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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크릿 네임(La Place d'une autre, 2021)'의 숨겨진 이야기

  *이 글에는 영화 '비밀과 거짓말: 시크릿 네임(2021)'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1. 밑바닥 인생 넬리의 선택   케이블 방송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채널은 국회방송(NATV)입니다. 외국의 다양한 다큐는 물론 괜찮은 영화도 방영합니다. 특히 '다양성 영화관'이라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끕니다. 주로 제 3세계 영화들, 아시아권을 비롯해 유럽 변방 국가의 영화들을 선정해서 틀어주거든요. 그 영화들의 작품성이 균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시청자들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특색있는 영화들을 틀어준다는 데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국회방송에서 방영한 프랑스 영화 '시크릿 네임(La Place d'une autre, 2021)' 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좀 길어요. '비밀과 거짓말: 시크릿 네임'이 한국어 제목이고, 영어 제목은 'Secret Name'이죠. 프랑스어 제목 'La Place d'une autre'은 번역을 해보면 '타인의 장소'가 되더군요. 제목부터 번잡스럽고 뭔가 의문을 품게 만드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거든요. 영화의 초반부만 보면, 약간의 스릴러 느낌도 있구요. 자, 그럼 영화 '시크릿 네임'의 주인공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죠.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10년대, 여자 주인공 넬리는 고아입니다. 하녀 생활을 하던 넬리는 주인집 남자의 추근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나옵니다. 하층민 고아 여성의 삶은 고단할 수 밖에 없지요. 별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한 넬리는 길바닥에서 구걸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 넬리에게 적십자사의 여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요. 넬리는 간호사의 일을 배우고, 전장에 파견됩니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졌거든요.   전쟁터는 매우 참혹한 곳이지요. 그렇...

관계와 삶에 대한 응축된 편린, Return to Seoul(2022)

  *이 글에는 영화 'Return to Seoul(2022)'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9년, 한국의 방송국 MBC에서는 스웨덴 입양 여성 수잔 브링크(Susanne Brink)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었다. 오랜 이별 끝에 마침내 친모와 재회하게 된 입양 여성의 사연은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사연은 곧 영화로 만들어졌다. 장길수 감독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Susanne Brink's Arirang, 1991)' 이 그것이다. 나는 1989년의 다큐멘터리도, 그 후에 만들어진 영화도 모두 보았었다. 또한 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 수잔 브링크(한국 이름 신유숙)가 암투병을 하다가 삶을 마감했다는 후일담까지도 잘 알고 있다. 수잔 브링크를 알고 있는 한국 관객이라면 영화 'Return to Seoul(2022)' 에서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 국적의 캄보디아 이민자 출신의 Davy Chou 감독은 자신의 한국인 입양아 친구에게서 이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프레디(Freddie)'. 한국 입양아 출신의 이 프랑스 여성은 태풍으로 취소된 항공편 때문에 한국에 잠시 체류한다. 2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프레디는 입양 기관을 통해 친부모를 만나고 싶어한다. 친부가 프레디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과는 달리 친모는 만남을 거부한다. 친아버지가 있는 군산에 간 프레디, 프레디는 3일 동안 할머니와 친아버지의 가족과 지낸다. 친아버지와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레디가 느낀 거리감과 문화적인 장벽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프레디는 끊임없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을 취하려는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다. 영화는 그 일로부터 2년 후, 5년 후, 그리고 프레디가 서른 한 살이 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펼쳐서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을 여는 노래는 신중현(Shin Jung-hyun) 작...

키오스크를 통해 바라본 사람과 세상, Le Kiosque(The Kiosk, 2020)

    2미터가 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여자는 하루를 보낸다. 파리 16구, 빅토르 위고 거리의 신문 가판대(kiosk) 는 4대에 이르는 여자 집안의 가업이었다. 여자는 대학에서 장식 미술을 전공했지만, 예술로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버거운 일이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잠깐 돕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은 6년 동안 이어졌다. 감독 알렉산드라 피아넬리(Alexandra Pianelli) 는 자신의 첫 장편 다큐 'Le Kiosque(The Kiosk, 2020)' 를 바로 그곳, 키오스크에서 찍었다. 감독이 머리에 두른 GoPro(액션캠) 와 카운터에 세워둔 iPhone 카메라에는 키오스크를 찾는 다양한 이들이 찍힌다. 새벽 5시, 키오스크의 셔터 문이 열리고 도시의 소음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다큐는 시작된다. 피아넬리는 자신이 서있는 카운터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한다. 벽에는 온갖 메모와 주의 사항, 단골 손님들의 캐리커쳐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거스름돈이 있는 돈통에는 그 자리를 거쳐간 가족의 손가락 자국들이 마치 오래된 화석처럼 남아있다.     키오스크의 첫손님은 노숙자 다미엔이다. 고양이를 안고 온 남자는 늘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어디선가 또 주워오는 것 같다. 금발의 노부인 마르셀은 유쾌한 대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레를 배우는 어린 꼬마 숙녀도 엄마와 함께 온다. 길을 묻는 청년도 있다. 매일 가게를 찾는 단골들과의 대화는 유쾌하고 정겹다. 달달한 간식을 들고와서 나누어주는 영감님도 있다. 여러 손님들이 오가는 가운데 피아넬리는 키오스크에서 자신이 처리해야하는 일들을 설명한다. 300개가 넘는 잡지의 위치, 가격을 숙지해야하는 것은 기본이다. 단골 손님들의 구매 선호도를 잘 알고 있으면 판매에 도움이 된다. 말을 걸어오는 온갖 손님들에게 적절히 응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러는 무례한 이도 있고, 추근대는 남자 손님도 있다. 카운터에 와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인간도 있...

상실과 고통에 대한 잔혹 동화, 내 몸이 사라졌다(I Lost My Body, J'ai perdu mon corps, 2019)

    인생에서 어떤 상실은 결코 회복될 수 없다. Jérémy Clapin 의 애니메이션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J'ai perdu mon corps, 2019)' 에서 주인공 나우펠에게 일어난 일이 그러하다. 바닥에 내려앉은 파리, 천천히 흐르는 피, 부러진 안경, 쓰러진 남자, 그리고 잘려진 그의 손. 화면은 흑백으로 변하고 어린 소년 나우펠과 그 부모가 보인다. 다시 컬러로 변환된 화면에서는 의학 연구소의 냉장고에서 손이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할 줄 아는 이 똑똑한 손은 거침없이 파리 시내를 질주한다. 고층 둥지에서 자신을 밀어내려는 비둘기의 목을 비틀고, 지하철 정류장에서는 라이터를 켜서 쥐떼의 공격을 막아낸다. 잘려진 손의 여정 위로 청년이 된 나우펠의 이야기가 컬러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흑백의 화면으로 겹쳐진다.   청년 나우펠의 현재는 고단하기 짝이 없다. 피자 배달부로 일하는 그는 매번 배달에 늦기 일쑤이다. 삼촌에게 얹혀 사는 나우펠에게 집은 길바닥 보다도 못한 곳이다. 비정한 삼촌은 나우펠의 몇 푼 안되는 일당을 빼앗고, 못돼먹은 사촌은 나우펠을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우펠은 가벼운 접촉 사고로 마르티네즈 부인의 피자를 약속 시간보다 늦게 배달하게 된다. 현관 인터폰으로 배달이 늦은 이유를 설명하던 나우펠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 호감을 느낀다. 그 여성의 진짜 이름이 가브리엘이며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우펠. 가브리엘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나우펠은 가브리엘의 삼촌 지지의 목공소에 일자리를 얻는다.   잘려진 손이 필사적으로 향하는 목적지가 나우펠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진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이후로 나우펠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접촉이 차단된 채 살아왔다. 피아노를 치는 우주인이 되고 싶었던 나우펠의 꿈은 그 비극적인 교통 사고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나우펠에게 가브리엘에 대한 사랑은 삶의 잃어버린 감각을 일...

노년의 암울한 초상: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 2021), 소용돌이(Vortex, 2021)

    "나 좀 죽게 네가 도와줘."   뇌졸중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딸에게 그렇게 부탁한다. 갑작스럽게 그 말을 들은 딸은 놀라움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François Ozon 감독의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 2021)' 는 매우 민감한 윤리적 주제를 다룬다.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 를 원하는 아버지 앙드레의 요청을 과연 딸 에마뉘엘은 수락할까?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Emmanuèle Bernheim 는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남겼다. 작가의 부친은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이라는 과정을 통해 삶을 마감했다. 영화 '다 잘된 거야'는 딸 에마뉘엘이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 은 안락사와는 좀 다른 개념의 죽음이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직접 치사량의 약물을 삼켜야 한다. 지난 9월 13일에 스위스에서 타계한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도 그렇게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3명의 사람이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그러한 방식의 죽음이 갖고 있는 윤리적 논란과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둔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프랑수와 오종은 깔끔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가족이 속한 계층적 배경이 '중산층'이라는 데에 있다.   에마뉘엘의 아버지 앙드레는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이며, 어머니는 조각가이다. 에마뉘엘도 작가로서 나름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병고는 이 가족의 삶에 불편을 끼치기는 하지만 뒤흔들 만한 재앙은 아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모친은 비서를 두고 힘겹게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

여자 안의 타인(女の中にいる他人, The Stranger Within a Woman, 1966), 어두워지기 전에(Juste avant la nuit, Just Before Nightfall, 1971)

  하나의 소설, 두 개의 다른 영화: 여자 안의 타인(女の中にいる他人, The Stranger Within a Woman, 1966), 나루세 미키오 어두워지기 전에(Juste avant la nuit, Just Before Nightfall, 1971), 클로드 샤브롤 원작 소설: Edward Atiyah, The Thin Line(1951)    1966년은 나루세 미키오에게 '스릴러의 해'였다. '여자 안의 타인(The Stranger Within a Woman, 1966)' 과 '뺑소니(Hit and Run, 1966)' 는 이전까지의 나루세 미키오와는 전혀 다른 영화적 궤적을 보여준다. '뺑소니'는 스릴러의 틀 안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이와는 달리 '여자 안의 타인'에서는 주인공이 남성이다. 치정 살인 사건에 연루된 남자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음울한 결말까지 더해져 영화는 무겁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다. 레바논 출신의 작가 Edward Atiyah 의 'The Thin Line(1951)' 을 각색한 것으로, 이 소설을 가지고 Claude Chabrol 도 영화를 만들었다. '어두워지기 전에(Juste avant la nuit, 1971)' 가 그것이다. 전자책으로는 원작 소설이 나온 것이 없어서, 대신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를 보고 원작의 세부적 내용을 추측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두 영화에는 서로 다른 감독의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간극이 존재한다.   클로드 샤브롤은 남자 주인공 샤를이 불륜 관계에 있는 여자를 죽이게 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변태적 욕망에 휩싸인 남자는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그가 죽인 여자는 친구 프랑수아의 아내이다. 클로드 샤브롤과는 달리 나루세 미키오는 살인 장면을 나중에 플래시백으로 제시한다. '여자 안의 타인'의 도입부 쇼트...

흘러가는 모든 것들, Clouds of Sils Maria(2014)

    "시그리드는 스무 살이라구요."   중년의 배우 마리아(줄리엣 비노쉬 분)는 자신을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연극의 배역 시그리드를 잊을 수 없다. 시그리드는 상사 헬레나를 유혹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치명적 매력을 지닌 배역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마리아에게 그 연극의 출연 제의가 다시 들어온다. 그러나 '시그리드'가 아닌 '헬레나'다. 그 역을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고 싫은 마리아는 자신의 에이전시 담당자에게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시그리드 역을 맡을 수 없는 마리아의 현실을 일깨워 준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 는 나이든 여배우가 직면한 현실을 그려내면서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늙음'이다. 마리아는 시그리드 역을 이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명확히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왜 나이듦을 '쿨하게' 인정하고 아주 현실적이고 산뜻하게 삶을 살아가지 못하느냐고, 누군가는 영화 속 마리아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지금 매우 젊거나, 현자이거나, 아니면 바보이거나.     마리아가 헬레나 역을 맡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과거의 빛나는 기억에 집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에 상대역 '헬레나'를 맡았던 배우가 1년 후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도 영 찜찜하다. 마리아는 그 배역을 맡는다는 것은 자신이 늙었으며, 배우로서도 전성기를 지났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거부하려고 하지만,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은 헬레나 역이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며 그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아사야스는 마리아와 발렌틴이 그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의 대본 연습하는 과정을 아주 흥미있는 연출로 보여준다. 분명히 배우와 ...

이 여배우를 보라, Personal Shopper(2016)

    어제,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TV를 틀었는데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좀 있으니 화면 우측 상단에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란 설명과 함께 '퍼스널 쇼퍼'란 제목이 뜬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가 궁금해서 보았다. 그래도 칸에서 상까지 주었을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나에게 매우 낯선 감독이다. 어떤 영화들을 만들었나 살펴보니, 필모그래피에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Clouds of Sils Maria, 2014) '가 뜬다. 아, 이 영화... 우연히 보다가 너무 재미없어서 중간에 꺼버린 영화였다. 줄리엣 비노쉬의 나이든 모습도 내게는 정말로 충격이었더랬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블루(1993)' 의 비노쉬는 얼마나 빛났던가. 아무리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늙어가는 여배우의 얼굴을 보는 것은 때론 가슴 아프고 견디기 힘들다. 그 영화에서 나이든 비노쉬와 대비되는 젊은 여배우가 나왔었는데, 바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였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내게 유부남 감독하고 바람난 철없는 여배우로 각인되던 참이었다. 결국 헤어지기는 했지만, 저 여배우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영화 경력을 이어나갈 것인가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다 어제 '퍼스널 쇼퍼(2016)' 에서 스튜어트를 다시 만났다. 이 영화에서 스튜어트는 퍼스널 쇼퍼 모린 역을 맡아서 아주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망해버린 영화를 심폐소생시켜서 다시 되살릴 정도로 좋은 연기다. 영화는 솔직히 말해서 공허한 껍데기 같다.   모린은 쌍둥이 오빠 루이스를 얼마 전 잃고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상태에 있다. 영매 ( 靈 媒) 였던 루이스가 죽은 이후에도 자신의 곁을 떠돈다고 생각하는 모린은 루이스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루이스의 집에서 심령체(ectoplasm, 죽은 영혼에서 발산되는 유동성 물체)를 발견하고 공포에 질린다. 그것이 ...

Olivier Assayas가 만들어낸 매혹적인 영화의 미로: Les Vampires(1915-1916)에서 Irma Vep(1996)에 이르는 길

  1. 진정한 팬심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Irma Vep(1996)   예전에 배우 장만옥이 프랑스 감독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둘의 인연이 이어졌었는지 궁금하기는 했었다. 그들이 'Clean(2004)' 을 찍었을 때는 그리 길지 않았던 결혼 생활이 끝난 뒤였다. 영화 'Irma Vep(1996)' 는 배우 장만옥과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를 이어준 오작교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들고 2년 뒤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래서 그런지 'Irma Vep'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감독의 팬심이 느껴진다. 그것도 아주 절절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화사 사무실. 홍콩 배우 매기 청(장만옥의 영어식 이름)은 이제 막 공항에서 오는 길이다. 매기는 르네 비달 감독의 영화 'Irma Vep'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영화사 사람들은 이 배우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저마다 꼬여버린 일정, 일거리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느라 바쁘다. 매기는 빡빡한 촬영 일정 속에서 외국인 스탭들과 작업해야만 한다. 거기에다 매기가 맡은 Irma Vep역은 매기에게도 너무 낯설고 이상하다. 몸에 꽉 끼는 검정 라텍스 의상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감독은 어디가 아픈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촬영 스탭들 사이에 쌓인 갈등은 고성이 오가는 싸움으로 번진다. 과연 매기는 이 괴상한 프랑스 영화를 무사히 찍을 수 있을까?   매기가 찍기로 한 영화는 무성 영화 시절의 Louis Feuillade 가 내놓은 'Les Vampires(1915-1916)' 를 원작으로 한다. 그 무성 영화의 여주인공 이름이 바로 Irma Vep . 르네 감독은 자신이 매혹된 무성 영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싶어한다. 매기는 그의 꿈을 실현시켜줄 동방의 뮤즈인 셈이다. 하지만 촬영은 엉키기만 하고 급기야 르...

중년의 위기를 견디는 여자, 다가오는 것들(L'Avenir, Things to Come, 2016)

    "그 여자한테 정원이나 잘 가꾸라고 해.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내버려두는 건 죄악이니까."   남편은 여자가 생겼다고 고백한다. 이 부부는 결별을 앞두고 있다. 나탈리는 해마다 여름이면 남편의 별장이 있는 해안가 마을을 찾았다. 별장의 정원은 나탈리의 애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이제 나탈리가 그곳을 찾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별장에서의 마지막 휴가, 그렇게 25년의 결혼 생활은 끝을 향해 간다. 미아 한센-뢰베(Mia Hansen-Løve) 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 2016)' 은 중년의 위기를 마주한 철학 교사 나탈리의 힘겨운 여정을 담는다.   적어도 남편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탈리의 삶은 괜찮았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나탈리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이다. 이제 생의 마지막에 접어든 나탈리의 모친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병고와 외로움을 호소한다. 한밤중에,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나탈리는 엄마의 호출을 받는다. 몸이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구급대를 부르는 것은 일상이다. 구급대원은 나탈리에게 모친을 챙기라며 한소리를 한다. 그 누구보다 딸의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 늙은 엄마. 나탈리는 엄마를 돌보는 일에 점점 지쳐간다.   그런 나탈리에게 남편은 만나는 여자가 있으며, 자신은 곧 집을 나갈 생각이라고 알려준다. 남편은 나탈리와 같은 철학 교사로서 두 사람은 삶과 지성의 공동체를 나름대로 잘 꾸려왔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무너져 내릴 기세이다. 엄마와 남편, 의지하고 믿었던 가족은 인정사정없이 나탈리를 마구 흔든다. 거기에다 평생을 두고 해온 일도 난관에 부딪혔다. 나탈리의 철학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젊은 세대의 가벼운 취향에 맞추라며 은연중에 압박을 가한다. 철학을 진지하고 엄격하게 받아들이는 나탈리는 그런 출판사의 요구가 못마땅하다. 학교에서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한창이다. 시위 학생들은 나탈리를 꼰대 기성 세대로 ...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의 영화에 나타난 계층과 여성의 문제: 제빵사의 아내(The Baker's Wife, 1938), 우물 파는 사내의 딸(The Well-Digger's Daughter, 1940)

  La femme du boulanger, The Baker's Wife(1938) La Fille du puisatier, The Well-Digger's Daughter(1940) 1. 제빵사의 아내, 마르셀 파뇰의 대표작   '마농의 샘(Manon des Sources, 1986)' 과 '우물 파는 사내의 딸(La Fille du puisatier, 2011)' , 두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리메이크 작품이다. 오리지널 영화를 만든 이는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 1895-1974)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극작가로 시작했다. 연극에서 거둔 성공은 영화로 이어졌다. 무성 영화가 이제 막 유성 영화로 전환될 무렵에 파뇰은 자신의 작품들을 영화화하면서 영화계에 안착했다. 그의 1938년작 '제빵사의 아내(The Baker's Wife)' 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행운은 '우물 파는 사내의 딸(1940)' 로 이어졌다. 파뇰은 두 영화 모두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희곡에서 갈고 닦은 그만의 유머러스한 문체는 영화에서도 돋보인다. 파뇰은 코미디의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당대의 사회를 영화 속에 투영한다.   '제빵사의 아내(1938)'는 지극히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시골 마을에 빵집을 연 제빵사 에마블레는 맛난 빵을 구워 마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그의 젊은 아내 오렐리가 양치기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다. 상심한 에마블레는 아내를 찾을 때까지 빵을 굽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빵 없이는 살 수 없는 마을 사람들, 급기야 마을 후작의 지휘하에 특별 수색대가 조직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제빵사의 아내를 찾아올 수 있을까...   에마블레가 빵집을 연 이 시골 마을은 그렇게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교리에 충실한 마을 신부는 좌파주의 교사와 언쟁을 벌인다. 대대...

모성을 다룬 두 편의 최신작: Petite Maman(2021), C'mon C'mon (2021)

    Céline Sciamma의 2021년작 'Petite Maman(2021)' 에는 아픈 엄마를 걱정하는 어린 딸이 나온다. 꿈과 같은 환상 속에서 8살 넬리는 자신과 같은 또래가 된 엄마를 만난다. 이 영화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다. 넬리는 '작아진 엄마' 마리온과 우정을 쌓아간다. 영화는 나름 소박한 감동을 주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영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왜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가... 넬리의 아버지는 배경처럼 자리할 뿐이다. 넬리가 방문한 마리온의 집에는 남자가 없다. 마리온의 아버지, 그러니까 넬리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이의 존재는 처음부터 지워져 있다.   'Petite Maman(2021)'에 감독 셀린 시아마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동성애자 감독의 주요한 관심사가 여성의 서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넬리는 할머니를 여읜 엄마의 상심을 위로하고자 애쓴다. 이 꼬마 아이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속이 깊다. 관객은 모친의 죽음이 넬리의 엄마가 지닌 내면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넬리에게 그런 엄마를 보는 일은 익숙했고,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돕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넬리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다. 그런 넬리의 바람은 어린 아이가 된 엄마, 마리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넬리가 마리온과 보낸 짧은 우정의 여정에서 넬리는 엄마의 우울과 불안의 근원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앓았던 병, 아버지의 부재... 그렇게 딸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얻는다. 귀엽고 사랑스런 넬리의 환상 여행은 많은 딸들이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법하다.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Petite Maman(2021)'은 바로 그 궁금증에 대해 셀린 시아마가 펼친 상상의 나래이다. 영화는 페미니즘 서사를 판타지 장르에 녹여...

생존의 법칙, Playground(Un monde, 2021)

    7살 노라는 오빠와 함께 이제 막 새로운 학교에 들어서는 참이다. 아빠의 품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눈물이 계속 난다. 그래도 오빠가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점심 시간에 급식실에서 오빠와 같이 앉으려는데, 선생님이 그러지 말라고 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란다. 다행히 말을 걸어오는 애들이 있다. 운동장에서 함 께 놀면서 조금씩 친해진다. 저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빠가 있다. 뭔가 분위기가 안좋은 것 같다. 오빠는 가까이 오지 말라며 막아선다. 키 큰 남자애가 오빠를 괴롭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걸 어쩌지...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어린 노라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듯 하다. 학교는 노라와 아벨 남매가 적응해야할 정글이다. 노라가 또래 아이들의 무리에 순조롭게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아벨은 어려움을 겪는다. 신체적 위협과 욕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아벨은 맨 아래로 금새 밀려난다. 어떻게든 오빠를 돕고 싶은 노라는 선생님을 부르고 아빠에게 이야기 한다. 괴롭히는 녀석을 어른들이 혼내주면 오빠가 편해질 거야... 그런데 노라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간다.   벨기에의 신인 감독 Laura Wandel의 데뷔작 'Playground(2021)' 는 어린 남매의 괴로운 학교 생활을 따라간다. 영화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괴롭힘과 따돌림 문제를 사실적으로 직시한다. 물론 교사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다. 교사는 얻어맞는 아벨을 떼어놓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는 주의를 준다. 문제는 교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이다. 괴롭히는 녀석들은 영악하고 교활하다. 적당히 신경을 긁고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지점을 파악해서 행동에 옮긴다. 아벨은 전보다 더 안좋은 처지에 놓인다.   이 영화의 원제는 'Un monde', '세계'라는 뜻이다. 완델은 인간 관계의 심리적 역동성을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완벽하게 구현한다. 강자와 약자, 또래 집단과 인정의 문제...

짝퉁의 품격, CODA(2021)

    '출발! 비디오 여행'의 인기 코너인 '영화 대 영화'. 김경식의 맛깔나는 해설은 언제 들어도 즐겁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전창걸의 구수한 입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영화 'CODA'를 보면서 그 코너에 딱 맞는 영화네, 싶었다. 이 영화는 2014년에 만들어진 '미라클 벨리에(La Famille Bélier)' 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작이다. 과연 'CODA'는 원작 영화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이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그냥 마음을 내려놓는 편이 낫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지는 범작이기 때문이다.   작은 어촌 마을, 루비에게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오빠가 있다. 아빠와 오빠를 따라 뱃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 씩씩한 아가씨는 가족의 대변인 노릇도 하고 있다. 루비의 부모가 병원에 가는 일, 어촌의 조합 일을 비롯해 집안의 대소사는 말을 할 줄 아는 루비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일들이 버겁기는 해도 루비는 묵묵히 해낼 뿐이다. 학교의 동급생들은 루비가 CODA(Child of deaf adult, 청각 장애인을 부모로 둔 아이) 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리며 무시한다. 그런 상황에서 별 생각없이 들어가게 된 합창반. 지도 교사 베르나르도는 루비의 재능을 발견하고 음대 진학을 권유한다. 하지만 집안의 생계가 걸린 뱃일은 루비의 도움이 없으면 해나가기 어렵다. 자신의 진로와 가족 사이에서 루비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루비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원작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주인공 폴라의 가족이 사는 농촌 마을은 어촌으로, 남동생은 오빠로, 파리의 음악 대학은 버클리 음대로 바뀐다. 내가 놀란 것은 등장인물들의 분장과 스타일링까지도 판박이처럼 베꼈다는 사실이다. '미...

버린 영화들 특집 2편: Annette(2021), Undine(2020), The French Dispatch(2021)

    버린 영화들 특집 2편   말 그대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려다가 쓸 말이 별로 없어서 그냥 버려둔 영화들 특집이다.  Annette(2021), 레오스 카락스 Undine(2020), 크리스티안 페촐트 The French Dispatch(2021), 웨스 앤더슨 1. Leos Carax가 만들어낸 따로 국밥 뮤지컬, Annette(2021)   Leos Carax의 '나쁜 피(1986)'와 '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본 것이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그동안 그의 이름을 통 들을 수가 없었는데, 뮤지컬 영화 '아네트(2021)'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가 만든 뮤지컬은 어떤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난 내 짧은 감상평은 이렇다. 뮤지컬 영화를 보고나서도 기억나는 뮤지컬 넘버가 없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아네트'는 실패작이다. 주연인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그의 가창 실력은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상대역인 마리옹 코티야르는 자기 목소리가 아닌 더빙을 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유명 소프라노 앤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곧 둘 사이에 딸 아네트가 태어난다. 그러나 앤이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하는 것과는 달리 헨리의 코미디는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정신적으로 불안해진 헨리는 앤과 떠난 요트 여행에서 예기치 않게 앤을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 경찰 조사에서 살인 혐의를 벗고 홀로 아네트를 키우는 헨리. 그는 딸에게 노래를 부르는 재능이 있음을 알아챈다. 인터넷에 올린 아네트의 영상이 폭발적 조회수를 올리면서 헨리는 아네트를 내세워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서는데...   조지 큐커의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54)' 에서 영화 감독 남편은 잘 나가는 배우 아내를 보며 알콜 중독으로 망가진다. 아내의 성공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자기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스타 탄생'의 ...

현실과 환상의 경계: City of Pirates(1983), After Hours(1985), Stranger than Fiction(2006)

  1. 망명자 감독이 써내려간 초현실주의적 'Vanitas', City of Pirates(1983)   정신분석학 입문 강의의 첫 번째 과제물은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내는 것이었다. 자유 연상, 말 그대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그 어떤 통제나 검열없이 털어놓게 함으로써 무의식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한 정신분석학적 도구를 발빠르게 수용한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프랑스의 작가로 초현실주의를 주창한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무의식의 표현을 위한 '자동 기술법(automatic writing)'을 착안해냈다. 비현실적 환상으로 채워진 영화 세계를 보여주는 칠레 출신의 감독 라울 루이즈(Raúl Ruiz)의 '해적들의 도시(City of Pirates. 1983)' 시나리오도 그런 방식으로 쓰여졌다. 라울 루이즈는 자신에게 떠오르는 무의식적 사고들을 종이 위에 무작정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영화를 찍었다.   영화는 '해외의 땅, 종전 1주일 전'이라는 의문의 자막으로 시작된다. 이시도르(Isidore)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는 어느 섬에서 어머니,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다. 이시도르는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의붓아버지의 성추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괴로워하는 이시도르는 방에 숨어든 어린 소년 말로를 만나게 된다. 가족들이 모두 살해당했다는 말로는 이시도르에게 약혼을 제안한다. 어린 약혼자 말로, 버려진 성에 사는 또 다른 추방자 토비, 이시도르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이한 여정에 나서는데...   자동기술법에 따라 쓰여진 시나리오를 관객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는 라울 루이즈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생각의 파편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이 다작 감독...

실패한 공화국의 이상, Les Misérables(2019)

    영화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2018년,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주인공 소년 Issa도 프랑스 국기를 몸에 휘감고 친구들과 기쁨을 나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이사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련이 펼쳐친다. Ladj Ly의 2019년작 영화 'Les Misérables'은 러셀 크로의 견디기 힘든 노래가 나오는 2012년작 뮤지컬 영화와는 제목만 같다.   감독 라지 리는 말리 태생의 프랑스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영화 속 배경인 파리 교외의 Montfermeil에서 자랐다. 이 감독은 논쟁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2011년에 '납치'와 '불법 감금'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지역 공동체와 사람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죠. 나 또한 내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하고 싶었어요(cineuropa.org와의 인터뷰 가운데)"   2005년, 파리 교외의 Clichy-sous-Bois에서 두 명의 무슬림 청소년들이 감전사로 죽었다. 경찰의 불시 검문검색을 피해 달아나려다 숨어든 곳이 변전소였다. 이 사건으로 약 3주간에 걸쳐 파리 근교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방화와 폭력사태가 촉발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었다. 외형적으로는 무고한 청소년들의 죽음에 분노해서 일어난 폭동이었지만, 거기에는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인 이민자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영화는 그 사건을 모티프로 취했다.     이사가 사는 동네는 전형적인 슬럼가로 매우 '거친 곳'이다. 아이들은 훔치고 뺏는 것이 일상이며,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