이 효과적이었는지 내게는 물음표로 남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덩케르크'는 참으로 별로였고, 그나마 '오펜하이머'는 볼만 했다. '오펜하이머'는 실존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축약해서 보여준다. 놀런은 그의 인생이 격변의 시대와 교차하는 지점을 통찰력 있게 포착한다. 원자폭탄 개발의 주도적 과학자로서 오펜하이머에게 영광의 월계관만 씌워진 것은 아니었다. 내연녀의 비극적 죽음,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견뎌야 했던 사상 검증, 원폭 투하가 가져온 엄청난 살상에 대한 죄책감이 오펜하이머의 삶에 포개어져 있었다.   영화는 뛰어난 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 불행이 '국가'

가난과 중독의 서글픈 환(環), On the Bowery(1956)

    일용직 노동자 Ray Salyer는 이제 막 Bowery에 도착했다. 뉴욕의 맨해튼 Lower East Side에 자리한 그 거리는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다. 샐리어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술꾼 Gorman Hendricks와 술집으로 들어선다. 술에 취한 샐리어는 그날 밤에 거리에서 쓰러져 잠든다. 헨드릭스는 샐리어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헌옷이 든 가방을 몰래 훔친다. 돈 한 푼 없는 샐리어, 그는 막노동해서 번 돈을 또다시 술집에서 탕진한다. 그들의 삶은 Bowery 라는 거리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Lionel Rogosin(1924-2000) 감독의 다큐멘터리 'On the Bowery(1956)' 는 알콜 중독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술꾼들은 끊임없이 지껄이며, 계속해서 술을 들이킨다. 술집 안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지낸다. 때로 술기운에 예기치 못한 주먹다짐이 이어지기도 한다. 술꾼들 가운데에는 여자들도 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은 많은 술꾼의 숙소는 당연히 길바닥이다. 노숙의 삶. 길에서 자고 일어난 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해장술을 들이킨다. 로고신의 카메라는 매우 건조하게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가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길거리 술꾼들의 얼굴은 가난과 무기력으로 채워져 있다.   로고신은 뉴욕의 대표적 빈민가 Bowery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곳의 삶을 카메라로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사실 'On the Bowery'를 순전한 다큐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다큐 속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인 샐리어와 헨드릭스는 로고신이 다큐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진짜 알코올 중독자들이다. 로고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Bowery 거리의 삶을 그려낸다. 돈이 떨어진 샐리어가 끼니와 잠자리를 의탁하게 되는 교회는 실제 Bowery에 자리한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술집과 알코올 중독자들이 넘쳐나는 Bowery에는 교회와 자선단체도 굳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