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여긴 좀 메스꺼운 냄새가 난다."
(Never seen the sea before. It’s got a funny smell to it.)
아이는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그렇게 말한다. 영국의 영화 제작자이며 교육자였던 존 크리쉬(John Krish, 1923-2016)의 단편 다큐 'They Took Us to the Sea(1961)'는
빈민가 아이들의 바닷가 소풍을 담는다. 다큐는 버밍엄(Birmingham)의 전형적인 하층민 주거지를 비춰주면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허물어진 건물이 있는 황량한 공터를 놀이터로 삼는다. 구태여 '가난'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행색에서는 그
단어가 빗물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있는 옷, 흙먼지로 얼룩이 진 신발, 위축되고 생기 없는 얼굴 표정. 이
아이들에게 어느 날 자선 단체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말한다. 너희들을 바닷가에 데리고 갈 거란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버밍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기차역에 모인 아이들에게 단체의 인솔 감독자들은
이름표를 달아준다. 기차에 올라탄 아이들은 창밖의 가족들과 짧은 이별 인사를 나눈다. 마침내 기차가 출발하고 그렇게 선물과도 같은
하루가 주어진다. 꼬마의 내레이션은 신나거나 흥분으로 가득차 있지 않다. 조심스럽고 담담하게 들린다. 아이들은 수줍음이 많고
쭈빗거린다. 농장과 소가 보이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간식도 먹는다. 조금은 긴장이 누그러지는 것 같다. 마침내 기차는
Weston-super-Mare의 바닷가에 도착한다.
조금은 이상한, 메스꺼운 냄새가 나는 곳. 하지만 그곳은 곧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는 장소가 된다. 즐거운 식사 시간, 볼이 미어져라 음식을 입에 넣는다.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에 여유있게 식초를 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먹음직스러운 푸딩도 나온다. 배를 채웠으면 구경을 해야겠지. 당나귀를 타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모래성도 쌓는다. 롤러코스터와 전동차는 또 얼마나 재밌는가. 다시 배가 고파온다. 데리고 온 어른들은
아이스크림과 솜사탕을 사준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갈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떠나는 아이들은 촬영하는
제작진을 향해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힘차게 손을 흔든다.
러닝타임 28분 가량의 이 다큐를 보는 것은 충만한
기쁨을 선사한다. 굳은 아이들의 얼굴이 조금씩 누그러지면서 순전한 즐거움으로 채워지는 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 그곳에서 보낸 짧은 시간은 아이들을 바꾸어 놓는다. 정말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소품이라고 나는 느꼈다. 하지만,
다큐의 제작자 존 크리쉬에게 이 작품은 꽤 무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 다큐에는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2014년, 'birminghammail.co.uk'는 아흔의 존 크리쉬를 인터뷰했다. 크리쉬에게 다큐를
의뢰한 곳은 영국의 자선 단체 'NSPCC(Nation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Children)'였다. 그곳에서는 재단의 기금 마련을 위해 후원자들에게 보여줄 영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TV로 보는 자선 단체 광고의 영화 버전인 셈이었다. 후원자들의 주머니에서 큰 돈이 나오게 하려면 가난한 아이들을 최대한
불쌍하고 비참하게 찍어야만 했다. 제작자 존 크리쉬의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고민을 하던 그는 단체에서 아이들의
바닷가 소풍을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찍기로 했다. 'They Took Us to the Sea'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는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신경쓰지 말라고 부탁했고, 자신도 아이들에게 행복한 하루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아이들이 다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고 크리쉬는 회고한다. 더러는 외톨이처럼 겉도는
아이도 있었고, 불안한 표정으로 헤매는 아이도 있었다. 짧은 바닷가 소풍이 끝나고, 아이들이 촬영팀에게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면서도 크리쉬는 자신이 찍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중에 인화된 필름을 보았을 때 그는 비로소 감동을
느꼈다.
크리쉬가 느꼈던 감동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다큐는 아이들이 느꼈던 '순전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이 단편은 아마도 화려한 파티장에서 부유한 후원자들에게 상영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은 단체의 요청에 따라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되었다. 그럼에도 아흔의 제작자는 아이들에 대한 마음의 부채감을 오랜 세월 동안 떨치지 못했다.
다큐의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이 사는 그 가난한 동네 풍경이다. 외롭게 집 벽돌담에 기댄 아이. 바다 한 번 보고 왔다고 무어 그리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 짧은 소풍을 아이들은 잊지 못하리라. 바닷가에서 느꼈던 흥분과 기쁨은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며,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크리쉬는 아이들이 떠난 텅 빈 선착장과 바닷가를 보여준다. 인생에서 좋은 순간은 짧고
강렬하다. 다시 외로움과 고단함으로 채워질 일상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선물처럼 기쁨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빈민가 아이들의 한 나절 소풍에서 그렇게 인생의 한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 출처: birminghammail.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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