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12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중국의 현대사를 반추하는 지아장커의 두 영화, 山河故人(2015)과 江湖儿女(2018)

      광산 도시 다통의 범죄 조직 보스 빈은 차오와 연인 사이이다. 둘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만, 그 사랑은 곧 위기를 맞는다. 빈의 조직을 삼키려고 경쟁 조직은 자객들을 보낸다. 연인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자 차오는 빈의 총으로 그들을 위협한다. 차오는 총기의 출처에 대해 함구한 댓가로 5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다.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남자에게는 애인이 있고 여자한테는 '우리 인연은 끝'이라고 말한다. 여자와 남자의 사랑은 거기에서 정말로 끝난 것일까?    '江湖儿女'의 영어 제목은 'Ash Is Purest White'와 'Sons and Daughters of Jianghu', 이렇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재는 가장 순수한 흰색이다'와 '강호의 아들과 딸'이라니,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제목들에는 어떤 뜻이 있는 걸까? 아마도 서구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가장 어렵고 까다롭게 다가올 개념은 '강호(江湖, Jianghu)'일 것이다. '강호아녀'를 본 서구 비평가들의 글을 보면, 그들에게 이 영화에 내재된 문화적 코드를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강호'는 무엇일까? 무협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그 단어는 매우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무협 영화도 아닌 현대 중국을 그려낸 이 영화에서 '강호의 아들과 딸'이라니, 영화의 제목 '강호'에는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강호'라는 단어의 기원은 중국의 고대 신화와 전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교 철학에서부터 시작된 신선계( 神 仙 界 )의 개념, 이것은 점차로 모험과 방랑을 의미하는 이상화된 공간으로 변모했다. '강호'가 중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파고든 것은 명청(明清)시대였다. 강호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8편

1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1.html 2편, 3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2-3.html 4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4.html 5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5.html 6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6.html 7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7.html 서부 개척 시대의 끝 8편 "One Sky Above Us" (1887-1914), 1시간 58분   드디어 켄 번즈의 8부작 다큐 'The West'의 마지막 편에 이르렀다. 8편에서는 라코타족 추장 시팅 불(Sitting Bull)의 비극적 최후와 운디드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 몬태나의 광산 개발 열풍, 서부 제일의 도시를 만든 로스 엔젤레스의 수로 공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8편의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주는 것은 콜로라도주에 정착했던 젊은 연인들의 사랑이야기이다. 에델과 존의 만남에서부터 결혼, 농장을 일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부의 역사를 만들어간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간 것이다.          1887년, 미 의회는 도즈 법(The Dawes Act)을 통과시켰다. '인디언 일반 토지 할당법(General Allotment Act)'을 통칭하는 도즈 법은 인디언 토지의 소유와 분배에 있어서

히피 시대(The Hippie Movement)의 종언, Electra Glide in Blue(1973)

  *이 글에는 'Electra Glide in Blue'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영화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무척. 그런 당신에게 어느 날 영화 연출의 기회가 온다. 사기가 아닌 진짜다. 자, 엉겁결에 감독이 되어 영화를 찍어야할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대체 어떻게 영화를 만들 것인가?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럴 때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책은 무엇일까? 정답은 '뛰어난 촬영 감독을 구하는 것'이다. James William Guercio는 그렇게 했다. 그가 제작사 United Artists로부터 'Electra Glide in Blue' 감독직을 제안받았을 때, 그가 한 일은 당시 최고로 잘 나가는 촬영 감독 Conrad Hall을 붙잡은 일이었다.   Hall은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의 촬영 감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런 실력있는 인재를 섭외하는 일은 당연히 돈이 많이 든다.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구에르시오는 자신의 감독 급여를 포기했다. IMDb의 Trivia 항목에는 그가 자신의 급여를 1달러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콘래드 홀에게 지급했다고 나와있다. 그 액수가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Directed by'라는 오프닝 크레딧의 그 글자를 지키기 위해 돈 따위에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초짜 신인 감독과 베테랑 촬영 감독, 'Electra Glide in Blue(1973)'는 그렇게 탄생했다. 물론 좋은 촬영 감독을 데려왔다고 해서 영화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연출의 부재는 구에르시오의 감독직 수행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했다. 주연 배우 Robert Blake는 나중에 이 영화는 자신과 촬영

내 맘대로 뽑은 일드 명작선, 구식 일본 드라마 12편

    한때, 일본 드라마를 아주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일본 현지에서 드라마가 방영되면, 그 주에 인터넷에 영상이 풀리고 자막 팀에서 자막 입혀서 나오는 시스템(?)으로 일드 팬들의 세계가 굴러갔었다. 일본 드라마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자막 제작했던 일본어 능력자들 덕분에 일드를 잘 보았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많은 일드 팬들의 마음 속에서 고마운 존재였다. 오래전에 보았던 일드들은 그 드라마와 함께 했던 인생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시절에 보았던, 내 기억 속에 남은 구식 명작 일본 드라마를 뽑아보았다. 1. 오렌지 데이즈(オレンジデイズ, 2004)   대학 졸업반 학생 5명의 이야기를 담은 청춘 성장 드라마. 이제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츠마부키 사토시의 젊은 날의 모습이 참 좋았더랬다. 당시에 잘 나가던 일본 청춘 스타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시바사키 코우가 츠마부키 사토시의 상대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청각장애인 역의 시바사키 코우가 보여주는 수화는 조용조용한 수화가 아니라 극중 성격처럼 자신의 감정표현에 솔직하고 화통한 수화를 사용한다. 사회 진출을 앞두고 나름의 고민을 하는 청춘의 모습을 너무 무겁지 않게,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2. 굿럭(GOOD LUCK!!, 2003)   항공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 키무라 타쿠야, 츠츠미 신이치, 시바사키 코우, 쿠로키 히토미가 나온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과거의 상처와 씨름하면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 드라마에 로맨스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비중있게 다루는 것은 트라우마의 극복과 재생이다. 과거에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살아낼 것인가를 두고 주인공들은 고민한다. 조종사 역을 맡은 키무라 타쿠야와 츠츠미 신이치의 연기도 좋지만, 동료 조종사 타케나카 나오토의 감초 연기는 언제 봐도 즐겁다. 윤손하도 조연으로 나온다. 3. 야마토나데시코(やまと

Barkfors 부부의 다큐 두 편, Raising a School Shooter(2021)와 Pervert Park(2014)

  1. 학교 총기 난사범을 키운 것은 누구인가, Raising a School Shooter(2021)   "나는 그 아이가 그곳에서 죽었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Sue Klebold는 그랬다. 수의 아들은 1999년에 있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Columbine High School massacre)의 주범인 Dylan Klebold였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Elephant, 2003)'는 그 사건을 극영화로 만든 것이다.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2021년작 다큐 'Raising a School Shooter'는 학교 총격 사건 주범을 아들로 둔 세 부모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다큐는 BBC Four의 다큐 프로그램 'Storyville'에서도 방영되었다.   딜런 클레볼드와 친구 에릭 해리스가 저지른 총기 난사로 15명이 죽었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자신의 아들이 주범일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수는 차라리 아들이 그곳에서 죽기를 바랬다고 말한다. 딜런과 에릭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이후, 수에게는 총격범을 키워낸 엄마라는 비난과 분노가 쏟아졌다. 1988년, Atlantic Shores Christian School에서 니콜라스 엘리엇은 3개의 화염 폭탄, 반자동 권총 및 200발의 탄약을 가져가 교사 1명을 죽이고 다른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니콜라스의 아버지 클레런스는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인 아들을 30년 넘게 기다리고 있다. 2001년의 'Santana High School shooting' 사건의 주범인 15살 앤디 윌리엄스는 총기로 2명의 학생을 죽이고, 1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제프는 50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 중인 앤디의 아버지이다.   '당신들이 자식을 잘못 키운 거야'라고 그 세 명의

하마구치 류스케와 떠나는 체호프식 치유 여행,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2021)

  *아직 '드라이브 마이 카'를 관람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최대한 스포일러를 넣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글의 전개상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불편한 독자들은 나중에 영화를 본 후에 이 글을 읽기 바랍니다.  1. 영화를 보기 전에   누군가 영화 사이트 게시판에 이런 질문글을 올린 것을 읽었다.   "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려고 하는데, '바냐 아저씨'를 읽고 가야 하나요?"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내 대답은 이렇다. '네, 그래요.' 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대사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러니 그 희곡을 모르면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해낼 재간이 없다. 그럼 인터넷으로 줄거리 요약이나 독서 유튜버가 축약 설명하는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괜찮을까? 안타깝게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나려는 관객은 영화를 보기 전에 안톤 체호프와 마주해야만 한다. 과연 하마구치 류스케는 관객에게 강제로 독서하게 만드는 감독일까?   "나는 그저 '바냐 아저씨'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하마구치 류스케, filmcomment.com과의 인터뷰 가운데)."   하마구치 류스케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제작이 결정되고 나서 한 일이 그것이었다. 그러니 관객은 체호프를 읽는 것 외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3년에 문예춘추에 아주 짧은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를 발표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그 단편을 토대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갔다. 소설이 대강의 뼈대를 제공했다면, 체호프는 거기에 덧붙여진 건축 자재들이다. 그것을 조화롭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축조해낸 하마구치 류스케는 영화라는 틀 안에 문학을 녹여낸 하이브리드 장인인 셈이다.

영화와 만난 바냐 아저씨, 세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 Uncle Vanya

바냐 아저씨(Дядя Ваня, 1970),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 1시간 44분  바냐 아저씨(Uncle Vanya, 1991), 그레고리 모셔 감독, 2시간 10분 42번가의 바냐(Vanya on 42nd Street, 1994), 루이 말 감독, 1시간 59분   1. 들어가며   희곡 대본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과연 쉬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작품성이 검증된 대본이 나와있으니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평론가들조차도 연극 공연을 그냥 영화로 찍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시드니 루멧이 1962년에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영화로 만들어 내놓았을 때도 그런 반응이었다. 루멧은 자신의 경력을 Off-Broadway(브로드웨이의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감독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연극적 공간과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또 뛰어난 영화 감독으로서 영화 제작의 메커니즘도 꿰뚫고 있었다. 그런 그의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만든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냉대를 받았다. 그들의 눈에 루멧의 영화는 공연되는 연극을 카메라 한 대 놓고 찍은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시드니 루멧은 영화 평론가들의 무지와 한심함에 분개했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 묘사를 위해서 루멧은 다양하게 쇼트들을 구성했다. 표준 렌즈를 비롯해 장촛점 렌즈와 광각 렌즈를 번갈아 가며 공간의 깊이를 달리해서 보여줬는데, 그걸 알아차리는 평론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의 기본적인 메커니즘도 모르는 평론가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루멧이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받았던 오해와 혹평은 희곡을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희곡 '바냐 아저씨(Uncle Vanya)

안개 속의 가족,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1962)

    어느 막장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한때 잘나가던 연극배우로 엄청나게 큰 돈을 모았으나, 지독한 수전노가 되어서 가족들의 원망을 듣고 있다.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연극 배우에게 반해서 결혼했으나, 출산 후유증 때문에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다. 첫째 아들은 술고래에 주색잡기로 인생을 망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가 선원으로 떠돌아다니다 폐결핵을 얻어 돌아왔다. 술에 취한 첫째 아들은 부모를 노랭이, 약쟁이로 부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 4명의 가족이 여름 별장에서 보낸 하루 동안의 이야기, 바로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이다.   TV와 연극 연출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시드니 루멧의 첫 영화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이었다. 배심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이야기를 다룬 그 작품은 매우 성공적인 데뷔작이었다. 인물과 공간을 다루는 그의 솜씨가 연극 연출에서 기인했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밤으로의 긴 여로(1962)'를 비롯해 '갈매기(The Sea Gull, 1968)', '에쿠우스(Equus, 1977)' 만듦으로써 연극에 대한 그의 애정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가장 찬사를 받은, 주목할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캐서린 햅번은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랄프 리처드슨과 제임스 로바즈, 딘 스톡웰은 공동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대결뿐만 아니라, 루멧의 연출과 영화적 감각도 눈부시게 빛난다.   유진 오닐의 자전적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는 작가 자신이 사후 25년 동안 출판과 공연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표명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오닐이 사망한 후 3년 뒤인 1956년에 출판이 되었고, 루멧은 1962년에 희곡을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7편

거친 서부, 환대받지 못한 사람들 7편 The Geography of Hope(1877-1887)   1시간 25분   켄 번즈는 미국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일련의 다큐멘터리로 명성을 얻은 제작자이다. 그는 해설 위주의 건조하고 딱딱한 역사 다큐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시적이고 문학적인 것이었다. 번즈는 시와 편지, 문학 작품에서 발췌한 글들을 내레이션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는 독특한 자료 화면 배열로 정적이고 지루한 다큐에 '재미'라는 요소를 더했다. 'The West'에서도 번즈의 이런 제작 스타일이 드러난다. 서부 개척 시대를 살았던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서간문, 일기, 소설의 문장들이 성우들의 목소리로 낭독된다. 주요 해설자의 흡인력있는 내레이션, 권위있는 연구자들의 부가 설명이 곁들여지면서 다큐의 내용은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제 'The West'의 7편에서는 미국의 서부 정복이 완료된 이후의 후일담이 펼쳐진다. 인디언들을 내쫓은 땅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이주민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거기에는 대륙 횡단 철도 건설의 주역이었던 중국인 노동자들도 있었다. 남북 전쟁이 끝난 후, 해방 노예들 또한 서부에서 기회를 찾고자 했다. 브리검 영 사후의 몰몬교도들은 어떻게 살아나갔을까? 그리고 보호구역으로 들어간 인디언들이 있었다. 인디언들이 원하는 평화는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땅을 뺏은 것으로도 모자라 원주민 문화마저 말살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1877년부터 1887년까지 무려 450만 명의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들었다. 서부에는 그렇게 정착한 이주민들이 세운 도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그 땅에서 모두가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1877년, 마지막 연방군이 남부에서 철수했다. 연방의 뜻에 따른 남부 재건은 무너졌고, 새로운 남부의 주법이 제정되었다. 노골적인 흑인 차별의 움직임 속에 KKK단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6편

빼앗긴 성지 Black Hills, 인디언 전쟁의 끝 6편 Fight No More Forever(1874-1877)          1시간 25분         대륙 횡단 철도 개통된 1869년부터 1874년까지 수백만 명의 이주민들이 서부로 몰려왔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땅이었다. 미국 정부는 인디언들의 거주지를 계속해서 뺏어나갔다. 표면적으로는 돈을 주고 인디언들의 땅을 사들이는 것이었지만, 헐값에 넘기기를 강요하는 '강탈'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마도 '좋은 말로 할 때 내놓으시지. 살려는 드릴게' 같은 협박이 아니었을까? 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살던 곳을 떠나 낯설고 황폐한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Oregon의 Wallowa 지역에 사는 Nez Perce족 추장은 미국 정부가 내미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고 버텼다.   라코타족도 살던 곳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코타에 위치한 'Black Hills'는 수족 인디언(라코타족은 수족의 한 분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1868년에 체결된 포트 라라미 조약(Treaty of Fort Laramie)에 따라 블랙 힐스에 대한 수족 소유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발견된 금이 문제였다. 15000명의 광부들이 블랙 힐스로 몰려들었고, 그것은 곧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미국 정부는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조약을 깨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6백만 달러에 블랙 힐스를 넘기라는 미 정부의 제안을 추장 시팅 불(Sitting Bull)은 거부했다.   이제 결전은 불가피해졌다. 1876년, 라코타와 아라파호, 샤이엔족 인디언 연합군과 커스터가 이끄는 부대가 맞붙었다. 시팅 불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예지적 환영을 본다. 하늘을 까맣게 메운 메뚜기떼 같은 미군들이 모두 죽어 땅에 떨어지는 꿈이었다. 그렇게 리틀 빅혼 강(Little Bighorn River)에서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미 기병대를 이끄는 커스터는 남북 전쟁

깊이 있는 창작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성장의 여정, Passage(2020)

    Bolex 16mm. 1학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주로 썼던 카메라 기종이다. 지금 영화 공부하는 학생들은 아마도 디지털 기기로 공부하고 작업할 것이다. 내가 배울 당시에 영화에서 디지털이란 저예산, 실험 영화에서나 시도되는 것이었다. 디지털이 필름을 막 밀어내는 시기였다. Bolex로 찍은 16mm 필름을 현상해 보면, 거칠고 누런 색감이 났다. 마치 굵은 모래 뿌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16mm=학생용=단편=실험 영화, 이런 공식이 적용되곤 했다. 그렇다고 이 카메라가 구닥다리에 우습게 볼 기종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영국의 Mark Jenkin은 'Bait'란 장편 극영화(1시간 29분)를 그 Bolex로 찍었다(조만간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2019년작이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 중요한 것은 장비가 아니다. 작가적인 관점에서의 성실한 관찰과 깊이있는 사유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다큐멘터리 제작 경향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LGBT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No Ordinary Man(2020)'은 남장 여자의 삶을 살았던 재즈 뮤지션 Billy Tipton의 삶을, 'The Sound of Identity(2020)'는 트랜스젠더 바리톤 가수 Lucia Lucas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다큐 모두 소재에 있어서 파격성이 돋보인다. 중요한 것은 소재가 주는 반향을 뛰어넘어 그것을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얼마나 잘 변주해 내느냐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두 작품 모두 매우 실망스러웠다.   'No Ordinary Man'은 지금의 시대를 사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이 나와서 빌리 팁튼과 자신의 삶을 견주어 이야기한다. 성적 다양성에 닫혀있던 1950년대와 60년대를 통과한 팁튼의 삶은 대충 훑어보고 만다. 일종의 메타적 방식(meta documentary)을 적용한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난삽하고 경박스러운 것이 되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5편

새로운 문명, 대륙 횡단 철도의 개통 5편 The Grandest Enterprise Under God (1868–1874)   1시간 24분     전쟁터의 총성과 화염은 이제 사라졌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본격적인 재건에 돌입한다. 'The Great Pacific Railway', 광대한 미대륙의 동과 서를 잇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1862년, 링컨은 'Pacific Railroad Act'를 승인한다. 엄청난 공사비와 인력이 투입될 이 사업의 주체로는 두 개의 회사가 선정되었다. 센트럴 퍼시픽 철도(Central Pacific Railroad)와 유니언 퍼시픽 철도(Union Pacific Rail Road)가 그 주역들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에서 시작되는 센트럴 퍼시픽 철도와 동부의 유니언 퍼시픽 철도를 잇는 공사였다. 그렇게 동과 서에서 두 회사는 철로를 놓기 시작했다. 양쪽의 선로가 만나는 때가 미국의 동서 횡단 철도가 개통되는 날이 될 터였다.   철도의 필요성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뉴멕시코의 보스케 레돈도 보호구역(Bosque Redondo Indian Reservation)에 미 정부는 정기적으로 식량을 조달해야 했다. 거칠고 황량한 보호구역의 인디언들은 외부의 식량 조달에 의존해야했다. 텍사스의 소떼들을 이동시키는 'Goodnight-Loving Trail'은 그 대표적인 통로였다. 전쟁이 끝난 후 북부의 쇠고기 수요가 증대했고,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운송 수단이 필요했다. 연방 정부는 두 철도 회사에 막대한 자금을 대출해서 공사를 하도록 했다.    선로 공사를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아일랜드, 멕시코, 독일, 영국, 전직 군인과 해방 노예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공사 구간 곳곳에서 그들이 받는 임금을 노린 매춘부, 포주, 도박장 운영자, 총잡이, 술집이 흥청거렸다. 그렇게 갑자기 많은 인구가 유입되자 남부 대평원(Grea

코레에다 히로카즈가 묻는 '가족'의 의미,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 2018)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13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Like Father, Like Son )'에서 혈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 평범한 회사원 남자는 어느 날, 자신의 친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뀌어 다른 집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놀랍고 당황스러운 것은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도 마찬가지. 서로 뒤바뀐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두 집안은 당분간 시간을 갖기로 한다. 남자는 정기적으로 먼 거리를 운전해서 아들을 만나고 온다. 그가 차로 지나는 고속도로 장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길게 이어진 전선주의 선들이었다. 그것이 꽤 흥미롭게 보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선들로 '혈연'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 가족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그런 질문에서 더 나아가 그는 2018년작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에서 혈연이 아닌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도쿄의 비좁고 낡은 어느 주택, 그곳에서 사는 쇼타에게는 할머니와 부모, 이모가 있다. 그런데 쇼타와 아버지가 동네 마트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영 이상하다. 아버지 오사무는 아들에게 마트의 물건들을 훔쳐오게끔 수신호를 보내 지시한다. 자신이 직접 훔치는 것도 아니고, 아들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아버지라니 참으로 몹쓸 사람이다.   훔치는 것은 쇼타의 엄마도 마찬가지. 세탁부 일을 하면서 세탁물에서 나오는 소소한 물건들을 죄다 챙긴다. 오사무는 어느 날, 쇼타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베란다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유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유리를 데리고 있으면 문제가 될 줄 알면서도,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에게는 다시 돌려보낼 수 없어서 그렇게 유리는 '린'이라는 이름의 막내딸이 된다. 곧 집안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4편

피비린내와 포연(砲煙) 속에서; 4편 Death Runs Riot (1856–1868), 1시간 24분   다큐 'The West'의 특징은 미시사(微視史)적인 관점을 취했다는 점이다. 지난 3편에서 골드 러시에 동참한 농부 윌리엄 스웨인의 편지글을 주요한 얼개로 삼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4편에서는 1850년대에 캔자스에 살았던 찰스 러브조이(Charles Lovejoy)목사의 부인 줄리아의 편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노예제를 둘러싼 미국 내의 극심한 갈등은 마침내 내전으로 이어진다. 러브조이 부인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 시기의 혼란과 고통을 증언한다. 개인의 서간, 일기와 같은 사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조망하는 역사적 사건들은 관객들에게 생생한 목소리로 되살아난다.   '노예제'는 미국의 오랜 근심거리였다.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의 근원이 '종교'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에는 당시에 4백만 명에 이르는 이들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어떻게 기독교가 국가적 이념이나 다름없는 이 나라에서 노예제가 존립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거기에 반대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노예 폐지론자(abolitionist)들이었다. 찰스 러브조이 목사도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1855년, 러브조이 목사는 가족과 함께 캔자스로 이주한다. 그가 원한 것은 금이나 땅, 모험이 아니었다. 단 한 가지, 노예제를 폐지하고 그 땅에 자유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가 선택한 캔자스는 노예제의 격전지였다. 1854년에서 1859년에 이르는 시기에 찬성론자와 폐지론자들이 맞붙어 싸움을 벌였다. 당시 미국인들은 그것을 'Bleeding Kansas'로 불렀다.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왜 캔자스는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논쟁의 진앙지가 되었을까? 북부는 이제 노예제를 더이상 지지하지 않았으나, 남부의 입장은 달랐다. 남부인들에게 노예는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 재산을

어느 포르노 배우의 고백, The Rise and Fall of a Porn Superstar(2020)

    1997년에 첫 방송을 탄 BBC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Storyville'은 자체 제작한 다큐를 비롯해 해외의 여러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소재와 주제를 망라하는 이 시리즈에는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많다. 작년 2월에 방영된 'The Rise and Fall of a Porn Superstar(2020)'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느 포르노 스타의 흥망성쇠'쯤 될 것이다. 게이 포르노 스타의 7년여에 걸친 성공과 몰락의 과정을 담은 이 다큐는 파격적인 소재가 눈길을 끈다. 아마도 우리나라 공중파에서 이런 다큐를 방영한다면 당장 고객 민원실 전화가 터져나가겠지만, 영국은 좀 다른 모양이다. 이 다큐는 BBC가 직접 제작한 것은 아니고, 2018년에 Tomer Heymann 감독이 만든 'Jonathan Agassi Saved My Life'를 부분 편집한 것이다. 선정적 소재이다 보니, 과도한 수위의 장면이 약 15분 가량 삭제되었다. 제작자 Heymann이 인터뷰에서 이 다큐를 영화제 상영용 무삭제 버전과 편집 버전 두 가지로 만들었다고 하니, BBC의 자의적 편집은 아니다.   다큐의 주인공은 이스라엘 출신의 Jonathan Agassi라는 게이 포르노 배우이다. 다큐는 그의 일상과 가족의 모습을 따라가며 포르노 배우가 아닌, 인간 조나단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해준다. '조나단 아가시'라는 이름은 예명으로 그는 그 이름으로 시작한 배우로서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다큐의 원제목 '조나단 아가시가 날 살렸다'라는 뜻은 자신의 예명이 불운한 성장기를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뜻이다.   다큐는 평범한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게이 포르노 업계의 단면들을 담아낸다. '산업'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 세계에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고 엄청난 돈이 흘러 다닌다. 매력적인 외모와 연기력으로 단숨에 게이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1편

  1편 "The People" (to 1806)              1시간 22분 1. 들어가며   존 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 1956)'는 수정주의 웨스턴(Revisionist Western)의 대표작이다. 존 웨인이 연기한 이든은 인디언에게 납치당한 어린 조카 데비를 찾기 위해 긴 세월을 보낸다. 이든이 인디언들에게 보여주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잔혹함과 적개심은 이전의 웨스턴 캐릭터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선한 백인'과 '악한 원주민'의 이분법적 경계선은 조금씩 흐려지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래전, 미국 영화사 수업 시간에 나는 그 영화 '수색자'를 발표하는 과제를 맡았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이든이 데비를 찾는 데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였다. 그는 어린 조카가 아가씨가 될 때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감독이나 영화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인디언들에 대한 자료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 분포했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점점이 흩어진 서로 다른 수십 개의 부족들이 미국 지도 속에 엉켜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켄 번즈는 미국 역사에 대한 일련의 다큐들로 명성을 쌓아왔다. 가장 유명한 10부작 미니 시리즈 'Jazz'를 비롯해 '남북 전쟁(The Civil War, 1990)', '금주법(Prohibition, 2011)'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조망하는 다큐를 내놓았다. 공영 방송사 PBS와의 협업을 통해 방영된 그의 다큐들은 미국을 이해하는 교과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8부작 'The West'로 미국 서부사를 살펴본다. 과연 '서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고 찾았는가? 영상으로 떠나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2, 3편

2편 "Empire Upon the Trails" (1806–1848)     1시간 24분 3편 "Speck of the Future" (1848–1856)        1시간 25분   3. 새로운 제국의 탄생   영국에서 독립한 신생국 미국은 점차 자신들의 힘을 축적해 나가고 있었다. 미국은 무엇보다 영토 확장에 열을 올렸다. 거대한 루이지애나주를 프랑스에게서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서남부 지역이 새롭게 눈에 띄었다. 그곳은 신생 독립국 멕시코의 땅이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게서 독립한 이후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멕시코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혼란기, 미약한 힘을 지닌 멕시코의 지배하에 그 땅의 실질적 주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러 부류의 다양한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이들은 '마운틴맨(Mountain man)'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버 가죽과 곰 모피를 거래하며 살았던 사냥꾼들로 인디언들과 지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피 무역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830년대에 끝물에 접어들었고, 마운틴맨들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그들은 독보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탐사대와 군인들 무리에 들어간다. 서부의 영웅 키트 카슨(Kit Carson)은 그 시기를 대표하는 마운틴맨이었다.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들은 버팔로와 땅을 두고 서로 경쟁했다. 특히 그들이 성지로 여기는 'Black Hills'를 둘러싼 싸움은 매우 치열했다. 그러는 사이 텍사스에서는 새로운 주인 자리를 두고 싸움이 일어났다. 1836년, 샘 휴스턴이 이끄는 텍사스군이 산타 아나의 멕시코 정부군을 물리친다. 텍사스 공화국이 수립되고, 이제 미국은 그 지역 인디언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한다. 서부로, 서부로 새로운 땅을 향해 미국인들이 끊임없이 밀고 내려왔다. 인디언들은 계속 밀려나면서 자신들의 땅을 잃어가고 있었다.   1847년, 박해받는 신생

과소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 두 편, 'Charley Varrick(1973)'과 'Straight Time(1978)'

  과소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 두 편; 'Charley Varrick(1973)'과 'Straight Time(1978)' 1. 지적 액션 스릴러의 모범, Charley Varrick(1973)   은행 강도가 은행을 털었다. 정신없이 돈뭉치를 담아왔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훔친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좋아서 환장하겠는 동료 하먼과는 달리, 영화의 주인공 찰리 베릭은 근심한다. 자신들이 턴 시골 은행에 그렇게 큰 돈이 있는 것이 수상쩍다. 분명히 구린 냄새가 나는 돈이고, 그 돈 때문에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돈 시겔(Don Siegel) 감독의 1973년작 'Charley Varrick'은 그렇게 훔친 돈 76만 달러를 두고 마피아와 늙은 강도가 벌이는 한 판 승부를 그린다. 주인공 찰리 베릭 역은 월터 매쏘(Walter Matthau)가 맡았는데, 그가 누구냐 하면 1993년작 '개구쟁이 데니스(Dennis the Menace)'에서 꼬마 데니스에게 번번이 골탕먹는 영감님으로 나왔더랬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 '찰리 베릭'과 같은 월척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역을 거절하자 매쏘에게 돌아간 행운인 셈인데, 정작 매쏘는 내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큰둥하기는 이스트우드의 캐스팅을 원했던 돈 시겔 감독도 마찬가지. 감독과 배우의 삐그덕거림에도 이 영화는 꽤 좋은 만듦새를 갖고 있다.   이제, 어떻게든 자기들 돈을 되찾으려는 마피아 일당과 그 돈을 필사적으로 빼돌리려는 강도들과의 싸움은 불가피하다. 원래 4명이었던 일당은 1명이 현장에서 죽고, 베릭의 아내가 도주 중에 총격으로 죽어서 이제 두 명이 남았다. 베릭은 몇 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은신해야만 마피아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고 하먼에게 말하지만, 하먼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혈기에 넘치는 경솔한 하먼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베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