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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작가의 탄생, 콜펜 마을에서 생긴 일(Kvarteret Korpen, Raven's End, 1963)

    "그거 쓰면, 읽을 사람은 있어?"   안데르스의 여자 친구가 그렇게 묻는다. 여자 친구 엘지는 이웃에 산다. 허름한 빈민가 공동 주택에서 사는 안데르스에게는 알콜 중독자 아빠, 세탁부로 생계를 유지하는 엄마가 있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그는 틈만 나면 글을 쓴다. 책상도 없는 그는 식탁을 창가로 끌어다 서재를 대신해 거기에서 글을 쓴다. 안데르스에게는 오직 글만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기댈 수 있는 희망의 빛이다. 쓴 글을 출판사들에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는 것이 일과인 그에게 어느 날, 스톡홀름의 출판사에서 답장이 날아든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1967)'으로 잘 알려진 보 비더버그 감독의 '콜펜 마을에서 생긴 일(Kvarteret Korpen, Raven's End, 1963)은 하층민 청년의 자아 찾기를 그린다. 흑백으로 촬영한 이 영화는 1963년에 제작한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역시 같은 해 만든 첫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우 토미 베르그렌이 안데르스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 작품은 종종 감독 자신의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보 비더버그는 그에 대해 부인했다. 오히려 안데르스 캐릭터의 유사성은 그 역을 연기한 토미 베르그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하층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다. 자신의 삶과 비슷한 배역이어서 그랬을까? 베르그렌은 신인이었음에도 아주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은 1936년의 스웨덴의 말뫼, 안데르스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다. 전단지 돌리는 일이라도 하라고 아내는 다그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이 가족은 세탁부로 일하는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먹고 살아갈 뿐이다. 안데르스는 자신이 잘 하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글쓰기에 몰두한다. 축구 선수인 그의 절친한 친구 식스텐은 출세해서 파리의 매춘부를 만나는

고독한 노과학자의 삶의 이면, 독백(Монолог, Monologue, 1972)

    레닌그라드의 명망있는 과학자 스레텐스키 교수의 일상은 단조롭다. 오직 연구에만 시간을 쏟는 그에게 그나마 말 상대가 되어주는 이는 무뚝뚝한 성격의 가정부 엘자이다. 여느 날처럼 엘자가 차린 저녁을 먹고 있는 교수의 집에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아가씨가 들어온다.   "난 아빠의 딸 타샤에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가 대학 시험 준비를 도와줄 테니 가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 이 집에서 살려구요."   결혼한 지 1년 만에 헤어진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딸은 아내가 키웠는데, 그 딸 타샤가 그를 찾아온 것이다. 이 제멋대로인 딸은 스레텐스키 교수에게 커다란 숙제처럼 느껴진다. 시험에 실패하고 돌아가는 딸과의 짧은 만남 이후, 교수는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몇 년 후, 그 딸은 다시 아기를 안고 찾아온다.   "아빠, 난 새로운 사랑을 찾았어요. 아기는 여기다 두고 갈게요. 아빠는 잘 키울 수 있을 거에요."   그렇게 골때리는 딸 타샤는 교수에게 손녀딸 니나를 안겨주고 떠난다. 세월이 흐르고, 니나는 멋진 아가씨로 자란다. 스레텐스키 교수는 이제 연구는 접고 은퇴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젊고 야심에 찬 과학자 코티코프는 교수의 이전 연구가 매우 가치가 있으니 후속 연구를 해보자며 제안한다. 그 즈음, 남편과 헤어진 타샤가 다시 찾아온다. 교수의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에는 예기치 못한 흔들림이 이어진다.   일리야 아버바크(Ilya Averbakh) 감독의 1972년 영화 '독백(Монолог, Monologue)'은 평생을 과학 연구에만 헌신한 노교수의 삶의 이면을 들여다 본다. 모스필름, 고리키 필름 스튜디오와 더불어 소련의 3대 국영 영화사 가운데 하나였던 '렌필름(Lenfilm)'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소련 영화에서는 드문 심리 드라마를 보여 준다. 매우 조용하고 건조하게 흘러가는 서사는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민초들의 대서사, 토지(KBS TV 드라마, 1987-1989)

    나이가 들수록 오래전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KTV(국민방송)에서 요새 방영해주고 있는 드라마 '토지(1987)'를 다시 보고 있다. 햇수로 무려 34년 전의 드라마이다. 어제는 최 참판 댁의 재산을 노린 김평산의 음모에 동참한 참판 댁 하녀 귀녀의 비참한 말로, 귀녀의 아들을 거두는 강 포수 이야기가 나왔다. 어찌나 조연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지 이미 다 본 것을 또 보게 된다. 많은 등장 인물이 나오는 대하 드라마의 경우, 주연 배우들의 연기를 받쳐주는 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야말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토지'는 당시 KBS의 드라마 제작 역량이 총집결된 작품으로, 박경리 원작의 치밀한 서사와 당대의 대표적 TV 출연 배우들의 열연이 빛난다.   '토지'는 하동의 평사리를 배경으로, 구한말에서 광복 전까지 만석꾼 최 참판 댁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소설이 완간된 것은 1994년이어서, 이 드라마는 당시까지 출간된 부분까지만 다루었다. KBS에서는 주인공 '최서희' 역의 최수지를 드라마의 간판으로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최수지의 사진이 인쇄된 KBS 엽서를 홍보물로 받았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신인 배우로 연기력이 미흡하다는 평이 있기는 했었지만, 최수지가 보여주는 서희의 이미지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최수지를 비롯해 이 드라마는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서희의 아역으로 나왔던 이재은과 안연홍은 이 드라마의 출연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서희의 몸종 봉순이의 소녀 시절을 연기했던 전미선의 고왔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서희와 길상의 큰아들 환국 역으로는 김민종이 나왔다. 그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었다.         '토지'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김평산의 사악한 계략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서희는 할머니마저 돌림병으로 잃은 후, 일가붙이인 조준구에게 재산을 강탈당한다. 할머니가 숨겨놓은 금

전후 일본 사회의 심리적 해부,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Thus Another Day, 1959)

    *이 글에는 영화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는 어느 여름날, 가족의 평범한 식사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일상적인 가족극 같은 첫인상을 주는 이 영화, 그런데 첫 장면부터 흐르는 영화의 음악은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의 1959년 영화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Thus Another Day)'의 러닝 타임은 73분으로 짧은 편이지만, 이 영화가 주는 여운은 길고 오래 지속된다.   가정주부 야스코의 머릿속에는 늘 돈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도쿄 외곽에 마련한 집의 대출금을 갚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평범한 샐러리맨 남편 쇼이치는 여름 동안 상사에게 집을 빌려주고 월세를 받아 살림에 보태자고 제안한다. 쇼이치는 도쿄의 친구 아파트에, 야스코와 아들 가즈오는 친정 가루이자와에서 지내기로 한다. 잡화점을 하는 친정 가게일을 봐주면서, 야스코는 동네 주민 슈스케와 친해진다. 그는 퇴역 군인으로 아내 대신 딸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휴양지 마을에 야쿠자 일당이 오면서 분란이 생기기 시작한다. 야스코와 쇼이치 부부의 힘겨운 여름 나기는 순탄하게 끝날 수 있을까...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 자신이 쓴 각본은 여러 등장 인물에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흩어져 있어서 산만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영화의 서사에는 응축된 힘이 있다. 영화에서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은 퇴역 군인 슈스케이다. 전장에서의 살상의 기억 때문에 슈스케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가 주는 군인 연금을 거부한 것은 슈스케가 지닌 도덕적 양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경제적인 곤궁은 아내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그는 아내가 부쳐주는 생활비에 의지해 딸을 키우고 있다. 가장으로서도, 사회의 일원으로도 기능하지 못하게 된 슈스케의 모습은 전후 일본 사회의 그늘을 보여준다.

그리스 멜로 영화의 어떤 부성(父性), 항구의 아그니(Η Αγνή του λιμανιού, Lily of the Harbor, 1952)

    *이 글에는 '항구의 아그니(Η Αγνή του λιμανιού, Lily of the Harbor, 1952)'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데이비드 로웰 리치 감독의 '마담 X(Madame X, 1966)'에서 라나 터너는 아들을 향한 절절한 모정을 보여준다. 하층민으로 상류층 남자와 결혼한 홀리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시어머니에 의해 어린 아들을 놔두고 떠나게 된다. 세월은 흐르고 홀리는 밑바닥 주정뱅이의 삶을 전전한다. 우연히 홀리의 과거를 알게 된 사기꾼이 아들을 찾아가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그 사기꾼을 죽인 홀리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마담 X'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선다.   홀리의 아들은 그 여인이 자신의 모친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변호인으로 나선다. 매우 잘 만들어진 이 멜로 영화는 더글라스 서크의 'Imitation of Life(1959)'에 나왔던 라나 터너의 유명세에 힘입어 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멜로 드라마의 주 관객층인 여성이 영화에서 TV의 연속극(Soap opera)으로 이동하면서, 멜로 영화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실제로 '마담 X'의 흥행 성적도 시원찮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라나 터너의 열연, 심금을 울리는 서사, 좋은 연출로 멜로 영화의 황금기를 마감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마담 X'에서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아들을 향한 엄마의 모정이다. 자신의 삶이 망가지더라도 아들만은 지켜내야 한다는 홀리의 집념은 급기야 살인까지 불사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모성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신성화된 가치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과연 모성은 불멸의 가치인가? 섀리 엘 서러(Shari L. Thurer)는 '어머니의 신화(1995, 까치 글방)'에서 발견된 관념으로서의 '모성'의 역사를 기술한다. 도덕적 의무로 강제된 모성이 신화화되면서 그것은 여성에게 억압적인 심리적

쿠르트 바일이 남긴 미국 음악의 유산, Street Scene(1947, 미국 오페라)

    "난 때로 더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너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딸 로즈를 향해 이런 말을 쏟아내는 모랑 부인은 삶이 너무나도 괴롭다. 뉴욕 빈민 아파트의 삶, 거칠고 강압적인 남편, 철없는 딸과 아직 어린 아들, 모랑 부인은 그 삶에서 탈출을 꿈꾼다. 어디 모랑 부인뿐인가? 찌는듯한 무더위에 집안에 머물 수 없어서 죄다 밖에 나온 모랑 부인의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Ain't It Awful, the Heat?'로 이 놀라운 미국 오페라는 시작된다. 'Street Scene'은 쿠르트 바일(Kurt Weill, 1900-1950)이 미국 극작가 엘머 라이스가 쓴 동명의 희곡(퓰리처 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1947년에 만든 오페라 작품이다. 대본은 미국의 흑인 작가 랭스턴 휴즈가 맡았다.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음악극(Singspiel) '서푼 짜리 오페라(The Threepenny Opera, 1928)'로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인 그는 히틀러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1935년의 일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그는 자신이 이전부터 작업해온 'Singspiel(독일어로 된 음악극)'을 새롭게 갱신한다. 영어와 미국의 정서를 결합시킨 '미국 오페라(American Opera)'가 그것이다. '미국 오페라'라는 명칭은 쿠르트 바일이 붙인 이름이지만, 1935년에 미국의 작곡가 조지 거슈인이 만든 3막의 영어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가 그 앞에 자리하고 있다. 거슈인이 보여준 재즈와 오페라의 놀라운 결합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바일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독창적 형태의 미국식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오페라'라는 명칭을 쓰기는 하지만, 관객들은 'Street S

1950년대 소련의 젊은 여인의 초상, '다른 운명(Разные судьбы, Different Fortunes, 1956)'

    1956년은 소련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 해였다.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제 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스탈린을 비난한다. 스탈린은 1953년에 사망했으나 소련은 그 유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발언 이후 '해빙기(Khrushchev Thaw)'는 더욱 가속화 된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가운데 소련 국민들에게 사회, 문화적으로 폭넓은 자유가 허용되었다. 레오니드 루코프(Leonid Lukov) 감독의 '다른 운명(Разные судьбы, Different Fortunes, 1956)'은 그 해빙기의 초입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타냐를 중심으로 스툐파, 페쟈, 소냐, 고교 동창생 4명의 젊은 날을 그린다.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가에서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의 스툐파는 타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타냐는 페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스툐파는 실망하지만, 곧 자신의 길을 찾아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로 떠난다. 낮에는 제철 공장, 저녁에는 야간 대학에 다니며 스툐파는 열심히 살아간다. 타냐는 페쟈와 결혼한다. 그러나 학생 신분으로 경제력이 없는 페쟈에게 타냐는 곧 실망한다. 페쟈는 부업으로 택시 운전사 일까지 하지만, 안락한 생활을 꿈꾸는 타냐는 유명 작곡가 슈친과 사귀게 된다. 스툐파가 타냐를 마음에 둔 것을 알지만, 한결같이 스툐파를 좋아하는 소냐는 스툐파가 있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네 명의 서로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은 타냐이다. 타냐를 연기한 타티아나 필레츠카야의 싱그러운 젊음과 아름다움이 스크린 위로 넘실거린다. 아름답지만, 제멋대로이며, 분별력이 결여된 타냐는 사랑에 빠져 급하게 한 결혼에 곧 염증을 느낀다. 가난한 학생인 남편 페쟈는 집 구할 돈도 없다. 각자 부모의 집에 얹혀 사는 이 이상한 부부의 결혼 생활은 위기에 처한다. 아내가

프리츠 랑이 보여주는 전복적 멜로 드라마, 밤의 충돌(Clash by Night, 1952)

  *이 글에는 영화 '밤의 충돌(Clash by Night, 1952)'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거친 바다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갈매기와 물개가 조업 중인 선박들 주변에 모여든다. 대형 그물에서 쏟아지는 생선들은 통조림 공장으로 이동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생선을 자동화 라인에서 분류한다. 마치 수산물 가공업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도입부를 가진 영화, 프리츠 랑 감독의 1952년작 '밤의 충돌(Clash by Night)'이다. 원작은 클로드 오데츠가 1941년에 발표한 동명의 희곡으로 브로드웨이 연극으로도 공연된 작품이었다.   한가로운 몬테레이의 어촌 마을에 화려한 외모의 여성이 도착한다. 매(Mae)는 고향을 떠난지 10년 만에 돌아왔다. 높은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여자는 영 그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자는 남동생 조의 집을 찾아간다. 조는 누나가 보낸 그간의 삶을 궁금해 한다. 매는 '꿈은 컸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었지'라는 말로 대신한다. 매와 알고 지냈던 마을의 순박한 어부 제리(폴 더글라스 분)는 매와 데이트를 시작한다. 동네 영화관의 영사 기사 얼(로버트 라이언 분)도 매를 좋아하게 되지만, 매는 얼의 불안하고 상스러운 면모를 경멸한다. 어떻게든 삶에 안착하고 싶었던 매는 제리와 결혼하고, 둘 사이에는 딸도 태어난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의 답답함에 지친 매는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데...   '밤의 충돌'은 프리츠 랑 감독의 후기작으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다. 당시에도 이 영화는 작품성 보다 다른 의미로 큰 화제가 되었다. 영화에서 조의 여자 친구로 나온 마릴린 먼로 때문이었다. 먼로는 누드로 찍은 화보 달력을 내놓았는데, 먼로를 취재하려고 촬영장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제작사 RKO는 몰려든 기자들을 내쫓는 것이 일이었고, 촬영장의 분위기도 어수선할 수 밖에 없었다.

브레즈네프 시기의 빛나는 로맨틱 코미디, 직장 로맨스(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Office Romance, 1977)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아마도 '직장 로맨스'의 아나톨리에게는 루드밀라의 눈물을 보았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영화는 통계청 직원 아나톨리가 자신의 직장 동료들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통계청의 수장으로 오로지 일 밖에 모르는 구닥다리 옷차림의 노처녀 루드밀라, 무한긍정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나톨리의 대학 동창 올가, 루드밀라의 비서로 멋내기가 취미인 패션 리더 베라, 마당발로 직장 내 대소사를 챙기는 노조위원장 슈라. 이런 이들과 함께 일하는 아나톨리는 바람난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홀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대학동창 유리가 부청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평온했던 직장에는 예기치 않은 로맨스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된다.   엘다르 랴자노프( Eldar Ryazanov) 감독의 1977년 영화 '직장 로맨스(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Office Romance)'는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일벌레 직장 상사와 사랑에 빠지는 소심남 아나톨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가을 마라톤(Осенний марафон, 1979)'에서 흔들리는 가을 남자를 연기했던 올레그 바실라시빌리가 이 영화에서는 철벽남 유리로 나온다. 그는 돈에 쪼들리는 친구 아나톨리에게 새로 생긴 부서장 자리의 승진을 위해 상사 루드밀라를 꼬드겨 보라고 한다. 유리의 부임 축하 파티에서 아나톨리는 루드밀라에게 시와 노래를 불러보며 호감을 보여주려 애를 쓰지만, 루드밀라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런 루드밀라에게 아나톨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일벌레라며 모욕을 주고, 루드밀라는 당혹감 속에 자리를 뜬다. 다음 날, 사과를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아나톨리는 상처받은 루드밀라의 눈물을 보고 연민을 갖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직장 로맨스가 시작되는 가운데, 올가는 유리에 대해 가졌던 대학 시절의 연애 감정이 되살아나서 편지 공세를 시작한다. 이 어지러운 직장 로맨스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이 영

과거로부터 걸려온 전화, 틈입자(闖入者, Red Amnesia, 2014)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든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난다는 일은. 왕 샤오슈아이의 2014년작 '틈입자(闖入者, Red Amnesia)는 어느 노부인의 길고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이징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덩 부인의 일상은 늘 바쁘다. 결혼한 큰 아들 가족을 비롯해 혼자 살고 있는 막내 아들의 먹을거리를 챙기고, 요양원에 있는 노모를 방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버거워 보이는 핸드 카트를 끌고 다니며 악착스럽게 자식의 삶에 관여하는 덩 부인에게 본인의 삶이란 없어 보인다. 집에서 혼자 식사할 때, 죽은 남편을 떠올리며 대화하는 것이 덩 부인의 가장 개인적인 시간이다. 그런 변함없는 일상에 어느 날부터 걸려온 장난 전화가 균열을 일으킨다. 아무 말도 없이 끊어버리는 전화는 계속 이어지고, 창문으로는 돌이 날아온다. 큰 아들의 집 문 앞에는 쓰레기가 투척된다.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장난을 하는 것일까?   '상하이 드림(靑紅, 2005)', '11송이 꽃(我十一, 2011)'에 이어 나온 왕 샤오슈아이의 '틈입자'는 그의 문화대혁명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를 그 연작의 마지막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그의 2019년작 '아들(地久天长)'에서도 문혁은 변주된 주제로 이어진다. 문화대혁명이 이 감독에게 그토록 중요한 영화적 주제가 된 이유는 왕 샤오슈아이의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문혁 시기의 '하방(下放)'은 대도시 출신의 지식인과 중산층들에게 지방과 시골로의 집단적 이주를 강제했다. 그의 가족도 상하이에서 귀주 지역으로 이주했고, 그는 13살이 되었을 때에야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궁핍하고 고통스러웠던 가족의 삶은 왕 샤오슈아이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그는 '청홍'에서는 상하이로의 귀환을 꿈꾸는 시골 마을 일가족을, '아들'에서는 문혁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화해

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의 자기 복제, 'Sirocco(1951)'와 'The Garment Jungle(1957)'의 경우

 *이 글에는 'Sirocco(1951)'와 'The Garment Jungle(1957)'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법칙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영국의 작가)   흥행이 잘 되는 영화를 만드는 법칙이란 것이 있을까? 그 비밀을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다만, 망해버린 영화에 대해서라면 언제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과거의 영화를 베끼려다 쓴 맛을 본 두 편의 영화를 다룬다. 커티스 베른하르트 감독의 '시로코(Sirocco, 1951)'와 빈센트 셔먼 감독의 '패션 전쟁(The Garment Jungle, 1957)'이 그것이다.   "우리의 보기(Bogie)는 슬프고 늙어 보였어요."   영화 '시로코'를 본 험프리 보가트의 어느 팬은 리뷰에 그렇게 썼다. 'Bogie'는 팬들이 보가트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그랬다.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를 베낀 티가 역력한 '시로코'에서 보가트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활기와 열정이 부족했다. 보가트의 팬들로서는 정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짠할 만도 하다. 영화는 서사의 엉성함과 총체적인 부실로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같다. 1925년에 프랑스가 점령한 시리아 다마스커스에는 아랍 토후 에미르 하산을 중심으로 무장 독립 투쟁이 벌어진다. 해리(험프리 보가트 분)는 아랍 측에 무기를 밀매하면서 꽤 큰 수익을 내고 있다. 무기 밀매상을 찾아내려는 페로 대령(리 J. 콥 분)과 해리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거기에 페로의 애인 비올레타(마르타 토렌 분)가 해리와 도피를 시도하게 되면서 상황은 복잡해

재생을 위한 마음의 여정, 비행소녀(非行少女, Each Day I Cry, 1963)

  영화는 앳된 얼굴의 소녀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15살 와카에는 주정뱅이 아빠와 계모가 있는 집이 싫다. 밀린 공납금을 내라는 채근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여인숙을 하며 뚜쟁이 노릇을 하는 고모는 와카에를 일꾼으로 부려먹으며 게이샤로 만들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와카에를 유일하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착한 동네 오빠 사부로다. 21살의 사부로는 도쿄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때려치우고 고향 호쿠리쿠로 돌아왔다. 와카에의 딱한 상황에 연민을 갖게 된 사부로는 학업을 이어가라며 공납금도 보태주고 공부도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직업도 없고 불안정한 처지의 사부로도 마음이 힘들기는 마찬가지. 와카에와 사부로는 각자의 삶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우라야마 키리오(浦山桐郎) 감독의 1963년작 '비행소녀(非行少女)'는 2개의 영어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일본 사이트에서는 'Each Day I Cry'로 병기하고 있고, 해외 사이트에서는 'Bad Girl'로 검색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Bad Girl'의 영어 제목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와카에(이즈미 마사코 분)를 '비행소녀'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병마로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 그 슬픔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와카에의 현실은 비참하기만 하다. 술꾼 아버지는 돈이나 벌어오라며 내몰고, 뚜쟁이 고모와 마을 야쿠자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와카에를 이용해 먹을 궁리만 할 뿐이다. 음주와 흡연, 상습적인 도벽을 가지고 있는 와카에의 모습은 불행한 환경에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엇나가는 소녀에 가깝다.   사부로(하마다 미츠오 분)는 와카에를 올바른 길로 이끄려고 애를 쓰지만, 사부로의 처지도 괴롭다. 참의회 의원으로 입후보해서 한창 선거운동 중인 형은 사부로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형에게 게으르고 쓸모없는 놈으로 취급받지만, 사부

인도 평행 영화의 독특한 성취, 그의 로티(Uski Roti, A Day's Bread, 1969)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의 초연은 1913년 5월, 파리에서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안무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음악에 관객들은 극심한 반감을 표출했다. 관람을 했던 비평가의 기록에 따르면 관객들은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무대로 내던졌다'고 했으며, 분노에 휩싸인 이들의 난동으로 경찰이 출동해서 40명에 이르는 이들을 쫓아내야만 했다. 마니 카울(Mani Kaul) 감독의 1969년작 '그의 로티(Uski Roti, A Day's Bread)'를 보고 나서, 나는 '봄의 제전' 초연 때의 파리 관객들을 떠올렸다. 아마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인도 관객들의 반응도 그에 못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를 본 어느 인도 의회 의원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라고 혹평했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아무 재미도 느낄 수 없는 이 영화에 국가의 세금이 지원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랬을까?   '그의 로티'는 인도 작가 모한 라케시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버스 운전사 수차 싱의 아내 발로는 매일 남편의 먹을 거리 로티(인도의 빵)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여긴다. 남편은 아내가 있는 시골 마을에 정차할 때 그 빵을 가져가는데, 발로는 매일 먼 거리를 걸어와서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어느 날, 아내가 늦게 와서 빵을 받아가지 못하자 수차 싱은 화를 낸다. 도시에서 방을 얻어 사는 그는 1주일에 한 번 아내를 찾아오는데, 그것도 발을 끊겠다고 말한다. 내연녀를 두고 도박이나 일삼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발로. 밤늦게까지 로티를 가지고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반대한다."     25살의 마니 카울은

알타이에 매혹된 남자 바실리 슉신, 스토브 벤치(Печки-лавочки, 1972)

     그의 아버지는 당의 집단 농장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불순분자의 가족으로 낙인이 찍힌 그의 성장기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강인한 어머니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정규 교육의 혜택은 받았으나, 원하지 않은 자동차 기술 학교에 입학해야만 했다. 학업을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운전사, 엔지니어 같은 직업으로 떠돌았다. 해군으로 병역을 마친 뒤에는 교사 자격증을 따서 문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영화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25살의 나이에 무작정 모스크바로 갔다. VGIK(러시아 국립 영화 학교)에 들어간 그는 배우와 감독으로서 경력을 쌓아간다. 그는 소설도 꾸준히 써냈다. 자신의 고향 알타이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그려냈다.   그가 1972년에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스토브 벤치(Печки-лавочки)'에도 알타이 농민 부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Happy Go Lucky', 러시아어 원제목인 '스토브 벤치'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동명의 제목으로 2008년에 나온 영국 영화가 있어서 우리말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스토브 벤치'로 쓰기로 했다. 그것은 러시아 주택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스토브(화덕)와 연결된 벽돌 의자를 뜻한다. 감독 바실리 슉신(Vasily Shukshin)은 그곳에 앉아서 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외딴 알타이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 풍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가에서 뱃사공이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마을에는 이반 부부의 여행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주민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 한다. 우수 농민으로 뽑힌 이반은 흑해 휴양소 입장권을 포상으로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부부의 여행은 결코 편하거나 즐겁지 않다. 이반은 촌사람이라며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

에릭 로메르가 보여주는 담론의 공간; 나무, 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L'Arbre, le Maire et la Médiathèque, 1993)

  영화는 시골 초등학교의 수업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마크는 아이들에게 '만약(If) ~ 한다면'이라는 조건문의 용법을 열심히 가르치는 중이다. 영화는 7개의 장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매 장마다 조건문이 제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장: 만약에 1992년 지방 선거 전날에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소수당이 되지 않았다면... 관객들은 예기치 않은 7개의 '우연'이 인물들의 생각과 그들이 개입된 사건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보게 된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93년작 '나무, 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The Tree, the Mayor and the Mediatheque)'은 시골 마을에 세워질 복합 미디어 센터를 두고 대립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정치'가 다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나무, 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는 얼핏 보기에 로메르의 정치적 관점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신념과 가치관의 차이,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와 파장이다.   Vendée 라는 작은 마을의 시장 줄리앙은 주민들을 위한 복합 미디어 센터를 세우려고 한다. 비록 그가 속한 사회당이 선거에서 패배해서 소수당이 되기는 했지만, 전에 문화부에서 따온 예산으로 건축은 이미 설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 마크는 그 건물이 마을의 경관을 해치고, 외지인들의 유입은 환경 오염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줄리앙은 미디어 센터를 짓게 되면,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그런 활기가 마을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언론의 도움을 기대하며 친척이 소개해준 저널리스트 블랑딘의 취재에 협조한다. 블랑딘은 마을 사람들과 인터뷰도 진행하는데, 건물 신축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마크의 주장을 흥미롭게 듣는다. 마침내 나온 블랑딘의 기사는 줄리앙의 바램과는 달리 마크의 인터뷰를 부각시킨 것이었다. 과연

철의 장막에 흐르는 재즈의 선율, 우리는 재즈 피플(Мы из джаза, We Are from Jazz, 1983)

      오데사 음악 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콘스탄틴은 재즈 연주를 했다는 이유로 자아비판의 대상이 된다. 재즈가 부르주아의 음악이라는 당원들의 비난에 콘스탄틴은 재즈는 억압받는 하층민의 음악이라고 응수한다.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 그는 소련 최초의 재즈 밴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는다. 가난한 길거리 악사로 살아가던 스테판과 조라가 콘스탄틴의 밴드에 합류한다. 그들의 첫공연은 재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객들의 야유로 엉망이 된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콘스탄틴의 재즈 열정에 색소폰 연주자 이반도 뜻을 같이 한다. 밴드는 자신들의 큰뜻을 펼치려고 모스크바로 떠난다. 과연 콘스탄틴의 밴드는 성공할 수 있을까?   카렌 샤크나자로프(Karen Shahknazarov) 감독이 1983년에 만든 이 영화의 영어 번역 제목은 'We Are from Jazz(Мы из джаза)'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이 없어서 나는 '우리는 재즈 피플'로 적어보았다.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아니, 무슨 소련에 재즈 음악이 있었다는 거야? 그것도 1920년대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할 수 없다. 재즈 음악이 흐르는 이 독특한 소련 뮤지컬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우리는 재즈 피플'은 약간은 비어있고 엉성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밴드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조라가 흑인 분장을 하고 오디션을 보는 장면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인종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영화에는 소련에 공연을 하러 온 쿠바 재즈 가수 클레멘틴이 등장하는데, 그 배역을 맡은 라리사 돌리나도 흑인 분장을 해야 했다.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분장을 견딜 수만 있다면, 그 인내에 영화는 보답한다. 영어로 연주되는 재즈 송이 정말 멋지기 때문이다(실제로 노래는 라트비아 출신 여가수가 불렀다). 영화에는 1920년대 재즈의 주류였던 래그타임(ragtime) 연주와 탭댄스

예멘 유대인의 이스라엘 정착기, 살라 샤바티(סאלח שבתי, Sallah Shabati, 1964)

    영화는 비행기에서 한무리의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멋진 옷차림을 한 승객들 사이로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외모도 다르다. 말쑥한 승객들은 유럽계 백인들이고, 후줄근한 옷차림에 페즈(fez: 챙없는 아랍 남자들의 모자)를 쓴 남자들과 그 일행들은 아랍계 사람들이다. 백인들은 고급 관광 버스에, 아랍인들은 허름한 트럭에 올라탄다. 그들은 이제 막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집도 주고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정말 이 나라는 그 약속을 지킬까?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인접 아랍국가들에서는 반유대주의의 기운이 커져갔다. 특히 예멘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착해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심각한 박해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른바 '마법의 양탄자 작전(Operation Magic Carpet)'으로 1949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약 4만 9천명 가량의 예멘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수송한다. 에프라임 키숀(Ephraim Kishon)감독의 1964년작 '살라 샤바티(סאלח שבתי, Sallah Shabati)'는 그렇게 이스라엘 땅을 밟게 된 예멘 유대인의 힘든 정착기를 담아냈다.   털털거리는 트럭을 타고 살라 샤바티의 가족들이 도착한 곳은 이른바 '임시 캠프(ma’abara)'라고 불리는 곳이다. 겨우 비바람이나 막을 것 같은 판잣집들이 모여있는 판자촌. 그곳에서 6명의 아이들에, 이제 곧 태어날 아이를 가진 부인이 있는 중년의 남자 살라는 오매불망 번듯한 새집이 주어지길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집단농장 키부츠의 막노동과 허드렛일이다. 일하고 받은 푼돈의 임금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현실에 살라는 좌절한다. 그는 술집에서 술과 노래, 주사위 놀이로 시간을 때운다. 정치인들이 온갖 공약을 내걸었던 선거에도 기대를 걸었지만, 판잣촌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영

가족 갈등에 숨겨진 미국 사회의 노인 문제, 아버지의 노래(I Never Sang for My Father, 1970)

    "너희들이 살고 있는 집, 대학 등록금은 다 나한테서 나온 거다. 내가 얼마나 뼈빠지게 일했는지 알기나 해?"   아버지 톰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공덕을 입버릇처럼 내세운다. 가족들에게 독불장군처럼 군림해온 그는 자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대학교수인 아들 진은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미워한다. 딸 앨리스는 유태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받은 후 아버지와 소원한 상태다. 그런 자식들은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연로한 아버지의 거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앨리스는 입주 가사 도우미를 두자고 하지만 톰은 완강히 거부한다. 재혼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는 진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강한 아버지 밑에서 상처받은 아들을 연기한 진 해크먼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의 그 열혈 형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길버트 케이츠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노래(I Never Sang for My Father, 1970)'에서의 해크먼은 매우 위축되어 있고, 많은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통불능의 아버지 톰은 자신이 좋아하는 TV서부극을 크게 틀어놓으면서, 아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함께 살자는 아들의 제안을 듣고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말한다. 톰은 자식들이 자신을 짐짝처럼 여긴다고 분노하며, 배은망덕하다고 비난을 쏟아낸다. 결국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해묵은 불화가 독설과 함께 터져 버린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며, 연출은 밋밋하기 짝이 없다. 오직 미움만이 존재할 뿐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게 패인 세월의 상처를 보는 일은 괴롭다. 여기에 자식이 가진 부모에 대한 '부양의 의무'라는 윤리적 가치가 개입되면서 이야기를 더 무겁게 만든다. 진이 아버지의 거취에 대한 대안으로

일제 강점기 대만의 영화적 증언, 허수아비(稻草人, Strawman, 1987)

     영화는 시골의 농민들이 일본군으로부터 전사한 이들의 유골함을 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유골함에는 일장기가 꽂혀 있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일본 군가와 경쟁하듯 농민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불협화음의 여운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집단의 근원적 차이를 보여준다. 뉴 타이완 시네마(New Taiwanese Cinema)를 이끌었던 대만의 왕툰(王童)감독은 50년이 넘는 영화 경력 기간 동안 15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현대 대만 3부작이 유명하다. 'Strawman(1987)', 'Banana Paradise(1989)', 'Hill of No Return(1992)'은 농촌과 자연을 배경으로 대만의 굴곡진 현대 역사를 담아냈다. 그 첫 번째 작품 '허수아비'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가혹하게 수탈당하는 농민들의 고통을 그려낸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는 2차 대전의 끝무렵, 가난한 시골 농부인 진파의 가족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참새떼는 끊임없이 곡식을 쪼아먹고, 일본의 수탈은 갈수록 더해져서 키우던 소마저 빼앗긴다. 가장 진파에게는 귀가 어두운 노모, 덜 떨어진 동생, 남편이 전사한 뒤로 미쳐버린 막내 여동생, 그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다. 진파가 기댈 곳이라고는 참새를 내쫓기 위해 세워둔 허수아비와 동네 산신각 뿐이다. 그는 틈만 나면 제발 먹고 살게만 해달라고 빈다.   그의 노모는 밤마다 형제의 눈에다 소똥을 몰래 바르는데, 그건 눈병을 핑계로 아들들에게 나온 징집 영장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들이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마을에 주둔하는 일본 순사는 수시로 마을을 돌며 감시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천황의 은혜는 태양과 같은 것이라고 교육받는다. 일제의 식민지 자원의 침탈은 문고리를 뜯어오고 포탄을 주워오는 일을 아이들에게 강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은 포탄 조각을 줍기위해 미군의 폭격이 이루어지는

그 남자의 괴로운 가을, 가을 마라톤(Осенний марафон, Autumn Marathon, 1979)

    남자의 아내는 결혼한 딸에게 줄 커튼을 샀다. 그러나 딸은 마음에 안든다며 가져가지 않았다. 아내는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며 운다. 딱한 마음이 든 남자는 딸이 왔을 때, 그냥 가져가지 왜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냐고 말한다. 딸은 아빠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나 엄마한테 잘하세요."   딸의 핀잔을 듣고 남자는 머쓱해진다. 이 남자,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의 속이 문드러지는 데에는 그가 상당부분 일조했기 때문이다. 게오르기 다넬리야 감독의 1979년 영화 '가을 마라톤(Autumn Marathon)'은 중년 남자의 가을앓이를 그려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을 풍경과 함께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남자의 내면 풍경이 펼쳐진다.   실력있는 번역가이며 대학 교수인 안드레이는 자신의 원고를 정리해 주는 젊은 타이피스트 알라와 눈이 맞았다. 알라는 안드레이가 가정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와주길 바라지만, 안드레이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아내에게 충실하지도 않으면서 두 여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 남자는 시간이 갈수록 거짓말 실력만 늘어난다. 그의 아내 니나는 남편에게 딴 여자가 있는 것은 알지만, 그저 속만 끓이면서 지켜보는 중이다. 이 마음 약한 남자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알라와 함께 있을 때는 알라의 뜻을 받아주고, 집에 돌아와서는 갱년기 우울증을 겪는 힘든 아내를 안쓰러워 한다. 안드레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알렉산드르 볼로딘이 붙인 원래의 제목은 '도둑의 괴로운 생활'이었다. 도무지 영화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제목은 영화를 만들면서 바뀌었다. 중년이란 나이가 '가을'이라는 계절과 어울리기도 하고, 마침 영화를 찍었던 시기가 그렇기도 했다. '마라톤'이 붙은 이유는 이렇다. 안드레이는

산에 바치는 영상 찬가, Mountain(2017)

    '프리 솔로(Free Solo, 2018)', 장비 없이 맨몸으로 암벽을 타는 클라이머 알렉스 호놀드의 엘 케피탄(El Capitan) 도전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 다큐를 보면서 받았던 나름의 충격과 감정의 여진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문자 그대로 백척간두( 百 尺 竿 頭)의 삶을 사는 그를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등반 도중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치명적인 부상 내지는 사망으로 이어지는 그 도전의 여정. 열정인가, 목숨을 건 도박인가, 보는 내내 들었던 여러 생각들은 다큐가 끝나고서도 머릿속에 헝클어진채 있다.   호주 출신 제니퍼 피돔 감독의 2017년 다큐 'Mountain'에는 알렉스 호놀드 같은 이들이 떼로 나온다(그도 다큐의 초반부에 잠깐 나온다). 자신들을 뒤따르는 엄청난 눈사태 속에서 스키 타는 이들, 윙슈트(wingsuit)입고 협곡 사이를 날아다니는 사람들, 수직 절벽에서 산악 자전거로 낙하하는 이들, 절벽 사이를 연결한 외줄을 타는 사람... 그냥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Mountain'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산에 바치는 영상 찬가이다. '찬가'라는 표현에 걸맞게 음악을 담당한 호주 체임버 오케스트라(ACO)의 연주가 정말 빼어나다.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겨울'이 설산을 내려오는 보더와 스키어들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어 흐른다. 300년 전의 이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이 산을 주제로 한 다큐에 이토록 아름답게 쓰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내레이션을 맡은 이는 배우 윌렘 데포. 영상과 음악이 주가 되는 다큐라서 해설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차분하고도 또렷한 발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배우는 얼굴 이전에 목소리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와 오케스트라는 촬영된 화면을 보면서 동시에 현장 녹음을 했다. 다큐 도입부에 그 장면이 나온다. 내레이션과 음악의

카티야의 고백, 심판(Aus dem Nichts, In the Fade, 2017)

    난 내멋대로 살아왔어. 딱히 뭔가를 하고 싶다거나,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 대학도 다니다 때려쳤거든. 그러다 '누리'라는 이름의 그 남자를 알게 되었지.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쿠르드족 출신 전직 마약상. 직업이 좀 그렇지? 그런데, 난 괜찮았어. 사람이 아주 나쁜 사람 같지는 않더라구. 남자는 새출발하려고 감옥에서 대학 공부를 시작했어. 뭔가 의지가 있어 보였지. 결혼식장은 교도소 안이었어. 장소 따위가 중요한가? 어쨌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 아냐? 난 그렇게 생각했어.   곧 아이가 생겼어. '로코'라는 이름으로 불렀지. 착하디 착한 아들. 이제 6살이 된 그 아이는 한 번도 내 속을 상하게 한 적이 없어. 아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어떤 괴로움도 잊을 수 있었어. 내게도 온전히 나만의 것,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내 것이 생긴 거야. 남편도 마음잡고 착실히 잘 살아주었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 걸까, 때론 그런 불안감이 들기도 했지. 왜냐하면... 세상에는 좋은 것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일은 드무니까.      그날도 그냥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지. 친구와 만나고 남편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는데, 길이 다 막혀있었어. 경찰차와 경찰들이 그득한 거야. 폭발 사고가 있었대.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어. 그때 직감했어. 불안하게 이어지던 내 행복이 끝났다는 것을. 경찰이 남편과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주더군. 못으로 만든 사제 폭탄이 온몸을 갈기갈기 다 찢어놓았다는 걸, 나중에 재판정에서 들었어.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죽는 것도 쉽지가 않아. 눈을 떠보니 살아 있었어.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누리와 로코는 왜 죽어야 했지? 경찰은 동유럽 마피아 짓이래. 웃겨, 미리 범인을 다 정해놓은 거 같아. 그날, 로코를 누리에게 데려다 주고 나오는데 백인 여자 하나를 길에서 만났었지. 새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