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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영화들 특집 2편: Annette(2021), Undine(2020), The French Dispatch(2021)

  

버린 영화들 특집 2편


  말 그대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려다가 쓸 말이 별로 없어서 그냥 버려둔 영화들 특집이다. 


Annette(2021), 레오스 카락스
Undine(2020), 크리스티안 페촐트
The French Dispatch(2021), 웨스 앤더슨


1. Leos Carax가 만들어낸 따로 국밥 뮤지컬, Annette(2021)

  Leos Carax의 '나쁜 피(1986)'와 '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본 것이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그동안 그의 이름을 통 들을 수가 없었는데, 뮤지컬 영화 '아네트(2021)'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가 만든 뮤지컬은 어떤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난 내 짧은 감상평은 이렇다. 뮤지컬 영화를 보고나서도 기억나는 뮤지컬 넘버가 없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아네트'는 실패작이다. 주연인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그의 가창 실력은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상대역인 마리옹 코티야르는 자기 목소리가 아닌 더빙을 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유명 소프라노 앤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곧 둘 사이에 딸 아네트가 태어난다. 그러나 앤이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하는 것과는 달리 헨리의 코미디는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정신적으로 불안해진 헨리는 앤과 떠난 요트 여행에서 예기치 않게 앤을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 경찰 조사에서 살인 혐의를 벗고 홀로 아네트를 키우는 헨리. 그는 딸에게 노래를 부르는 재능이 있음을 알아챈다. 인터넷에 올린 아네트의 영상이 폭발적 조회수를 올리면서 헨리는 아네트를 내세워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서는데...

  조지 큐커의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54)'에서 영화 감독 남편은 잘 나가는 배우 아내를 보며 알콜 중독으로 망가진다. 아내의 성공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자기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스타 탄생'의 주인공과는 달리, '아네트'의 헨리는 그 화살이 아내에게 향한다. 결국 헨리의 비뚤어진 분노와 내면의 욕망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자기 자신마저 파멸로 이끈다. 이 어둡고 개연성 없는 서사에는 무엇보다도 현실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자크 드미가 '쉘부르의 우산(1964)'에서 보여준 프랑스 뮤지컬의 현실성과 아름다움은 헐리우드 뮤지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카락스는 자신의 뮤지컬을 그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로 가공된 세트들에서 배우들이 펼치는 공연에는 인생의 진실이나 생기 같은 것이 없다.

  아마도 우리는 카락스의 이 실패한 영화와 대조되는 지점에 밥 포시의 'All That Jazz(1979)'가 있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죽음을 앞둔 뮤지컬 기획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펼치는 놀라운 퍼포먼스에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다. 노래도, 연기도, 메시지도 마치 따로 국밥처럼 노는 '아네트'는 카락스의 소진된 영화적 재능을 확인하게 만든다. 한가지 더, 아담 드라이버는 앞으로 노래하는 연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2.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평범한 신화적 변주, Undine(2020)

  "날 떠나면, 너 죽을 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
  (If you leave, you have to die. Do you understand?)

  이런 말을 내뱉는 여자의 표정에서 진심으로 살기가 느껴진다. Christian Petzold의 2020년작 'Undine'는 르네상스 시대 연금술사 Paracelsus가 만들어낸 물의 정령 운디네를 현대 시대로 불러낸다. 이 이야기의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은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이다. 바닷속에 사는 인어 공주가 인간 왕자를 사랑했다 버림받고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이야기. 그렇다면 크리스티안 페촐트가 영화로 만들어낸 '운디네'는 어떤 이야기일까?

  베를린의 역사에 대해 강의하는 운디네는 사귀던 남자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다. 운디네는 남자에게 그 일이 가져올 수 있는 비극에 대해 암시하지만 남자는 끝내 운디네를 떠난다. 잠수사 크리스토프와 뜻하지 않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게 된 운디네. 크리스토프와 함께 거리를 걷다가 운디네는 연인과 함께 있는 전 남친과 마주친다.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에게 전 애인에 대해 묻지만 운디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일이 있은 후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작업 중에 일어난 사고로 크리스토프는 식물 인간이 되어버렸다. 절망한 운디네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꼭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 운디네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꽤나 긴 베를린시의 역사를 듣게 된다. 무슨 로맨스 영화에 '쓸데없는' 역사 강의가 저렇게나 길게 들어가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럴 때는 좀 생각을 깊게 해볼 필요가 있다.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고,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영화 속에 집어넣고 싶어한다. '운디네'의 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왜 운디네의 입을 통해 베를린시의 유구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베를린은 늪지대를 메꾸어 만든 도시이다. 냉전 시대에 동서로 분단되기도 했던 이 도시에는 과거의 상처와 재건의 흔적이 공존한다. 운디네가 들려주는 베를린의 역사는 인간이 자연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개발하고 변형시키면서 끊임없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를린의 근원적 토대는 그것이 시작된 늪지대이다. 자연의 본질은 결코 변하거나 마멸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인 운디네는 물의 정령으로 자연의 일부분이다. 이 신화적인 존재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 운디네와 대비되는 인간의 사랑은 휘발적이며 가변적이다. 페촐트는 신화 속 운디네가 인간과 사랑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파국을 그려낸다. 영속적 존재가 꿈꾸는 지상에서의 완전한, 불변의 사랑. 영화 속 운디네는 그런 사랑을 고집한다. 이별을 통보하는 남자에게 죽음을 경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별 후 운디네에게 크리스토프와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 운디네는 사귀던 남자가 없었다는 거짓말까지 한다. 이미 운디네 자신이 티 한 점 없는 완전무결한 사랑의 기준에서 벗어나 버렸다. 크리스토프에게 닥친 재난을 운디네는 자신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형벌로 받아들인다. 더이상 운디네는 이 지상의 도시에서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운디네의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실종이나 죽음이 아니라, 원래 속한 자연으로의 귀환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두 세계의 존재는 합일의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잃게 되자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공주는 결국 공기의 요정이 되어 왕자의 새로운 사랑을 축복하며 지상을 떠난다. 영화 속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에게 생명과 사랑의 기억을 돌려준다. 영화의 끝부분에 크리스토프가 물속에서 건져낸 작은 잠수부 조각품은 운디네에게 그가 주었던, 둘 사이의 사랑의 징표이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추억은 남는다. 그렇게 페촐트는 운디네 설화를 현대 베를린이라는 시공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한다. 신화에 대한 이러한 페촐트의 해석은 그리 심오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그런 면에서 영화 '운디네'는 아쉬움을 남긴다.


3. 웨스 앤더슨의 과대포장 선물세트, The French Dispatch(2021)

  영화는 'The French Dispatch'라는 잡지사 편집장의 죽음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유언장에 따라 4편의 기사가 잡지에 실리고 잡지는 폐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그 4편의 이야기가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1편은 잡지사가 있는 도시 Ennui-sur-Blasé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2편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살인범 화가의 콘크리트 벽화 그림이 유명 미술관에 걸리게 된 유래를 설명한다. 3편은 아주 시시한 학생 시위의 주모자가 어떻게 혁명 정신의 상징이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 4편은 경찰청장 아들의 유괴 사건에 얽힌 외국인 요리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웨스 앤더슨의 이 영화에는 등장 인물들도 많고, 유명 배우들도 꽤 나온다. 1편에서 자전거 타고 도시를 안내하는 이는 오웬 윌슨, 2편에서 죄수 화가를 연기한 사람은 베니시오 델 토로, 그리고 그 모델 역은 레아 세두가 연기한다. 3편에서 시위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자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이다. 잡지사 편집장 역은 빌 머레이가 맡았다. 이 쟁쟁한 배우들을 섭외해서 영화를 찍는 웨스 앤더슨의 마당발 인맥이랄지, 친화력이 대단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그런 능력과는 별개로 영화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를 '잘 찍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The French Dispatch'의 작품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앤더슨은 특파원의 눈을 통해 낯선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1편에서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오웬 윌슨은 마치 그곳 주민처럼 보인다. 외국인이지만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그 땅과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3편에 나오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독신 여기자는 중년의 위기에서 오는 외로움과 직업 윤리를 지키는 것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4편에서 경찰청장의 납치된 아들을 빼오기 위해 비밀 임무를 받고 투입된 요리사는 동양인이다. 그는 납치범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독이 든 음식까지 함께 먹는다. 취재하는 특파원은 영웅적인 행동이라며 놀라워한다. 하지만 요리사는 외국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주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 'The French Dispatch'는 파리 거주 외국인 앤더슨의 프랑스 별곡 같다. 정교하게 구성된 영화의 세트는 앤더슨의 심미안을 입증하지만 거기에는 알맹이가 없다. 이 영화의 진정한 학습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이들은 영화학도가 아니라,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 어떤 정서적 울림도 없는, 예쁜 화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 이것은 마치 안팔리는 과자들이 들어있는 멋진 포장의 종합 선물세트를 연상케 만든다. 웨스 앤더슨이 '내 스타일이라구', 하고 말한다면야 '아, 그렇군' 할 밖에. 앤더슨 영화의 팬이라면 반복되고 변주되는 그의 스타일을 이 영화에서 확인하고 좋아할 수도 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버린 영화들 특집 1편

Leave No Trace(2018)외 4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leave-no-trace2018-bait2019.html
 


*** 영화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37/1954)'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star-is-born-19371954.html



***그림 출처: artvee.com

George Frederic Watts(1817-1904), Und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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