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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다룬 다큐 세 편

 

1. BBC 다큐 'Francis Bacon : A Brush with Violence(1997)', 1시간19분

2. The South Bank Show 제작 'Francis Bacon(1985)', 55분

3. 미국 휴스턴 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제작, Francis Bacon: Late paintings(2020), 55분


* 위 세 편의 다큐들은 모두 유튜브에서 검색 가능함.

  1945년, 런던의 전시회에 걸린 그의 삼면화(triptych, 세 개가 이어진 그림으로 주로 가톨릭의 제단화에 쓰였음)는 관객들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2차 대전이 막 끝난 직후여서 사람들은 가급적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화가는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와 인물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계속해서 변주해 나갔다. 그는 동성애자였으며, 술과 도박에 빠져 지냈고, 그림으로 누릴 수 있는 명예와 부를 생전에 다 누렸다. 죽어서도 그의 그림을 비롯해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 소장품이 엄청난 가격에 팔리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아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그려낸 초상 연작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97년에 BBC에서 제작한 다큐는 화가 베이컨의 일대기와 작품, 그의 주변 지인들의 인터뷰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이 다큐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화가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거칠고 폭력적인 아버지와의 불화, 베를린과 파리에서 지냈던 20대 초반의 시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시작했던 경력의 초창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30대, 그리고 그의 동성 연인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베이컨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에 무척 솔직했다. 동성애는 그의 예술 세계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를 함께 했던 동성 연인 피터 레이시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유리잔을 베이컨의 얼굴에 던져서 눈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고도 베이컨은 그를 떠나지 못했다. 결국 레이시가 모로코의 탕헤르(당시 국제 관리 지역인 탕헤르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었다)로 떠나면서 종결될 수 있었다. 가학적이었던 레이시와의 관계가 끝난 후, 베이컨이 안착한 새로운 인물은 조지 다이어였다. 이스트 엔드의 그저 그런 술꾼이었던 다이어는 베이컨의 모델로 1960년대 그려진 주요한 그림들을 채우게 된다. 이 관계에서 베이컨은 연인 레이시에게 피학적인 입장이었던 것과는 달리, 지배적이고 우세적인 위치를 점한다. 베이컨의 그림 속 다이어의 이미지는 파괴적인 절단과 변형을 보여준다. 베이컨은 다이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끌어내었지만, 그럴수록 다이어는 피폐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결말로 끝났다.

  베이컨이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피카소의 전시회였다. 그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자신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카소가 누린 명성과 평생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1971년, 프랑스 파리 Grand Palais에서 열린 회고전은 베이컨 인생의 정점과도 같았다. 그것은 그가 서양 현대 미술에서 거장으로 인정받게 됨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진다. 전시회를 앞두고 파리의 호텔에서 같이 머물던 다이어가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건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해서 신고는 이틀 동안 미루어졌다. 전시회가 끝난 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로 대충 마무리되었지만 사건은 베이컨에게 커다란 상흔으로 남았다.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윤리적인 비난, 연인의 죽음을 목격한 정신적인 충격, 사건 이후 속죄와 고통의 감정이 베이컨의 그림 주제가 된다.

  영국 ITV의 프로그램 The South Bank Show에서 1985년에 제작한 다큐는 Melvyn Bragg이 베이컨과 했던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술을 좋아하는 베이컨을 위해 여러 술집에서 이루어진 솔직하고 재기 넘치는 인터뷰를 통해 베이컨의 뛰어난 말솜씨를 엿볼 수 있다. 진행자 Bragg은 절제되어 있지만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다이어의 죽음에 대한 베이컨의 생각을 비롯해, 화가가 직접 설명하는 그림 속 테마의 의미도 들을 수 있다. 왜 그의 그림에서 '입'을 반복해서 그리는지에 대한 질문에 베이컨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단순명료하게 답한다. 술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자신은 술집의 분위기를 좋아하며,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미국의 현대 미술 작가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록을 비웃는 베이컨의 모습도 나온다.

  "사람들은 선생의 그림에서 공포를 봅니다. 선생의 그림은 공포에 대한 것입니까?"
  "공포는 우리의 일상 어디에나 있어요. 매일 보는 신문, 방송의 사건 기사를 보세요. 나는 내 그림 속에 공포를 담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삶이에요. 삶 그 자체입니다. 이미지의 충격으로 보는 이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내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는 바입니다."

  2020년, 휴스턴 미술관에서 제작한 다큐는 미술관 큐레이터 Alison de Lima Greene이 1970년대 이후 베이컨의 후기 작품에 대한 분석을 들려준다. 앞서 언급한 두 다큐를 보았다면 편하게 볼 수 있다. 베이컨이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 방식, 초창기 영화사와 관련이 있는 사진가 마이브리지(E. Muybridge)의 영상물 작업을 응용한 것을 비롯해 회화사의 대가들 작품을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도 알 수 있다. 베이컨의 화풍은 독자적 실험 속에서 완성된 것이지만, 그 작업은 이전의 미술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격렬한 폭력과 외설, 파괴적 이미지로 점철되었던 베이컨의 중기 회화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부드러워진다. '늙음'은 이 예술가에게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비서이며 그의 작업에 필요한 사진을 담당했던 존 에드워즈는 노년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말년에 만난 젊은 연인 호세와의 결별은 베이컨에게 생의 마지막 불꽃과도 같았다. 호세를 만나겠다며 찾아간 스페인에서 베이컨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최종 유산 상속자는 존 에드워즈가 되었다.

  3개의 다큐를 통해 들여다 본 화가 베이컨의 삶은 여전히 거대한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그의 스튜디오는 마치 hoarder(온갖 물건과 쓰레기들을 모아서 쌓아두고 사는 이들)의 쓰레기집을 연상케 한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 같은 화구통의 붓에는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있고, 책과 잡지를 비롯해 사진 자료들이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캔버스 앞에서 겨우 그림 그릴 정도의 통로가 확보된 기이한 스튜디오. 이곳을 상속자 에드워즈는 영국 정부에 기증했고, 새로운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를 해체하는 과정은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원천이 되었다.

  베이컨이라는 화가가 성취한 명성은 그의 재능과 내적인 광기, 인간적 특성만으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후의 불안과 고통은 실존주의 철학을 낳았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은 베이컨이 그려낸 충격적인 이미지들과 강력하게 공명했다. 다큐에서 본 그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베이컨의 마지막 유작이었다. 흰 배경의 캔버스 위쪽에 희미한 이미지의 황소가 사각형의 창을 뚫고 나오려는 것처럼 서있다. 그는 동성애자로 평생 자신의 시대와 불화했고, 술과 도박으로 삶의 위안을 찾았다. 그의 인생은 마치 폭주기관차 같았다. 그림은 어쩌면 그 열차의 창 밖으로 그가 바라본 바깥의 풍경과 자신의 내면을 결합시킨 창조적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 사진(1950년대)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영국 테이트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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