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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캐나다 영화의 숨겨진 보석, Bye Bye Blues(1989)

    *이 글은 'Bye Bye Blues'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명심해라, 넌 애들 키우는 엄마야!"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그렇게 소리친다. 그러나 여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하러 나간다. 캐나다의 여성 감독 앤 휠러(Anne Wheeler)의 'Bye Bye Blues(1989)'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캐나다 가정주부의 고군분투 취업 생존기를 보여준다. 전쟁은 전장에 있는 군인들 뿐만 아니라 후방에 남아있는 이들에게도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국가의 경제 기능이 전쟁에 맞추어져 있는 동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여성들에게 가장 큰 문제였다. 생존을 위해 여성들은 비자발적인 취업 전선에 내몰렸다. 'Bye Bye Blues'의 주인공 데이지도 그런 여성들 가운데 하나였다. 군의관 남편을 따라 식민지 싱가포르에서 귀부인처럼 살았던 데이지는 1941년, 일본의 싱가포르 침공으로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뒤바뀐다. 여자는 캐나다 알버타 시골 마을 시댁으로 귀환한다.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아이들 둘을 데리고 쪼들리는 생활을 하던 데이지는 생활 전선에 나선다. 동네 재즈 악단에서 피아노 연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것. 시부모의 간섭을 피해 독립한 데이지는 곧 일하는 여성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휠러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부모에게서 들은 젊은 시절 이야기였다. 실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일본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던 감독의 아버지,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일해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에 살이 붙여졌다. 영화는 매우 소박하고 평범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실적이고 섬세한 현실의 뿌리가 자리하고 있다. 비록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일이지만, 데이지는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다. 식민지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은 남편의 사랑과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넘쳐났다. 그곳 사교 파티에서 구색 맞추기로 연주하고 노래했던 마나님은 이제 이 도시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대중 예술인의 초상, 가그라의 겨울 저녁(Зимний вечер в Гаграх, Winter Evening in Gagra, 1985)

    카렌 샤크나자로프(Karen Shakhnazarov) 감독이 '우리는 재즈 피플(We Are from Jazz, 1983)'를 찍었을 때의 나이가 서른 둘이었다. 1920년대 소련의 재즈 악단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는 재즈 음악과 코미디를 결합시켰다. 영화는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샤크나자로프 감독이 영화계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가그라의 겨울 저녁( Зимний вечер в Гаграх, Winter Evening in Gagra, 1985)'은 바로 그 다음 작품이었다. 이 영화도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일종의 뮤지컬로 어떤 면에서 '우리는 재즈 피플'의 후속편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 베글로프는 과거 탭 댄스로 명성을 날렸던 스타였으나 이제는 늙고 잊혀진 안무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어느 날, 시골 출신의 아르카디가 찾아와 탭 댄스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베글로프는 아르카디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고 리듬감도 없다면서 가르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아르카디는 한사코 배우겠다고 우기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조금씩 친해진다. 아내와 오래전 이혼하고, 딸과도 가끔씩 연락이나 하면서 지내는 외로운 신세의 베글로프. 그런 그에게 괴로운 일상이 이어진다. 일하던 공연단에서는 인기 여가수의 심기를 건드려 해고 위기에 처하고, 자신의 과거 공연 모습이 나온 TV 프로그램에서는 그를 이미 세상을 뜬 예술가라고 방송한다. 과연 베글로프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이전작 '우리는 재즈 피플'에서 안무를 담당했던 탭 댄서 Alexei Bystrov가 영화 촬영 도중 세상을 떴다. 샤크나자로프 감독은 그 일이 마음에 남았고, 고인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베글로프'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해서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했던 탭 댄스가 아니라, 철저히 상업적인 공연에서 뒷방 늙

1960년대 미국 영화사의 특이점, Spring Night Summer Night(1967)

    남자는 딸의 배를 불러오게 만든 놈팽이를 찾기 위해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남자의 딸 제시카는 뱃속의 아이 아빠가 누군지 말해주지 않는다. 제시카에게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할 나름의 사정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이복 오빠 칼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근친상간, 이 영화의 시놉시스만 보면 참으로 역겹고 추저분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그것이 이 영화를 50년 동안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잊혀지도록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1965년, 당시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교수였던 Joseph L. Anderson은 자신의 수업을 듣던 학생들과 영화를 한 편 찍는다. 학생들 대부분은 영화 제작 경험이 없었다. 최소한의 제작비로 애팔래치아 산골 마을에서 찍은 이 영화는 서정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서 1968년 뉴욕 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 NYFF)에 초청받는다. 그런데 다른 작품에 밀려서 영화제 상영이 취소된다. 그 경쟁작은 John Cassavetes의 'Faces(1968)'였다. 카사베츠가 'Faces'로 화려하게 각광을 받고 성공하는 동안, 영화는 싸구려 영화 배급업자의 손에 넘어간다. 원래 영화에는 없었던 노출 장면이 추가되었고, 영화의 제목 또한 바뀌었다. 'Miss Jessica Is Pregnant'는 그렇게 교외 자동차 극장과 비디오 시장을 전전하면서 잊혀졌다.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학생 Nicolas Winding Refn은 세월이 흘러 그 영화와 다시 만난다. 그는 영화를 제대로 살려내기로 결심했고, 복원된 영화는 2018년 뉴욕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무려 50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출처 indiewire.com).   앤더슨 감독은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으려 했다. 그는 오하이오 주의 자연 풍광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Spring Night, Summer

월극 여배우의 삶 속에 재현된 격동의 시대, 무대 위의 두 자매(舞臺姐妹, Two Stage Sisters, 1964)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Chorus)의 역할은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극의 내용을 설명하고, 때론 춤과 노래로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하기도 한다. 중국의 3세대 감독 시에진(谢晋)의 '무대 위의 두 자매(Two Stage Sisters, 1964)'에서 영화에 배경으로 깔리는 합창단의 노래는 바로 그 코러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의 중요한 대목마다 상황을 요약하고 주인공의 정서를 잘 묘사해서 들려준다. 예를 들면 주인공인 두 의자매가 극적으로 대면하는 법정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재판정에 많은 참새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까마귀가 섞여 있구나' 여기에서 까마귀는 의자매를 갈라놓으려는 불의하고 사악한 이들을 뜻한다.   영화는 1930년대, 시골 마을을 찾은 월극(越剧) 극단의 공연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앳된 외모의 젊은 여자가 관객들 사이로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여자를 뒤쫓는 이들은 밧줄을 들고 있다. 여자는 극단의 소품 상자에 몸을 숨긴다. '춘화'라는 이름의 이 여자는 매매혼으로 팔려온 시집에서 도망을 쳤다. 단장은 반대하지만, 딱한 처지의 그를 연기 사부 싱이 받아들인다. 춘화는 싱의 지도하에 그의 딸인 여홍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된다. 가난한 떠돌이 극단이지만, 춘화와 여홍은 의자매로 서로 힘이 되어주며 배우의 길을 걷는다. 사부가 세상을 뜬 후, 교활한 단장 아신은 두 자매를 상하이의 인기 극단에 팔아넘긴다. 대도시 상하이에서 춘화와 여홍은 인기 배우가 되지만, 단장 탕은 막대한 수익을 가로챌 뿐만 아니라 여홍에게 접근한다. 여홍은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점점 변해가고, 춘화는 그런 여홍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결국 무대 위의 두 자매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데...   '무대 위의 두 자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여성들 사이의 연대이다. 봉건제의 굴레 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춘화는 여홍의 부친인 싱 사부의 도움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선다. 같이 무대에

길 잃은 두 남자의 비극적 질주, 검은 태양(黒い太陽, Black Sun, 1964)

  *이 글은 영화 '검은 태양'의 결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재즈를 좋아하지도 않고, 트럼펫도 불지 못하고, 노래도 할 줄 몰라. 그러니까 진정한 흑인이 아니지. 노예라구!"   고철이나 훔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애송이 양아치 메이(Mei)는 재즈광이다. 식료품 구입하기도 빠듯한 처지에 재즈 음반들을 열심히 사서 듣는다. 동료와의 다툼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탈영한 미군 병사 길(Gill)은 메이가 살고 있는 곳에 몸을 숨긴다. 곧 철거를 앞둔 오래된 교회 꼭대기가 메이의 집이다. 흑인 재즈 연주자들을 신처럼 떠받드는 메이는 흑인 병사 길을 환대한다. 그러나 다리에 총상을 입고 쫓기는 처지의 길은 오로지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는 메이가 틀어놓는 재즈를 견디질 못한다. 급기야 메이가 아끼는 개 몽크를 죽게 만들고, 격분한 메이는 길에게 검둥이 노예라고 모욕을 준다. 기관총을 든 탈영병과 도시의 밑바닥을 전전하는 좀도둑,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두 사람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쿠라하라 코레요시(蔵原惟繕) 감독의 1964년작 '검은 태양(Black Sun)'은 여러모로 이색적인 영화다. 우선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소는 재즈 음악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메이는 음반 가게에서 Max Roach의 음반을 산다. 비밥(bebop)의 선구자라고 할 수 Max Roach, 그의 강렬한 비밥 재즈가 영화를 휘감는다. 주인공 메이는 재즈에 반쯤 미쳐있다. 그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개의 이름은 재즈 연주자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에서 따왔다. 이 재즈 신도의 흑인에 대한 환상은 미군 흑인 병사 길에게 그대로 투사되지만, 도주 중인 탈영병은 메이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린다.   이 영화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인종차별주의적인 관점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길의 총을 빼앗아 제압한 메이는 자신의 단골 재즈 클럽에 데려가기 위해 길의

소련 영화 속 확장된 상상의 영토로서의 사막, 사막의 하얀 태양(Белое солнце пустыни, The White Sun of the Desert1970)

  이 영화의 대본은 3년 동안 소련 영화계를 떠돌아 다녔다.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연출을 제안받은 감독들마다 손사래를 쳤다. 그 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타르코프스키 감독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블라디미르 모틸(Vladimir Motyl) 감독에게 시나리오가 떨어졌다. 이래저래 잘 풀리지 않았던 이 감독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모틸 감독은 연출료로 받게 될 돈이 절실했다. 영화는 촬영 시작부터 불운의 연속이었다. 소품으로 대여한 물품들이 도난당하는가 하면, 내정된 주연 배우가 술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바람에 교체해야만 했다. 뜻대로 나오지 않는 장면들 때문에 재촬영을 거듭하다 보니 예산이 초과되었고, 급기야 모틸 감독은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 어렵게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그는 영화를 겨우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 국가 영화 위원회(Goskino)의 반응이 영 신통치가 않았다. 영화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개봉하기 어렵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모틸 감독이 나중에 행운, 기적이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난다. 당시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서부 영화의 광팬이었다. 그는 이 영화가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막의 하얀 태양'은 소련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미국 영화에 서부극(Western)이 있다면, 소련에는 Red Western인 Eastern이 있었다. 광활한 영토를 가진 소련은 촬영장소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북부 시베리아부터 중앙 아시아의 사막과 초원에 이르기까지 어떤 배경의 시나리오든 소화해낼 여력이 있었다. 다게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은 사막 지형을 품고 있어서 총잡이 활극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영화들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1960년대, 이국적인 배경의 영화들이 높은 흥행 실적을 기록하자 비슷한 영화들이 연달아 제작된다. 코미디 영화의 대가였던 레오니드 가이다이(Leonid Ga

피와 광기의 발칸 서사시, 화약고(Cabaret Balkan, 1998)

      짙은 분장을 한 남자는 카바레의 무대에서 강렬한 음률에 따라 노래인지 독백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고 있다. 그는 정면을 응시하면서 묻는다. '여기 대체 왜 온 거야?'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지금부터 난 말이지, 댁들을 신나게 놀려먹을 생각이거든!' 어째 영화가 첫 장면부터 심상치가 않다. 휴일, 느긋한 마음으로 영화 한 편 보려는 사람은 이 영화를 피하는 것이 낫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100분 동안 분노와 광기의 홍수를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고의 감독 고란 파스칼리예비치(Goran Paskaljević)의 '화약고(Bure baruta, 1998)'는 마케도니아의 극작가 데얀 두코프스키의 희곡 'Powder Keg'를 영화로 펼쳐놓았다. 원작의 제목 대신에 'Cabaret Balkan'이라는 영문 제목을 쓴 것은 이미 'Powder Keg'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발칸 카바레'는 뭔가 급조된 제목 같지만,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카바레 가수가 중간 중간 목놓아 부르는 절규 같은 노래의 가사는 꽤나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1990년대 중반 유고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배경으로 촘촘히 짜나간다. 그 시기 발칸은 보스니아 내전으로 불타고 있었다.   베오그라드의 밤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긴장시킨다. 등장 인물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양상은 다양하다. 부수고 때리는 물리적인 폭력부터 대부분의 대사에서 드러나는 언어적인 폭력, 신체적인 위협과 살인, 강간 시도에 이르기까지 영화 내내 폭력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애송이 젊은이는 길에서 차 사고를 내고 도망쳤다가 집을 찾아온 차주의 복수를 경험한다. 그 아파트 지하에는 보스니아 난민 가족이 겨우 연명해가고 있다. 늙은 가장은 버스 기사로, 그 아들은 마약상의 똘마니로 살아간다. 전직 교수가 모는 버스

빌리 와일더가 그려낸 음울한 헐리우드의 초상,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50)

    어제 KBS에서 방영된 자연 다큐멘터리 '완벽한 행성, 지구'를 보는데, 내레이션이 감성적이면서도 편안하게 들렸다. 다큐 중간에 해설자의 이름이 떠서 보니 배우 김승우였다. 대개 그런 자연 다큐멘터리들의 해설은 성우나 아나운서들의 몫이지만, 가끔은 배우들이 할 때가 있다. EBS에서 했던 3부작 자연 다큐 '천국의 새'에서는 배우 이혜영이 내레이션을 했다. 정말로 멋지고 완벽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배우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발성'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무성 영화 시절의 배우들은 그런 발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었다. 자막과 음악으로 처리되는 화면에서 배우들은 무성 영화에 특화된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글로리아 스완슨(Gloria Swanson)은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였다. 스완슨은 자신의 영화사까지 차려서 영화를 찍을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유성 영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 시기 배우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천하의 스완슨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대 이후로 잠정 은퇴 상태였던 스완슨을 다시 불러낸 것은 빌리 와일더였다.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50)'는 잊혀진 배우 스완슨을 완벽하게 복귀시켰다. 빌리 와일더는 이 영화에서 헐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한 자신만의 음울하고 통렬한 성찰을 보여준다.   헐리우드의 B급 시나리오 작가인 조(윌리엄 홀덴 분)는 살던 집의 집세가 밀리고 차까지 압류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떻게든 글을 써서 먹고 살 방도를 찾으려 하지만, 정글같은 헐리우드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압류 회사 직원을 피해 차를 몰다가 우연히 막다른 길에 들어선 그는 황량한 외관의 대저택을 발견한다. 차만 숨기고 나오려던 그는 얼떨결에 집사(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분)의 안내로 주인과 만나게 된다. 조는 키우던 원숭이의 죽음으로 애통해

홍콩 느와르의 새로운 기원, 용호풍운(龍虎風雲, City on Fire, 1987)

    '도신-정전자(God of Gamblers, 1989)'를 보고 나서 주윤발이라는 배우를 아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도박의 신'과 머리를 다쳐 아이처럼 되어버린 '초콜릿'을 오가는 그의 연기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정말이지 '천상 배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영화 '용호풍운(City on Fire, 1987)'은 그보다 2년 전 작품인데, 여기에서 주윤발은 좀 더 풋풋한 느낌의, 나중에 그가 대표할 홍콩 느와르 캐릭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흔히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 1992)'에 주요한 영감을 준 작품으로 좀 가볍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주윤발과 홍콩 영화 팬들에게 이 작품은 뭔가 시금석처럼 자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제목만 검색창에 입력해 봐도 주르르 뜨는 '용호풍운'리뷰들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과연 무엇이 그들에게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영화는 번화한 홍콩의 상점가에서 한 남자가 칼에 찔려 죽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범죄 조직에 잠입한 비밀 경찰로 정체가 탄로나면서 살해당했다. 유 경위는 잠정 은퇴한 경찰 가오추(주윤발 분)에게 임무를 주려고 하지만 가오추는 거부한다. 이전의 작전에서 친했던 조직원이 자신의 배신으로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는 유 경위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작하게 된 가오추, 그는 보석 강도단에 잠입해서 조직원 아후(이수현 분)와 친형제처럼 가까워진다. 그러나 가오추의 정체를 모르는 신임 경위 존은 가오추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유 경위와 존은 사사건건 대립한다. 크리스마스에 크게 한탕을 하려는 조직과 그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경찰, 가오추는 자신의 임무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까...   '저수지의 개들'을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내

미카엘 하네케가 그려낸 닫힌 세계,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 Fragments of a Chronology of Chance, 1994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가끔 영화를 본다는 것이 권투 선수가 링에 오르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상대편 선수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이 무작정 링에 올라서 시합해야 하는 느낌. 어떨 때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경기를 끝내지만, 때론 상대방의 강타에 휘청거리다 링을 나오는 때도 있다. 나에게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감독은 선수로 치자면 상대편을 무척 진이 빠지고 힘들게 만드는 무척 까다로운 대전 상대다. '피아니스트(The Piano Teacher, 2001)', 히든(Hidden, Caché, 2005)을 보면서 그 암울하고 출구 없는 세계관이 참 싫었더랬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 양반 영화는 그냥 안보고 피하게 되었다. 그러다 오늘은, 그동안 좀 쉬운 선수들을 만났으니 약간은 좀 긴장 좀 해보자 싶었다.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Fragments of a Chronology of Chance, 1994)'을 그렇게 영화 감상의 링 위에서 만났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로버트 알트만의 '숏 컷(Short Cuts, 1993)'과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Elephant, 2003)'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다. 솔직히 '어, 좀 약한데?'라고 슬쩍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하네케만의 디스토피아적 관점은 관객을 진흙탕으로 무작정 끌고 들어간다. 영화는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방송 뉴스 화면이 흘러 나온다. 뉴스들의 내용은 당시 분쟁 지역들과 관련된 소식이다. 보스니아와 소말리아, 아이티의 내전 소식, IRA와 쿠르드 반군의 전투, 유럽의 이민자들 문제며 유고슬라비아의 인종 청소,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성추행 소식까지 망라한다. 전혀 관련이 없는 이들의 일상은 암전(blackout)화면에 이어 연결

마음 속 뜨거운 여름을 견디는 이들에게, 여름 생존자(Summer Survivors, 2018)

    "이런 데서 이상한 사람들과 있으면 네가 더 나빠질 거야. 좋은 음식 먹고 영양제 같은 것도 먹으면 좀 나아지지 않겠니. 그러니 의사한테 말해서 여길 나가자꾸나."   남자는 정신 병동에 입원해 있는 딸을 그렇게 구슬린다. 딸 건너편 침대에서 이어폰을 꼽고 대화를 못들은 척하는 유스테를 남자는 힐끗 쳐다본다. 그의 눈에는 유스테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딸이 그곳을 나가서 좋은 음식이나 영양제 먹는다고 나아질 수 있을까? 리투아니아의 신예 감독 마리야 카브타라제(Marija Kavtaradzė)의 2018년작 '여름 생존자(Išgyventi vasarą)'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수채화 같은 풍경 속에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심리학과 대학원생인 인드레는 바이오피드백에 대해 논문을 쓰려고 한다. 인드레가 도움을 받길 원하는 빌뉴스 정신 병동의 의사는 조건을 하나 내건다. 다른 정신과 클리닉으로 치료를 의뢰할 병동의 환자 파울리우스와 유스테를 데려다 주고 오라는 것. 꽤 먼거리를 환자들을 데리고 운전해야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만 인드레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나마 오랜 경력의 간호사가 동행하는 것에 안심하면서 길을 떠나는 인드레. 파울리우스는 조울증 환자이고, 유스테는 최근에 자살 시도를 했다. 타인과의 소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대학원생은 환자들과 함께 하는 이 여정을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여름 생존자라... 제목이 특이하다. 마리야 카브타라제 감독은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은 매일매일의 삶이 투쟁이며, 그것에서 생존하는 것이 커다란 화두이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지었다고 밝혔다(출처: cineuropa.org와의 인터뷰). 영화의 구성은 비교적 명료하다. 과제가 주어지고, 주인공은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로드 무비에서 그가 함께 할 동행자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감독 마리야 카브타라제는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의 고

브레즈네프 시기의 표류하는 노동자, 아포냐(Афоня, Afonya, 1975)

      그동안 구 소련 시절의 영화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썼다. 독자들 가운데에는 별로 재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 무슨 구닥다리 영화를 저렇게 보나, 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영화들이 정말로 재미있다. 재미가 없는데도 억지로 보고 과제처럼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영화가 시작할 때 모스 필름(Mosfilm)의 로고가 뜨는 것만 봐도 정겹다. 잘 알려지지 않은 소련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은 나중에라도 러시아 영화를 접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도 있다. 무엇보다 그 영화들이 나를 매료시키는 이유는 거기에 소련 사람들의 삶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철의 장막' 뒤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삶이 영화 속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게오르기 다넬리야 감독의 '아포냐(Afonya, 1975)'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범적 시민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등장한다. 배관공 아파나시(애칭 아포냐)는 '인민의 적'까지는 아니지만, '인민의 골칫덩이'임에는 분명하다. 영화는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아포냐가 행복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배관공으로 일하는 아포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대충 하고, 고객들에게 수리비를 더 뜯어내기도 한다. 아포냐는 술을 무척 좋아해서 보드카를 가지고 다닐 정도다. 늘 술에 취해 돌아오는 아포냐에게 질려서 동거하던 여자 친구도 떠나버린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알게 된 미장공 콜랴와 함께 지내게 된 아포냐, 콜랴는 대책없이 살아가는 아포냐를 걱정한다. 그러나 아포냐는 술에 취해 연못에 빠져 음주 단속 경찰에 체포되는가 하면, 클럽에서 싸움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런 아포냐를 예전부터 짝사랑한 어여쁜 간호사 카챠는 아포냐와의 미래를 꿈꾸지만, 아포냐는 무관심하다. 수리하러 갔다가 알게 된 미모의 고객 엘레나에게 마음을 뺏긴 아포냐는 엘레나의 호감을 얻기 위해 남의 집 새 싱크대까지 뜯어 바꿔주기까지 한다. 과연 아포냐의 인

밀란 쿤데라와 떠나는 체코의 과거 여행, 농담(Žert, The Joke, 1969)

      밀란 쿤데라의 '농담'. 내 기억 속의 그 소설은 이렇게 각인되어 있다. '마음에 둔 여자한테 보낸 엽서에 가벼운 농담 좀 적었다가 인생을 탈탈 털려버린 남자의 이야기'. 야로밀 이레스(Jaromil Jireš) 감독의 1969년작 '농담(The Joke)'는 밀란 쿤데라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이레스 감독과 함께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 과연 원작자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의 시도는 성공적이었을까? 물론 쿤데라는 소설 속의 내용을 그대로 다 화면으로 보여줄 수 없었다. 등장 인물들 가운데 일부는 생략되었고, 캐릭터들의 묘사는 피상적인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소설을 읽은 관객들이라면 당연히 영화를 잘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농담'은 매우 불친절한 영화가 될 수 있다.   루드빅은 15년 만에 자신의 고향에 돌아온다. 그에게는 꼭 해야할 복수가 있다. 루드빅은 자신을 반동 분자로 몰아 무려 6년의 세월을 군대와 탄광에서 보내게 만든 사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대학 시절, 루드빅은 마음에 둔 마르케타에게 엽서를 보냈었다. 공산주의 이념에 충실했던 마르케타는 루드빅의 엽서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고 생각한다. 당으로 넘어간 엽서는 루드빅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몰아넣는다. 인민 재판을 통해 대학과 당에서 제명당한 그는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마르케타를 비롯해 인민재판을 주도한 친구 파벨에 대한 증오심이 루드빅을 사로잡는다. 루드빅은 우연한 기회에 파벨의 아내 헬레나를 알게 되고, 헬레나를 유혹해서 자신의 복수극을 완성하려고 하는데...   소설은 4명의 등장 인물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들이 모자이크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영화는 루드빅의 시점만을 보여준다. 선택과 집중,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기도 하다. 야로밀 이레스 감독은 루드빅이 고향에 도착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영화는 루드빅의 현재와 과

어느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가족사, The Family I Had(2017)

    여자는 저녁에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 있던 4살 배기 어린 딸이 살해되었다는 비보였다. 놀란 여자는 딸과 함께 있던 아들은 괜찮냐고 경찰에 묻는다. 아들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그럼 자신이 데리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경찰은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여자의 딸을 죽인 범인이 바로 13살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케이티 그린과 카일 루빈이 2017년에 만든 다큐 'The Family I Had'는 한 가족에게 닥친 참혹한 비극을 통해 범죄와 유전, 형벌 제도의 의미를 들여다 본다.   원래 두 명의 제작자들은 청소년에게 선고되는 과도한 형량과 사법 제도에 대한 다큐를 만들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아들의 손에 딸을 잃은 여성 채리티(Charity)였다. 채리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했다. 팔과 목덜미를 가득 메운 문신은 이 여성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성장 과정 내내 방황했던 여자는 약물 중독에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뜻밖에 생긴 첫째 아이 파리스는 여자에게 새로운 인생의 의미가 된다. 그러나 싱글맘으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또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엘라, 천사같은 아이를 보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던 와중에 여자에게 견딜 수 없는 비극이 찾아온다.   다큐는 3년에 걸쳐 촬영되었다. 관객은 채리티와 채리티의 모친, 수감 중인 파리스와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다. 중간 중간 들어간 그들 가족의 홈 비디오 화면을 비롯해 파리스의 글과 그림이 이 기구한 가족사를 증언한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파리스의 형기는 40년, 채리티는 수감 중인 아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엄마로서 아들에 대한 애정을 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여자의 상황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 가운데 여자에게 아들 피닉스가 생긴다. 여자는 여전히 싱글맘으로

떨치기 힘든 홍상수 월드의 마법, 도망친 여자(The Woman Who Ran, 2020)

    오랜만에 한국 영화를 보았다. 영어 자막이 있었는데, 계속 외국 영화를 보다 보니 우리말 대사임에도 나도 모르게 자막을 따라가고 있었다. 한 5분 정도를 그러다가 대사에 익숙해지니 그제서야 자막을 무시할 수 있었다. 미국 사람들이 자막 있는 외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거추장스러운 자막 없이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렇게 본 영화는 홍상수의 2020년작 '도망친 여자'이다.   영화의 첫 장면, 전원 주택의 텃밭에서 물을 주고 있는 영순이 등장한다. 이웃에 사는 젊은 여성이 오늘 면접을 보러 간다며 영순에게 인사를 한다. 그런데 영순의 대사톤은 연극하는 것처럼 영 어색하고 느리게 들린다. 영순과 대화하는 이웃 여성도 마찬가지. 영화 내내 이 이질적이고 느린 대사톤이 이어진다. 보다보면 적응이 되기는 한다. 홍상수식 '낯설게 하기'인가? 아무튼 그렇게 이어지는 대화들의 내용도 시시하기 짝이 없다.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에 모처럼 영순을 방문한 감희(김민희 분)는 고기와 막걸리를 사들고 온다. 고기 구워먹으면서 하는 대화들이 어떤 것이냐 하면, '고기맛이 정말 좋다'와 '소의 눈망울이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 뭐 그런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웃에 산다는 남자가 그들을 찾아온다. 아내가 고양이를 무서워 하니까 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부탁을 한다. 감희는 집안에서 CC TV로 그것을 보고 있다가 나중에 나온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그런 상황은 비슷하게 반복된다. 감희는 인왕산 아래 주택에 사는 수영(송선미 분)을 만나러 간다. 대화 도중 수영의 집을 찾아온 남자가 있다. 감희는 현관의 인터폰 화면으로 수영과 남자의 대화 장면을 본다. 세 번째 만남의 장소는 영화관, 그곳에서 감희는 과거의 친구를 우연히 만난다. 우진은 감희와 한 때 사귀었던 남자 정 선생과 결혼했다. 정 선생(권해효 분)은

신생국 러시아의 정체성 찾기, 보름달이 뜬 날(День полнолуния, Day of the Full Moon, 1998)

      이야기, 언제나 이야기가 문제가 된다. 마치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쫓아가려는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영화라고 뭐가 다를까? 물론 영화는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종속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관객들은 언제나 주인공과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카렌 샤크나자로프(Karen Shakhnazarov) 감독의 1998년 영화 '보름달이 뜬 날(Day of the Full Moon)'은 그런 관객들의 기대를 보기좋게 배반한다. 이 영화에는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려 8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쏟아지는 영화, 그런데 거기에는 주인공도 이야기도 없다.     영화의 도입부, 영화사를 찾아가는 한 남자가 보인다. 남자는 영화사 관계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골머리를 썩고 있다. 남자의 조부모가 귀족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거기에서 소재를 얻고자 모친의 영화사 방문을 의뢰한다. 그렇게 남자는 떠나고, 두 사람은 몽골 제국의 칭기스 칸을 등장시키는 것은 어떤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그러고 나서 화면은 몽골 초원의 소년 칭기스 칸을 비춰준다. 다음 장면, 영화사 복도에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 지망생이 등장한다. 멋진 외모의 여성은 버스에 타는데,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의 자동차 승객과 눈이 마주친다. 미소를 지어보이는 젊은 남자, 그와 일행은 외딴 차고지에 도착한다. 잠시 후, 어디선가 도착한 승합차의 문이 열리고 기관총이 난사된다. 차에 탄 이들은 모두 죽는다. 차고지 근처를 지나는 지하철이 마침 멈춘다. 늙은 승객이 처참한 현장을 목격하지만 그는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에 앉아있던 노인은 방송국 인터뷰에 응한다. 노인이 들려주는 과거의 기억, 장면은 1940년대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바뀐다.   그쯤

하나의 책과 두 편의 다른 영화, 니안짱(にあんちゃん, My Second Brother, 1959)

    1958년, 재일 교포 소녀 야스모토 스에코가 쓴 '니안짱'이란 제목의 일기 모음집이 출판된다.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4남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인 1959년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 '니안짱'은 일기를 쓴 주인공인 막내 스에코가 둘째 오빠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같은 해, 유현목 감독도 일기책 '니안짱'을 영화로 만든다. '구름은 흘러도'란 제목의 이 영화는 당대 한국 영화의 스타들이 꽤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주인공 말숙 역을 맡은 김영옥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아역 배우가 원로배우 김영옥 씨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두 영화는 동일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하는데도, 서로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띈다. 처절한 가난을 다룬 점은 동일하지만, '니안짱(My Second Brother)'이 재일 한국인의 현실을 삽화적으로나마 묘사했다면 '구름은 흘러도'는 어린 소녀의 성장에 더 비중을 둔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니안짱'에 대해 나중에 술회하기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라 영화사(니카츠)의 문예 영화였기 때문에 큰 애착을 갖고 찍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영화는 촬영과 연출, 여러 부분에 걸쳐서 공들여 찍었음을 알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후쿠시마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광부들의 파업 장면을 비롯해 어촌 마을의 일상, 그곳 주민들의 가난에 찌들린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53년으로 당시의 일본은 패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던 때였다. 탄광촌의 경우는 생존의 여건이 더 열악했다. 종전 후 일본은 주력 에너지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탄광들이 문을 닫았다. '니안짱'의 4남매는

이상 심리학이 헐리우드 영화에 드리운 그늘, The Dark Mirror(1946)와 Compulsion(1959)의 경우

    1940년대 헐리우드 영화에서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히치콕의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이겠지만, 로버트 시오드막(Robert Siodmak)의 '다크 미러(The Dark Mirror, 1946)'도 그에 필적할 만하다. 시오드막 감독은 독일 출신으로 '다크 미러'에서 표현주의와 정신분석학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신의학과 심리학 전공자들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는 유사(類似) 심리학적 지식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쌍둥이는 선과 악이 분리된 각각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 등장하며, 로르샤 검사(Rorschach test)는 범죄 성향을 파악하는 도구로 쓰인다. 이런 영화들을 보다보면 정신분석학이 당시 헐리우드 영화들을 망가뜨린 것인지, 헐리우드 제작자들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프로이트의 학문을 곡해한 것인지 가끔씩 생각해볼 때가 있다.   '다크 미러'는 도입부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곧이어 목격자들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이 등장한다.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는 테리(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분)는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그런데 테리에게는 쌍둥이 동생 루스가 있고, 그 두 사람은 각자 강력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티븐슨 형사는 쌍둥이 연구자인 엘리엇 박사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박사는 쌍둥이들에게 자신의 연구에 참여하길 요청한다. 개별적으로 테리와 루스 자매의 정신 분석 연구를 진행하던 엘리엇 박사는 점점 자매의 서로 다른 기질을 파악하게 된다. 박사가 루스에게 호감을 느끼자, 테리는 질투에 휩싸이고 루스의 불안을 조장하기 시작하는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인 2역을 맡아 테리와 루스의 서로 다른 면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편집증적이고 냉혹한 내면을 지닌 테리, 그런 테리에 의해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착하고 유약한 루스, 이렇게 분리된 선과 악의 캐

혁명과 기억,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A fost sau n-a fost?, 12:08 East of Bucharest, 2006)

  *이 글은 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의 주요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재자의 말로가 대부분 좋지 않지만, 아마도 현대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독재자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아닐까 싶다. 20년이 넘게 루마니아를 철권 통치했던 이 독재자는 도망치는 장면이 루마니아 전국에 생중계 되었으며, 체포된지 이틀 만에 곧바로 처형되었다. 루마니아에서는 독재자의 죽은 모습을 전세계 방송국에 열심히 뿌렸다. 지금과 같은 방송 윤리 기준에서라면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을 1989년이 저물어 가던 12월의 끝자락에 대한민국의 TV 뉴스에서는 쉽게 볼 수 있었다. 죽은 독재자의 모습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고, 그것은 당시 루마니아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만들었다. 루마니아의 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Corneliu Porumboiu)의 2006년작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12:08 East of Bucharest)'는 1989년의 루마니아 혁명을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회고한다.   부쿠레슈티 동쪽의 소도시 바슬루이, 사람들은 성탄절 준비로 들떠있다. 지역 방송국의 책임자인 버질은 혁명 16주기를 기념하는 생방송 토크쇼를 기획한다. 그러나 초빙하려는 연사들이 모두 거절하자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알고 지내는 두 사람에게 부탁한다. 한 사람은 까다롭고 엄격한 노인 피스코치, 다른 한 명은 늘 술에 절어 사는 역사학과 교수 마네스쿠이다. 토크쇼의 주제는 '16년 전인 1989년 12월 22일, 바슬루이 광장에서 정말로 혁명의 시위가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바슬루이 주민들이 차우셰스쿠가 도주하던 시각인 낮 12시 8분 이전에 주도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독재자의 축출을 요구했는지, 아니면 그 이후에 소식을 듣고 놀라서 광장으로 나온 것인지가 토론의 쟁점이 된다.   마네스쿠 교수는 광장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시위를 시작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버질은

방황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청춘, 메신저 보이(Курьер, Courier, 1986)

    역사 속 소련의 붕괴와 해체 과정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 개방 정책은 서서히 침몰해가고 있었던 소련을 구하기 위한 응급 처방이었다. 그러나 성급하게 추진된 설익은 정책들은 오히려 소련의 침몰을 가속화시킨다. 카렌 샤크나자로프(Karen Shakhnazarov) 감독의 1986년작 '메신저 보이(Courier)'는 고르바초프 집권 시기 소련 사회가 겪었던 갈등과 혼란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원작은 감독 자신이 1982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스탈린의 철권 통치를 이상으로 생각했던 브레즈네프가 사망한 해가 1982년, 뒤를 이은 안드로포프 시절에도 소련은 철의 장막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1985년, 마침내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되고서야 소련은 장막 바깥의 세상을 향해 문을 연다. '메신저 보이'는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영화는 이혼 법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반은 부모의 이혼 법정 한 구석에 앉아있다.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이반의 아버지는 이혼 후 아프리카로 연구를 위해 떠난다. 엄마와 함께 남겨진 이반은 대학에 가지 않고, 출판사의 메신저 보이로 취직한다. 엄마가 자신을 걱정하며 잔소리를 하자, 아빠가 그래서 엄마를 떠난 거라고 독설을 퍼붓고는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신문지를 잔뜩 가져와서 자신의 방에서 불을 붙인다. 골때리는 이반의 기행은 계속 이어진다. 출판사에 적어낸 허황된 이력서에는 자신의 집안을 봉건 시대 귀족으로 소개한다. 그런가 하면, 교수 집에 전달해야할 원고를 3시간이나 늦게 갖다주고는 배가 고프니 먹을 것 좀 달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인생의 목표가 뭐냐하면 말이죠, 많은 봉급, 자동차, 크고 멋진 다챠(dacha, 러시아의 시골 별장), 그리고 시내 중심가의 아파트를 갖고 싶군요."   이반의

광인(狂人)과 그 주변의 풍경, 조지 왕의 광기(The Madness of King George, 1994)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 세자는 '의대증(衣帶症)'이라는 병을 앓았다. 일종의 강박증으로 옷 입는 것을 고통스러워 했던 병이었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조지 3세도 정신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 당시의 기록은 왕의 질병에 '광기(madness)'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꺼려했던 탓인지, 가계의 유전병인 '포르피린증(Porphyria)'의 다양한 증상 가운데 하나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은 조지 3세가 앓았다고 추정되는 병이 '포르피린증'인지도 불분명하며, 남겨진 기록으로 볼 때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일종인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았을 거라고 본다. 조지 3세는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고 말을 멈추지 못했으며, 흥분한 상태로 궁정을 질주하거나 돌아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행동들은 '조증(躁症)'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간주된다.   앨렌 베넷이 쓴 희곡 'The Madness of George III'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조지 왕의 광기(1994)'는 조지 3세의 재위 후반기에 발병한 광기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왕의 광기가 발병한 이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왕세자와의 권력 다툼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조지 3세의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가던 왕세자는 부친의 병을 기회로 삼아 왕의 자리를 넘보려고 한다. 물론 사치스럽고 방탕한 왕세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리다. 의회는 조지 3세의 정치적 동반자인 피트 수상이 잡고 있다. 비밀스럽게 의회의 지지자를 모은 왕세자는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시켜나간다. 한편 피트 수상과 샬럿 왕비는 왕의 치료를 위해서 의사 윌리스를 초빙해 온다. 과연 윌리스는 조지 왕의 광기를 잠재울 수 있을까?     언젠가 EBS의 세계 테마 기행 영국 편을 보는데, 조지 왕이

황색 언론의 먹잇감이 되었던 여자, 타블로이드(Tabloid, 2010)

    미인대회 출신인 여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왕자님 같은 남자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짧은 기간 동안 연애를 했고, 여자는 결혼을 꿈꾸었다. 그런데 몰몬교도인 남자는 선교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파송된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영국으로 남자를 찾아 떠났다. 여자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경호원까지 채용한 여자는 남자를 찾아내 납치한다. 데본 지역의 시골 오두막집으로 남자를 데려간 여자는 3일 동안 남자를 감금하고 함께 지낸다. 여자는 런던에서 진짜 결혼식을 올릴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런던으로 돌아온 남자는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납치와 감금, 강간을 당했다고 여자를 고발했다.   에롤 모리스의 2010년작 다큐 '타블로이드(Tabloid)'는 1977년에 영국과 미국을 뒤흔들었던 희대의 사건을 다룬다. 사건의 주인공인 여자는 미인대회 출신의 조이스 맥키니, 자신이 사랑한 남자 커크 앤더슨의 고발로 맥키니는 정식 재판까지 3개월을 감옥에서 지낸다. 보석으로 겨우 풀려나서는 캐나다를 경유해 미국으로 도망쳤다. 맥키니는 재판 전 청문회에서 앤더슨과 보낸 3일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맥키니 사건은 황색 언론에게 둘도 없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온갖 선정적이고 저질스러운 내용의 기사가 신문에 넘쳐났다.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하이에나 언론의 사냥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큐는 맥키니의 인터뷰, 당시 사건을 보도한 영국 타블로이드와 TV 영상 자료들, 맥키니의 주변 인물들과 전직 몰몬 선교사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크 앤더슨은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에 관객은 맥키니가 일방적으로 진술하는 인터뷰 내용으로 사건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이 여자의 말솜씨는 정말이지 대단해서 배우, 성우, 만담가를 뺨친다. 맥키니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라고 강변한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이에 대해 전직 몰몬교 선교사였던 이는 하나의 단서를 던져준다. 맥키니

관계와 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은유, 남쪽(El Sur, 1983)

    내 기억 속에 '남쪽'이란 영화는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역시 제목이 '남쪽'으로 번역되는 또 다른 영화가 있다. 스페인의 감독 빅토르 에리세(Víctor Erice)는 1983년에 'El Sur'를 만들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영화는 정관사 el이 없는 'Sur(1988)'로 표기된다. 빅토르 에리세는 프랑코 정권의 폭압적 지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벌집의 정령(El espíritu de la colmena, 1973)'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대 스페인 역사는 '프랑코'란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코는 1975년에 사망했지만, 스페인 정부가 국립 묘역인 전몰자의 계곡에서 그의 유해를 이장시킨 것은 2019년이었다. 독재자의 그림자는 죽어서도 스페인을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에서도 프랑코의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된다.   영화는 어린 소녀 에스트렐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별'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소녀는 별 모양의 반지를 늘 끼고 있다. 에스트렐라는 의사인 아버지 아구스틴, 평범한 주부인 엄마 줄리아와 함께 스페인 북부에서 살고 있다. 소녀에게 아버지는 신비한 비밀과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진다. 진자로 수맥을 알아내 마을 사람들이 우물을 파도록 돕는 아버지는 에스트렐라에게 흠모의 대상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대부분 다락방에서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린 딸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프랑코 충성파였던 할아버지와 싸우고 '남쪽'의 고향집을 떠났다고 일러준다. 어느 날, 에스트렐라는 아버지의 다락방 서랍에서 '아이린 리오스'라고 써진 종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시내 영화관 앞을 지나다 본 영화 포스터에 그 이름이 적혀있다. 소녀는 영화관에

유리구두는 없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Москва слезам не верит, 1979)

    정진우 감독의 1966년작 영화 '초우(草雨)'에는 서로의 신분을 속이고 만나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주불 한국 대사의 딸인 영희(문희 분)는 비오는 날 나갔다가 우연히 부잣집 아들 철수(신성일 분)를 만난다. 둘은 사랑하게 되지만, 그들은 각각 서로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다. 영희는 대사의 딸이 아니라 식모였고, 철수는 자동차 세차일로 먹고 사는 건달 같은 남자였다. 블라디미르 멘쇼프(Vladimir Menshov) 감독의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Moscow Does Not Believe in Tears, 1979)'에도 그와 비슷한 설정이 등장한다. 공장 여공으로 일하는 카챠는 교수인 삼촌으로부터 여행 간 사이에 집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삼촌의 집은 혁명 광장 앞에 있는 부유층의 아파트이다. 카챠의 친구 류다도 함께 집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는다. 류다는 카챠와 함께 교수의 딸들로 자신들을 속이고, 알고 있는 인텔리 계층의 남자들을 불러모아 아파트에서 파티를 연다. 과학자, 유명한 운동 선수, 방송국 직원,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카챠와 류다. 그러나 짧은 쇼타임은 끝나고 그들에게는 다시 팍팍한 현실이 기다린다. 그런데 카챠는 그로부터 3개월 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1981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해외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은 소련 영화로 기록된다. 영화는 헐리우드 멜로 드라마의 내러티브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모스크바의 하층 노동자로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들은 각자 다른 삶의 행로를 걸어간다. 여자의 인생은 좋은 남자를 붙잡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류다는 잘 나가는 운동 선수와 결혼한다. 미혼모가 된 카챠는 어려움을 이기고 학업을 마친 후 공장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다. 순박한 토샤는 농부의 아내가 되어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산다. 영화의 전반부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