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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22의 게시물 표시

부평초 같은 게이샤의 삶,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女は二度生まれる, Women Are Born Twice, 1961)

    1950년대와 1960년대 일본 영화의 주된 경향 가운데 하나는 문예 영화였다. 그 시기에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수준 높은 영화들이 꽤 많이 제작되었다. 주인공들은 대개 여성들, 그 가운데 '게이샤(芸者)'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나루세 미키오의 1956년작 영화 '흐르다(流れる, Flowing, 1956)' 도 게이샤가 주인공이다. 원작은 코다 아야(幸田文)가 1955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이다. 카와시마 유조(川島雄三) 감독의 1961년작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女は二度生まれる, Women Are Born Twice)' 에는 '코엔'이란 이름의 게이샤가 나온다. 토미타 츠네오(富田常雄)가 쓴 '코엔의 일기(小えん日記, 1959)'가 원작이다.   코엔(와카오 아야코 분)에게 남자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말이 좋아 '예인(예술을 아는 사람)'이지 게이샤들은 웃음을 파는 직업이었다. 코엔은 '마마짱'이 배정해주는 손님들을 받는다. 부유한 건축가, 초밥집 요리사, 증권가 브로커... 그곳 손님들의 직업과 연령대도 다양하다. 코엔은 술 마시고 노닥거리다 손님 받고, 그러다 손님들하고 만나 데이트 하고 여행도 간다. 그런 삶을 사는 코엔에게는 괴로움이라던가 심각함이 보이지 않는다.   게이샤들이 모여서 사는 집에 코엔의 개인 공간이라고 해봐야 손님 받는 방이다. 그런데 코엔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는 작은 화분을 그 방이 아니라, 게이샤들이 함께 머무는 거실 쪽에다 둔다. 동료 게이샤가 실수로 화분을 건드려 깨뜨리자 코엔은 살짝 화를 낸다. 그곳에는 사생활이라든가, 오롯한 고요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사(神社) 근처라서 수시로 신사에서 치는 종소리가 들린다. 그런 곳에 사는 코엔에게 드디어 자신의 집이 생긴다. 중년의 돈 많은 건축가는 코엔을 내연녀로 붙들어 두고 싶어한다.   코엔이 얻은 셋방에서는 종소리 대신에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의 영화에 나타난 계층과 여성의 문제: 제빵사의 아내(The Baker's Wife, 1938), 우물 파는 사내의 딸(The Well-Digger's Daughter, 1940)

  La femme du boulanger, The Baker's Wife(1938) La Fille du puisatier, The Well-Digger's Daughter(1940) 1. 제빵사의 아내, 마르셀 파뇰의 대표작   '마농의 샘(Manon des Sources, 1986)' 과 '우물 파는 사내의 딸(La Fille du puisatier, 2011)' , 두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리메이크 작품이다. 오리지널 영화를 만든 이는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 1895-1974)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극작가로 시작했다. 연극에서 거둔 성공은 영화로 이어졌다. 무성 영화가 이제 막 유성 영화로 전환될 무렵에 파뇰은 자신의 작품들을 영화화하면서 영화계에 안착했다. 그의 1938년작 '제빵사의 아내(The Baker's Wife)' 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행운은 '우물 파는 사내의 딸(1940)' 로 이어졌다. 파뇰은 두 영화 모두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희곡에서 갈고 닦은 그만의 유머러스한 문체는 영화에서도 돋보인다. 파뇰은 코미디의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당대의 사회를 영화 속에 투영한다.   '제빵사의 아내(1938)'는 지극히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시골 마을에 빵집을 연 제빵사 에마블레는 맛난 빵을 구워 마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그의 젊은 아내 오렐리가 양치기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다. 상심한 에마블레는 아내를 찾을 때까지 빵을 굽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빵 없이는 살 수 없는 마을 사람들, 급기야 마을 후작의 지휘하에 특별 수색대가 조직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제빵사의 아내를 찾아올 수 있을까...   에마블레가 빵집을 연 이 시골 마을은 그렇게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교리에 충실한 마을 신부는 좌파주의 교사와 언쟁을 벌인다. 대대

사랑의 종말,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The Trials of Oscar Wilde, 1960)

  1. 몰락의 시작   "남색가로 처신하는 오스카 와일드에게"   (For Oscar Wilde posing Sodomite)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건의 시작은 바로 그 짧은 메모에서부터였다. 그런 상스러운 메모를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에게 남긴 사람은 퀸즈베리 후작(Marquess of Queensberry)이었다. 그는 와일드가 아들 알프레드 더글라스(Alfred Douglas) 를 유혹해서 앞길을 망치고 있다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Bosie'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퀸즈베리 후작의 셋째 아들과 와일드는 지나치게 친밀했다. 21살의 옥드퍼드 대학생 알프레드를 만났을 때의 와일드의 나이는 서른 아홉, 그로부터 4년 동안 두 사람은 함께 해외 여행을 다녔고, 여러 호텔에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와일드는 작가로서 경력의 정점에 있었다. 명성과 돈이 그의 곁에서 마구 흘러다녔다. 그런 그에게 퀸즈베리 후작이 보낸 메모는 파멸의 신호탄이었다.   켄 휴즈 감독의 1960년작 영화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The Trials of Oscar Wilde)' 은 메모 한 장으로 촉발된 재능있는 작가의 몰락을 담아낸다. 오스카 와일드는 명예훼손 혐의로 후작을 고소했다. 이후 세 번의 재판이 이어졌다. 와일드는 승소를 장담했다. 하지만 재판은 뜻밖의 결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재판에서 변호사들은 패소를 예감하고 소를 취하했다. 두 번째 재판에서 이제 그는 피고석에 서야만 했다. 젊은 남자들을 유인해 남색(男色)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죄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재판에서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는다. 영화는 당시의 재판 기록과 작가의 편지에서 드러난 사실을 충실히 재현한다.   1895년, 재판이 시작된 그 해에 와일드는 인생의 전성기를 맘껏 구가하고 있었다. 이전에 발표한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Amalia Ulman의 멋진 데뷔작, El Planeta(2021)

    Grey Gardens(1975) . Direct Cinema (제작자의 관점을 최소화하는 다큐 제작 방식)의 기수였던 Maysles 형제 는 괴짜 모녀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모녀의 집은 부유층 주거지역에 자리한, 쓰러지기 직전의 폐가이다. 재클린 케네디는 모녀와 인척 관계(이모와 사촌지간)이다. 그들은 어떤 사회적인 접촉도 없이, 마치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큐는 몰락한 상류층의 음울하고도 폐쇄적인 삶을 가감없이 담아낸다. Amalia Ulman의 'El Planeta(2021)' 를 보면서 나는 그 다큐를 떠올렸다. 감독 Amalia Ulman은 모친과 함께 이 영화에서 연기도 한다. 영화는 퇴거 직전의 아파트에 사는 모녀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여대생 레오가 어떤 남자와 커피숍에서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날씨에 대해 말하던 두 사람의 대화는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레오는 남자와 가격을 흥정한다. 남자가 부른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자 거래는 곧 무산된다. 그렇게 돈에 쪼들리는 여대생 레오의 매춘 시도는 허망하게 끝난다. 레오가 엄마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집세는 밀려있다.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한은 겨우 두 달, 패션을 전공하는 세련된 여대생과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엄마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하다.   급전이 필요하니 집안의 가전 제품이라도 내다파는 딸과는 달리, 엄마 마리아는 천하태평이다. 식탁에 앉아서 싫어하는 이들의 이름을 적어 냉동실에 넣는다. 이 괴짜 엄마는 외출할 때는 모피와 명품으로 치장한다. 딸은 온라인 채팅에서 자신의 신분과 배경을 과시하면서 괜찮은 남자가 걸려들까 기대한다. 놀랍게도 두 모녀는 코앞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지 않는다. 돈보다는, 이제는 죽어서 곁에 없는 고양이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이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모녀가 현실과 충돌하는 지점을 계

꿈의 미로, 중국 영화의 새로운 경향 Bi Gan 감독의 영화들

  1. 영화적 마법, 59분의 Long take: 지구 최후의 밤( 地球最後的夜晚, 2018)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 .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고 그 길에 들어선 이들은 무척 많다. 중국의 Bi Gan(毕赣) 감독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러닝타임 2시간 18분. 그의 2018년작 영화 '지구 최후의 밤(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 은 도입부에서부터 매우 불친절하고 지루한 서사를 이어간다. 심드렁하게 영화를 보다가 1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주인공 남자는 허름한 시골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그제서야 뜬다. 남자는 동굴의 협궤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롱 테이크(long take)에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나중에 시간을 재어 보니 1시간에서 1분이 빠진다. 무려 59분의 롱 테이크. 이 기기묘묘한 영화적 마법을 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허름한 유곽의 어느 창녀의 집에서 몸을 일으킨 남자는 기억 속에서 한 여자를 떠올린다. 영화의 전반부는 '루오'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 완 치완(탕웨이 분)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주를 이룬다. 남자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향 Kaili를 방문한다. 계모로부터 받은 아버지의 유품인 벽시계 뒤에는 주소가 적힌 사진이 있다. 그 주소에는 죽어버린 루오의 친구 Wildcat의 모친이 살고 있다. 그 모친에게서 루오는 한때 Wildcat과 가까웠던 완 치완의 소식을 듣는다. 이렇게 대강의 줄거리를 적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현실과 과거의 기억이 뒤엉켜 도대체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아마도 영화 속 세계를 설계한 감독 자신 뿐이리라.   비선형적인 시간 구조 속에서 비간은 이야기 중심의 서사에서 이탈하며 끊임없이 이미지들을 배열한다. 이 영화에서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타르코

Language Lessons(2021), Northman(2022)

  1. 팬데믹 시대의 인간 관계, Language Lessons(2021)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Cariño는 온라인 수업의 새로운 학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수업을 등록한 사람은 윌인데, 윌은 그 수업을 들을 사람은 자신의 파트너인 아담이라고 알려준다. 아담은 윌이 자신을 위한 깜짝 선물로 100회의 스페인어 수강권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카리뇨와 아담의 스페인어 수업이 시작된다. 영화는 웹캠 화면 속의 작은 대화창이 뜬 상태로 시작해서 내내 그 화면이 이어진다. 감독으로 카리뇨 역을 연기한 Natalie Morales는 아담 역의 Mark Duplass와 각자의 지역에서 촬영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나중에 편집 작업을 했다. 'Language Lessons(2021)' 는 Covid-19으로 이동이 통제된 시기에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카리뇨와의 첫 수업에서 아담은 자신과 윌이 동성 부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는 매우 영리하게 앞으로 진행될 스페인어 수업이 연애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오로지 아담과 카리뇨의 대화를 통해서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아담은 5년 전, 현대 무용가인 윌의 공연을 보고 반해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사는 부유한 동성애자 아담과 코스타리카에 사는 중하층의 스페인어 선생 카리뇨의 언어 수업은 도대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사랑이 아니라면 우정? 영화는 그 흥미진진한 줄타기로 관객을 유인한다.   갑작스런 윌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던 수업은 다시 이어지고, 아담과 카리뇨는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의지한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만이 이어질 것 같았던 수업은 어느 날, 아담이 카리뇨의 얼굴에 생긴 멍과 상처를 보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카리뇨는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것인가? 영화는 인간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호기심, 친밀함, 갈등과 거리감을 맛깔나는 대사 속에 풀어놓는다.   마크 듀

메이지 시대 야쿠자의 초상, 明治侠客伝 三代目襲名(Blood of Revenge, 1965)

  18일 만에 장편 극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1960년대 일본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그것은 좀 버겁기는 했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카토 타이(加藤泰) 감독의 'Blood of Revenge(1965)'는 18일 동안의 촬영 결과물이었다. 감독과 주연 배우는 서로 뜻이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의 원제목은 ' 明治侠客伝 三代目襲名' , 우리말로 번역하면 '메이지 시대 협객전 삼대의 이야기'쯤 되겠다. 여기에서 '협객(侠客)'은 중국 무술 영화에서 볼 법한 그런 협객이 아니라 '야쿠자(ヤクザ)'를 뜻한다. 영화는 메이지 시대(1907년) 오사카를 배경으로 야쿠자 세력들의 암투를 그린다.   TV의 등장은 영화 산업계에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더이상 영화관은 관객들로 미어터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편안히 TV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러한 상황은 1960년대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오랜 검열 제도가 막을 내리고, 폭력과 성을 과감하게 내세운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다.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하나의 흐름은 야쿠자들이 등장하는 영화였고, 또 다른 흐름은 로망 포르노였다. 'Blood of Revenge(1965)' 는 당시에 공장에서 찍어내듯 양산된 야쿠자 영화의 초기작이다.      영화는 인파로 붐비는 마츠리 행사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자객으로 보이는 한 남자는 멀리에서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다. 키야타츠시 일가의 2대 수장 후쿠이치는 아내와 함께 축제를 구경하러 나왔다. 카토 타이는 바닥을 훑는 로우 앵글(low angle) 쇼트로 야쿠자 두목에게 닥친 불시의 습격을 보여준다. 오야붕의 치명적 부상에 조직은 동요한다. 후쿠이치에게는 유흥으로 시간을 보내는 철없는 아들 하루오가 있다. 복수를 하겠다며 혈기에 날뛰는 하루오를 진정시키는 이는 조직의 2인자 아사지

Lillian Hellman의 1960년대 미국 사회 해부, The Chase(1966)

    시나리오 작가 릴리언 헬먼(Lillian Hellman) 은 매카시즘의 광풍에 굴복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헬먼이 시나리오를 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Dead End(1937)' 에는 하나의 도로를 공유하는 부자와 빈자가 나온다. 이 극명한 계층 대립의 구조는 헬먼이 바라본 미국 사회의 내면이었다. 아서 펜 감독의 1966년작 'The Chase' 에 이르면 헬먼의 그러한 시각은 더 날카로워진다. 인종 차별, 부패와 폭력, 성적 타락... 헬먼은 텍사스 가상의 소도시 Tarl County에 그 모든 것을 구현해낸다. 명백히, 그 도시는 철저히 썩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임이 드러난다.   부유한 은행가 발 로저스는 Tarl County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자이다. 마을의 보안관 칼더(말론 브랜도 분)는 상식과 공정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 또한 마을의 다른 사람들처럼 로저스의 영향력 아래 있다.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던 버바(로버트 레드포드 분)의 탈옥 소식이 들린다. 도주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살인 사건에 휘말린 버바. 칼더는 그가 마을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 로저스의 집에서는 부자들의 호화로운 생일 파티가 열린다. 그곳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부행장 에드윈의 집에서 그들만의 파티를 즐긴다. 버바의 탈옥 소식에 마을은 긴장과 흥분에 휩싸인다. 자경단이 버바를 잡겠다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마침내 버바가 마을에 숨어드는데...   Rotten to the core. 영화 속 Tarl County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로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듯 하다. 버바의 아내 안나(제인 폰다 분)는 로저스의 아들 제이크와 불륜 관계이다. 부행장 에드윈의 아내 에밀리는 유부남과 바람이 났다. 에드윈의 집에서 열린 파티 장면은 이 마을의 성적인 타락과 방종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칼더로 대변되는 공권력도 무시한다. 젊은 여자는 지나가는 흑인을 보고 탈주범이라고 외치고, 남자들은 린

봉인된 평화의 시간, Unnamed Film(2008)

    소년은 강에서 잡아온 작은 물고기를 수줍게 내어 보인다. 카메라에 담긴 이 마을의 시간은 매우 느리고, 평화롭게 흐른다. Naomi Uman의 증조부는 1906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나오미 우만은 증조부의 고향 마을 Legedzine (Kyiv에서 250km 떨어진 곳)으로 떠난다. 여러 해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관찰자로, 마을 구성원으로 Legedzine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러닝타임 55분의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Unnamed Film' , 이름없는 이 소박한 다큐는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다.   이제 막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마을 사람들, 가난한 시골 마을의 삶은 그저 팍팍하기만 하다. 집단 농장의 땅은 주민들에게 다시 나누어졌다. 땅에 의지해서 사는 주민들은 매일 들판에서 고된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감자, 토마토, 옥수수, 생선 튀김... 식탁에 차려진 식재료들은 그곳의 자연에서 주민들이 힘겹게 얻은 것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도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먹고 살 수 있다.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근처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먼 거리를 걷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오미 우만은 Legedzine의 풍광을 결코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마치 민속지학자처럼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의 많은 것들을 정밀하게 담는다. 중간중간 들어간 해설 자막은 이 마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농작물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외래 유입종 해충을 설명할 때에는 벌레를 자세히 비춰주며 뭉그러뜨려 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시간은 꽤 흥미롭다. 그 아이들에게 영어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교사를 따라 영어 문장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얼어붙은 강가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벽돌 공장의 노동자들, 시골 장터의 시끌벅적한 모습... 나오미 우만은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도 놓치

모성을 다룬 두 편의 최신작: Petite Maman(2021), C'mon C'mon (2021)

    Céline Sciamma의 2021년작 'Petite Maman(2021)' 에는 아픈 엄마를 걱정하는 어린 딸이 나온다. 꿈과 같은 환상 속에서 8살 넬리는 자신과 같은 또래가 된 엄마를 만난다. 이 영화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다. 넬리는 '작아진 엄마' 마리온과 우정을 쌓아간다. 영화는 나름 소박한 감동을 주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영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왜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가... 넬리의 아버지는 배경처럼 자리할 뿐이다. 넬리가 방문한 마리온의 집에는 남자가 없다. 마리온의 아버지, 그러니까 넬리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이의 존재는 처음부터 지워져 있다.   'Petite Maman(2021)'에 감독 셀린 시아마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동성애자 감독의 주요한 관심사가 여성의 서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넬리는 할머니를 여읜 엄마의 상심을 위로하고자 애쓴다. 이 꼬마 아이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속이 깊다. 관객은 모친의 죽음이 넬리의 엄마가 지닌 내면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넬리에게 그런 엄마를 보는 일은 익숙했고,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돕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넬리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다. 그런 넬리의 바람은 어린 아이가 된 엄마, 마리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넬리가 마리온과 보낸 짧은 우정의 여정에서 넬리는 엄마의 우울과 불안의 근원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앓았던 병, 아버지의 부재... 그렇게 딸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얻는다. 귀엽고 사랑스런 넬리의 환상 여행은 많은 딸들이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법하다.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Petite Maman(2021)'은 바로 그 궁금증에 대해 셀린 시아마가 펼친 상상의 나래이다. 영화는 페미니즘 서사를 판타지 장르에 녹여

북촌 방향으로부터 10년 후, 당신 얼굴 앞에서(In Front of Your Face, 2021)

  *이 글에는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자매는 도로변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은 참 배달이 발달했어... 저 멀리 도로에 서있는 쿠* 배송 트럭이 보인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지내다 잠깐 한국에 들어온 상옥(이혜영 분)은 고국의 모든 것이 낯설다. 좀 트였다 싶은 곳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동생 정옥은 미국보다 한국이 살기 좋다며 아파트 하나 사서 여기서 살자고 말한다. 동생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입주 때보다 2억이나 올랐다며 신나한다. 말 나온 김에 근처 아파트 공사 현장까지 둘러보자고 한다. 상옥이 보기에는 엄청 비싼 아파트, 여기 사람들은 참 돈도 많아...   홍상수의 '당신 얼굴 앞에서(In Front of Your Face, 2021)'는 중년의 은퇴 여배우 상옥의 하루를 따라간다. 이런 구성은 홍의 2011년작 '북촌 방향(The Day He Arrives, 2011)'과 유사하다. 대구에서 교편을 잡은 영화 감독 성준(유준상 분)은 아주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온다. '얌전하고 조용하게, 깨끗하게 서울을 통과하는 거다' 성준은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를 시작하며 그렇게 다짐한다. 과연 성준은 자신의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당신 얼굴 앞에서'의 상옥은 수시로 경건한 기도문을 읊조린다. 과거와 내일은 없으며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합니다. 이곳에 천국이 이미 와있습니다. 미래의 악몽에서 구해주시고, 항상 여기에 머물게 하소서... 마치 신앙고백같은 상옥의 말들은 자연스럽다기보다 의지적인 다짐으로 들린다.   '북촌 방향'의 성준이 영호 형(김상중 분)과 만나서 '소주'를 마신다면, 상옥은 영화 감독 재원과 '배갈'을 들이킨다. 술이 들어가면서 홍의 인물들의 속내와 과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상옥의 감사 기도문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상옥은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재원의 부탁

길을 잃은 사람들, The Bigamist(1953)

      여배우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 이혼은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이루어졌다. 영화 제작자였던 여배우의 남편은 곧 다른 여배우와 결혼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에도 재능이 있었던 여배우는 자신의 영화를 찍기로 한다. 제작과 시나리오는 전남편이, 주연은 전남편과 재혼한 여배우가 맡았다. 'The Bigamist(1953)' 은 정말 특이한 영화이다. 뭔가 한자리에 있어도 껄끄러울 것 같은 세 사람이 같이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여배우는 Ida Lupino , 전남편은 Collier Young , 전남편과 결혼한 이는 Joan Fontaine 이다. 영화는 '중혼자(重婚者)'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아내를 둔 남자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줄거리이다. Ida Lupino는 연출도 하고 연기도 했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여자 필리스 역을 맡았다.   냉장고 판매 사업을 하는 해리와 아내 이브는 입양을 결정한다. 이브는 불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다. 입양 기관의 조사 담당관 조단은 해리에게서 미심쩍은 느낌을 받는다. 해리의 주변을 탐문하던 조단은 LA로 출장을 간 해리가 아기와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단이 중혼죄로 경찰에 신고하려던 순간, 해리가 이를 말린다. 해리가 조단에게 털어놓는 과거는 플래시백으로 제시된다. 이 남자는 어쩌다 딴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두게 된 것일까...   이 영화에서 해리 역을 맡은 배우 에드먼드 오브라이언은 미남 배우의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배우 생활 내내 체중 조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뭐랄까, 후덕한 인상의 동네 아저씨 같은 외모이다. 그런 그가 연기하는 '해리'라는 인물은 아내를 사랑하며, 결혼 생활에도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쓴다. 아내 이브는 해리의 일을 돕게 된 이후로 오히려 사업에 매진하고, 그런 아내에게서 해리는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에 그는 우연히 LA에서 알게된 필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중요한 것은 해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묵시적 예언서, 개의 심장(Собачье сердце, Heart of a Dog, 1988)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손뿐만이 아니라 다리도 잘라서 강물에 내던져야 한다."   영화 '개의 심장(Heart of a Dog, 1988)' 을 만든 Vladimir Bortko 는 신문에 실린 평론가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작가 Mikhail Bulgakov 가 1925년에 쓴 원작 소설은 소련에서 오랫동안 금서 목록에 올라 있었다. 그러다가 1987년, 고르바초프 집권기에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을 타고 공식적으로 출판이 되었다. 그 이듬해에 블라디미르 보르트코 감독은 소설을 가지고 TV 방영용 영화로 만들었다. 방영 후의 반응은 꽤 격렬했다. 저주에 가까운 혹평은 그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영화 '개의 심장'은 문학을 모범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영화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보르트코 감독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소련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세피아(sepia)'색의 필터를 끼워서 촬영했다. 누리끼리한 황갈색의 독특한 색감은 영화의 음울한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개의 시점 쇼트로 펼쳐지는 1920년대 소련의 풍경과 마주한다. 눈이 쌓인 황량한 거리에 사람들은 줄지어 서서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1921년, 레닌은 신경제정책(NEP) 을 추진한다. 1차 세계 대전에 이어 오랜 적백 내전으로 소련의 경제는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소련 인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사람이 그럴진대 개의 처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원작 소설 속에서 처음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바로 'Sharik'이라는 이름의 개이다. 샤릭은 필사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는 중이다.     굶주린 개 샤릭은 Filipp Filippovich Preobrazhensky 박사가 건네는 소시지 한 조각에 혹해서 따라간다. 회춘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박사에게는 시커먼 속셈이 있다. 그는 샤릭을

청춘의 구부러진 길: Bronco Bullfrog(1969), Private Road(1971)

  청춘의 구부러진 길, 영국 감독 Barney Platts-Mills(1944-2021)의 영화 두 편 Bronco Bullfrog(1969), 1시간 26분 Private Road(1971), 1시간 29분   영국의 감독 Barney Platts-Mills 의 'Bronco Bullfrog(1969)' 는 하마터면 다시는 관객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개봉 당시에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배급사는 영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에 마스터 네가티브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걸 매립지행에서 구해낸 사람은 영화사 직원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살아남았다(출처 theguardian.com). 'Bronco Bullfrog'에 출연한 이들은 하층민 출신의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Stratford의 Theatre Royal에서 지역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 마련한 연기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저예산에 아마추어 배우들을 데리고 플래츠 밀즈는 자신의 첫 영화를 찍었다.   델, 로이, 크리스, 제프. 4명의 십 대 청소년들은 잽싸게 카페의 창문을 깨고 가게 이곳저곳을 뒤진다. 기껏 갖고 나간다는 것이 케이크 몇 조각. 어째 하는 걸 보니 녀석들은 초짜 도둑들 같다. 싸구려 변두리 영화관에서 시간을 죽이더니, 길가던 남자한테 주먹질로 시비를 건다. 버려진 건물 아지트에서는 도색 잡지를 보면서 키득거린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Bronco Bullfrog 조가 무리에 합류하면서 녀석들의 비행은 범죄로 나아간다. 그 와중에 델은 또래 아이린과 연애를 시작한다.   가난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가진 돈이 없으니 갈 데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훔친 오토바이로 시내 질주하기, 무너진 건물 아지트와 근교 숲에서 시간 때우기... 맘놓고 서로를 안을 장소도 찾기 어렵다. 궁리 끝에 연인들이 찾아간 곳은 친구 Bronco Bullfrog의 허름한 하숙방이다. 훔친 물건들로 채워진 비좁은

여행지의 악몽, Hotel Coolgardie(2016)

    손님들은 들뜨고 기대에 차있다. '새로운 고기(new meat)'가 곧 도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정육점인가? 아니다. 호주 오지의 술집(pub)이다. Coolgardie는 서호주 중남부 내륙에 위치한 시골 마을이다. 20세기 초반에 금광의 발견으로 흥청거렸던 이 마을은 이제 그 누구도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곳에 두 명의 핀란드 아가씨가 도착한다. 배낭 여행객 스테파니와 리나는 Bali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남은 돈이라고는 15달러가 전부. 호주에 도착한 그들은 워킹 홀리데이로 여행 경비를 벌 생각을 하고 직업 소개소로 간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바로 'Hotel Coolgardie'. 그렇게 스테파니와 리나의 잊지못할 워킹 홀리데이가 시작된다.   시골 술집의 구수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큰 오산이다. 술집 주인 피터는 욕설과 모욕적인 표현(shit, bitch)을 입에 달고 산다. 예절바르고 교양있는 두 명의 핀란드 아가씨는 그곳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다(언어 때문이 아니다. 리나와 스테파니의 영어 구사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 이 시골 주민들의 입은 거칠기 짝이 없다. 스테파니와 리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 성희롱에 해당하는 말들이다. 잠자리를 같이 하자는 말부터, 나체 여자 사진 들이대면서 지분거리는 일은 사소할 뿐이다. 술꾼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속하고 너절하게 구는 중년의 여자 술꾼들도 있다. 리나와 스테파니에게 욕설을 퍼붓고, 먹다 남은 술을 카운터에 쏟아버리기도 한다.   호주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Pete Gleeson은 호텔 쿨가디를 이전에 여러 번 방문했었다. 그의 관심은 그곳 사람들의 폐쇄성이 외지인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할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2016년작 다큐 'Hotel Coolgardie' 는 그렇게 외국인 스테파니와 리나의 쿨가디 체류기를 담아낸다. 거칠고 상스러운 술꾼들에게 핀란드 아가

엉성한 페미니즘 서사에 담긴 치유와 희망, 용과 주근깨 공주(Belle, 2021)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메타버스(Metaverse) . 3차원의 가상 세계와 소셜 미디어가 결합된 새로운 플랫폼. 호소다 마모루의 2021년작 '용과 주근깨 공주(Belle, 2021)' 는 바로 그 메타버스를 애니메이션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미녀와 야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는 하나, 이 특이한 애니메이션은 프랑스 동화에서 한참을 이탈한 모습을 보여준다. 호소다 마모루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 '늑대아이(2012)' 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한 감독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에 국내 개봉한 그의 신작은 별다른 화제가 되지 못하고 곧 잊혀졌다. 아니, 혹평 속에 버려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개연성 없는 이야기, 지나치게 난삽한 플롯, 빈약하게 구축된 캐릭터들. 메타버스 열풍에 발빠르게 탑승한 이 영화는 실패작인 걸까?   보고 나면 한숨만 나오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놀랐던 부분은 일본에서의 초대박 흥행 성적이었다. 이 영화는 2021년 일본 흥행 성적 3위로 65억 3천만 엔의 극장 수익을 기록했다. 물론 일본 관객들의 특촬물과 애니메이션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용과 주근깨 공주'가 특별히 관객성에 더 호소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일본의 관객들을 이 영화 앞으로 모여들게 만들었을까? 이 글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스즈는 17살 고등학생이다. 스즈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겠다고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 사건은 성장 과정에서 스즈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는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와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스즈에게 절친 히로는 가상 메타버스 'U'를 소개한다. 'Belle'이라는 아이디로 U에서 가수로 데뷔한 스즈는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홍상수가 그려낸 영화판 사람들, 우리 선희(2013)

    "나 학교 마치면 어디 딴 데 가 있고 싶어. 이 영화판 사람들 정상인 사람들 아무도 없어. 다 또라이야."   이제 막 자신의 영화를 찍은 대학원생 문수(이선균 분)는 전 여자친구 선희(정유미 분)에게 그렇게 말한다. 홍상수의 2013년작 '우리 선희' 에는 문수가 말한 그 '또라이' 천지인 영화판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맞아, 거긴 또라이들이 가득했어. 결국 그래서 '어디 딴 데'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과 학생 선희는 한동안 학교를 떠나 있었다. 그러다 유학을 앞두고 추천서를 받기 위해 최교수(김상중 분)를 찾는다. 헤어진 남자 친구 문수, 가깝게 지냈던 선배 재학(정재영 분)은 다시 보게 된 선희가 너무나도 반갑다. 그들 모두는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세 남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선희에 대한 마음을 토로한다. 문수는 선희의 마음을 다시 얻고 싶어하고, 재학은 숨겨왔던 연심을 내비치고, 최교수 또한 제자가 아닌 여자로 선희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언제나 그러하듯 홍상수의 '소주'가 함께 한다.    절친한 사이인 세 남자는 한 여자를 좋아하지만, 그 여자가 '선희'라는 사실은 서로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희는 세 남자에게 각각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확실히 문수와는 끝났고, 최교수에 대해서는 모호하며, 재학에 대해서는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이 사각 관계의 오묘한 퍼즐을 풀 수 있는 단서는 오로지 '소주'에 있다. 술이 들어가고 나서야 그들은 본심을 말하고, 솔직해지며, 자신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에 근접한다. '소주'는 홍의 영화적 각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게 영화쪽 사람들에게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술과 담배는 인간 관계, 영화 작업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압도적 풍경의 서사, The Tale of King Crab(Re Granchio, 2021)

    영화는 시골 사냥꾼들의 담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선술집에 둘러앉은 그들은 오래전 이 마을에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게 영화의 1부에서 루치아노라는 이름의 광인이 등장한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Tuscia, 마을 의사의 아들 루치아노는 늘 술에 절은채 폐인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가난한 양치기의 딸 엠마가 눈에 들어온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연인과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도 잠시, 반항적인 루치아노는 마을의 절대적 권력자 영주와 충돌한다. 그로 인해 고향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그 과정에서 연인 엠마도 목숨을 잃는다.   1부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 같다. 좀 싱겁네, 하고 심드렁해지려는 순간, 갑자기 2부가 시작된다. 이탈리아 시골의 수려한 풍광은 이제 남미 대륙의 최남단, 황량한 Tierra del Fuego 로 바뀐다. 루치아노는 사제의 복장을 하고 있다. 그는 숨겨진 황금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보물 사냥꾼들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바뀐 것은 풍경뿐만이 아니다. 장르도 바뀐다. 고통스럽게 끝난 루치아노의 로맨스는 어느새 처절한 서부극으로 이어진다.   이 하이브리드 장르의 이탈리아 영화는 나름 매력이 있다. 특히 Tierra del Fuego의 원시적 풍광은 압도적이다. 끝없이 이어진 거친 자갈 언덕과 호수, 독특한 화산 지형을 배경으로 황금 사냥꾼들은 욕망과 배신의 서사를 짜나간다. 한마디로 그냥 '풍경'이 다 해 먹는 영화. 조그만 태블릿 PC 화면으로 보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거기에다 여인들의 구음과 민속 악기가 어우러진 배경 음악은 마치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 (Greek chorus) 같다.   루치아노 역을 맡은 Gabriele Silli는 미술가로 비전문 배우임에도 좋은 연기를 펼친다. 현지 주민들을 기용해 자연스러운 연출을 보여준 점도 괜찮다. 두 명의 감독은 우연히 시골에 갔다가 농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Hyphen과 같은 이민자의 삶, Happy Cleaners(2019)

    대학 다니던 아들 녀석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다. 뭔가 대단한 계획이 있나 했더니 푸드 트럭을 하겠다고. 하고 있는 세탁소는 임대인이 바뀐 뒤로 비워줘야할 상황이다. 뉴욕 플러싱에서 17년 동안 세탁소를 해온 이민자 최씨 부부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아메리칸 드림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있다. 이 가족,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Julian Kim, Peter S. Lee의 2019년작 'Happy Cleaners' 는 한인 이민자 가정의 고군분투기를 담는다.   영화는 고성이 오가는 엄마와 아들의 언쟁으로 시작한다. 엄마는 한국말로 야단을 치고, 아들은 영어로 응수한다. 이민자 가정의 이러한 이중 언어 사용은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다. 생존을 위해 영어를 배우기는 했지만 한국말이 편한 1세대, Asian American의 정체성에 영어가 모국어인 2세대. 구사하는 언어만큼이나 부모와 자녀 세대의 사고방식도 전혀 다르다. 드라이클리닝 컴플레인으로 찾아온 백인 여성은 터무니없는 액수의 보상을 요구한다. 엄마는 여자가 원하는 대로 보상금을 내어준다. 케빈이 화를 내며 그 이유를 묻자, 엄마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 편이 아니니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my country'라고 말하는 케빈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몸을 사리는 부모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민자 가정에서 일어나는 세대 갈등과 간극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자신들은 뼈빠지게 고생하지만, 자녀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성공하는 것. 그것이 이민자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하지만 최씨 부부의 현실은 혹독하다. 세탁소를 그만둔 부부는 생계를 위해 일용직을 전전한다. 아들은 공부 대신 음식 장사를 하겠다고 하고, 딸은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Happy Cleaners'에는 한인 이민자들의 현실이 사실적인 풍경 속에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