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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3편: 전후 일본 사회가 마주한 고통과 혼란,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

    노로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그는 과속을 하는 트럭을 피하려다 손을 다친다. 그가 받는 빠듯한 봉급으로 단칸 월세방 돈 내는 것도 힘든데 병원비까지 나가게 생겼다. 그는 학교에서 그의 봉급을 올려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깡패같은 고등학교 이사장은 노로에게 야간 고등학교 강의까지 더하라고 강권한다. 천성이 유약한 노로는 '아니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노로. 그는 자신의 제자가 권유한 반정부 시위에 나가보기로 한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무참히 진압되었다. 노로는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난다. 하지만 이 일을 빌미로 이사장은 노로를 해고한다. 전후의 어려운 시절, 노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 감독의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는 고등학교 선생 노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만화가 있다. 만화가 요코야마 타이조(横山泰三)는 1950년부터 1953년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에 4컷 만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를 연재했다. 4컷 만화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 때문에 만화는 연재 중단의 압력을 받았다. 이치카와 곤은 그 만화에서 영화의 주요한 소재를 차용했다.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는 명확한 서사 대신에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영화의 그러한 구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여러 면면들을 부각시킨다.    노로는 다친 손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다. 그런데 의사는 노로의 몸을 진찰하더니 '영양실조'라면서 잘 먹어야 한다고 처방을 내린다. 젊은 의사는 환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노로가 의사에게 손을 치료받고 싶다고 하자, 의사는 병원의 X-ray 기계가 고장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전후...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2편: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Akira Kurosawa) 2. 구로사와 아키라가 그려낸 전후 청춘 세대의 초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는 자꾸만 땅바닥을 내려다 본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누가 피우다 버린 담배 꽁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망설이던 그는 마침내 꽁초를 주워든다. 그때, 남자에게 다가온 젊은 여자가 책망하듯 남자의 손등을 가볍게 친다. 그제서야 남자는 멋적은듯 꽁초를 떨어뜨린다. 남자와 여자는 연인 사이이다. 일요일, 두 사람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 친구를 보아도 그다지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남자의 행색은 꾀죄죄하다. 그렇다. 그에게는 돈이 없다. 막상 여자 친구와 만나 돌아다니려고 생각하니 남자는 자신의 비어있는 지갑이 신경쓰인다. 여자 친구는 약간의 용돈을 가지고 있다며 남자를 안심시킨다. 과연 이 연인들은 멋진 일요일을 보낼 수 있을까...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은령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이 개봉된 그 해에 영화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을 선보였다. 이 영화는 가난한 연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마사코와 유조, 수중에 35엔 밖에 없는 연인들의 데이트는 지지리도 궁상맞다.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마땅히 갈만한 데도 없다. 마사코는 교외에 있는 견본 주택 전시장이 입장료가 무료이니 가보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이 가서 본 견본 주택은 가격이 10만엔에 이르는 멋진 집이다. 마사코는 유조에게 언젠가 자신들이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지 않겠냐고 꿈을 갖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집에 얹혀 사는 백수 신세인 유조의 귀에 그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마사코와 유조의 데이트 여정을 통해 전후 일본의 황폐한 ...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1편: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다니구치 센키치(谷口千吉, Senkichi Taniguchi) 1. 산악 영화에 투영된 미군정의 문화 전략, 은령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1945년 8월, 일본의 침략 전쟁은 처절한 패배로 끝을 맺었다. 곧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General Headquarters) 가 패전국 일본을 점령, 통치했다. GHQ는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새롭게 개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청사진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의 전환,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악습의 타파,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인본주의적 사상의 전파를 담고 있었다. 정치와 사회 체제의 개혁과 함께 일본 국민의 의식구조 전환도 시급한 과제였다. GHQ는 일본이 침략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전쟁의 책임을 자각하고 반성하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의 통제와 검열은 필수적이었다. 언론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의 미디어는 GHQ의 엄격하고 세심한 관리를 받았다.   일본의 영화 산업은 그런 기류에 발빠르게 적응했다. 패전 직후 영화사들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제작 스튜디오를 재건하고 영화 인력을 재편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영화사들이 중점을 둔 것은 GHQ의 검열 기준에 적합한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군국주의 국가 일본의 정치 선전(propaganda)에 충실했던 영화는 이제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상정된 미국의 가치 기준을 설파하기 위해 앞장섰다. 미군정(美軍政)은 이러한 영화사들의 변화를 열렬히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영화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은 미군정 치하에서 만들어진 영화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다니구치 센키치(谷口千吉, Senkichi Taniguchi) 감독의 이 영화는 각색 작업을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Akira Kurosawa)가 맡았다. 전...

한 장면 뒤에 숨겨진 세상,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カメラを止めるな!, One Cut of the Dead, 2017)

  *이 글에는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20분. 그것은 내가 영화를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최소 감상 시간이다. 대개 괜찮은 영화들은 그 시간 기준에 그럭저럭 들어온다. 아주 좋은 어떤 영화들은 그 시간을 넘기는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그런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One Cut of the Dead, 2018)'는 그 20분을 넘겨서 무려 37분을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그저 그런 좀비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부터이다. 도무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이 조잡한 좀비 영화에는 한가지 특색이 있다. 원 테이크(single take)로 끊김없이 이어진다는 것. 좀 지루하다, 라고 생각할 즈음에 제목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One Cut of the Dead'는 이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영화 속의 영화. 이런 액자 구조 형식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구조를 택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느냐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엄청나게 긴 '한 컷'의 영화 뒤에 숨겨진 세상을 보여주고자 그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효과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우선 초반의 37분을 견뎌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인내는 충분히 보답받는다.   빠르게 찍고, 저렴한 비용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를 뽑아내는 것을 신조로 삼고 사는 삼류 감독 히구라시는 어느 방송국으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요새 유행하는 좀비 영화를 원 테이크로 찍어서 생방송으로 내보낸다는 것. 쉽지 않을 것 같은 이 좀비 영화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쥐뿔도 없는 주조연 배우들의 오만가지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골치 아픈데, 급기야 촬영 당일 두 명의 배우가 약속 장소에 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생방송은 곧 예정되어 있고 당장 배우 둘을 구하기도 어렵다. 삼류...

바람 속의 아이들(風の中の子供, Children in the Wind, 1937), 손을 잡은 아이들(手をつなぐ子等, Children Hand in Hand, 1948)

    일본 영화사 수업을 담당한 선생은 일본에서 일본 영화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였다. 그 선생이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과 동기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들 가운데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고 했다.   "왜 영화를 항상 그런 식으로 봐요?"   선생은 일본 영화 속에 내재된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 집단주의와 가족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향수와 같은 맥락을 늘 놓치지 않고 보았다고 했다. 그건 식민 지배의 역사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영화 속에서 읽어내는 것이 일본인들의 눈에는 다소 낯설고 불편하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함께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하나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은 각 사람이 가진 문화적 배경, 그리고 경험의 층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한국인으로서 일본 영화, 특히 전후의 일본 영화를 보는 것도 서구인들이나 일본인들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시미즈 히로시( 清水宏, Shimizu Hiroshi) 감독의 1937년작 '바람 속의 아이들( 風の中の子供, Children in the Wind) 를 보았다. 그 한 편으로 리뷰를 쓰기에는 뭔가 좀 심심하고 모자른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오는 비슷한 영화를 하나 더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 게 된 영화는 이나가키 히로시( 稲垣浩 , Inagaki Hiroshi )의 1948년작 '손을 잡은 아이들( 手をつなぐ子等 , Children Hand in Hand) 이었다. 이 영화는 도저히 자막을 구할 수가 없어서 자막 없이 보았다. 둘 다 흑백 영화이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화질과 음질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 별 다른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 영화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거나 연구자들이나 볼 법한 영화들을 그렇게 두 편 보았다.   '바람 속의 아이들'에는 예기치 못한 송사에 휘말린 아버지의 부재를 겪는...

12명의 상냥한 일본인(12人の優しい日本人 , The Gentle Twelve, 1991)

    Sidney Lumet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을 본 이들이라면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 ラヂオの時間, 1997)' 의 각본을 쓴 미타니 코키는 '일본에도 배심원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가정하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미국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Nakahara Shun 감독의 ' 12명의 상냥한 일본인(The Gentle Twelve, 1991)' 은 덜 무겁고 경쾌하다. 러닝 타임이 2시간 가까이 되는데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의 향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12명의 배심원들에게는 이름이 없고, 배심원 1호, 2호와 같이 번호가 부여된다. 영화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심원장을 맡은 1호의 제안에 따라 거수로 피의자의 유무죄를 평결하게 된다. 젊은 여성 피의자는 폭력으로 이혼한 남편의 재혼 요구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밀쳐서 트럭에 치여 죽게 만들었다는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배심원들은 재판 과정을 모두 보았고, 이제 평결을 내려야 한다. 미모에, 기구하고 가련한 인생사를 가진 여성 피의자에게 동정심을 느낀 배심원들은 별다른 토론도 하지 않고 전원 무죄 평결에 이른다. 그렇게 배심원들이 모두 방을 나서려는 순간, 배심원 2호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유죄를 주장한다. 그때부터 치열한 토론이 시작된다.   '12명의 상냥한 일본인'에는 토론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행태들이 다 나온다. 큰 소리로 우기기, 비꼬기, 사실 왜곡, 끼어들기와 거짓말, 감성에의 호소... 각각의 배심원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직업, 살아온 이력에 따라 피의자의 유죄와 무죄를 주장한다.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이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기 보다...

전후 일본 소시민의 일상을 엿보다, 금일휴진(本日休診, Honjitsu kyushin, 1952)

      자막이 없이 영화를 볼 때가 가끔 있다. 영어로 된 영화를 자막 없이 볼 때도 있고, 오래된 일본 영화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대충 아는 언어로 영화를 보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래도 좋은 영화들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어서 관객이 자막이라는 보조 도구가 없어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시부야 미노루( 渋谷実, Minoru Shibuya ) 감독 의 1952년 영화 '금일휴진 (本日休診) ' 의 경우도 그랬다. 영어 자막을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일본어 자막을 띄워놓고 드문드문 알아듣는 일본어를 꿰맞추어가며 봤다. 코미디 장르라 그런가, 회화가 그리 길거나 어렵게 들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는 나름의 괜찮은 흐름을 가지고 관객을 안내한다.   소도시에서 작은 병원을 하는 야츠하루 선생은 조카에게 원장 자리를 물려준 지 1년이 되었다. 그것을 기념하며 하루 휴진을 하는데, 아침부터 병원은 부산스럽다. 제대 후 정신이 이상해져서 수시로 소리지르며 발작하는 퇴역 군인 유사쿠를 진정시켜야 했던 것.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났더니 다음에는 경찰이 강도를 당한 유코라는 아가씨를 데려온다. 병원에는 야츠하루 선생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진다. 출산이 임박한 가난한 임산부도 살펴봐야 하고, 도박을 못하게 해달라며 손가락을 마비시켜주는 주사 놔달라는 야쿠자도 온다. 평온한 은퇴의 일상을 꿈꾸는 야츠하루 선생에게 휴진이 가능한 날이 오기는 올까...   시부야 미노루의 '금일휴진'은 1949년에 나온 이부세 마스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장르는 코미디이지만, 이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웃음 뒤에는 당시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아마도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는 것으로 추정되는 퇴역군인 '유사쿠'가 그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툭하면 큰소리로 군가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는 유사쿠를 야츠하루 선생을 비롯해 동네 사람...

태양과 장미(太陽とバラ, The Rose on His Arm, 1956)

키노시타 케이스케가 바라본 전후의 일본 사회와 태양족 *이 글에는 영화 '태양과 장미'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한여름의 바닷가, 피서 인파로 가득한 해수욕장에 한 청년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다. 누군가 물에 빠졌다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바다로 몰려간다. 그러자 청년은 자리를 비운 누군가의 소지품을 잽싸게 훔쳐서 달아난다. 청년은 같은 또래의 불량배 친구들와 어울리며 절도 행각을 이어간다. 하는 일 없이 동네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주먹다짐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다. 키요시의 모친은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아들이 마음을 다잡고 돈을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그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Keisuke Kinoshita) 감독의 영화 '태양과 장미(太陽とバラ, The Rose on His Arm, 1956)' 는 전후의 상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일본 사회를 응시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 나오는 '태양'은 새롭게 등장한 젊은 세대 '태양족(太陽族, Taiyouzoku)' 과 무관하지 않다. 그 단어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에서 유래되었다. 소설은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하며 무절제한 향락에 빠진 청년 세대의 모습을 그렸다. 기성 세대에게 태양족의 출현은 충격이었지만, 젊은이들은 태양족에 그들의 욕망을 투사했다. 영화사들도 태양족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도 그런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태양과 장미'의 주인공 키요시를 '태양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하층 계급 불량배 청년의 모습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태양족'은 키요시의 모친이 가정부로 일하는 부잣집 아들 마사히로이다. 부유한 부모를...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4부: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쇼치쿠(Shochiku, 松竹) 영화사의 이상한 모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니혼마츠 카즈이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사토 하지메(佐藤肇) 4. 지구 멸망의 비관적 세계관: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우주 대괴수 기라라(1967)'를 만든 그 이듬해, 니혼마츠 카즈이 감독은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을 내놓았다. 영화는 '원자 폭탄의 발명은 인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대학살(Genocide)' 이라는 영어 제목이 암시하듯, '곤충대전쟁'에는 비관적 세계관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지구 멸망의 단초가 되는 것은 '독충'이다. 핵폭탄을 싣고 베트남으로 향하던 미군 수송기는 곤충 무리의 갑작스런 습격을 받고 아남 군도에 추락한다. 미군 수뇌부는 비밀리에 생존자와 핵폭탄의 행방을 조사한다. 두 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한 명의 생존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미군의 죽음이 독충과 관련있다고 믿게된 곤충학자 나구모 박사는 독충의 근원지를 찾아나선다. 마침내 나구모 박사는 살인 곤충을 만들어낸 장본인과 마주하게 되는데...   '곤충대전쟁'에는 당시 일본이 바라본 국제 관계의 역학이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미국은 오만한 패권 국가로 비춰진다. 미군 수사대는 무죄한 섬 주민을 미군 살해범으로 몰아간다. 그들이 나구모 박사를 비롯해 일본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강압적이고 무례하다. 일본은 패전 이후 연합군 총사령부(GHQ) 의...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3부: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쇼치쿠(Shochiku, 松竹) 영화사의 이상한 모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니혼마츠 카즈이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사토 하지메(佐藤肇) 3. 괴수(怪獣) 영화 속 탈색된 패전의 기억: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광대한 우주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주제가가 도입부에 흐른다.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감독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는 우주 탐험의 미래로 관객을 데려간다. 1960년대, 쇼치쿠 (Shochiku, 松竹) 영화사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 TV의 등장과 보급으로 인해 영화 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 키노시타 케이스케와 같은 감독들이 보여준 소시민적인 현대극(現代劇)은 한물간 낡은 것으로 여겨졌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쇼치쿠는 과감한 모험을 시도한다. SF 영화 와 공포 영화 를 제작한 것이다. 이는 여성 관객 위주의 기존 관객층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TV가 보여줄 수 없는 것,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스튜디오의 세트장은 다양한 특수 효과를 위한 실험실이 될 터였다.   일본인 승무원과 미국인 과학자로 구성된 우주선 AAB 감마는 화성 탐사를 위해 일본의 우주 기지에서 발사된다. 화성에 도착하기 전에 UFO의 방해를 받은 우주선은 정체불명의 포자들에 둘러쌓인다. 포자의 연구를 위해 지구로 귀환한 우주선과 승무원들. 그런데 실험실에 보관된 포자 샘플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우주 기지 주변에 괴물이 출현한다. '기라라(ギラ...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2부: 하우스(ハウス, House, 1977)

  2.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집     *이 글에는 영화 '하우스(1977)'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TV의 등장과 보급으로 인한 영화 산업의 침체기는 197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일본의 영화사들은 그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로망 포르노와 야쿠자 영화로 활로를 찾았던 니카츠(Nikkatsu, 日活) 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는 유사한 니카츠 영화들에 관객들은 슬슬 진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과 특촬(特撮) 영화가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주력 사업이 되었다. 쇼치쿠(Shochiku, 松竹) 는 뜻밖의 노다지를 발견했다.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 의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 1969–1995)' 연작이 그것이었다.   불황의 시기에 사람들은 더 안전한 투자를 선호한다. 해외에서 성공한 영화를 베끼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었다. 1976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록키(Rocky)' 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 수익을 냈다. 이 영화를 보고 도에이(東映) 영화사는 비슷한 권투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영화가 테라야마 슈지 감독 의 '복서(ボクサー, The Boxer, 1977)' 였다. 도호(東宝)도 빠질 수 없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Jaws, 1975)' 같은 것을 만들어 보자! 그 뜻밖의 결과물은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宣彦) 감독 의 '하우스(ハウス, House, 1977)' 였다.   주인공 여고생 오샤레 는 다가올 여름 방학을 설레임으로 기다린다. 해외에 나가있는 아빠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아빠는 딸을 실망시킨다. 딸에게 새엄마가 될 여자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상심한 오샤레는 엄마의 고향 가루이자와에 있는 이모에게 편지를 쓴다. 이모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여름 방학을 보내고 싶다는 것. 이모는 기꺼이 승락...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1부: 공포의 저택(怪談せむし男, House of Terrors, 1965)

  1. 악령의 집에 구현된 일본 사회의 내면   여자는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깨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여자의 남편 신이치는 정신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남편의 장례식, 여자는 주치의로부터 남편이 죽기 전에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지막으로 여자가 남편의 얼굴을 보고 돌아서려는데, 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두 눈을 부릅뜬 시신은 무섭기만 하다. 여자는 남편의 입에 꽂아둔 국화꽃을 빼내려 하지만, 단단하게 맞물린 망자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 변호사가 여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남편이 여자에게 남겼다는 별장의 열쇠를 건넨다. 갑자기 미쳐서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던 남편이 언제 그런 별장을 샀단 말인가? 여자는 그 별장에 가보기로 한다.   별장에는 곧 방문객들이 속속 도착한다. 미망인 요시에, 요시에의 조카 카즈코, 요시에의 삼촌이며 정신 병원 원장인 무네카타 박사, 주치의 야마시타, 야마시타의 여자 친구 아키코, 변호사, 그리고 자신이 요시에 남편의 애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까지. 그들이 머물게 된 이 별장은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끼익거리면서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문들, 현관 중앙에 자리한 괴수의 동상, 어디선가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사람을 공격하는 까마귀, 별장의 꼽추 관리인은 유령처럼 이곳저곳에 출몰한다.   사토 하지메(佐藤肇) 감독의 영화 '공포의 저택(House of Terrors or The Ghost of the Hunchback, 1965)' 이 제작될 무렵에 일본 영화계는 전환기에 놓여 있었다. TV의 등장은 영화 산업계에 닥친 천재지변과도 같았다. 이제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는 대신에 거실의 안락한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것을 택했다. 헐리우드는 TV 화면이 보여줄 수 없는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와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역사극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렇다면 일본의 영화사들은...

파계(破戒, Apostasy, 1948), 파계(破戒, The Outcast, 1962)

  하나의 소설, 다른 관점의 두 영화 파계(破戒, Apostasy, 1948),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 파계(破戒, The Outcast, 1962), 이치카와 콘 감독   국민학교 선생인 세가와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는 부라쿠(部落) 출신이다. 부라쿠민은 전근대 일본의 신분제에서 최하층을 일컫는 말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신분제가 철폐된 이후에도 부라쿠민(部落民)에 대한 차별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일본의 자연주의 소설가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이 1905년에 발표한 소설 '파계(破戒)' 는 바로 이 부라쿠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 은 1948년 에 소설을 영화화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4년 후, 이치카와 콘 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파계'를 만들어 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올해, 이 소설은 또 다시 영화로 만들어져서 일본의 관객들과 만났다. 이것은 소설 '파계'가 지닌 문제의식이 100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일본 사회를 관통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학교에서 숙직을 서던 세가와(이치카와 라이조 분)는 밤하늘 너머 울리는 부친의 목소리를 듣는다. 무언가 안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그는 비밀리에 고향땅을 밟는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부친은 집 나간 황소를 찾아다니다 황소의 뿔에 받혀 절명하고 말았다. 숙부는 조카의 신분이 드러날까 염려하며 얼른 돌아가기를 재촉한다. 평생 부라쿠 출신임을 철저히 숨기고 살 것. 아들만은 차별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기를 바랬던 아버지의 간절한 염원은 그러했다.   세가와는 부라쿠민 출신의 사회운동가 이노코 렌타로의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부라쿠민임을 드러내는 단서가 될까봐 세가와는 책조차 숨겨가면서 읽는다. 마을을 찾은 이노코 렌타로를 만난 자리에서도 세가와는 마...

핏빛 전설에 담긴 전쟁의 광기, 사투의 전설(死闘の伝説, A Legend or Was It?, 1963)

    평화로운 홋카이도의 어느 농촌 마을. 밭일을 하던 농부들은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마을 어귀에서는 바퀴가 빠진 트럭을 보고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도우러 나섰다. 그런데 이렇게 인정과 활기가 넘치는 이 마을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화면 위로 흐르는 남성 내레이터의 목소리는 마을의 과거로 떠나는 신호탄이 된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 의 '사투의 전설(死闘の伝説, A Legend or Was It?, 1963)' 은 종전 직전에 벌어진 농촌 마을의 비극을 보여준다. 가톨릭의 미사 전례곡 첫 부분인 '주여,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소서(慈悲頌, Kyrie)'가 비감하게 흐르는 도입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영화는 음악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영화 전편에 걸쳐 불길하고 음울하게 들리는 배경 음악은 '무쿠리(ムックリ, Mukkuri, 아이누족의 전통 악기)' 가 쓰였다. 그 음악과 함께 영화는 컬러 화면의 현재에서 흑백의 과거로 곧바로 진입한다.   일본의 침략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홋카이도의 산골 마을에 젊은 군인이 귀향한다. 4년만에 전장에서 돌아오는 군인의 이름은 히데유키. 그는 소노베 집안의 장남이다. 히데유키는 마을 입구에서 말을 탄 상이군인과 마주친다. 전쟁에서 왼손을 잃은 그 남자 코이치는 히데유키의 여동생 키에코에게 청혼을 한 터였다. 히데유키는 코이치를 한눈에 알아본다. 코이치는 중국에서 복무했던 히데유키의 부대 상관이었다. 히데유키는 코이치가 아녀자를 강간하고 살해했던 만행을 떠올린다. 그런 잔학한 남자와 여동생을 결혼시킬 수는 없다. 코이치가 싫은 것은 키에코도 마찬가지. 하지만 소노베 가족에게 그 청혼의 거절은 생존과도 직결된다. 도쿄의 공습을 피해 홋카이도로 온 소노베 일가는 이장 타카모리의 도움을 받았다. 코이치는 바로 그 타카모리의 아들이다. 이제 자존감에 상처받은 코이치는 비열한 복수극을 시작한다.   동시대의 오즈 야...

결혼 반지(婚約指環, Wedding Ring, 1950), 우리들의 결혼(私たちの結婚, Our Marriage, 1962)

  1. 사랑에 드리운 군국주의의 그림자, 결혼 반지(婚約指環, Wedding Ring, 1950)   데이비드 린(David Lean) 의 '밀회(Brief Encounter, 1945)' 는 우연히 만난 중년 남녀의 짧은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각자 가정이 있는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일탈 대신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한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恵介) 감독의 '결혼 반지(婚約指環, Wedding Ring, 1950)' 에도 영화 '밀회'의 남녀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등장한다. 도쿄에서 보석상을 운영하는 노리코(타나카 키누요 분)에게는 아픈 남편 미치요가 있다. 남편은 병 때문에 도쿄 근교 바닷가에서 요양중이다. 어느 날, 미치요의 새 주치의 에마(미후네 토시로 분)가 집을 찾는다. 처음엔 단순한 호감이었던 노리코의 감정은 점차 사랑으로 변해간다. 미치요는 그런 아내의 변화를 재빨리 알아챈다. 갑작스런 사랑의 감정에 흔들리는 것은 에마도 마찬가지. 세 사람의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는 마침내 결단의 순간에 다다른다.   얼핏 보기에 통속적인 이 삼각 관계에는 어두운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늘 누워서 지내는 미치요의 병은 전쟁터에서 얻은 것이다. 결혼 직후에 징집으로 끌려간 그는 전쟁이 끝나고 2년 뒤에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아내 노리코는 주중에는 도쿄의 가게를 지키고, 주말에는 아픈 남편을 보살피러 본가로 돌아온다. 남편에 대한 노리코의 애정이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만큼 단단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노리코는 에마가 지닌 생의 활력과 건강함에 순식간에 매혹된다. 병석에 누워있는 남편이 가지지 못한 것을 젊고 매력적인 의사는 가지고 있다.   노리코가 결혼한 여성이고, 그 남편이 자신의 환자라는 사실은 에마를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뜨린다. 그는 미치요를 낫게 해야한다는 직업적 의무감과 노리코에 대한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들 사이에 끼...

악인의 영혼에 사무라이의 시대를 비추어 보다, 대보살 고개(大菩薩峠, The Sword of Doom, 1966)

    노인은 손녀딸과 함께 대보살 고개에 다다른다. 손녀딸이 잠시 물을 뜨러 간 사이, 노인은 작은 석탑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손녀딸 더는 고생시키지 않게 얼른 이 늙은 몸을 데려가 달라고 되뇌인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방랑승의 복장을 한 남자는 일순간에 칼을 휘둘러 노인의 목숨을 빼앗는다. 손녀딸 오마츠는 할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아무 이유 없이 노인을 죽인 살인자의 이름은 류노스케(나카다이 타츠야 분). 사무라이인 그는 뛰어난 검술을 지녔으나, 그 영혼은 사악함으로 물들어 있다.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 의 영화 '대보살 고개(大菩薩峠, The Sword of Doom, 1966)' 는 막부 말기, 어지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피와 광기에 사로잡힌 검귀(劍鬼) 류노스케 의 행적을 따라간다.   영화가 시작되면 '1860년 봄, 사쿠라다몬 사건(桜田門外の変, The Sakuradamon Incident) 직후' 라는 자막이 뜬다. 그 사건은 막부 대신 이이 나오스케가 존황양이파 사무라이들에 의해 암살당한 일을 가리킨다. 사쿠라다몬 사건은 막부의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후 막부파와 천황파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막부 시대의 종말을 재촉하는 계기가 된다.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의 영화 '사무라이(侍, Samurai Assassin, 1965)' 는 바로 그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시대극이다. '대보살 고개'는 '사무라이(1965)'에서 이어지는 막부 말기 시대극 연작같은 느낌도 준다. 천황파의 공세 속에서 막부파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1863년, 막부를 옹위하기 위해 '신선조(新選組)' 가 결성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영화 이해에 도움이 된다.   죄없는 순례자 노인을 죽인 일은 류노스케의 내면이 심각하게 어그러져 있음을 입증한다. 류노스케는 검술 문파 사이의 평가전에서 상대방을 가차없이 죽인다. 대결...

복고주의적 감성으로 그려낸 제국의 시절, 마키오카 자매들(細雪, The Makioka Sisters, 1983)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1886-1965) 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정점으로 향해가던 1943년에 이 소설의 상권을 발표했다. 소설에는 1936년부터 1941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오사카 거상 마키오카가의 네 자매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소설의 내용이 전시(戰時)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후의 집필분에 대한 발표와 출간을 금지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종전 이후인 1948년에 소설을 완성했으나 이제는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검열이 문제였다. 전쟁을 미화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삭제할 것을 권고받았다. 마침내 1949년에 소설의 전권이 완간되었다(출처: ja.wikipedia.org).   군국주의 정부 치하에서는 전시와 동떨어진 호사스러운 이야기로, 종전 이후 GHQ 통치 시절에는 전쟁 미화를 이유로 출판이 어려웠던 소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細雪)'에는 그런 배경이 숨겨져 있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눈' 이란 뜻의 제목 '細雪' 에서는 원작자의 유미주의적 감성이 느껴진다. 마치 1차 대전 직전의 서구 유럽 세계를 '아름다운 시절(Belle Époque)' 로 부르는 것처럼 작가는 오사카와 고베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의 그런 관점은 마키오카 가문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화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 1983)' 은 네 자매가 벚꽃놀이를 위해 모이는 회합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세 자매는 첫째 언니 츠루코가 오길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눈다. 막내 타에코는 부모가 남겨준 재산에서 자기 몫의 혼인지참금을 달라고 둘째 언니를 조른다. 둘째 사치코는 큰언니 츠루코의 허락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마침내 나타난 츠루코는 셋째 유키코가 결혼을 해야 타에코가 그 돈을 받을 수 있다며 그 요청을 거절한다. 이 집안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는 셋째 유키코의 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