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기차 안에서 만난 두 사람의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학생 이와가키와 그의 친구 마키타의 삼촌은 고향 와카마츠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와가키는 2년 만에 고향 친구들과 재회한다. 친구들은 각자의 삶을 버겁게 살아내고 있다. 여관집 아들로 가업을 잇고
있는 미네무라, 어머니의 술집 일을 도우며 바텐더로 일하는 마키타, 목공예 장인인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는 마스기, 몰락한 무사
집안의 자손으로 노조일에 앞장서는 테시로기,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와가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곧 이 친구들의
우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의 1959년작 '봄날이여 안녕(惜春鳥, Farewell to
Spring)'은 와카마츠 현의 시골 마을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젊은 세대의 불안한 초상을 그려낸다.
이와가키를 집안이 운영하는 여관에 머물게 한 미네무라는 친구들의 술자리에 게이샤들을 불러 환대한다. 게이샤 미도리는 비감한
백호(白虎)춤을 선보인다. 영화 속에서 이 '백호'의 노래와 이야기는 주요한 테마가 된다. 1868년, 존황양이파와 막부파의
결전이 아이즈 번에서도 일어났다(아이즈 전쟁, 会津戦争). 막부파의 호위 부대였던 아이즈 번의 무사들(白虎隊, White
Tiger Unit)은 처절하게 싸웠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끝까지 저항한 19명의 청년 사무라이들은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무사도를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는 '신선조(新選組)'와 함께 일본 대중 문화에서 자주 다루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한다. 미도리가 추는
백호춤을 보며 청년들은 좋았던 과거와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함께 떠올린다.
'봄날이여 안녕'에는 전후 청년 세대가 당면한 현실적 갈등이 드러나 있다. 백호춤과 노래는 전통적 가치와 과거의 향수를
상징한다. 영화 속 다섯 명의 친구들은 '우정'이라는 가치로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 각자가 처한
현실은 그 우정이란 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며 영속되기 어려운 것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대학생 이와가키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지만, 실상 그는 사기꾼이 되어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정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가장
가까운 친구 마스기에게는 훔친 카메라를 전당포에 대신 맡겨달라고 하고, 미네무라에게도 학비에 쓴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마키타는 마음에 둔 요코를 두고 친구 테시로기와 경쟁하는 사이가 된다. 테시로기는 몰락한 무사 가문의 자손으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부잣집 딸 요코와의 혼담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순수한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전후 세대의 물질적 욕망을 자신의
영화들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바람 앞의 등불(風前の灯, 1957)'과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이
그런 작품이다. 역시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들이 드러난다. 사기꾼이 된 이와가키는 말할 것이 없고,
가난한 테시로기는 노조 운동의 대의명분에 투신하고 있지만 결혼을 가문의 위신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술집 여주인의 사생아
아들 마키타, 여관집 아들 미네무라는 계층적으로는 주류에 진입할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 이들 보다 더 안좋은 처지에 있는
이는 마스기이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마스기는 부친의 칠기 공예일을 잇고 있다. 값싼 중국산 목기가 수입될 것이라는 소식은
마스기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이 그려낸 전후의 풍경은 어둡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폐병을 앓는 마키타의 삼촌은 게이샤 미도리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는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새출발을 꿈꾸며
연인들은 다시 만난다. 한밤중, 백호대 비석이 있는 산 중턱에서 남자는 백호춤을 추는 연인을 위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할복으로 죽음을 택했던 백호대 사무라이들의 비극적 최후와 겹쳐진다. 마키타는 삼촌과 미도리의 동반자살
소식을 듣는다.
"인생에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은 없어. 우정 보다 생존이 중요한 거야."
테시로기의 신고로 이와가키는 체포되고, 친구들은 이를 두고 말다툼을 벌인다. 그들의 변질되고 조각난 우정은 회복될 수 있을까?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그 청년들에게 쉽사리 장밋빛 미래를 선물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마스기는 이와가키가
선물해준 붉은 목도리를 내팽개친다. 미네무라는 그것을 주워서 건네지만 목도리는 다시 한 번 땅바닥에 버려진다. 그래도 그 목도리는
결국 친구의 손에 들려있다. 버려지지 않은 목도리는 롱쇼트 속에서 붉은 점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결코 버릴 수 없는 희망의
한 조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전후 청년 세대의 불안을 그려낸 이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봄날이여 안녕'이 인상적인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영화의 초반부, 마스기는 이와가키가 왔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여관에 달려 온다. 온천탕에 벗은 채로 있는 이와가키를
마스기는 열렬하게 끌어안는다. 그 장면은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치고는 뭔가 생경한 느낌을 준다. 학창 시절, 몸이
불편한 마스기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이와가키는 많이 싸웠다. 둘 사이는 친구 이상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이와가키가 마스기에게
건넨 붉은 목도리가 마치 연정의 징표처럼 보일 정도이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동성애자였다. 영화 속 두 친구가 보여주는 관계
묘사를 두고 일본의 평론가들은 감독의 '영화적 커밍아웃(coming out)'으로 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퀴어
영화의 범주에 두기 보다는,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내면적 탐구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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