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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부서진 우정이 말해주는 것, The Banshees of Inisherin(2022)

  *이 글에는 영화 'The Banshees of Inisherin(2022)'의 일부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앞으로 자네가 나한테 말을 걸어 오거나 귀찮게 하면, 그때마다 내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네."   아일랜드의 평화로운 작은 섬 이니셰린. Pádraic과 Colm은 오랜 우정을 이어온 친구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콤은 파드릭에게 무시무시한 절교 선언을 한다. 파드릭은 그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는 도대체 콤이 자신에게 왜 저러는 건지 알 수 없다. 콤은 파드릭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친구이며, 그 우정은 무익하다는 말을 한다. 콤은 음악가로서 앞으로 작곡에 전념하겠다고도 덧붙인다. 매일 두 사람은 동네 맥주집에서 흑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제 파드릭은 혼자서 맥주를 들이켜야만 한다. 콤의 빈자리가 주는 외로움을 파드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든 우정을 되찾을 방법이 있을 거야. 파드릭은 콤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애를 쓴다. 결국 콤은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서 파드릭의 집 앞에 내던진다.   Martin McDonagh 감독 의 'The Banshees of Inisherin(2022)' 는 의문의 도입부로 시작한다. 왜 콤은 파드릭에게 절교를 선언했을까? 무엇보다 절교를 당한 파드릭에게 그것은 가장 큰 의문일 것이다. 이는 곧 작은 섬 이니셰린의 주민들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파드릭이 콤에게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영화는 이 갑작스런 절교의 원인을 파고드는 여정을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 파드릭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 파드릭 자신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파드릭을 '좋은(nice)' 사람 이라고 말한다. 파드릭이 지루하다는 콤의 말은 절교의 이유가 되기에 부족하다. 왜냐하면 콤은 그 지루한 친구 파드릭과 오랜 우정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콤에게 파드릭의 평범함과 무지가 갑자기 크게 다가...

내가 뽑은 2022 올해의 영화

  내가 뽑은 2022 올해의 영화 1. Aftersun(2022)   31살이 된 딸은 자신이 11살 때에 아버지와 떠난 터키 여행을 회상한다. 오래전 여행에서 찍은 비디오 테이프가 알려주는 뜻밖의 진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슬픔과 감동으로 가슴이 뻐근해짐을 느낄 것이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aftersun2022.html 2. The Banshees of Inisherin(2022)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을 배경으로 한 부조리극.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에서 오랜 우정을 이어온 두 남자. 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은 뜻밖의 파란을 불러온다. 배우들의 놀라운 열연,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에서 관객은 인간 내면의 심연을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banshees-of-inisherin2022.html 3. Tár(2022)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 지휘자 타르는 경력의 정점에서 갑자기 추락한다. 어떻게 타르는 무너져 내렸을까? 영화는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어두운 내면을 깊이있게 성찰한다. 이 영화에서는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의 여진도 감지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todd-field-tar2022.html 4. Armageddon Time(2022)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그리움과 고통 속에서 돌아본다. 그가 지나온 소년 시절은 1980년대의 시대상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 영화가 들려주는 소년의 이야기 속에서 시대를 읽어내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armageddon-time-2022.html...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Aftersun(2022)

  *이 글에는 영화 'Aftersun(2022)'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영화는 저화질의 캠코더 화면으로 시작한다. 11살 소피는 아빠를 인터뷰하겠다며 캠코더를 들고 이리 저리 움직인다. 소피는 아빠와 함께 터키로 짧은 여행을 왔다. 이 여행은 소피에게도, 아빠 케일럼에게도 특별하다. 소피의 부모는 이혼했고 소피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아빠와의 여행, 소피는 이 여행의 모든 것을 캠코더에 담고 싶어한다. Charlotte Wells의 장편 영화 데뷔작 'Aftersun(2022)' 은 관객을 1990년대 초반, 낯선 터키의 관광지로 데려간다. 30살의 아빠와 11살의 딸 은 행복한 여행의 추억을 만들고 돌아올 수 있을까...   저렴한 호텔에서 머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빠. 소피는 그저 아빠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쁠 뿐이다. 하지만 딸을 먼저 재우고 테라스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이 젊은 아빠의 뒷모습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이 감지된다. 케일럼에게 '아빠'의 역할은 무언가 맞지 않는 옷처럼 보인다. 딸과 함께 포켓볼(pocketball)을 하려는 케일럼에게 관광객인 십 대 청년들은 같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소피를 케일럼의 여동생(sister)으로 오인한다. 기분이 상한 케일럼은 자신은 소피의 '아빠(dad)' 라며 즉각 정정해준다. 소피와 오누이로 보이는 이 젊은 아빠 케일럼은 아마도 20대 초반에 '아빠'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을 것이다. 안정된 직업도 없는 그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도 버거운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가 소피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느리고 무료하게 지나간다. 아빠와 딸은 늘어지게 소파에 누워있거나,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하지만 이 아빠에게는 무언가 문제가 있...

셰프의 주방에서 끓어넘치는 모든 것, Boiling Point(2021)

    아주 오래전, 백화점에서 잠깐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하다 들어간 곳이 아주 길고 좁은 복도였다. 유니폼을 입은 여점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벽에 등을 기대어 선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직원들의 휴게실 같은 곳이었다. 화려한 백화점의 가려진 곳에는 그런 공간이 있었다. Philip Barantini 의 영화 'Boiling Point(2021)' 는 관객을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 뒷편으로 안내한다. 거기에는 고성과 비난, 연민과 격려, 분노와 짜증이 공존한다. 앤디(Stephen Graham 분)는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의 수석 셰프이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관청의 위생 담당 검사관에게 화가 치미는 소식을 듣는다. 검사관은 주방의 위생 상태 불량으로 안전 등급이 별 5개에서 3개로 강등되었다고 통보한다. 분노한 앤디는 주방 요리사들을 혹독하게 질책한다. 부주방장 칼리는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해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 손님들이 몰려들고 주방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과연 레스토랑 Jones & Sons의 직원들은 이 날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감독 필립 바랜티니는 이 영화를 싱글 테이크(a single take), 즉 하나의 쇼트로 찍었다. 무려 92분 동안 카메라는 끊기지 않고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간다. 이러한 촬영 방식이 주는 긴장감은 극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보일링 포인트'는 마치 리얼 타임 고급 레스토랑 탐험기 같다. 영화는 앤디의 출근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계속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앤디의 목소리와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이 사람은 무언가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검사관으로부터 받은 불쾌한 통보, 신참 요리사들의 실수, 거기에 레스토랑 매니저는 예약 손님을 너무 많이 받아놓았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앤디를 진정시키는 것은 부주방장 칼리. 차분하고 이성적인 칼리는 앤디를 대신해 주방 직...

전후 영국 사회의 불안과 공허, 관리인(The Caretaker, 1963)

    스모킹 재킷(Smoking Jacket) 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담배 피울 때 입는 옷이다. 서구 영화 속에서 대저택의 주인이 서재에서 입는 편안한 실내복을 생각하면 된다. 벨벳과 실크 소재로 만든 이 옷은 매우 고급스럽다.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 1930-2008) 의 희곡 '관리인(The Caretaker)' 에서 노숙자 데이비스는 공짜로 스모킹 재킷을 얻는다. 거리에서 떠돌던 노숙자가 상류 계층이 입는 스모킹 재킷을 걸친 모양새는 영 어색하기만 하다. 데이비스에게 그 재킷을 가져다준 사람은 애스턴이다. 그는 건달에게 흠씬 얻어맞을 뻔한 데이비스를 구해주었다. 애스턴은 오갈 데 없는 데이비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한다. 재워주는 것만 해도 대단한 호의인데, 데이비스는 신발이 닳았으니 괜찮은 구두 하나 내놓으란다. 끊임없이 욕설과 상스런 말을 내뱉는 데이비스. 그런 노숙자에게 관대함을 보여주는 애스턴. 그리고 애스턴의 동생 믹. 해롤드 핀터는 비좁은 방에서 이 세 명의 인물이 나누는 이야기로 3막의 희곡을 만들어 냈다.   클라이브 도너(Clive Donner) 감독 의 '관리인(The Caretaker, 1963)' 은 해롤드 핀터의 동명 희곡 'The Caretaker(1960) ' 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러닝타임 1시간 45분. 좁은 방에서 도대체 세 명의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로 어떻게 시간을 채워가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천재적인 극작가 핀터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애스턴의 호의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데이비스의 행태는 뻔뻔함 그 자체이다. 애스턴이 구해온 신발에 끈이 없다며 불평하고, 끈을 찾아서 주니까 색깔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한다. 애스턴이 데이비스의 잠꼬대 때문에 잠을 못잤다고 하자, 옆방에 사는 외국인들이 내는 소리라며 억지를 쓴다.   왜 애스턴은 무례한 노숙자 데이비스를 인내하는가? 아마도 그 단서는 애스턴의 방에서 찾아볼 수 ...

무대 뒤의 쓰라린 인생, The Dresser(1983)

    "저 기차를 당장 세워라!    (Stop that train!)"   풍채 좋은 중년의 배우는 기차역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친다. 때는 2차 대전 시기의 영국. 순회 극단의 단장 Sir(Albert Finney 분) 는 배우들과 함께 다른 도시로 이동중이다. 그런데 그들은 기차 시간에 늦었고, 기차는 이제 막 출발하려는 참이다. Sir의 말 한마디에 기차가 멈춘다. 의상 담당 노먼(Tom Courtenay 분) 이 역장 붙잡고 아무리 애원해도 안되던 것을 배우는 단번에 해낸다.   피터 예이츠(Peter Yates) 감독의 'The Dresser(1983)' 는 영국 극작가 Ronald Harwood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한때 작가는 영국 연극계의 전설적 배우였던 Sir Donald Wolfit의 의상 담당을 했던 적이 있다. 할우드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The Dresser'를 썼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대배우와 무대 뒤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얻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연극 오셀로의 막이 내리고 배우들은 커튼콜을 하고 있다. 그 커튼 뒤, Sir는 배우들을 향해 불호령을 쏟아낸다. 그는 자신이 연기할 때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지적하면서, 배우들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경'으로 불리는 이 남자의 오만불손함과 자기 중심주의는 하늘을 찌른다. 극단의 재능있는 중견 배우 옥센비는 그를 '폭군'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노먼은 그 폭군 Sir의 충실한 의상담당이다. 말이 의상담당이지, 실제로 그는 Sir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는 하인이나 다름없다. 그의 주인은 주체하기 힘든 변덕에다 폭언과 모욕 또한 일상적이다. 그런데도 노먼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한다. 그것도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마치 어린 아이를 보살피듯 한다.   노먼이 매혹된 것이 Sir이라는 인물과 그 재능인지, 아니면 연극이라는 예술 세계에 대한 동경인지 명...

사랑의 종말,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The Trials of Oscar Wilde, 1960)

  1. 몰락의 시작   "남색가로 처신하는 오스카 와일드에게"   (For Oscar Wilde posing Sodomite)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건의 시작은 바로 그 짧은 메모에서부터였다. 그런 상스러운 메모를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에게 남긴 사람은 퀸즈베리 후작(Marquess of Queensberry)이었다. 그는 와일드가 아들 알프레드 더글라스(Alfred Douglas) 를 유혹해서 앞길을 망치고 있다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Bosie'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퀸즈베리 후작의 셋째 아들과 와일드는 지나치게 친밀했다. 21살의 옥드퍼드 대학생 알프레드를 만났을 때의 와일드의 나이는 서른 아홉, 그로부터 4년 동안 두 사람은 함께 해외 여행을 다녔고, 여러 호텔에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와일드는 작가로서 경력의 정점에 있었다. 명성과 돈이 그의 곁에서 마구 흘러다녔다. 그런 그에게 퀸즈베리 후작이 보낸 메모는 파멸의 신호탄이었다.   켄 휴즈 감독의 1960년작 영화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The Trials of Oscar Wilde)' 은 메모 한 장으로 촉발된 재능있는 작가의 몰락을 담아낸다. 오스카 와일드는 명예훼손 혐의로 후작을 고소했다. 이후 세 번의 재판이 이어졌다. 와일드는 승소를 장담했다. 하지만 재판은 뜻밖의 결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재판에서 변호사들은 패소를 예감하고 소를 취하했다. 두 번째 재판에서 이제 그는 피고석에 서야만 했다. 젊은 남자들을 유인해 남색(男色)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죄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재판에서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는다. 영화는 당시의 재판 기록과 작가의 편지에서 드러난 사실을 충실히 재현한다.   1895년, 재판이 시작된 그 해에 와일드는 인생의 전성기를 맘껏 구가하고 있었다. 이전에 발표한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

청춘의 구부러진 길: Bronco Bullfrog(1969), Private Road(1971)

  청춘의 구부러진 길, 영국 감독 Barney Platts-Mills(1944-2021)의 영화 두 편 Bronco Bullfrog(1969), 1시간 26분 Private Road(1971), 1시간 29분   영국의 감독 Barney Platts-Mills 의 'Bronco Bullfrog(1969)' 는 하마터면 다시는 관객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개봉 당시에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배급사는 영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에 마스터 네가티브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걸 매립지행에서 구해낸 사람은 영화사 직원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살아남았다(출처 theguardian.com). 'Bronco Bullfrog'에 출연한 이들은 하층민 출신의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Stratford의 Theatre Royal에서 지역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 마련한 연기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저예산에 아마추어 배우들을 데리고 플래츠 밀즈는 자신의 첫 영화를 찍었다.   델, 로이, 크리스, 제프. 4명의 십 대 청소년들은 잽싸게 카페의 창문을 깨고 가게 이곳저곳을 뒤진다. 기껏 갖고 나간다는 것이 케이크 몇 조각. 어째 하는 걸 보니 녀석들은 초짜 도둑들 같다. 싸구려 변두리 영화관에서 시간을 죽이더니, 길가던 남자한테 주먹질로 시비를 건다. 버려진 건물 아지트에서는 도색 잡지를 보면서 키득거린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Bronco Bullfrog 조가 무리에 합류하면서 녀석들의 비행은 범죄로 나아간다. 그 와중에 델은 또래 아이린과 연애를 시작한다.   가난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가진 돈이 없으니 갈 데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훔친 오토바이로 시내 질주하기, 무너진 건물 아지트와 근교 숲에서 시간 때우기... 맘놓고 서로를 안을 장소도 찾기 어렵다. 궁리 끝에 연인들이 찾아간 곳은 친구 Bronco Bullfrog의 허름한 하숙방이다. 훔친 물건들로 채워진 ...

캐네스 브래너의 안일한 성장 드라마, Belfast(2021)

    Belfast는 북아일랜드의 동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은 '강의 입구'라는 아일랜드어에서 유래했다. Kenneth Branagh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태생으로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라났고, 9살 무렵에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9살 소년 버디가 주인공인 영화 '벨파스트'에서 브래너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펼쳐놓는다. 영화는 현재의 벨파스트 발전상을 보여주는 컬러 화면에서 1969년 8월의 과거로 들어가면서 흑백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브래너의 선택은 매우 탁월하고 효과적이었다. 브래너는 흑백 화면이 실제의 현실과는 다르지만 훨씬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촬영했다고 밝혔다(출처: ew.com과의 인터뷰). 그리고 그의 말대로 관객은 이 흑백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놀랍도록 생생하고 핍진성있게 다가옴을 느낀다. 그렇다면 1969년 8월, 소년 버디와 가족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버디는 집앞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위대가 몰려들고 화염병과 돌덩이가 날아든다. 버디의 집을 비롯해 근처의 집들은 파괴되고 불탄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1969년 8월 12일부터 16일 사이에 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교도 주민들과 프로테스탄트 주민들 사이에 극렬한 폭동이 발생했다. 벨파스트는 그 중심 도시였다. 1922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에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주민들이 점차적으로 이주해 오면서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1969년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버디의 가족은 프로테스탄트 교도이다. 폭동 기간 동안 양측은 서로의 집과 건물을 테러의 대상으로 삼았다. 폭동은 영국군이 개입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영화는 버디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와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9살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

순전한 기쁨, 단편 다큐 They Took Us to the Sea(1961)

    "아직까지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여긴 좀 메스꺼운 냄새가 난다."   (Never seen the sea before. It’s got a funny smell to it.)   아이는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그렇게 말한다. 영국의 영화 제작자이며 교육자였던 존 크리쉬(John Krish, 1923-2016) 의 단편 다큐 'They Took Us to the Sea(1961)' 는 빈민가 아이들의 바닷가 소풍을 담는다. 다큐는 버밍엄(Birmingham)의 전형적인 하층민 주거지를 비춰주면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허물어진 건물이 있는 황량한 공터를 놀이터로 삼는다. 구태여 '가난'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행색에서는 그 단어가 빗물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있는 옷, 흙먼지로 얼룩이 진 신발, 위축되고 생기 없는 얼굴 표정. 이 아이들에게 어느 날 자선 단체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말한다. 너희들을 바닷가에 데리고 갈 거란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버밍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기차역에 모인 아이들에게 단체의 인솔 감독자들은 이름표를 달아준다. 기차에 올라탄 아이들은 창밖의 가족들과 짧은 이별 인사를 나눈다. 마침내 기차가 출발하고 그렇게 선물과도 같은 하루가 주어진다. 꼬마의 내레이션은 신나거나 흥분으로 가득차 있지 않다. 조심스럽고 담담하게 들린다. 아이들은 수줍음이 많고 쭈빗거린다. 농장과 소가 보이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간식도 먹는다. 조금은 긴장이 누그러지는 것 같다. 마침내 기차는 Weston-super-Mare의 바닷가에 도착한다.   조금은 이상한, 메스꺼운 냄새가 나는 곳. 하지만 그곳은 곧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는 장소가 된다. 즐거운 식사 시간, 볼이 미어져라 음식을 입에 넣는다.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에 여유있게 식초를 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먹음직스러운 ...

버린 영화들 특집: Leave No Trace(2018), Bait(2019), Isabella(2020), The Father(2020), Attica(2021)

말 그대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려다가 쓸 말이 별로 없어서 그냥 버려둔 영화들 특집이다.  1. Leave No Trace(2018)   데브라 그래닉(Debra Granik)의 2018년작 영화. 이라크전 참전 군인 윌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그는 국립 공원 깊은 산속에서 13살 딸과 함께 살아간다. 평화로운 일상의 어느 날, 공원 관계자들은 무단 점거를 이유로 부녀를 내쫓는다. 윌과 톰은 정부 지원으로 주거지를 지원 받아 사회 적응을 시작한다. 마음의 병 때문에 다시 산으로 떠나려는 윌, 그러나 딸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다.   "아빠에게 나쁜 것이 나에게도 그런 건 아냐."   사람들과 사회를 두려워 하는 아빠에게 딸은 그렇게 말한다. 잔잔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 산으로 올라가는 아버지와 딸이 작별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찡하다. 그 장면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1988)' 결말을 떠올리게 하기도.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날 거야', 폭파 수배범인 부모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으려는 아들은 그렇게 헤어진다. 'Leave No Trace'는 인물의 감정선을 잘 짚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딸을 연기한 토마신 맥켄지의 연기가 참 좋다. 2. Bait(2019)   영국 출신의 감독 Mark Jenkin이 구식 필름 카메라 Bolex 16mm로 찍은 1시간 29분의 장편 극영화.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어촌 마을. 마을은 관광객들과 외지인들에 의해 잠식되어가는 중이다. 영화는 외지인과 내지인의 경제적인 갈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마크 젠킨은 이야기 중심의 내러티브가 아닌, 실험적인 방식으로 쇼트들을 분할하고 접합시킨다.   IMDb에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우호적인 것과 혹평으로 양분되어 있다. 1970년대 영화과 학생들의 실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외국 리뷰어의 혹평...

영화와 만난 바냐 아저씨, 세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 Uncle Vanya

바냐 아저씨(Дядя Ваня, 1970),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 1시간 44분  바냐 아저씨(Uncle Vanya, 1991), 그레고리 모셔 감독, 2시간 10분 42번가의 바냐(Vanya on 42nd Street, 1994), 루이 말 감독, 1시간 59분   1. 들어가며   희곡 대본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과연 쉬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작품성이 검증된 대본이 나와있으니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평론가들조차도 연극 공연을 그냥 영화로 찍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시드니 루멧이 1962년에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영화로 만들어 내놓았을 때도 그런 반응이었다. 루멧은 자신의 경력을 Off-Broadway(브로드웨이의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감독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연극적 공간과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또 뛰어난 영화 감독으로서 영화 제작의 메커니즘도 꿰뚫고 있었다. 그런 그의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만든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냉대를 받았다. 그들의 눈에 루멧의 영화는 공연되는 연극을 카메라 한 대 놓고 찍은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시드니 루멧은 영화 평론가들의 무지와 한심함에 분개했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 묘사를 위해서 루멧은 다양하게 쇼트들을 구성했다. 표준 렌즈를 비롯해 장촛점 렌즈와 광각 렌즈를 번갈아 가며 공간의 깊이를 달리해서 보여줬는데, 그걸 알아차리는 평론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의 기본적인 메커니즘도 모르는 평론가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루멧이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받았던 오해와 혹평은 희곡을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희곡 '바냐 아저씨(Uncle Vanya)...

영화 잡담; The Dig(2021), Laura(1944), The Narrow Margin(1952)

  영화 잡담; The Dig(2021), Laura(1944), The Narrow Margin(1952)   'The Dig(2021)'는 러닝타임이 2시간 가까이 된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20분쯤 되었을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덤 파는 이야기로 어떻게 나머지 1시간 반을 채울 것인가... 초반부에 이미 주인공들이 발굴하려는 무덤의 역사적 가치가 명백해진 상태였다. 이 영화의 촬영은 말 그대로 '때깔'좋게 나왔다. 문제는 내러티브의 때깔도 그러하냐는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병든 여자와 늙은 남자의 로맨스는 그다지 효용성이 없으므로, 다른 수를 써야만 했다. 아무래도 실존했던 인물들을 다루는 것은 까다롭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허구의 젊은 남녀를 투입했다. 이 맥아리 없는 영화는 무언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썩어 없어질 지상의 모든 것과 대비되는 영속성을 가진 유적, 그리고 그것을 위해 투신하는 부유한 상류층 여성과 발굴 탐험가. 이 영화에서 어떤 매력을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한가지 특색이 있다면 사운드 편집을 들 수 있겠다. 인물들이 아무 말 없이 있는 장면에서 뒤따르는 다른 장면의 대화들이 겹쳐지는 것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실망스런 영화를 보고나서 내가 언제나 찾는 영화는 헐리우드 클래식이다.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1944년작 '로라(Laura)'는 매력적인 여배우 진 티어니가 나온다. 영화는 형사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로라는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형사 맥퍼슨은 로라의 살인범을 찾으려고 수사 중이다. 그는 로라의 집 거실에 걸린 로라의 아름다운 초상화에 매혹된다. 여배우 대신에 초상화가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한다. 어쩌면 맥퍼슨만 로라의 초상화에 반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매력적인 여인 로라의 모습에 관객들도 함께 빠져들...

Anna May Wong이 가장 사랑한 영화, Java Head(1934)

    LA의 가난한 중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소녀는 영화를 보면서 배우에 대한 꿈을 키운다. 영화 촬영의 중심지였던 도시에서 14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엑스트라를 맡는다. 독특한 마스크와 연기력으로 주목을 받았고, 17살에 드디어 첫 주연을 따낸다. 오페라 나비 부인의 각색된 영화 버전인 'Toll of Sea(1922)'에서 였다. 안나 메이 웡(Anna May Wong)은 헐리우드 최초의 중국계 여배우로 미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자신의 영화 경력을 쌓았다. 헐리우드 경력 초창기, 안나는 동양에 대한 이국적이고 차별적인 선입견에 기반한 역할들이 주어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이 여배우는 주로 사악한 악녀로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다양한 연기 경력에 대한 열망은 안나를 유럽으로 향하게 했다. 영국을 비롯해 독일에 머물면서 영화를 찍었다. 영화 'Java Head(1934)'는 안나가 영국에서 찍은 5편의 영화 가운데 한 편으로 배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의 원작은 미국 작가 조셉 헤르게스하이머(Joseph Hergesheimer)가 쓴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Java Head'는 1923년에 헐리우드에서 무성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유실되었다. 1934년에 영국의 소롤드 디킨슨 감독은 같은 제목의 유성 영화를 찍었고, 안나는 백인 남편과 결혼한 만주족 공주 역을 맡았다. 매사추세츠가 배경인 원작은 시나리오로 각색되면서 항구 도시 브리스톨로 바뀌었다. 영화의 제목 'Java Head'는 부유한 선주 제레미 아미돈이 자신의 저택에 붙인 이름이다. 인도양의 험한 해협 지형 자바 헤드는 제레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게릿은 집안의 앙숙인 던삭 가문의 딸 네티를 사랑하고 있다. 네티의 할아버지는 게릿과의 교제를 반대하고, 게릿은 실망하며 1년 동안 바다를 떠돈다. 마침내 게릿이 ...

소년 테렌스를 만나다, The Long Day Closes(1992)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은 감독 자신에 대한 사실을 추론 내지는 직감으로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의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을 보는데, 유부녀인 여자 주인공이 알게 되는 퇴역 군인과의 관계가 영 부자연스러웠다. 두 사람은 동네 주민으로서 서로 예의를 깍듯하게 차리는, 전혀 이상한 사이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성적인 긴장감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튼 뭔가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감독에 대한 자료를 읽다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관계에서 내가 느꼈던 그 이질감은 감독의 성 정체성에서 나온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테렌스 데이비스의 1992년작 'The Long Day Closes'의 경우에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1950년대의 영국 리버풀을 배경으로 12살 소년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감독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암시하는 주요한 장면들이 있다.   말수가 없고 내성적인 소년 버드는 주로 집안에 머물면서 창밖으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느 때처럼 밖을 내다 보던 버드는 집 건너편의 공사 현장에서 젊은 인부와 눈이 마주친다. 청년은 버드에게 윙크를 하고, 소년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창문 안쪽 벽으로 얼른 돌아선다.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꾸준히 영화 속 소재로 다루었던 테렌스 데이비스의 작품들을 본 이들에게 그 장면은 명백한 암시일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감독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도 없고, 처음으로 보는 그의 영화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버드가 목욕하는 형의 등을 닦아주는 부분이었다. 소년은 씻고 있는 형의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형이 부탁하자 작은 수건으로 등을 닦는다. 고요하고 매혹적으로 포착된 그 장면에서 그것이 감독의 성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사막에서 길을 잃다, Another Sky(1954)

    * 이 글에는 'Another Sky'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좋은 교육을 받았다. 옥스포드에서 영문학을 배우던 그는 학위를 따려면 중세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학교를 떠났다. 재학 중에 그는 훗날 영국 프리 시네마(Free cinema)의 주역으로 떠오른 카렐 라이츠, 린제이 앤더슨과 친구가 되었다. 영화에 대한 흥미는 곧 직업적 경력으로 이어졌다. 편집과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자신의 영화도 찍었다. 어렵게 찍은 영화는 개봉도 하지 못했다. 그의 영화 경력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이유없는 반항(1955)'으로 유명한 감독 니콜라스 레이의 개인 비서가 되었고, 레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도 맡았다. 동성애자로서 그는 레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자신이 보고 들은 할리우드 배우들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지고 전기 작가로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개빈 램버트(Gavin Lambert), 'Another Sky(1954)'는 그가 남긴 유일한 영화이다.   젊고 단아한 영국 여성 로즈는 부유한 중년 여성 셀레나의 비서로 일하기 위해서 낯선 나라 모로코로 왔다. 로즈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롭다. 셀레나가 잘생긴 한량 마이클을 애인으로 두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모습에도 익숙해진다. 로즈는 나이든 현지인 통역 아흐메드의 안내를 받아 마라케시 곳곳을 탐방하며 이국 생활에서 즐거움을 발견한다. 어느 날, 셀레나와 마이클을 따라 간 파티에서 로즈는 젊은 악사 타예프에게 반한다. 아흐메드의 도움을 받아 타예프와의 밀회를 이어가던 로즈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이별을 결심한다. 로즈는 타예프에게 이별을 고하려고 하지만, 타예프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타예프를 꼭 만나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로즈는 셀레나의 돈까지 훔쳐서 타예프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에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모로코의 풍광과 현지인들의 모습이다. 마치 민속지 다큐멘터...

인생이란 그런 거야,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1960)

    식어버린 커피와 김빠진 맥주. 흘러간 옛 영화를 보는 것이 가끔은 풍미를 잃은 커피와 맥주를 들이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카렐 라이츠(Karel Reisz) 감독의 데뷔작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1960)'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 그러했다. 이 영화에서 카렐 라이츠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영국의 새로운 영화 사조 '프리 시네마(Free Cinema)'의 주역으로서 현실에 천착하는 사실주의와 영화의 결합을 보여준다. 이른바 '싱크대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 표현주의 화가 John Bratby가 주방 싱크대, 쓰레기통과 같은 일상적 소재로 그린 그림에서 유래)'의 영향은 당시 영국의 문화 영역 전반을 아우른다. 그것은 하층 노동자 계급의 실제적 삶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성과 낙태, 범죄에 대한 소재까지 다루었다.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은 어떤 면에서 그 사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 공장에서 선반공(旋盤工)으로 일하는 청년 아서는 고된 노동을 주말의 여흥과 음주로 달랜다. 그는 직장 동료의 아내 브렌다와 불장난 같은 밀회를 이어가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도린과 진지한 연애를 시작하지만, 아서는 결혼 생각은 하고 싶지가 않다. 그 즈음, 브렌다는 임신 사실을 알리고 아서는 낙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서의 뜻대로 되어가지 않는다. 브렌다의 낙태는 여의칠 않고, 아서와의 관계를 알게 된 남편의 군인 동생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고된 육체 노동으로 부모와 자신의 생계를 겨우 해결하는 삶, 결혼은 멀고 답답하게만 느껴지고 그렇다고 별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서의 청춘에 볕들 날은 있는 걸까?   혈기왕성한 이십대의 청년 아서에게 현실의 모든 것은 불만족스럽다. 그가 하는 공장일은 위험하고 고된 것이다. 기계에 손이 끼여서 ...

영국 필름 느와르의 독특한 변용, 일요일에는 언제나 비가 내린다(It Always Rains on Sunday, 1947)

      필름 느와르(Film noir)를 장르로 볼 것이냐, 스타일의 한 유형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아직도 영화학자들 사이의 의견은 엇갈린다. 사실 필름 느와르의 본질적 요소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이냐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대체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범죄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탐구, 비정형적인 내러티브와 비극적 결말, 촬영 기법에서 두드러지는 명암 대비,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들(팜므 파탈을 포함해)이 등장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일반적 범주에서 하드보일드(hard-boiled) 추리 소설이 초창기 필름 느와르의 원천이 되었던 것도 그런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947년에 영국의 일링 스튜디오(Ealing Studios)에서 제작한 로버트 해머(Robert Hamer) 감독의 '일요일에는 언제나 비가 내린다( It Always Rains on Sunday)'도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필름 느와르에 속한다. 영화는 런던 동부의 Bethnal Green을 배경으로 범죄자의 탈주를 둘러싼 일련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내내 비가 내리는 풍경이지만, 영화는 결코 스산하거나 어둡지 않다. 가족 멜로 드라마의 외양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유지되는 긴장과 스릴은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과 결합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로즈는 두 명의 십대 딸을 둔 중년 남자와 결혼해서 자신의 아들을 두었다. 유순하고 착한 둘째 의붓딸 도리스와는 달리 첫째 딸 바이는 사사건건 로즈와 부딪힌다. 자신 보다 15살 연상인 남편 에드워드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팍팍한 하층민의 삶은 로즈를 지치게 만든다. 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 남편이 읽고 있던 신문에는 탈옥수 토미 스완의 기사가 실린다. 10년 전, 토미와 로즈는 연인 사이였다. 경찰들은 토미를 잡기 위해 탐문 수사를 진행하고, 그 와중에 토미는 로즈의 집에 숨어든다. 로즈는 가족 모두가 외출한 사이 부부의 침실에서 토미를 쉬게 ...

토끼들이 들려주는 삶의 근원적 메시지, 워터쉽 다운(Watership Down, 1978)

    "1979년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TV에서 워터쉽 다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집에서 그것을 보았다. 친구는 보다가 너무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나는 토끼들의 흥미진진한 모험에 매료되었다. 다 보고난 뒤에 당장 책을 찾아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978년에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이듬해 BBC 방송을 통해 영국 전역에서 볼 수 있었다. 위에 언급한 글은 영국의 어느 평론가가 '워터십 다운(Watership Down, 1978)'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회고한 데에서 따왔다.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해외 비평을 읽어 보면, 영국 쪽에서 당시 BBC 방송을 통해 본 경험담이 꽤 나온다. 아동에게는 꽤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들어가 있는 '워터쉽 다운'을 영국은 전 연령 시청가로 정했다. 과연 이 애니메이션을 아동에게 보여주기에 적합한가에 대해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원작자 리처드 애덤스는 자신의 딸들에게 읽혀주기 위한 동화로 토끼들의 모험담을 썼다. 젊은 시절, 군 복무 중에 동료로부터 들은 토끼의 생활과 습성에 대한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다. 그렇게 토끼들의 장대한 모험을 다룬 환타지 장편 소설 '워터십 다운(1972)'이 탄생했다.   원작 소설은 꽤나 두껍고, 나름대로 정교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초등 고학년 수준에서도 좀 버겁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 동화는 어른들에게도 매력적인 이야기로 큰 인기를 끌었고, 마틴 로젠은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했다. '워터십 다운'의 그림체는 상당히 사실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거칠다. 토끼들끼리 싸우는 장면에서의 피와 폭력의 묘사도 구체적이다. 이쯤되면 이 애니메이션이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주 관객층을 성인으로 한 것인지 의문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그림체와 묘사의 수위, 서사의 전개가 어른들에게는 밋밋하게 느껴진다. 요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