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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와 이치카와 라이조의 만남,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

 

*이 글에는 영화 '불꽃(炎上, 1958)'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머리의 앳된 청년이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다. 미조구치라는 이름의 수련승은 국보급의 사찰 취각사를 불지른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경찰의 심문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영화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은 미조구치의 플래시백을 통해 그 방화 사건의 오랜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승려였던 미조구치의 부친은 세상을 뜨면서 친구 승려에게 아들을 수련승으로 받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렇게 미조구치는 취각사에서 지내게 된다. 빼어난 취각사의 정경은 미조구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취각사는 곧 미조구치에게 지켜야할 전부가 된다. 취각사가 보여주는 완전한 아름다움과 달리 미조구치를 둘러싼 현실은 거짓과 더러움으로 물든다. 덕이 높은 고승인줄 알았던 주지는 돈에 집착하며 젊은 게이샤를 내연녀로 둔다. 미조구치의 모친은 아픈 남편을 놔두고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난 적이 있었다. 미조구치는 어머니가 의탁할 곳을 찾아 취각사로 들어오자 그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절름발이 친구 토카리가 보여준 자신만만함은 열등감을 감추려는 위악에 지나지 않았다. 미조구치는 세상이 취각사의 절대적인 미와 순수가 존재할 수 없는 곳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 아름다움이 언젠가 변해 사라질 거라면 차라리 내 손으로 없애버리자. 미조구치의 취각사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은 그렇게 방화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1950년 7월 2일, 7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교토의 사찰 금각사가 불탔다. 범인은 22살의 사찰 수련승 하야시 요켄이었다. 경찰에 의해 체포된 그는 재판 과정 내내 횡설수설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범인은 7년형을 언도받았다. 하야시 요켄은 복역 중에 결핵에 걸렸고, 결국 26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그 사건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것을 소설로 쓰기 위해 작가는 금각사와 방화 사건 관련 인물들 취재에 많은 시간을 썼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금각사(金閣寺, 1956)'였다. '금각사'는 이전부터 쌓아온 미시마 유키오의 글쓰기 경력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영화사 다이에이(大映)는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이치카와 콘을 감독으로 내정했다. '금각사'의 탐미주의적 문학 세계를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맡았던 와다 나토(和田夏十, 이치카와 콘 감독의 부인이었음)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이는 미시마 유키오였다. 그는 소설의 취재 노트를 통째로 건네면서 각색 작업을 격려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영화 촬영 현장도 참관했다. 소설과는 같은듯 다른 영화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은 원작자의 마음에 꼭 들었다(출처: ja.wikipedia.org). 

  원작 소설을 읽은 이라면 이 영화가 소설과는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금각사'는 교토의 '취각사(驟閣寺, 당시 금각사 주지는 절의 명칭을 그대로 쓰는 것을 반대했다)'가 되었다. 영화는 소설 속 미조구치의 성적 일탈은 최대한 배제했다. 그 대신 주인공의 내적 트라우마가 부조리한 현실과 충돌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한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벽한 순수를 열망하는 일은 필연적인 절망을 내포한다. 미조구치의 절망은 그를 파멸로 이끈다.

  원작 소설의 주인공이 불타오르는 금각사를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과는 달리, 영화 '불꽃'의 미조구치는 죽음을 택한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결말은 원작자 미시마 유키오의 내적 본질과 더 맞닿아 있다. 그의 단편 소설 '검(劍)'을 영화화한 '검(劍, Ken, 1964)'의 주인공도 검도에서 무오류성을 추구하다 실패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잘 알려진 대로 미시마 유키오는 자위대의 궐기를 요구하다 할복자살했다. 그의 자기파괴적인 최후는 '검'의 주인공 고쿠부의 죽음에서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치카와 콘은 중층적인 플래시백으로 영화를 독특하게 만든다. 와다 나토의 빼어난 각색은 소설의 주제를 훨씬 더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또한 토카리 역을 연기한 나카다이 타츠야를 비롯해 여러 중견 배우들의 훌륭한 조합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음울한 분위기의 영화 음악, 미니어처를 사용해 취각사의 화재 장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낸 특수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무엇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만든 이는 미조구치 역의 이치카와 라이조였다. 다이에이로 이적한 뒤에 모처럼 큰 배역을 맡게 된 이치카와 라이조의 그때 나이는 스물 일곱. 가부키 배우 집안의 양자로 들어갔지만 그에겐 보잘 것 없는 배역만 주어졌다. 결국 그는 영화 배우로 활로를 찾았다. 순수한 얼굴 뒤에 숨겨진 상처와 불안정한 내면을 표현해내는 이 배우의 연기는 천재적이다. 이 뛰어난 배우는 서른 일곱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했다. '불꽃'의 비극적 결말은 이치카와 라이조의 짧은 생애와 겹치며 도저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폴 슈레이더 감독 '미시마-그의 인생(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1985)'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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