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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의 게시물 표시

기후 변화가 가져올 묵시론적 미래, Utama(2022)

  *이 글에는 영화 'Utama(2022)'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5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섬의 시나붕(Sinabung) 화산이 폭발했다. 엄청난 화산 폭발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나는 당시에 화산 지대 주민들을 취재한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다. 화산재로 뒤덮인 마을 뒤로 화산은 여전히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마을에서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마을 주민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그곳은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화산은 마치 신과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는듯 했다. 화산 폭발은 신의 노여움 같은 것이었다. 주민들은 신의 노여움이 풀리면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그러한 주민들의 모습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화산 폭발의 여파로 그곳의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는 극한의 자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왜 그들은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지 않는가? 그 질문은 볼리비아의 감독 Alejandro Loayza Grisi의 영화 'Utama(2022)' 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볼리비아의 거친 고원 지대, 오랫동안 라마(Llama)를 키우며 살아온 늙은 원주민 부부가 있다.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Virginio와 Sisa 부부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지독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마을에서 물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Sisa는 매일 먼 곳의 강변으로 물을 길으러 간다. Virginio도 그의 라마 무리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먼 길을 다닌다. 마을 사람들 모두 Virginio와 Sisa 부부처럼 물 때문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도시에 사는 손자 Clever가 부부를 찾아온다. Clever는 할아버지와 할머

Jerzy Sladkowski 감독의 다큐멘터리 2편: Bitter Love(2020), Vodka Factory(2010)

   1. Bitter Love(2020): 유람선 승객들을 통해 바라본 러시아 사회의 내적 공허      "결혼의 행복이란 이런 거야. 부부가 커피를 주문했는데, 남편이 아내의 찻잔에 설탕을 넣어주는 거야. 남편은 아내의 커피에 얼마만큼의 설탕을 넣을지 잘 알고 있지."   60대 여성인 율리아는 볼가강(Volga River)을 크루즈로 여행하고 있다. 율리아는 같은 선실을 쓰는 여자에게 그렇게 말한다. 율리아의 선실 동료는 점쟁이이다. 이 여성은 크루즈 여행객들에게 점을 봐주기도 한다. 율리아와 카드 점쟁이는 곧 친구가 된다. 싱글인 그들은 이 크루즈에서 마음에 드는 남성을 찾을 수 있을까?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감독 Jerzy Sladkowski는 3주 동안 볼가강 크루즈 여행객들을 따라간다. 'Bitter Love(2020)'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이 다큐에 나오는 여행객들의 주된 관심사는 '사랑'이다.       다큐는 매우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40대 중반의 옥사나는 크루즈에서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옥사나는 신작 영화 '안나 카레리나'를 보았다고 말한다. 톨스토이 원작 소설 '안나 카레리나(Anna Karenina)'에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여주인공 안나가 나온다. 여자는 안나의 삶에서 자신의 현재를 본 것일까? 옥사나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도 언급한다. 자신이 그 소설에 나오는 개 '카시탄카' 같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하던 옥사나는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카시탄카(Kastanka)'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가난한 농가의 개 '카시탄카(Kastanka)'는 주인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카시탄카는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는다. 카시탄카가 어쩌다 따라간 사람은 서커스를 하는 남자이다. 그 남자와 지내게 된 카시탄카는 서커스 개로

소녀의 어린 시절이 끝나갈 때, Children Of The Mist(2021)

    몽족(Hmong People)은 베트남의 소수 민족으로 베트남 북부의 산간 마을에서 살고 있다. 몽족 출신의 14살 소녀 Di의 일상은 바쁘고 고단하다. Di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는다. Di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서 산다. Di의 엄마는 실질적으로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가장이다. 몽족의 큰 명절인 음력설, Di의 엄마는 걱정이 앞선다. 혹시라도 딸이 남자에게 납치당해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까 싶어서이다. 납치 결혼(forced marriage)은 몽족의 오랜 악습이다. 음력설에는 그 납치 결혼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 결혼 적령기의 남자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유인해서 납치한다. 그렇게 끌려간 여성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된다. 그 무엇도 이 결혼을 막을 수 없다. 심지어 여성의 부모조차도 납치된 딸을 빼내올 수 없다.   한껏 명절 분위기에 들뜬 Di는 인터넷으로 알게 된 Vao와 만난다. 얼마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로부터 차인 Di는 마음이 울적하다. 호기심에 Vao를 따라나선 Di. Di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Di를 촬영하던 여성 감독 Ha Le Diem은 Vao를 따라가는 Di를 걱정하지만, Di를 말리지는 않는다. 다큐 'Children Of The Mist(2021)'은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마주하는 윤리적 갈등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 Diem은 3년 동안 Di의 가족과 함께 하면서 그 일상을 담아내었다. Diem은 Di에게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Vao를 따라나서는 Di를 보며 Diem은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Di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많은 관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Vao의 부모는 Di와 Vao의 결혼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킨다. 별 생각없이 Vao를 따라나섰던 Di는 결혼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