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저녁에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 있던 4살 배기 어린 딸이 살해되었다는 비보였다. 놀란
여자는 딸과 함께 있던 아들은 괜찮냐고 경찰에 묻는다. 아들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그럼 자신이 데리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경찰은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여자의 딸을 죽인 범인이 바로 13살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케이티 그린과 카일 루빈이
2017년에 만든 다큐 'The Family I Had'는 한 가족에게 닥친 참혹한 비극을 통해 범죄와 유전, 형벌 제도의 의미를
들여다 본다.
원래 두 명의 제작자들은 청소년에게 선고되는 과도한 형량과 사법 제도에 대한 다큐를 만들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아들의 손에 딸을 잃은 여성 채리티(Charity)였다. 채리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했다. 팔과 목덜미를 가득 메운 문신은 이 여성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성장 과정 내내
방황했던 여자는 약물 중독에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뜻밖에 생긴 첫째 아이 파리스는 여자에게 새로운 인생의 의미가
된다. 그러나 싱글맘으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또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엘라, 천사같은 아이를 보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던 와중에 여자에게 견딜 수 없는 비극이 찾아온다.
다큐는 3년에 걸쳐 촬영되었다.
관객은 채리티와 채리티의 모친, 수감 중인 파리스와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다. 중간 중간 들어간 그들 가족의 홈 비디오 화면을
비롯해 파리스의 글과 그림이 이 기구한 가족사를 증언한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파리스의 형기는 40년, 채리티는 수감 중인
아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엄마로서 아들에 대한 애정을 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여자의 상황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 가운데 여자에게 아들 피닉스가 생긴다. 여자는 여전히 싱글맘으로 살아간다.
다큐는 채리티의 인터뷰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 사건 당사자의 편향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채리티는 아들의 범죄가 가계(家系)에 흐르는 유전적 소인에 있음을 되짚어 준다. 파리스의 부친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해 채리티는 자신의 모친 카일라에 얽힌 어두운 과거를 폭로한다. 젊은 시절 카일라는
남편 청부 살해 혐의로 기소당했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채리티는 모친의 무죄를 믿지 않으며, 모친의 범죄 성향과 냉정한 양육 방식이
자신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여자는 파리스의 범죄를 유전과 환경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파리스가 어린 여동생을 괴롭히는 홈 비디오 장면은 나중의 비극을 예감하게 만든다. 카일라는 채리티가 아들의
그런 성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방치했다고 증언한다. 파리스가 12살 때 자신이 마약에 다시 손을 댔다는 과오는 인정하지만, 채리티는 기본적으로 그 모든 사태에서 자신의 책임을 지워버린다. 파리스에게 공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음에도 여자는
아들에게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감옥에 수감된 아들을 주기적으로 면회하는 것을 사랑과 용서의 행위라고 포장하는 이
여자에게는 분별력과 책임감이 없다.
이런 종류의 다큐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바로 선정성과
저널리즘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실제 사건의 세부 내용을 언급하는 자체로도 너무나도 충격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위까지
다룰 것인지가 중요하다.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살인범의 차분하고 뻔뻔한 인터뷰를 보는 것은 분명 고역이다. 이제 청소년이 된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과거 행동으로 40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나름의 불만을 토로한다. 다큐는 중심을 잃고, 이
기구한 모자의 이야기에 휘둘려 끌려다닌다. 도대체 이 다큐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채리티의 이야기는 사이코패스 아들을 둔
엄마의 인간극장처럼 보인다.
2027년, 파리스는 가석방 신청 요건을 갖추게 된다. 다큐 이후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파리스는 엄마에 대한 증오심으로 범죄를 저질렀으며 당시에 엄마까지 죽이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엄마 채리티는 다큐에서
한 이야기로는 부족했는지 2020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펴냈다. 아들이 석방될까봐 무섭다고 말하는 이 엄마는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라도 팔아 돈을 마련해야하는 걸까? 감옥에서 나오면 자신의 엄마를 죽이겠다고 공언하는 아들, 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가족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청소년 범죄자에게 가혹한 사법제도를 비판하려 했던 'The Family I Had'는
결국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영구적 격리가 답이라는 의외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이 다큐를 본 이들은 '사이코패스'가 돌에 새겨진
성격과도 같으며 치유와 갱생이 불가능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진 출처: cinemajam.com 자신의 모친 카일라를 바라보는 채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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