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는 어느 여름날, 가족의 평범한 식사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일상적인 가족극 같은 첫인상을 주는 이 영화,
그런데 첫 장면부터 흐르는 영화의 음악은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의 1959년 영화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Thus Another Day)'의 러닝 타임은 73분으로 짧은 편이지만, 이 영화가
주는 여운은 길고 오래 지속된다.
가정주부 야스코의 머릿속에는 늘 돈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도쿄 외곽에 마련한
집의 대출금을 갚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평범한 샐러리맨 남편 쇼이치는 여름 동안 상사에게 집을 빌려주고 월세를 받아 살림에
보태자고 제안한다. 쇼이치는 도쿄의 친구 아파트에, 야스코와 아들 가즈오는 친정 가루이자와에서 지내기로 한다. 잡화점을 하는 친정
가게일을 봐주면서, 야스코는 동네 주민 슈스케와 친해진다. 그는 퇴역 군인으로 아내 대신 딸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휴양지 마을에 야쿠자 일당이 오면서 분란이 생기기 시작한다. 야스코와 쇼이치 부부의 힘겨운 여름 나기는 순탄하게 끝날 수
있을까...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 자신이 쓴 각본은 여러 등장 인물에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흩어져 있어서
산만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영화의 서사에는 응축된 힘이 있다. 영화에서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은 퇴역 군인
슈스케이다. 전장에서의 살상의 기억 때문에 슈스케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가 주는 군인 연금을 거부한 것은 슈스케가
지닌 도덕적 양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경제적인 곤궁은 아내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그는 아내가 부쳐주는 생활비에
의지해 딸을 키우고 있다. 가장으로서도, 사회의 일원으로도 기능하지 못하게 된 슈스케의 모습은 전후 일본 사회의 그늘을 보여준다.
슈스케는 끝없이 펼쳐진 산과 유유히 흐르는 강의 풍광 속에 은거를 택한다. 그는 친해진 야스코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싯귀를
들려준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어제와 또 다른 날,
무엇이 괴로운가,
왜 내일을 걱정하는가..."
슈스케처럼 야스코의 동생 고로도 틈만 나면 전원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런 시와 노래들은 기이하게도 영화 속에서 계속적으로
비춰지는 자연의 풍광과 어울리지 않는다. 마을에 머물게 된 야쿠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젊은 야쿠자들은 부잣집 딸 노리코와 대학생
친구들을 위협하며 돈을 갈취한다. 마을 곳곳을 다니며 불안을 조성하는 그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지만, 그저 감내할
뿐이다. 경찰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늘 또 오늘'에서 키노시타 케이스케는 겉으로 아무 문제 없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전후 일본 사회의 내면을 해부한다. 전쟁의 상흔으로서의 슈스케, 거기에 지나친 경제적인 압박감에 시달리며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중산층 가정주부 야스코의 모습이 더해진다. 영화 초반부에 야스코가 장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야채와 생선에
붙여진 가격표가 연속적으로 편집된 몽타주로 이어진다.
어린 아들 가즈오는 힘들게 손빨래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왜 세탁기와 TV를 사지 않느냐고 불평을 쏟아낸다. 무리해서 장만한 집의
대출금은 야스코의 내면을 피폐하게 만든다. 남편 쇼이치는 그런 야스코를 보듬어 주기 보다는, 상사에게 아부해서 빨리 출세할
방법에만 몰두할 뿐이다. 이 중산층 가족은 돈과 물질에 대한 열망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 그는 가루이자와에 놀러온 상사 부인에게
인사를 차려야 한다며, 비가 오는 날 수박을 사들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갔다 온다. 밤새도록 마작 놀이 상대가 되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남편을 보면서 야스코는 환멸을 느낀다. 슈스케와의 대화가 야스코에게는 유일한 위로가 된다.
아름다운
전원의 풍광 속에서 키노시타 케이스케가 펼쳐 보이는 이야기들은 생각 보다 무겁고 어둡다. 슈스케는 갑작스럽게 딸의 죽음을
맞이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야쿠자들의 횡포는 갈수록 도를 더해 간다. 군도(軍刀)를 들고 야쿠자를 찾아간 슈스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다. 길게 뻗은 좁은 풀숲길에서 칼에 찔린 야쿠자와 총에 맞은 슈스케의 고통스런 죽음이 롱쇼트로
포착된다. 이 끔찍하고 우울한 풍경은 일본 사회의 근원적 불안이 전쟁과 폭력에서 기원했음을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그 불안은
'죽음'이라는 방식으로도 제거되기 어려운 것이다.
'24개의 눈동자(二十四の瞳, 1954)'에서 키노시타
케이스케가 보여주었던 반전(反戰)과 사회 비판의 목소리가 '오늘 또 오늘'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관객들은 확인하게 된다. 섬 마을
학교에 닥쳤던 전쟁의 고통스런 상처는 가루이자와의 초록의 풍광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재현된다. 가을의 어느날, 야스코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예전의 일상을 이어간다.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슈스케에게 울면서 털어놓았던 야스코는
삶의 의미를 찾았을까? 키노시타 케이스케는 영화라는 도구로 작성한 전후 일본 사회의 심리학적 보고서를 보여준다. 놀랍게도 이
건조한 보고서에는 인생의 단편적 진실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사진 출처: en.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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