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 총기 난사범을 키운 것은 누구인가, Raising a School Shooter(2021)
"나는 그 아이가 그곳에서 죽었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Sue Klebold는 그랬다. 수의 아들은 1999년에 있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Columbine High School massacre)의 주범인 Dylan Klebold였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Elephant, 2003)'는 그 사건을 극영화로 만든 것이다.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2021년작 다큐 'Raising a School Shooter'는 학교 총격 사건 주범을 아들로 둔 세 부모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다큐는 BBC Four의 다큐 프로그램 'Storyville'에서도 방영되었다.
딜런
클레볼드와 친구 에릭 해리스가 저지른 총기 난사로 15명이 죽었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자신의 아들이 주범일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수는 차라리 아들이 그곳에서 죽기를 바랬다고 말한다. 딜런과 에릭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이후,
수에게는 총격범을 키워낸 엄마라는 비난과 분노가 쏟아졌다. 1988년, Atlantic Shores Christian
School에서 니콜라스 엘리엇은 3개의 화염 폭탄, 반자동 권총 및 200발의 탄약을 가져가 교사 1명을 죽이고 다른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니콜라스의 아버지 클레런스는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인 아들을 30년 넘게 기다리고 있다. 2001년의
'Santana High School shooting' 사건의 주범인 15살 앤디 윌리엄스는 총기로 2명의 학생을 죽이고,
1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제프는 50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 중인 앤디의 아버지이다.
'당신들이 자식을 잘못
키운 거야'라고 그 세 명의 부모를 비난하는 것은 사건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자들은 좀
다른 관점을 채택했다. '과연 그것이 온전히 그 부모만의 잘못일까?', 그런 질문에서부터 이 다큐는 출발한다. 물론 목숨을 잃은
희생자와 평생을 안고 갈 후유증을 얻게된 부상자들이 존재하는데, 총격범의 부모도 피해자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Raising a School Shooter'는 범인들 부모의 개인적인 일상을 담담히 응시한다. 그들 부모에게도 살아가야할 남은
시간들이 있다.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동네 술집에 들르고, 마트에 가는 일상의 시간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들은 과거의 그림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세 명의 부모 가운데 가장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딜런의 엄마 수 클레볼드이다. 총격 사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장례식을 치룰 때, 수는
관에 누워있는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제발 너를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며 울었다. 경찰이 사건 발생 6개월 후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수는 아들의 범행이 계획적이라는 것을 부인했다. 어떻게 자신의 아들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모든 것들이 다 죽어버렸어요. 하느님도, 진실에 대한 내 믿음도, 내 가족과 딜런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조차도요.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난 거죠."
세 명의 부모들은 대중과 언론의 비난을 받았고, 자신들이 속한 지역 공동체에서 배척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총격범의 부모'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딜런의 엄마 수가 사건의 원인으로 아들의 정서적 문제와 성격적 결함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과는
달리, 다른 두 총격범의 부모 클레런스와 제프는 좀 다른 입장에 서있다. 그들은 자식이 저지른 범행이 크나큰 범죄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거기에는 학교 폭력이라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니콜라스와 앤디는 모두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았다.
클레런스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가혹한 형량과 가석방 신청이 6번이나 거부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겪는 인종적 편견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위치를 에둘러 표현한다. 30년 넘게 감옥에 있는
아들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70대 노인의 바램은 뻔뻔한 것일까? 어쩌면 그는 살아있는 동안 감옥 밖에서 아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앤디의 아버지 제프는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서 삶을 꾸려감으로써 자식이 드리운 과거의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수는 딜런의 성장과정에서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정서적 고통과 성격적 결함을 깊이 성찰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해나갈 바를 찾아냈다.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데에 목소리를 냈다.
책을 펴내고 강연도 했다. 이 강인한 엄마는 살아왔던 지역 공동체를 떠나지 않았다. 요가를 하고, 댄스 수업을 듣는 수의 일상을
보는 것은 관객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수는 총격범의 엄마로서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할 죄책감과 함께, 아들의 죽음으로
자신과 가족이 겪었던 심리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은 수와 제프, 클레런스, 이 세 명의 총격범 부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과 마주한다. 과연 '학교 총격범을 길러낸 것(Raising a School
Shooter)'은 누구인가? 결국엔 '만약(if)'으로 시작되는 가정문의 질문들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만약 그 부모들이
청소년 자녀의 정서적 문제를 좀 더 일찍 알아차리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만약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었던
괴롭힘과 폭력의 문제를 학교 당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섰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지게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쉽게 총기에 접근할 수 없었더라면...'
다큐가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자막이 뜬다. '1970년
이후 미국의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은 1677건이며, 598명이 사망했고 1626명이 부상했다. 총격 사건 주범의 연령은
18세 이하이다.' 2012년에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Sandy Hook Elementary School shooting)'이
발생했을 때, 나는 그 사건이 미국 사회에 총기 규제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총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냈다.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서의
'총기의 소유에 대한 자유'는 미국 수정 헌법 2조에 보장되어 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자경권의 법적 개념, NRA(전미
총기 협회)의 막강한 로비력, 총기에 대한 미국민들의 격렬한 찬반 양론, 그 모든 것이 총기 문제에 축약되어 있다. 합리적이고
획기적인 방식의 총기 규제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다큐에 나온 부모와 같은 이들, 그리고 학교에 총을 들고 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들이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게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이 통찰력 있는
다큐는 관객들로 하여금 청소년의 학교 총기 범죄를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켜 성찰하게 만든다.
2. 변태 공원의 그들, Pervert Park(2014)
미국 플로리다주의 Saint Petersburg에 가장 위험한 트레일러 공원(Trailer Park, 이동식 주택 단지)이
있다. 'Pervert Park'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100여명의 출소한 성범죄자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각각 덴마크와 스웨덴
출신인 부부 제작자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2014년작 'Pervert Park'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변태들의 공원'쯤 될 것이다. 그곳에는 성범죄자의 사회복귀와 재활을 돕는 민간인들이 있다. 20년 전, 아들이 체포된
이후에 성범죄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자선 사업가는 그들이 출소한 이후에 겪는 주거 문제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곳이 바로 그 'Pervert Park'였다. 다큐는 그곳의 거주자들과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모습을 담았다.
성범죄자와 이웃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마땅히 살 곳을 구하지 못해 'Pervert Park'에 모인 이들은 모두
성범죄자들이다. 이 다큐를 보려는 이들은 우선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아 두어야만 한다. 온갖 종류의,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다큐도 역시 BBC 채널 Four의 'Storyville'을 통해 2019년에 방영이
되었다. 공영방송으로서 BBC는 자신들이 가진 사명감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핏 보기에 성범죄자들이 나오는
이런 다큐를 공중파를 통해 내보낸다는 것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깊이있는 다큐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그런 관점에서 과감하게 이 다큐의 편성을 결정한 'Stroyville' 제작진이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일종의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로 운영되는 그곳에는 거주자들을 위한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비롯해 취업 지원과 생활 지원이
이루어진다. 상주 상담가는 자신이 왜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도왔던 그는 한 명의
성범죄자를 재활시킨다면 10명의 피해자들을 막을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진행하는 집단 상담에서
거주자들이 말하는 범죄 경력은 충격적이다 못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성추행 범죄자, 소아성애자, 강간범들은 무미건조하게 범죄와
삶의 이력을 털어놓는다. 성범죄자들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도 있다.
"결국엔 다 자기변명일 뿐이죠. 모두들 한다는 말이 다 어린 시절에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거야. 그런 일 겪었다고 모두 성범죄자가 되나?"
동성애자로 자신도 성범죄자인 남자는 상담에 참여한 이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큐에서 인터뷰에 나오는 이들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대부분 끔찍한 성학대와 추행으로 얼룩져 있다. 마치 악습이 대물림되듯 성범죄 피해자였던 그들은
성인이 되어 가해자의 위치로 쉽게 자리바꿈을 한다. 아마도 이 다큐에서 가장 비극적인 경우는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여자가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저질렀던 범죄일 것이다. 여자는 아들과 격리되어 감옥에서 살다 나왔고, 그 아들은 커서 비행을
저지르다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정말이지 범죄와 트라우마의 악순환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얼마 안되어 성범죄로 감옥에 다녀온 20대 엘리트 성범죄자도 있다. 미성년자 추행죄로 1년을 살다 나온 그는 그곳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 5년, 10년 살다 나온 것에 비하면 자신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안도한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자신을
따라다닐 성범죄 이력은 이 청년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관리자 일을 하고 있는 40대의 남자는 살아온 인생 절반에 해당하는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과연 'Pervert Park'에 사는 그런 이들에게 재활, 사회로의 복귀는 실현 가능한 명제일까?
결국 다큐가 던지는 질문은 그런 것이다. 성범죄자들을 감옥에 영구격리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들의 재범 확률을 낮추고 사회
복귀를 도울 것인가?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회에 들어온 이들을 일반인들은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모두 다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사회적 낙인 3부작(trilogy of
social stigma); Pervert Park(2014), Death of a Child(2017), Raising a
School Shooter(2021)'의 시작인 이 작품은 그들이 이후 제작할 다큐의 청사진으로 자리한다. 공동 제작자로서
Barkfors 부부는 범죄가 개인과 사회의 연결망 속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다큐의 마지막에는 인터뷰했던
'Pervert Park' 거주자들의 범죄 이력이 차례대로 제시된다. 다큐 이후에 그들은 '변태 공원'을 떠나 사회 속으로
돌아갔을까? 'Pervert Park'는 사회가 그들을 위한 생존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고 있음을 일러준다.
*사진 출처: filmaffinity.com
**사진 출처: spectacularoptical.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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