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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3의 게시물 표시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2편: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Akira Kurosawa) 2. 구로사와 아키라가 그려낸 전후 청춘 세대의 초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는 자꾸만 땅바닥을 내려다 본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누가 피우다 버린 담배 꽁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망설이던 그는 마침내 꽁초를 주워든다. 그때, 남자에게 다가온 젊은 여자가 책망하듯 남자의 손등을 가볍게 친다. 그제서야 남자는 멋적은듯 꽁초를 떨어뜨린다. 남자와 여자는 연인 사이이다. 일요일, 두 사람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 친구를 보아도 그다지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남자의 행색은 꾀죄죄하다. 그렇다. 그에게는 돈이 없다. 막상 여자 친구와 만나 돌아다니려고 생각하니 남자는 자신의 비어있는 지갑이 신경쓰인다. 여자 친구는 약간의 용돈을 가지고 있다며 남자를 안심시킨다. 과연 이 연인들은 멋진 일요일을 보낼 수 있을까...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은령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이 개봉된 그 해에 영화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을 선보였다. 이 영화는 가난한 연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마사코와 유조, 수중에 35엔 밖에 없는 연인들의 데이트는 지지리도 궁상맞다.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마땅히 갈만한 데도 없다. 마사코는 교외에 있는 견본 주택 전시장이 입장료가 무료이니 가보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이 가서 본 견본 주택은 가격이 10만엔에 이르는 멋진 집이다. 마사코는 유조에게 언젠가 자신들이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지 않겠냐고 꿈을 갖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집에 얹혀 사는 백수 신세인 유조의 귀에 그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마사코와 유조의 데이트 여정을 통해 전후 일본의 황폐한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1편: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다니구치 센키치(谷口千吉, Senkichi Taniguchi) 1. 산악 영화에 투영된 미군정의 문화 전략, 은령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1945년 8월, 일본의 침략 전쟁은 처절한 패배로 끝을 맺었다. 곧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General Headquarters) 가 패전국 일본을 점령, 통치했다. GHQ는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새롭게 개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청사진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의 전환,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악습의 타파,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인본주의적 사상의 전파를 담고 있었다. 정치와 사회 체제의 개혁과 함께 일본 국민의 의식구조 전환도 시급한 과제였다. GHQ는 일본이 침략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전쟁의 책임을 자각하고 반성하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의 통제와 검열은 필수적이었다. 언론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의 미디어는 GHQ의 엄격하고 세심한 관리를 받았다.   일본의 영화 산업은 그런 기류에 발빠르게 적응했다. 패전 직후 영화사들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제작 스튜디오를 재건하고 영화 인력을 재편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영화사들이 중점을 둔 것은 GHQ의 검열 기준에 적합한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군국주의 국가 일본의 정치 선전(propaganda)에 충실했던 영화는 이제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상정된 미국의 가치 기준을 설파하기 위해 앞장섰다. 미군정(美軍政)은 이러한 영화사들의 변화를 열렬히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영화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은 미군정 치하에서 만들어진 영화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다니구치 센키치(谷口千吉, Senkichi Taniguchi) 감독의 이 영화는 각색 작업을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Akira Kurosawa)가 맡았다. 전후 일본을 이끌 중요

게임에 갈아 넣어진 모든 것, 인디 게임(Indie Game: The Movie, 2012)

  패크맨(Pac-Man)을 해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가정용 컴퓨터가 처음으로 나왔던 때가 198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는데, 그걸 친구네 집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연초록색 화면에 동글뱅이 녀석이 과일이며 이것저것 먹으며 점수를 쌓는 게임. 동네 오락실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갤러그는 아주 인기가 많은 게임이었다. 그 시절의 오락실 기계들은 아이들의 용돈을 미친듯이 먹어치웠더랬다.   제임스 스월스키와 리잔 패조의 다큐 '인디 게임(Indie Game: The Movie, 2012)'은 게임 개발자의 일상과 삶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다큐는 'Braid', 'Fez', 'Super Meat Boy'의 게임이 발매되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다룬다. 그 게임을 만드는 이들은 거대 게임 회사가 아닌 독립적인 개발자로 자금난과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히는데, 다큐의 제목 '인디 게임'은 그런 그들이 개발하는 게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계에서도 인디 영화가 있듯, 게임의 세계에서도 인디 개발자들이 있다. 어디서나 자본과 설비가 우세한 거대 기업 보다 개인이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다큐에 나오는 게임 개발자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치룬다.   'Fez'를 만드는 필 피쉬는 4년째 게임 개발에 매달리는 중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동업자가 떠났고, 재정적으로도 파산 직전이며, 개인적으로는 여자친구와도 결별한다. 결국 모든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게임을 발매하고,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둔다. 'Super Meat Boy' 의 개발자 에드먼드와 토미 또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의 일상은 밤낮이 따로 없다. 모니터 화면에 늘 고정되어 있는 붙박이로, 에드먼드의 아내는 남편의 등만 보고 산다며 푸념을 하기도 한다.   "난 일상을 잃어버렸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외출을 하지 않아요

Memento Mori, 미세스 팡(Mrs.Fang, 2017)

    "점점 가라앉는 것 같아요. 침몰하는 배처럼..."   비좁은 팡 부인의 방에는 아들과 딸 내외를 비롯해 친척들로 북적인다. 68세의 팡 부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살거죽이 드러난 초췌한 얼굴, 가느다란 팔, 촛점을 잃은 눈동자, 입을 반쯤 벌리고 겨우 내쉬는 숨은 이제 곧 죽음의 소식이 전해지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중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 王兵, Wang Bing )의 '미세스 팡(Mrs.Fang, 2017)'은 임종을 앞둔 노인과 그 가족의 모습을 담아냈다. 죽어가는 이의 모습이 마치 서서히 물에 가라앉는 배를 떠올리게 한다고 가족 중 누군가 말한다.   임종의 과정은 길게는 몇 주, 짧게는 며칠이다. 죽음을 앞둔 이는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는데, 장에서 더이상의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매나 다른 혼수성 질환이 아니라면 깨어있을 때의 의식은 또렷하지만, 대개는 가수면 ( 假 睡 眠) 상태로 누워있다. 호흡이 불규칙해지는 시점은 이제 임종의 과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Death Rattle'이라고 알려진 그르렁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말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듣는 것은 가능하므로, 이때 가족들은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넬 수 있다. 내가 본 임종의 모습은 그러했다.   다큐의 첫 화면은 비교적 정정한 모습으로 자신의 방에 서 있는 팡 부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망하기 전 해의 가을이다. 해를 넘겨 여름의 초입인 6월에 이르자 부인의 상태는 악화된다. 다큐의 대부분은 열흘 동안의 팡 부인과 가족의 일상을 찍었다. 팡 부인의 주변 침대와 의자에 이리저리 흩어져 앉아있는 가족들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자신들의 일상을 비롯해 부인의 장례 절차에 대한 의논도 하고, 죽음의 징후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토대로 부인의 상태를 가늠하기도 한다. 간호를 맡은 가족은 부인의 등에 생긴

부자 가족의 가려진 일상, 베르사유의 여왕(The Queen of Versailles, 2012)

    "이렇게 큰 저택을 청소할 수 있겠어?"   여자는 자신의 가사 도우미들에게 웃으면서 그렇게 묻는다. 여자는 한창 건축 중인 자신의 대저택을 둘러보는 중이다. 이 집은 여자에게는 평생의 숙원과도 같다. 여자는 그 집에 '베르사유 궁전( Palace of Versailles)'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관사 'The'가 붙지 않았으니, 진짜 베르사유 궁전의 미국판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어마어마한 저택이기는 하다. 여자의 이름은 재키, 남편은 데이비드 시겔. 미국에서 부동산과 리조트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재력가이다.   Lauren Greenfield가 2012년에 제작한 다큐 '베르사유의 여왕(The Queen of Versailles )'은 재력가 부부의 화려한 일상을 촬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무려 17개의 욕실이 있는 대저택인데, 새로 짓는 베르사유 궁전은 30개가 될 거라고 재키는 자랑한다. 오랫동안 재키는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본떠서 만드는 새 저택에 어울릴 온갖 앤티크 가구들이며 장식품들을 사들였다. 그것들을 보관하는 전용 창고까지 있을 정도다. 이제 그 '꿈의 집'이 지어지기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고 생각한다.   부자라고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가 이 부부의 일상을 뒤흔든다. 거칠 것 없었던 사업은 자금 흐름이 막히면서 직원들의 대량 해고, 은행의 압류, 자산 매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다큐를 제작하는 감독에게 이건 생각지 못한 '호재'였는지도 모른다. 급전직하하는 부자의 모습을 담아낼 기회가 흔하겠는가? 꿈의 집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은 중단되고, 그들이 살고 있는 대저택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긴다.   입양한 재키의 조카 한 명을 비롯해 여덟 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와 가사 도우미들,

창작자의 종말, 데이즈(日子, Days, 2020)'

    차이밍량( 蔡明亮, Tsai Ming-liang)의 '데이즈( 日 子, 2020 )' 를 보고나서 나는 그의 '애정만세( 愛情萬歲, 1994)'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주인공 메이는 홀로 공원을 걷다가 갑자기 처철하게 목놓아 운다. 그 영화를 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메이의 울음은 소통에 대한 갈망과 결코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데이즈'를 보고 메이의 울음을 떠올린 것은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이다. 나는 차이밍량의 창작자로서의 마지막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슬픔을 느꼈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에 대한 종언( 終 焉 )이나 다름없다.   강(이강생 분)은 지독한 목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통증 때문에 꽤 견디기 힘든 침술 시술을 받기도 한다. 방콕에 사는 젊은 청년 논은 옷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마사지 일도 부업으로 하고 있다. 강은 방콕의 호텔에서 논에게 마사지를 받는다. 둘은 거리의 음식점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헤어진다. 이것이 '데이즈'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러닝 타임 2시간 6분을 어떻게 채운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지루하고 진부하며 보잘 것 없는 롱 테이크(long take)들의 연속이라고. 적게는 1~2분, 길게는 6~7분에 이르는 쇼트들이 계속 이어진다. 내가 각각의 쇼트들을 세어본 것이 아니라서, 추측하건대 이 영화 전체의 쇼트들은 50개 미만일 것이다.   이 영화의 비극은 영화를 본 관객이 '게이 포르노'라고 쏟아놓는 독설을 듣는 것에 있지 않다. 이것은 창작자의 종말과도 같다. 한때 눈부신 재능으로 빛났던 영화 감독이 이렇게나 망가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흔들리는 구름(2005)' 이후로 차이밍량의 영화를 끊었다. 뭔가 그의 영화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장면 뒤에 숨겨진 세상,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カメラを止めるな!, One Cut of the Dead, 2017)

  *이 글에는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20분. 그것은 내가 영화를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최소 감상 시간이다. 대개 괜찮은 영화들은 그 시간 기준에 그럭저럭 들어온다. 아주 좋은 어떤 영화들은 그 시간을 넘기는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그런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One Cut of the Dead, 2018)'는 그 20분을 넘겨서 무려 37분을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그저 그런 좀비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부터이다. 도무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이 조잡한 좀비 영화에는 한가지 특색이 있다. 원 테이크(single take)로 끊김없이 이어진다는 것. 좀 지루하다, 라고 생각할 즈음에 제목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One Cut of the Dead'는 이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영화 속의 영화. 이런 액자 구조 형식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구조를 택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느냐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엄청나게 긴 '한 컷'의 영화 뒤에 숨겨진 세상을 보여주고자 그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효과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우선 초반의 37분을 견뎌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인내는 충분히 보답받는다.   빠르게 찍고, 저렴한 비용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를 뽑아내는 것을 신조로 삼고 사는 삼류 감독 히구라시는 어느 방송국으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요새 유행하는 좀비 영화를 원 테이크로 찍어서 생방송으로 내보낸다는 것. 쉽지 않을 것 같은 이 좀비 영화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쥐뿔도 없는 주조연 배우들의 오만가지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골치 아픈데, 급기야 촬영 당일 두 명의 배우가 약속 장소에 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생방송은 곧 예정되어 있고 당장 배우 둘을 구하기도 어렵다. 삼류

인생의 봄을 기다리며, 입춘(立春, And the Spring Comes, 2007)

    별 볼 일 없는 작은 도시의 음악학교 성악 강사로 일하고 있는 왕차이링(장웬리 분)은 아주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파리 오페라단에서 프리마 돈나로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추녀까지는 아니지만 왕차이링의 외모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지저분한 피부와 작달만한 키, 살집있는 몸매는 오페라의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목소리만큼은 곱고 아름답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선은 베이징으로 거주지를 옮기려고 애를 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주증 (居 住 證)이 필요한데, 이미 거액의 돈을 건네준 베이징의 브로커는 늘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그런 왕차이링의 주변에 모여든 이들의 인생도 허섭하기는 마찬가지. 시시한 재능을 가진 화가 지망생, 그곳 사람들에게 냉대받는 게이 발레리노, 왕차이링의 목소리에 반해서 쫒아다니는 공장 노동자까지. 과연 왕차이링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빛을 볼까...   꾸창웨이( 顧長衛 , Changwei Gu) 감독의 2007년작 '입춘(立春, And the Spring Comes )' 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주변부에 자리한 이들이다. '예술가병'에 걸린 그저그런 인생들이 현실에서 바스라지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가병'과 비슷한 '영화병'이라는 것도 있다. 자신이 가진 예술과 영화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병. 그 병에는 별다른 치유책이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개는 청춘의 시간을 내던지다 망가지고 잊혀진다. 어쩌면 '입춘'의 주인공 왕차이링도 그 '예술병'에 걸린 사람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세월'과 '현실'이 그것이다. 흘러가는 시간과 엄혹한 현실이 어설픈 기대와 희망을 깨부수어 버린다.   왕차이링이 가진 재능이 보잘

음악 다큐멘터리의 모범, 나는 모건을 죽였다(I Called Him Morgan, 2016)

    1972년 2월 19일 , 뉴욕의 재즈 클럽 Slug's Saloon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은 유명한 재즈 트럼펫 연주자 리 모건(Lee Morgan) . 그에게 총을 쏜 사람은 사실혼 관계의 부인 헬렌 모건 (Helen Morgan)이었다. 엄청나게 많이 내린 눈 때문에 구급차는 늦게 도착했고, 모건은 결국 사망했다. Kasper Collin 감독의 다큐 '나는 모건을 죽였다(I Called Him Morgan, 2016)' 는 그 두 사람의 삶과 사건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아낸다.   이 다큐의 주된 내레이션은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헬렌 모건의 음성으로 진행된다. 재즈 칼럼니스트인 래리 레니 토마스(Larry Reni Thomas)는 자신의 강의를 듣던 헬렌 모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8년 후에 이루어진 인터뷰를 2개의 테이프에 녹음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 헬렌은 세상을 뜬다. 다큐에는 그렇게 이미 고인이 된 헬렌의 증언, 리 모건의 여러 지인들, 그리고 그 비극적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리 모건의 여자 친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 목소리들은 리 모건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트럼펫 선율을 배경으로 차분하게 그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을 향해 흘러간다.   사실 다큐의 우리말 제목은 상당히 자극적인데, 아마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이 제목은 메리 해런 감독의 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1996)'을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명한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에게 총격을 가한 과격한 레즈비언 작가 발레리 솔라나스, 전도 유망한 재즈 트럼페터를 총으로 쏜 부인. 그러나 이 다큐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메리 해런 영화처럼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말 제목은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사건의 그날 밤. 재즈 클럽에는 리 모건의 여자 친구가 와있었고, 마침 클럽에 들

바람 속의 아이들(風の中の子供, Children in the Wind, 1937), 손을 잡은 아이들(手をつなぐ子等, Children Hand in Hand, 1948)

    일본 영화사 수업을 담당한 선생은 일본에서 일본 영화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였다. 그 선생이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과 동기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들 가운데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고 했다.   "왜 영화를 항상 그런 식으로 봐요?"   선생은 일본 영화 속에 내재된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 집단주의와 가족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향수와 같은 맥락을 늘 놓치지 않고 보았다고 했다. 그건 식민 지배의 역사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영화 속에서 읽어내는 것이 일본인들의 눈에는 다소 낯설고 불편하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함께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하나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은 각 사람이 가진 문화적 배경, 그리고 경험의 층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한국인으로서 일본 영화, 특히 전후의 일본 영화를 보는 것도 서구인들이나 일본인들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시미즈 히로시( 清水宏, Shimizu Hiroshi) 감독의 1937년작 '바람 속의 아이들( 風の中の子供, Children in the Wind) 를 보았다. 그 한 편으로 리뷰를 쓰기에는 뭔가 좀 심심하고 모자른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오는 비슷한 영화를 하나 더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 게 된 영화는 이나가키 히로시( 稲垣浩 , Inagaki Hiroshi )의 1948년작 '손을 잡은 아이들( 手をつなぐ子等 , Children Hand in Hand) 이었다. 이 영화는 도저히 자막을 구할 수가 없어서 자막 없이 보았다. 둘 다 흑백 영화이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화질과 음질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 별 다른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 영화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거나 연구자들이나 볼 법한 영화들을 그렇게 두 편 보았다.   '바람 속의 아이들'에는 예기치 못한 송사에 휘말린 아버지의 부재를 겪는 어린

작은 쉼표같은 고흐 이야기, At Eternity's Gate(2018)

      "화가들은 당신처럼 다 미쳤소?"   "나도 잘 모릅니다. 아마 뛰어난 화가들은 그럴지도."   요양원에서 만난 전직 군인과 고흐는 그런 대화를 나눈다. Julian Schnabel의 2018년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At Eternity's Gate )' 는 고흐가 죽기 전에 체류했던 아를과 오베르에서의 행적을 그린다. 고흐 역으로는 배우 윌럼 더포가 열연했는데, 이 연기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정말로 상 받을만한 연기였다.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고흐의 모습은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화가이다.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 병원에 갇히기도 하고, 결국은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 온갖 불행의 총합 같은 인생. 그러나 그의 신화는 죽음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는 현대 미술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피카소를 넘어서는 불멸의 화가로 남았다.  Vincente Minnelli 감독의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 1956)' 에서는 커크 더글러스가 고흐 역, 앤소니 퀸이 고갱으로 나온다. 그 영화는 어쩌면 고흐에 대한 가장 평이하고도 무난한 초상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의 잘 알려진 인생 여정을 따라가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감독 줄리언 슈나벨은 관객들에게 고흐라는 화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에 촛점을 둔다. 우울과 광기,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고흐의 혼돈스러운 마음의 풍경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를 따라간다. 그러한 실험 영화적 시도는 시각적 피로를 가중시킨다. 정지된 쇼트들이 거의 없으며, 한마디로 미친 듯이 춤추는 쇼트들이 이어진다. 마치 '광기 어린 화가의 내면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내내 외치는 느낌을 준다. 그게 효과적이었냐고 묻는다면

과거의 긴 그림자, 나의 아들에게(地久天长, So Long, My Son, 2019)

    Wang Xiaoshuai의 2019년 영화 '나의 아들에게(So Long, My Son)' 는 러닝 타임이 무려 3시간이다. 보고나서 내가 느낀 것은 그렇다. 아니,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나 길게 영화를 찍다니... 이 영화는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간다. 과거와 현재가 그렇게 뒤섞여서 흘러가기 때문에 관객에게 꽤나 집중을 요구한다. 과거의 커다란 슬픔과 상처를 지닌 인물의 내면은 현재까지도 황폐하고 쓸쓸하다. 영화는 나름대로 치유와 용서에 이르는 여정을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피상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야오쥔(왕징춘 분)과 리윈(융메이 분), 잉밍과 하이옌 부부는 국영 기업에서 오랫동안 친한 동료로 지내왔다. 그러나 야오쥔의 아들 싱싱이 잉밍의 아들 하오와 댐에서 놀다가 빠져 죽는 비극적인 일이 생긴다. 야오쥔과 리윈은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치듯이 그곳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이를 입양해 싱싱이라는 이름으로 키운다. 그러나 삶은 결코 쉽게 풀리질 않는다. 고등학생이 된 새 아들 싱싱은 사고뭉치로 자라났다. 그럴수록 야오쥔의 마음속에는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야 했던 아이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정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 때문에 아내 리윈은 억지로 중절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리윈의 임신 사실을 당국에 고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하이옌이었다. 그렇게 두 가족 사이에 얽힌 슬픔과 원망의 실타래는 깊다. 그로 인해 드리워진 과거의 그림자에서 그들이 벗어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중국 영화에서 6세대로 분류되는 왕 샤오슈아이는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 Beijing Bicycle(2000)' 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대도시의 주변부를 맴도는 소년의 일상을 통해 급변하는 중국의 현실을 담아낸 그 작품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6세대( Sixth Ge

추리극의 외투를 입은 정치적 서사, Knives Out(2019)

  *이 글에는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는 어떤 면에서 범죄 수사물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 드라마로 인해 시청자들은 범죄 현장에서의 증거 수집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증거 분석에 사용되는 온갖 첨단 기법과 부검 과정에서 밝혀지는 의학적 사실도 접할 수 있었다. 증거물의 분석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놀랍도록 사실적인 화면에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그런 것에 익숙한 오늘날의 관객에게 Rian Johnson의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2019)' 은 좀 뜬금없는, 아주 구식의 추리물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추리 소설 작가로 부와 명성을 쌓아온 할란 트롬비는 85세 생일 다음날, 자신의 저택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타살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경위 엘리엇과 부하 경관 와그너, 그리고 이 영화에서 실질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분)이 할란의 저택을 찾는다. 트롬비 일가는 생일 저녁 각자의 행적들에 대해서 진술하게 되고, 그 와중에 할란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일가족들의 혼란과 분노는 극에 달한다. 놀랍게도 할란의 저택, 책의 저작권을 비롯해 모든 재산이 그의 건강을 돌보던 고용 간호사 마르타(아나 데 아르마스 분)에게 상속된 것. 과연 할란의 죽음은 타살일까, 자살일까? 마르타가 그의 재산을 전부 상속받는 것은 아무 문제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모든 이야기가 러닝 타임 130분에 걸쳐서 펼쳐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영화화한 일련의 작품들을 기억하고 있는 영화팬들이라면 이런 고전 추리물의 귀환은 꽤나 반갑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 영화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르큘 포와로를 꼽으라면 피터 유스티노프일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작품 ' Murder on the Orient Express(1974)'은 앨버트 피니가 포와로 역으로 나왔지만, ' Death on the Nile

12명의 상냥한 일본인(12人の優しい日本人 , The Gentle Twelve, 1991)

    Sidney Lumet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을 본 이들이라면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 ラヂオの時間, 1997)' 의 각본을 쓴 미타니 코키는 '일본에도 배심원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가정하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미국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Nakahara Shun 감독의 ' 12명의 상냥한 일본인(The Gentle Twelve, 1991)' 은 덜 무겁고 경쾌하다. 러닝 타임이 2시간 가까이 되는데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의 향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12명의 배심원들에게는 이름이 없고, 배심원 1호, 2호와 같이 번호가 부여된다. 영화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심원장을 맡은 1호의 제안에 따라 거수로 피의자의 유무죄를 평결하게 된다. 젊은 여성 피의자는 폭력으로 이혼한 남편의 재혼 요구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밀쳐서 트럭에 치여 죽게 만들었다는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배심원들은 재판 과정을 모두 보았고, 이제 평결을 내려야 한다. 미모에, 기구하고 가련한 인생사를 가진 여성 피의자에게 동정심을 느낀 배심원들은 별다른 토론도 하지 않고 전원 무죄 평결에 이른다. 그렇게 배심원들이 모두 방을 나서려는 순간, 배심원 2호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유죄를 주장한다. 그때부터 치열한 토론이 시작된다.   '12명의 상냥한 일본인'에는 토론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행태들이 다 나온다. 큰 소리로 우기기, 비꼬기, 사실 왜곡, 끼어들기와 거짓말, 감성에의 호소... 각각의 배심원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직업, 살아온 이력에 따라 피의자의 유죄와 무죄를 주장한다.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이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기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