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크맨(Pac-Man)을 해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가정용 컴퓨터가 처음으로 나왔던 때가 198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는데, 그걸 친구네 집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연초록색 화면에 동글뱅이 녀석이 과일이며 이것저것 먹으며 점수를 쌓는 게임. 동네 오락실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갤러그는 아주 인기가 많은 게임이었다. 그 시절의 오락실 기계들은 아이들의 용돈을 미친듯이 먹어치웠더랬다.
제임스 스월스키와 리잔 패조의 다큐 '인디 게임(Indie Game: The Movie, 2012)'은 게임 개발자의 일상과 삶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다큐는 'Braid', 'Fez', 'Super Meat Boy'의 게임이 발매되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다룬다. 그 게임을 만드는 이들은 거대 게임 회사가 아닌 독립적인 개발자로 자금난과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히는데, 다큐의 제목 '인디 게임'은 그런 그들이 개발하는 게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계에서도 인디 영화가 있듯, 게임의 세계에서도 인디 개발자들이 있다. 어디서나 자본과 설비가 우세한 거대 기업 보다 개인이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다큐에 나오는 게임 개발자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치룬다.
'Fez'를 만드는 필 피쉬는 4년째 게임 개발에 매달리는 중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동업자가 떠났고, 재정적으로도 파산 직전이며, 개인적으로는 여자친구와도 결별한다. 결국 모든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게임을 발매하고,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둔다. 'Super Meat Boy'의 개발자 에드먼드와 토미 또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의 일상은 밤낮이 따로 없다. 모니터 화면에 늘 고정되어 있는 붙박이로, 에드먼드의 아내는 남편의 등만 보고 산다며 푸념을 하기도 한다.
"난 일상을 잃어버렸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외출을 하지 않아요. 사회활동이랄게 없죠. 가진 돈이 없으니 쓸 돈도 없거든요. 데이트를 한다고 해도 태워줄 차도 없고 식사할 돈도 없어요. 혼자 먹을 밥은 살 수 있겠지만... 내가 희생한 건 인간 관계에요."
토미는 저녁의 동네 식당에서 혼자 그런 넋두리를 한다. 인디 게임 개발자의 자조적인 독백은 뭔가 짠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보다 보면 그렇다. 저것이 과연 인디 게임 개발자만의 고민이고 궁상맞은 삶인가? 예술의 다른 분야에서 창작을 하는 이들은 다 그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글을 쓰는 작가, 영화 만드는 이들, 음악하는 사람들, 그림 그리는 화가, 각양각색의 창작 활동을 하는 이들의 고민은 거의 엇비슷하다.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것인가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그러하다. 토미의 독백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는 그에 대해 '징징거리지 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다큐에서 아주 불편한 부분이다.
일상과 인간 관계를 희생하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게임으로 현실의 유저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다큐에 나온 인디 개발자들은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는다. 천신만고 끝에 발매된 게임은 성공적인 반응을 얻고, 토미와 에드먼드는 집도 장만한다. 토미의 '징징거림'은 그야말로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게임이 대박을 치면서, 인생도 순풍을 타고 나아간다. '인디 게임'에 나온 개발자들은 현재도 잘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인디 게임'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게임 개발자의 고충과 삶의 단면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다큐는 미시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거대 게임 산업 뒤에 가려진 불합리한 면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인디 게임과 그 유통 방식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서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데도, '스팀(Steam)'은 새로운 판매 방식이라는 그냥 짤막한 말 한마디로 퉁치고 넘어간다.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는 무수히 많은 창들이라고 본다면, 인디 게임이란 세계를 처음 들여다 보는 관객들을 위한 어느 정도의 배려는 있어야 했다.
그런 문제점 이외에도 이 다큐는 객관성 면에서도 실패한 지점이 있었다. 다큐에 나온 'Fez'의 개발자 필 피쉬가 동업자와의 결별에 대해 불만과 악감정을 토로하는 부분이 있는데, 막상 그 당사자인 동업자 디그루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다큐의 개봉 초기에는 동업자가 '인터뷰를 거부했다'고 엔딩 크레딧에 올라갔는데, 그걸 보고 격분한 디그루트가 항의하자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나중에 고쳤다. 뭔가 실수라고 보기에는 다큐 제작자로서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의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인디 게임'은 자신이 꿈꾸는 것을 게임을 통해 실현하려는 게임 개발자의 인간적 목소리를 잘 담아냈다. 그들은 단순히 큰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택한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것들을 게임의 세계에 펼쳐놓고, 유저들이 그 게임의 세계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는 이들이다. 창작자로서 그들에게 게임이란 세상을 향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희망인 셈이다.
"인디 게임을 만든다는 건, 제 안에 있는 약함(vulnerability)을 게임 안에 집어 넣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겁니다."
'Braid'의 개발자 조나단 블로우는 다큐의 마지막에 그런 말을 한다. 나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비단 게임 개발에만 한정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모든 예술 창작의 과정은 예술가 자신이 가진 내면적 약함과 불완전성에 기대고 있다. 그것을 작품 속에 집어넣고 그 어떤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 그 과정에서 '약함'이 빛나는 성취를 이루어내는 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한다면,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만드는 게임도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 작품이다. '인디 게임'은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갈아 넣어진'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다큐의 출연자들은 모두 성공했으나, 세상에는 그렇게 노력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많음을 우리는 잘 안다.
*사진 출처: gameplanet.co.nz('Super Meat Boy'의 공동 개발자 에드먼드와 토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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