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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2의 게시물 표시

그토록 아름다웠던 순간, Compartment No. 6(2021)

    고고학을 전공한 핀란드 여학생 로라는 러시아 국경 지대 무르만스크의 고대 암각화(petroglyphs) 를 볼 계획이다. 무르만스크행 기차 6번 칸. 그곳에는 험한 얼굴에 빡빡머리를 한 젊은 남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 보드카를 연신 들이키는 이 남자는 탁자 위에 안주거리를 지저분하게 늘어놓았다. 무언가 불쾌한 여정이 될 것 같다는 로라의 예감은 처음부터 맞아떨어진다. 로라의 행선지를 물어본 남자는 무르만스크에 매춘이라도 하러가냐며 이죽거린다. 남자의 거칠고 상스러운 언사에 놀란 로라는 식당차와 열차 복도를 헤매며 시간을 보낸다. 다른 객실로 바꾸려고 승무원에게 뇌물을 제의하며 부탁하지만 어림도 없다. 로라는 무르만스크의 암각화를 꼭 보고 싶다. 그러러면 저 6번 칸의 남자를 견뎌야 한다.   핀란드의 감독 Juho Kuosmanen 은 'Compartment No. 6(2021)' 에서 소련 붕괴 직후의 1990년대로 관객을 안내한다. 로라는 불편한 동행 요하를 인내하기 위해 소형 캠코더에 의지한다. 거기에는 모스크바에서 보낸 짧은 유학 기간 동안의 추억이 담겨있다. 캠코더의 영상을 보며 로라는 연인 이리나를 그리워한다. 원래 이 여행도 이리나와 함께 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갑자기 여행을 포기한다. 영화의 도입부, 이리나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이리나는 지인들 앞에서 로라를 짖궃게 놀린다. 로라는 그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방에 혼자 앉아있다. 기차가 쉬는 중간 중간 이리나에게 전화를 하지만 이리나의 목소리는 시큰둥하다. 이리나 때문에 가뜩이나 심란한데, 6번 칸의 남자는 자신을 피하려는 로라에게 집요한 관심을 보인다.   위험해 보이는 남자와의 동행. 처음엔 공포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던 로라의 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분위기가 누그러진다. 빡빡머리의 이 남자는 기차가 쉬는 중간 기착지에서 뜻밖의 제안을 한다. 엄마 보다 더 가까운 사이의 아줌마 집에 함께 가보자는 말에 로라도 따라나선다. 낯선

22살 방황하는 청춘의 노래, Cha Cha Real Smooth(2022)

  꿔다 놓은 보릿자루. 그 말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뭐가 있을까? 'party starter' 는 어떨까? 영화 'Cha Cha Real Smooth(2022)' 의 주인공 앤드류는 대학을 졸업한 22살의 청년이다. 앤드류는 동생을 데리고 우연히 가게된 mitzvah party(유대교의 성인식 파티, 13살이 되는 해에 치룸) 에서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잘 해낸다. 그 재능을 알아본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앤드류를 'party starter'로 고용한다. 파티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고 진행자 역할을 하는 그 일은 어느새 앤드류의 부업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앤드류는 파티에서 자폐증 여학생 롤라와 그 엄마 도미노를 알게 된다.   앤드류에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아직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우선은 돈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여자 친구는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앤드류는 돈이 좀 모이는대로 여자 친구가 있는 바르셀로나로 떠날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앤드류에게 자신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싱글맘 도미노가 눈에 들어온다. 짝사랑은 아니다. 도미노도 딸 롤라를 따뜻하게 대하는 앤드류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22살 백수 앤드류, 32살 싱글맘 도미노, 이 둘의 사랑이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앤드류는 마치 안개 속을 걷는 사람과도 같다. 22살이란 나이에 무언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32살의 도미노는 어떤가? 도미노의 삶도 불안하게 흔들리기는 마찬가지.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아이 아빠는 자신을 떠났다. 그런 도미노가 가장 갈구하는 것은 '안정'이다. 약혼자 조셉과 함께 한다면 붕 떠있는 삶이 비로소 땅에 닿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고 여자는 생각한다. 감정적으로는 앤드류에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약속된 미래와 불확실한 모험, 도미노는 두 개의 선택지를 두

Luma의 삶을 통해 육식의 미래를 생각하다, Cow(2021)

    어미소는 이제 막 출산을 했다. 태반을 뒤집어쓰고 태어난 새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다. 새끼는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찾아서 고개를 들이댄다. 이야기만 듣는다면 뭔가 가슴 뭉클한 동물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 어미소가 있는 곳은 기업형 낙농 목장이다. 어미소가 새끼와 함께 하는 시간은 출산 후 단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어미소가 원래 있던 축사로 돌아가기를 재촉한다. 어미소는 배설물로 질척거리는 시멘트 바닥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렇게 자신의 축사로 돌아온 소는 불안한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여러 번 울음 소리를 낸다. 소의 얼굴을 보여주는 이 극단적인 클로즈업 쇼트는 좀 무섭다. 나는 태블릿 PC의 전체 화면 대신에 일부러 작은 화면으로 보았다.   Andrea Arnold 는 영국 Kent주에 위치한 목장에서 'Cow(2021)' 를 찍었다. 다큐는 'Luma' 라는 이름의 젖소의 일생을 담아낸다. 농장에서 루마는 이름이 아닌 인식번호 1139로 구분된다. 루마가 낳은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귀에 인식표가 부착된다. 새끼의 번호는 04481. 어미소와 분리된 새끼는 비슷한 또래의 새끼들과 같이 지낸다. 새끼들에게 주어지는 우유는 급유통을 통해 배분된다. 새끼들이 있는 축사는 건초더미가 있고 나름 공간의 여유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젖소들이 있는 축사는 비좁고 바닥에는 늘상 오물이 흐르고 있다. 농장의 인부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원형으로 배치된 자동 축유 시스템으로 소들을 몰아 넣는다.   이 농장에서 소는 하나의 상품으로 관리된다. 그것은 루마의 새끼 04481이 제각(除角) 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젖소도 뿔이 난다. 그런데 그 뿔을 제때 제거해주지 않으면 소들끼리 부딪히면서 상처가 날 수 있다. 농장의 인부는 뿔이 나려는 자리를 가늠해보고 인두로 지진다. 어린 송아지가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

복고주의적 감성으로 그려낸 제국의 시절, 마키오카 자매들(細雪, The Makioka Sisters, 1983)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1886-1965) 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정점으로 향해가던 1943년에 이 소설의 상권을 발표했다. 소설에는 1936년부터 1941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오사카 거상 마키오카가의 네 자매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소설의 내용이 전시(戰時)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후의 집필분에 대한 발표와 출간을 금지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종전 이후인 1948년에 소설을 완성했으나 이제는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검열이 문제였다. 전쟁을 미화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삭제할 것을 권고받았다. 마침내 1949년에 소설의 전권이 완간되었다(출처: ja.wikipedia.org).   군국주의 정부 치하에서는 전시와 동떨어진 호사스러운 이야기로, 종전 이후 GHQ 통치 시절에는 전쟁 미화를 이유로 출판이 어려웠던 소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細雪)'에는 그런 배경이 숨겨져 있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눈' 이란 뜻의 제목 '細雪' 에서는 원작자의 유미주의적 감성이 느껴진다. 마치 1차 대전 직전의 서구 유럽 세계를 '아름다운 시절(Belle Époque)' 로 부르는 것처럼 작가는 오사카와 고베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의 그런 관점은 마키오카 가문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화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 1983)' 은 네 자매가 벚꽃놀이를 위해 모이는 회합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세 자매는 첫째 언니 츠루코가 오길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눈다. 막내 타에코는 부모가 남겨준 재산에서 자기 몫의 혼인지참금을 달라고 둘째 언니를 조른다. 둘째 사치코는 큰언니 츠루코의 허락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마침내 나타난 츠루코는 셋째 유키코가 결혼을 해야 타에코가 그 돈을 받을 수 있다며 그 요청을 거절한다. 이 집안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는 셋째 유키코의 혼사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기묘한 향수, 도련님(ぼんち, Bonchi, 1960)

    영화 '도련님(ぼんち, Bonchi, 1960)' 은 번영하는 일본의 모습을 몽타주 쇼트로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거대한 공장들과 그곳의 굴뚝들, 도시의 빌딩숲,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 바야흐로 일본은 패전의 상처를 딛고 고도 경제 성장 체제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쇼트는 크레인으로 촬영된 부감 쇼트이다. 늙은 남자는 후미진 골목의 낡은 목조 건물로 들어선다. 그는 조문을 하러 왔다. 거실에는 그 집의 주인 키쿠지와 두 아들이 있다. 머리가 허연 주인은 자신이 상인 집안의 후계자였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그렇게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철없는 도련님 키쿠지의 젊은 시절로 들어간다.   영화의 제목 'ぼんち' 는 오사카 거상(巨商)의 아들을 부르는 애칭이다. 전통적인 상업 도시였던 오사카에는 큰 부를 쌓은 상인 가문이 많았다. 영화의 주인공 키쿠지(이치카와 라이조 분)는 버선으로 일가를 이룬 상인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이다. 그런데 이 집안의 분위기는 어째 좀 이상하다. 키쿠지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은 외할머니와 어머니이다. 키쿠지의 부친은 그저 가게에서 묵묵히 일만 할 뿐이다. 그는 집안의 대소사에 별다른 발언권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키쿠지의 아내를 맘에 들지 않는다며 내쫒는다. 철없는 도련님 키쿠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게이샤들을 끼고 사랑 놀음에 열중한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절대 결혼할 수 없다. 이 집안의 권력은 외할머니에게 있다. 외할머니가 거상 집안의 주인이며 키쿠지의 아버지는 데릴사위로 아무런 힘도 없다.   배우 이치카와 라이조 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를 영화화한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 으로 스타의 길에 들어선다. 감독 이치카와 콘 에게도 그 영화는 특별했다. '불꽃'을 통해 이치카와 콘은 자신의 영화적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배우와 감독은 다시 만나서

노년의 암울한 초상: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 2021), 소용돌이(Vortex, 2021)

    "나 좀 죽게 네가 도와줘."   뇌졸중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딸에게 그렇게 부탁한다. 갑작스럽게 그 말을 들은 딸은 놀라움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François Ozon 감독의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 2021)' 는 매우 민감한 윤리적 주제를 다룬다.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 를 원하는 아버지 앙드레의 요청을 과연 딸 에마뉘엘은 수락할까?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Emmanuèle Bernheim 는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남겼다. 작가의 부친은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이라는 과정을 통해 삶을 마감했다. 영화 '다 잘된 거야'는 딸 에마뉘엘이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 은 안락사와는 좀 다른 개념의 죽음이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직접 치사량의 약물을 삼켜야 한다. 지난 9월 13일에 스위스에서 타계한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도 그렇게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3명의 사람이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그러한 방식의 죽음이 갖고 있는 윤리적 논란과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둔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프랑수와 오종은 깔끔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가족이 속한 계층적 배경이 '중산층'이라는 데에 있다.   에마뉘엘의 아버지 앙드레는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이며, 어머니는 조각가이다. 에마뉘엘도 작가로서 나름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병고는 이 가족의 삶에 불편을 끼치기는 하지만 뒤흔들 만한 재앙은 아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모친은 비서를 두고 힘겹게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

닌자 2(続・忍びの者, Shinobi no Mono 2: Vengeance, 1963), 닌자 3(新・忍びの者, Shinobi no Mono 3: Resurrection, 1963)

続・忍びの者(Shinobi no Mono 2: Vengeance, 1963) 新・忍びの者(Shinobi no Mono 3: Resurrection, 1963) 닌자 영화에 투영된 계급과 사회의 문제   '忍びの者(Shinobi no Mono)' 소설의 주인공인 이시카와 고에몬(石川 五右衛門, Ishikawa Goemon) 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부패한 관료와 부자들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의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에게는 로빈 후드 같은 반영웅(antihero)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그의 생애를 극적으로 만든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암살 시도였다.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자 고에몬은 어린 아들과 함께 팽형(烹刑, 솥의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형벌) 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닌자였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의 생애의 많은 부분이 후대 창작자들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복원되었다.      공산주의자였던 무라야마 토모요시는 이시카와 고에몬이 보여준 그 저항의 삶에 주목했다. 민중의 편에 선 의적은 최고 통치자에 맞서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작가는 이시카와 고에몬을 최하층 민초들의 저항의지를 대표하는 닌자로 그려냈다. 원작자의 의도는 사회주의 신념을 가진 감독 야마모토 사츠오(山本薩夫) 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忍びの者(Shinobi no Mono)' 1편과 2편 의 고에몬은 지배 계급의 하수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주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1편에서 고에몬은 산다유의 협박과 회유를 받고 오다 노부나가 암살에 나선다. 하지만 고에몬의 암살 시도는 실패하고, 이 일로 오다 노부나가는 닌자 집단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에 나선다. 산다유와 닌자 공동체의 최후를 목도한 고에몬은 필부의 삶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평범한 농부로 살고 싶었던 고에몬의 꿈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지 못한다. 고에몬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닌자(忍びの者, Shinobi no Mono, 1962): 8부작 닌자 영화의 시작

    닌자(忍びの者, Ninja) 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대략 12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닌자의 역사는 중세 시기 일본의 정치적 격변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종의 정치 스파이라고 할 수 있는 닌자의 주요 업무는 '정보 수집'이었다.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던 다이묘들은 경쟁자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닌자를 고용했다. 말하자면 닌자는 하청을 받고 일하는 사업자였다. 그들의 신분은 미천했다. 닌자는 사회의 최하층에 속하는 천민 집단의 사람들로 무리를 지어 산골 지역에 은거했다.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살다가, 일감이 주어지면 비밀리에 활동해서 수익을 올렸다. 수집한 정보로 적들을 교란시키고, 때론 납치와 암살 같은 범죄도 저질렀다. '무사도(武士道)' 를 따르는 사무라이 들이 대놓고 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을 닌자들은 떠맡았다.    '忍びの者(Shinobi no Mono, 1962)' 의 도입부에는 산다유가 이끄는 닌자 무리가 등장한다. 깊은 산 속에서 밭을 일구며 사는 그들은 경계 경보가 울리자 일사불란하게 모인다. 그들 가운데 주인공 이시카와 고에몬도 있다. 우두머리 산다유는 오다 노부나가 타도를 내세우며 닌자들을 압박한다. 그런데 이 늙고 병약해 보이는 우두머리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는 밤에 비밀 통로로 빠져나와 다른 곳의 은거지로 향한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장한 산다유는 또 다른 닌자 무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왜 이런 이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편 고에몬은 산다유의 젊은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 둘의 모습을 엿보는 산다유의 음흉한 미소에 고에몬의 험한 앞날이 예고되어 있다.   무라야마 토모요시(村山知義) 는 1960년부터 1962년까지 '忍びの者(Shinobi no Mono)' 라는 소설을 잡지에 연재했다. 센코쿠 시대(戦国時代)의 닌자(Ninja)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미시마 유키오와 이치카와 라이조의 만남,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

  *이 글에는 영화 '불꽃(炎上, 1958)'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머리의 앳된 청년이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다. 미조구치라는 이름의 수련승은 국보급의 사찰 취각사를 불지른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경찰의 심문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영화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 은 미조구치의 플래시백을 통해 그 방화 사건의 오랜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승려였던 미조구치의 부친은 세상을 뜨면서 친구 승려에게 아들을 수련승으로 받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렇게 미조구치는 취각사에서 지내게 된다. 빼어난 취각사의 정경은 미조구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취각사는 곧 미조구치에게 지켜야할 전부가 된다. 취각사가 보여주는 완전한 아름다움과 달리 미조구치를 둘러싼 현실은 거짓과 더러움으로 물든다. 덕이 높은 고승인줄 알았던 주지는 돈에 집착하며 젊은 게이샤를 내연녀로 둔다. 미조구치의 모친은 아픈 남편을 놔두고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난 적이 있었다. 미조구치는 어머니가 의탁할 곳을 찾아 취각사로 들어오자 그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절름발이 친구 토카리가 보여준 자신만만함은 열등감을 감추려는 위악에 지나지 않았다. 미조구치는 세상이 취각사의 절대적인 미와 순수가 존재할 수 없는 곳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 아름다움이 언젠가 변해 사라질 거라면 차라리 내 손으로 없애버리자. 미조구치의 취각사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은 그렇게 방화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1950년 7월 2일, 7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교토의 사찰 금각사가 불탔다. 범인은 22살의 사찰 수련승 하야시 요켄이었다. 경찰에 의해 체포된 그는 재판 과정 내내 횡설수설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범인은 7년형을 언도받았다. 하야시 요켄은 복역 중에 결핵에 걸렸고, 결국 26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그 사건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것을 소설로 쓰기 위해 작가는 금각사와 방화 사건 관련 인물들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의 초대장, 나카노 스파이 학교(Nakano Spy School, 1966)

      어쩌다가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나카노 스파이 학교(Nakano Spy School, 1966)'을 보게 되었다. 보고 난 느낌은 그렇다. 아, 이 양반은 꽤나 성깔있는 사람이네, 하는 느낌이랄까... 어떤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보고서 그 영화 세계를 헤아려 보는 것은 무리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야스조의 첫 작품으로 본 사람들은 아마도 결정을 해야할 것이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 세계를 탐험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 한편에서 멈출 것인가에 대해서. 빠르고 명확한 이야기 전개, 독창적인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나카노 스파이 학교'는 감독의 타협하지 않는 근성이 느껴진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38년이다. 사관학교 학생으로 임관을 앞두고 있는 예비 장교인 지로(이치카와 라이조 분)는 뜻하지 않게 스파이 학교 학생이 된다. 그에게는 홀어머니와 약혼녀 유키코가 있는데,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못하고 1년 가까이 소식을 끊은 채 스파이 훈련을 받는다.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처음으로 부여된 임무는 영국군의 암호 코드 북을 입수하는 것. 동료들과 어렵게 코드 북을 입수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영국군은 암호 체계를 바꾸어 버린다. 지로는 어디선가 기밀이 누설되었다고 생각하고 독자적으로 조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약혼녀 유키코가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지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육군 나카노 학교'는 1937년에 극비리에 설립된 스파이 학교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38년에 처음으로 뽑은 19명의 학생을 시작으로 2차 대전 이후까지 2500명에 이르는 졸업생들이 나왔다. 그들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의 첨병으로 엄청난 활약을 했는데, 각종 첩보 임무에서부터 일부 아시아 국가의 정보부 창설에 관여하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원하는 최전선의 비밀 정예요원이었다.   '나카노

괴물의 입 속을 들여다 보다, 미시마-그의 인생(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1985)

      미스미 켄지 감독의 '검( 劍, 1964 )' 리뷰를 쓰면서 '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생각이 났다. '검'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가진 작품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극우적인 가치관과 생의 마지막에 택한 끔찍한 죽음의 방식은 이 작가를 언급할 때 어떤 면에서는 흠칫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전집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초기작인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 '파도 소리' 정도가 번역되었다. 민음사에서 미번역된 미시마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폴 슈레이더의 '미시마-그의 인생( 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1985 )'은 4개의 장으로 나누어 미시마 유키오의 생애를 조망한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된 사건은 역시 '미시마 사건'으로 알려진 자위대 점거 할복 자살 사건이다. 영화를 4부분으로 분할한 것은 사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일부분을 영화적으로 재연해서 보여주는데, '금각사', '교코의 집', '달리는 말'이 나온다. 젊은 청춘 4명의 욕망의 행로를 그린 '교코의 집'과 극우적 사상이 드러난 '달리는 말'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이시오카 에이코가 맡은 미술 세트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면서도 매우 화려한 색감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음악은 그 유명한 현대 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맡았다. 폴 슈레이더는 그렇게 관객의 눈과 귀를 장악해나가면서도 본질인 미시마의 생애를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이 논란 그 자체임을

미스미 켄지의 대결의 세계, '무숙자(無宿者, On the Road Forever, 1964)'와 '검(劍, Ken, 1964)'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座頭市, 2003) '는 원작 영화가 있다. 미스미 켄지 감독의 '자토이치 이야기( 座頭市物語, 1962)'가 바로 그것이다. 다케시 본인이 주연까지 한 2003년 영화에서 보여지는 맹인검객은 다소 거친 인상의 비범하고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1962년 영화의 가츠 신타로가 분한 자토이치는 뭔가 어수룩하면서도 친근한 모습의 외양을 하고 있다. 뭐랄까, 관객이 뛰어난 검객에게 기대하는 어떤 원형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미스미 켄지는 그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것은 일련의 시리즈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다. 그의 영화 작품 대부분은 그런 검객 영화로 채워져 있다.   1964년에 만든 '무숙자(無宿者)'와 '검(劍)'은 모두 이치카와 라이조가 주연을 맡았다. 유명 가부키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일본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경력을 쌓은 그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는 특히 검객 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 미스미 켄지 감독과도 여러 작품을 함께 했다. 평범한 얼굴 속에 깃든 강직함과 단아함을 보여주는 이치카와 라이조는 '무숙자'에서는 정의로운 사무라이, '검'에서는 순수함과 열정을 가진 검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스미 켄지가 '무숙자'와 '검'에서 보여주는 화면 구성은 매우 경제적이고 정갈하다. 매 쇼트 하나 하나를 보다 보면 뭘 허투루 낭비하는 법이 없다. 마치 필름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 가계부라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숙자'의 액션은 관객들에게 보기좋게 시원한 액션을 선사하지 않는다. 주인공 잇뽄 마츠는 큰 무리의 악당 패거리와 맞서 싸우는데, 그 싸움들은 현실적이어서 대부분은 '막싸움'이다. 싸움이 이루어지는 장소도 비좁은 집들 사이, 앞마당 정도다. 그래서 통쾌한 활극을 기대한 관객들은

영화가 잊혀진 역사와 현실을 이어줄 때, 라메리카(Lamerica, 1994)

    1939년,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침공했다. 무솔리니는 집권 이후 알바니아에 대한 야욕을 서서히 드러냈다. 경제적인 수탈로부터 시작한 합병 작업은 2차 대전의 혼란기를 틈타 알바니아 본토 점령으로 이어졌다. 1944년까지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탈리아 감독 Gianni Amelio 의 '라메리카(Lamerica, 1994)' 에는 그 역사적인 사건의 기억이 얄궂게 포개어져 있다.   1990년대의 알바니아, 두 명의 이탈리아인이 알바니아를 찾는다. 지노의 상사 피오레는 알바니아에 신발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한다. 사실 피오레는 합작 사업을 핑계로 눈먼 정부 보조금을 받아내려는 사기꾼이다. 바지 사장으로 내세울 알바니아인을 찾던 피오레는 요양원에서 아픈 노인 스피로를 데려온다. 이탈리아로 급하게 돌아간 상사를 대신해 지노는 스피로와 함께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스피로는 지노를 피해 도망친다. 과연 이탈리아인의 신발 공장 사기극은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청년 지노에게 알바니아는 후진국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거리에는 실업자와 거지 아이들이 들끓는다. 어렵게 스피로를 찾아낸 지노, 그는 시골 마을 휴게소에 들렀다가 잠깐 주차해둔 차의 모든 부품이 사라졌음을 발견한다. 지노에게 알바니아는 총체적인 부정부패와 범죄가 횡행하는 나라이다. 스피로와 함께 하는 지노의 여정은 바로 그 피폐한 알바니아의 현실에 대한 영상 보고서나 다름없다. 휴게소에는 커피는 물론이고 그 어떤 음식도 팔지 않는다. 그곳 사람들은 먹고 살 방도를 찾을 수 없다. 알바니아인들은 어떻게든 이탈리아로 가고자 한다.   지노는 스피로를 비롯해 알바니아 사람들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난하고 더럽고 무능한 사람들. 지노의 우월 의식은 한때 알바니아를 점령했던 이탈리아 제국주의자들의 관점과 다를 바 없다. 지노가 알바니아인으로 알았던 스피로는 바로 그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다. 알바니아 침공

낯선 Tollywood 영화가 보여준 위력, RRR(2022)

    미국의 영화 매체들이 상반기에 뽑은 추천작들 순위에 이 영화가 꼭 들어있다. 제목도 희한한 영화 'RRR(2022)' 은 인도 영화이다. 인도 영화하면 흔히 떠올리는 춤과 노래로 범벅이 된 3시간짜리 영화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인도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RRR'은 이제까지의 인도 영화 최고 흥행기록도 경신했다. 영화는 인도 국내에서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도대체 이 영화에 무슨 마력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1920년대의 인도. 영국 관료 스콧과 그의 부인 캐서린은 곤드 부족를 방문한다. 캐서린은 '말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이유로 납치한다. 그 일에 분노한 부족의 전사 빔은 말리를 구출하기 위해 델리로 떠난다. 한편 제국 경찰로 복무하는 인도인 라주는 출세를 위해 동족들을 탄압하는 데에 앞장선다. 빔과 라주는 죽을 위험에 처한 소년을 함께 구하게 되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아직까지 서로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하는 두 남자. 하지만 말리를 구하려던 빔을 라주가 체포하면서 둘의 우정은 깨어질 위기에 처한다. 결국 사형이 확정된 빔, 라주는 뜻밖에도 빔을 살려주고 그 일로 라주는 투옥된다. 라주 덕분에 말리와 함께 탈출할 수 있었던 빔은 우연히 라주의 여동생 시타를 만나게 된다. 시타로부터 라주의 과거를 듣게된 그는 라주를 구하기 위해 감옥에 잠입하는데...   감독 S. S. Rajamouli는 실존했던 인도 독립의 영웅 두 사람을 빔과 라주로 형상화했다. 현실에서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인도 독립 투사들은 영화 속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나온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신화적 서사를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라주는 인도 신화의 라마(Rama) , 빔은 비마(Bhima) 신의 특성을 지닌다. 빔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 라주는 제국 경찰을 공격한다. 놀랍게도 그가 사용하는 무기는 총이 아니라 

밤의 여인들(夜の女たち, Women of the Night, 1948), 수치의 거리(赤線地帯, Street of Shame, 1956)

  1. 집을 잃은 여성: 밤의 여인들(夜の女たち, Women of the Night, 1948)   전쟁은 전장터의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가혹하다. 미조구치 켄지(溝口健二) 의 영화 '밤의 여인들(Women of the Night, 1948)' 에는 전후 밑바닥 삶을 사는 여성이 그려진다. 그것은 별다른 상상의 여지없이 '매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후사코(타나카 키누요 분)는 전쟁에 끌려간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아픈 어린 아들을 보살피는 데에 온 힘을 쏟는 후사코. 하지만 여자는 남편의 전사 소식에 이어 아이마저 잃는 슬픔을 겪는다. 후사코에게 호감을 가진 쿠리야마는 후사코를 비서로 채용한다. 한편 후사코는 전쟁통에 소식이 끊겼던 여동생 나츠코를 우연히 만난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후사코는 쿠리야마가 나츠코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했음을 알게 된다. 그 일로 쿠리야마를 떠난 후사코는 생계가 막막해지자 거리의 여자가 되는데...   미조구치 켄지를 '시대극(時代劇,  じだいげき)' 을 주로 만든 감독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밤의 여자들'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이 강렬한 사회 고발 영화에는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neorealism)' 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후사코는 패전의 후폭풍 속에 내던져진다. 남편과 아이의 죽음에 이어 가난은 이 여자를 옥죈다. 돈푼깨나 있는 후리야마의 내연녀에서 매춘 여성으로 급전직하하는 후사코의 삶. 추락하는 것은 후사코뿐만이 아니다. 댄스홀의 여급으로 살던 나츠코는 언니의 남자를 빼앗더니, 매독에 걸린 상태로 임신까지 하게 된다. 후사코의 어린 시누이 쿠미코는 가난한 집을 뛰쳐나왔다가, 건달에게 겁탈당한다. 이후에 쿠미코는 거리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올케 언니 후사코와 만난다. 미조구치 켄지는 세 여성들의 처절한 추락의 여정을 매우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拳銃は俺のパスポート, A Colt is My Passport, 1967)

시시도 조, 무국적의 총잡이가 되다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拳銃は俺のパスポート, A Colt is My Passport, 1967) 노무라 타카시( Nomura Takashi ) 감독   여기 한 명의 배우가 있다. 배우로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그저 그런 단역들만 주어질 뿐이었다. 적당히 잘생긴 자신의 얼굴로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성형 수술로 개성을 가진 마스크를 만드는 거다. 시시도 조(Shishido Joe) 는 광대뼈 부분에 실리콘을 넣은 새로운 얼굴의 배우가 되었다. 성형 수술 이후 그의 양볼은 마치 사탕을 두어 개 물고 있는 것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 이유로 그에게 '다람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독특한 얼굴 덕분이었을까? 그는 액션 영화에서 총잡이 역할로 잘 나가기 시작했다. 영화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A Colt is My Passport, 1967)' 는 시시도 조의 대표작이다.   시시도 조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저격수 카미무라이다. 카미무라는 야쿠자 보스의 의뢰로 다른 조직의 야쿠자 보스를 암살한다. 그는 일이 끝나면 돈을 받고 외국으로 나가기로 되어있다. 하지만 조직은 카미무라를 적당히 써먹고 처리해 버리려고 한다. 카미무라는 파트너 슌과 함께 야쿠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부둣가 근처의 선술집으로 숨어든 두 사람, 그곳에는 거친 밑바닥 삶을 사는 여성 미나가 있다. 미나는 카미무라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카미무라는 미나의 도움으로 밀항의 기회를 잡지만, 그러는 사이 슌은 야쿠자들에게 끌려간다. 슌을 풀어주는 대신 자신이 야쿠자들과 대면하기로 한 카미무라. 폐허의 매립지에서 고독한 총잡이는 야쿠자들을 상대로 마지막 결전을 벌인다.   총잡이와 일본 영화라니, 무언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 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모사했다는 인상을 준다.

The Rehearsal(HBO TV series Season 1, 2022) 5, 6편 리뷰 완결

  5편 Apocalypto 6편 Pretend Daddy Season 1 완결 *이 글은 다큐 시리즈 'The Rehearsal'의 세부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양육 리허설의 파국: 5편 Apocalypto   에피소드 5에서 네이선은 안젤라의 양육 방식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 안젤라는 아들 아담도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지길 바란다. 유대인인 네이선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제까지 안젤라에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선의 모친은 네이선에게 아담을 유대인으로 키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네이선은 아빠 역을 연기하는 자신에게도 아담의 종교 교육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안젤라는 네이선의 그런 의향에 동조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다. 멜 깁슨의 감독 연출작 'Apocalypto(2006)' 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안젤라를 보며 네이선의 표정은 굳어진다. 그 영화가 개봉될 당시, 멜 깁슨은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네이선은 은밀하게 아담의 유대교 입문 교육을 진행한다. 그는 아담과 수영을 간다고 하고서는, 유대인 회당과 유대교인 가정 교사에게 데려간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는 아담의 머리에 물을 뿌려서 수영을 다녀온 것처럼 가장한다. 아담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일도 잊지 않는다. 사실 리허설의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동 연기자에게 리허설의 장면이라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괜찮은 걸까? 과연 아담을 연기하는 아역 배우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리허설이 만들어내는 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는 아동의 현실 인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것은 이전에 6살 아담을 연기한 레미에게서 나중에 문제가 된다.   네이선의 비밀 종교 교육은 가정 교사 미리암의 개입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미리암은 네이선에게 더이상 회피하지 말고 안젤라와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네이선은 미리암의 도움을 받아 안젤라를 설득하고자 한다. 두 명의 강한 여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