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시타 케이스케가 바라본 전후의 일본 사회와 태양족
*이 글에는 영화 '태양과 장미'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한여름의 바닷가, 피서 인파로 가득한 해수욕장에 한 청년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다. 누군가 물에 빠졌다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바다로 몰려간다. 그러자 청년은 자리를 비운 누군가의 소지품을 잽싸게 훔쳐서 달아난다. 청년은 같은 또래의 불량배
친구들와 어울리며 절도 행각을 이어간다. 하는 일 없이 동네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주먹다짐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다. 키요시의 모친은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아들이 마음을 다잡고 돈을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그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Keisuke Kinoshita) 감독의 영화 '태양과 장미(太陽とバラ, The Rose on His Arm, 1956)'는 전후의 상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일본 사회를 응시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 나오는 '태양'은 새롭게 등장한 젊은 세대 '태양족(太陽族, Taiyouzoku)'과 무관하지 않다. 그 단어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에서 유래되었다.
소설은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하며 무절제한 향락에 빠진 청년 세대의 모습을 그렸다. 기성 세대에게 태양족의 출현은 충격이었지만,
젊은이들은 태양족에 그들의 욕망을 투사했다. 영화사들도 태양족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도
그런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태양과 장미'의 주인공 키요시를 '태양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하층 계급 불량배 청년의 모습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태양족'은 키요시의 모친이 가정부로 일하는 부잣집 아들 마사히로이다. 부유한 부모를 둔 마사히로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비싼 술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 마사히로가 키요시가 마음에 든다며 호의를 베푼다.
그는 키요시를 공장에 취직시켜주고, 자신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키요시를 끼워주기도 한다. 키요시는 가난한 자신의 처지와
대비되는 마사히로를 동경하면서도 증오하는 양가 감정을 갖게 된다. 이 영화의 이러한 갈등 구조는 르네 클레망(René Clément)의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영화의 원작은 Patricia Highsmith의 소설 'The Talented Mr. Ripley(1955)', 키노시타 케이스케가 소설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태양과 장미'의 플롯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과 매우 유사하다.
키요시와 마사히로의 관계에 내재된 갈등은 단순히 계급적인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마사히로의 입장에서는 가정부의 아들인
키요시와 어울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키요시는 마사히로가 왜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묻는다. 마사히로는 '키요시의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라고만 답한다. 감독 키노시타 케이스케는 생전에 명백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는 동성애자였다. 영화
속 마사히로가 키요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묘한 욕망으로 얽혀있다. 어떤 면에서 마사히로는 감독의 영화적 자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화는 마사히로의 키요시에 대한 동성애적 갈망을 최대한 숨긴다. 대신에 계급적 우위에 선 마사히로의 가학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마사히로는 부자 친구들 앞에서 키요시를 놀리고 모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마사히로가 키요시에게 자신의 옷장에서 멋진 셔츠를 꺼내어 입게 할 때에 드러난다. 키요시는 싸구려 셔츠를 벗고 마사히로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마사히로에게 키요시는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과 같은 존재이다. 키요시는 마사히로가 쓰는 돈과 향락에
종속되어 있다.
키노시타 케이스케는 가난한 청년과 부유한 태양족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거기에 더해 전쟁의 여파가 하층 계급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키요시의 가족은 빈곤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키요시는 부모가 팔라우(Palau)에서
지낼 때 태어났다. 2차 대전 시기, 일본은 아시아 곳곳에서 침략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키요시의 부모도 돈을 벌기 위해 일본이
점령한 팔라우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패전과 함께 키요시의 가족은 돌아와야만 했다. 결국 암시장 상인이 되어 생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키요시의 아버지는 자살했다. 키요시의 모친은 그러한 비극적 가족사를 키요시에게 상기시키며 키요시가 사회의 일원으로
안착하길 소망한다. 하지만 키요시는 어머니가 바라는 정상적인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이 영화에서 '장미'는 키요시 가족의 희망을 상징한다. 키요시는
어린 시절에 병으로 죽을 뻔했었다. 기적적으로 아들이 목숨을 건진 후, 모친은 장미 꽃밭에 기쁨으로 쓰러졌던 일을 회상한다.
이후 키요시의 어머니에게 장미는 잊을 수 없는 꽃이 되었다. 하지만 모친은 지금 생계를 위해 두 딸과 함께 쉴 새 없이 종이
장미를 접는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이 가족은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며 살아갈 뿐이다. 속썩이는 아들이기는 해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키요시는 팔에 장미 문신을 새긴다. 어쩌면 키요시의 그 문신은 어머니의 소망대로 살아가고픈 그 나름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키요시의 어설픈 태양족 따라하기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키요시는 자신과 가족을 거리낌 없이 모욕하는 마사히로를 칼로 찌른다. 키노시타 케이스케에게 있어 계급 갈등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살의(殺意)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격렬함을 내포한다. 절망으로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부친처럼 키요시도 같은 방식으로 삶을 끝낸다. 키요시의 팔에 새긴 희망의 장미는 그렇게 으스러진다.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남아있었으며, 전후의 놀라운 경제 성장은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만들고 있었다. 키노시타 케이스케는 태양족 열풍에 가려진 전후 일본 사회의 그늘을 냉철히 응시한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영화 리뷰
먼 구름(遠い雲, The Tattered Wings, 1955)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tattered-wings-1955.html
위험은 가까이에(風前の灯, Danger Stalks Near, 1957)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danger-stalks-near-1957.html
봄날이여 안녕(惜春鳥, Farewell to Spring, 1959)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0/farewell-to-spring-1959.html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thus-another-day-1959.html
사투의 전설(死闘の伝説, A Legend or Was It?, 196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0/legend-or-was-it-19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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