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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2의 게시물 표시

좌절된 욕망과 모험의 질주, 1970년대 미국의 자동차 영화

  1. Duel(1971),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계시    그는 12살에 자신의 첫 홈무비를 찍었다. 나중에 영화학과에 들어갔으나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사의 TV 프로덕션 부서에 입사했다. 23살 때의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첫 TV 방영용 영화를 찍은 것이 25세,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자 제작사는 영화 상영을 위해 추가 촬영을 해서 극장에 내걸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작품 'Duel(1971)'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스필버그가 지닌 영화적 재능은 천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명하다. 중년의 샐러리맨 데이비드는 고객과의 만남을 위해 장거리 출장길에 나선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그는 거대한 탱크로리와 마주친다. 길을 막아서는 탱크로리를 어렵사리 추월하고 가려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탱크로리가 데이비드를 계속해서 따라잡으며 위협을 가한다. 그렇게 데이비드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탱크로리 기사와의 고속도로 '결투(Duel)'가 시작된다. 오직 두 대의 차가 벌이는 숨막히는 추격전, 주인공과 탱크로리 기사의 심리전, 스필버그는 러닝타임 90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Duel'에서 집채만 한 탱크 로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며 주인공의 차를 따라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스턴트맨이 낸 속도는 '30mph', km로 환산하면 '48km/h'이다. 그러니까 스필버그는 오직 촬영과 편집만으로 위압적인 속도를 창출해낸 것이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경주로 생각했던 샐러리맨은 죽일 듯이 달려드는 트럭에 공포감을 느낀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다. 악마같은, 미친 운전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는 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영화에서는 그 당시 미국 중산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사회적 피로감이 감지된다. '

세르게이 로즈니차가 복원해낸 학살의 기억, 'Babi Yar. Context' (2021)

    오늘 글은 하나의 도형 그림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그림 출처(en.wikipedia.org)   여러분은 위 그림에서 두 개의 주황색 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대다수는 오른쪽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두 점의 크기는 똑같다. 다만 그 주변을 둘러싼 원들의 크기가 보는 이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에빙하우스 착시 또는 티치너 원(Ebbinghaus illusion or Titchener circles)'이라고 불리는 이 도형 그림은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에서 잘 알려진 '맥락 효과(Context Effect)'를 입증한다. 그것은 주변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하나의 자극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의 영화 제작자 세르게이 로즈니차(Sergei Loznitsa) 감독의 2021년작 다큐 'Babi Yar. Context' 제목에 바로 그 '맥락(Context)'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Babi Yar'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Kyiv)에 있는 협곡의 지명이다. 그곳에는 숨겨진 학살의 역사가 자리한다. 1941년 9월 29일부터 30일, 그 이틀 동안 바비 야르에서는 키에프 거주 유대인이 독일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밝혀진 희생자의 숫자만 33,771명이다. 1943년 11월, 소련군이 키에프를 탈환할 때까지 최소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추가로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비 야르 학살은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의 기록 가운데 단시일에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1941년 9월의 끝자락에 키에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개인적인 의문은 그렇게 'Babi Yar. Context' 제작으로 이어졌다.   다큐는 귀를 찢는 듯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

전후 미국 중산층의 불안과 공허, Come Back, Little Sheba(1952)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4)'에는 '고도(Godot)'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리는 두 명의 남자 디디와 고고가 등장한다. 이 기념비적인 실존주의 희곡에서 디디와 고고가 애타게 기다리는 그 '고도'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니엘 만(Daniel Mann) 감독의 'Come Back, Little Sheba(1952)'에서도 제목에 나오는 'Sheba'는 영화 속에서 볼 수 없다. 주인공인 중년 부인 롤라는 키우던 강아지 시바를 몇 달 전 잃어버렸다. 너무나 아끼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기에 롤라는 생각이 날 때면 현관 문 앞에서 자신의 강아지를 애타게 부른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듯, 이 영화에서도 잃어버린 강아지 이름 '시바' 또한 상징성을 가진다.   영화는 중년의 주부 롤라가 새 하숙인 마리에게 방을 안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가진 여대생 마리와 집주인 롤라는 모든 것이 대비된다. 마치 자다가 곧바로 일어나서 손님을 맞이하는 듯한 매무새의 롤라. 척추지압사(chiropractor)인 남편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롤라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냉담하다. 관객은 곧 이들 부부에게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문제들 가운데 큰 부분이 닥의 알콜 중독과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부부는 알콜 중독자 치유 모임 'AA(Alcoholics Anonymous)'에 참여하는데, 그곳에서 닥은 금주 1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를 받는다.   어렵게 술과 멀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닥의 상태는 불안정하게 보인다. 그는 하숙인으로 들어온 마리의 존재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 발랄한 아가씨는 집안으로 남자 친구를 끌어들이는 것을 별로 주저하지 않는다. 마리의 남자 친구 터크의 잦은 방문은 닥과

실패한 공화국의 이상, Les Misérables(2019)

    영화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2018년,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주인공 소년 Issa도 프랑스 국기를 몸에 휘감고 친구들과 기쁨을 나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이사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련이 펼쳐친다. Ladj Ly의 2019년작 영화 'Les Misérables'은 러셀 크로의 견디기 힘든 노래가 나오는 2012년작 뮤지컬 영화와는 제목만 같다.   감독 라지 리는 말리 태생의 프랑스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영화 속 배경인 파리 교외의 Montfermeil에서 자랐다. 이 감독은 논쟁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2011년에 '납치'와 '불법 감금'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지역 공동체와 사람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죠. 나 또한 내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하고 싶었어요(cineuropa.org와의 인터뷰 가운데)"   2005년, 파리 교외의 Clichy-sous-Bois에서 두 명의 무슬림 청소년들이 감전사로 죽었다. 경찰의 불시 검문검색을 피해 달아나려다 숨어든 곳이 변전소였다. 이 사건으로 약 3주간에 걸쳐 파리 근교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방화와 폭력사태가 촉발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었다. 외형적으로는 무고한 청소년들의 죽음에 분노해서 일어난 폭동이었지만, 거기에는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인 이민자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영화는 그 사건을 모티프로 취했다.     이사가 사는 동네는 전형적인 슬럼가로 매우 '거친 곳'이다. 아이들은 훔치고 뺏는 것이 일상이며,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지

영화 대 영화: 글렌 밀러 스토리(The Glenn Miller Story, 1954), 너무 늦은 블루스(Too Late Blues, 1961)

  영화 대 영화:   글렌 밀러 스토리(The Glenn Miller Story, 1954), 너무 늦은 블루스(Too Late Blues, 1961)   여러분은 음악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귀에 착착 감기는 음악, 천부적 재능을 지녔지만 시련과 고통을 겪는 주인공, 결국 실패를 딛고 멋지게 재기하는 결말... 오늘 다룰 영화들은 바로 그 음악이 중심이 되는 영화이다. 여기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편의 음악 영화가 있다. 독특한 서부극들을 만든 앤소니 만(Anthony Mann) 감독은 1954년에 '글렌 밀러 스토리'를 내놓았다. 영화는 스윙 재즈 시대(The Swing Era, 1930-1945)를 대표하는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인 글렌 밀러(Glenn MIller)의 일대기를 담았다. 주연은 제임스 스튜어트, 그는 앤소니 만 감독과 여러 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재즈 음악인을 다룬 존 카사베츠(John Cassavetes) 감독의 영화도 있다. '너무 늦은 블루스(Too Late Blues, 1961)'는 카사베츠가 메이저 스튜디오와 처음으로 작업한 영화이다. 재능을 가졌지만 상처받고 부서지는 젊은 재즈 음악가의 초상을 그렸다.   '글렌 밀러 스토리'는 관객들이 음악 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충실히 담아낸다. 영화의 도입부, 풋내기 재즈 트롬본 연주자인 글렌 밀러는 전당포에 악기를 맡겼다 찾는 일상을 반복한다. 악단 생활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밀러에게는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영화의 전반부는 밀러의 러브 스토리로 채워진다. 아내 헬렌 버거는 직업 음악가로서의 밀러를 이해하고 지원한다. 그런 아내 덕분에 밀러는 독립 악단을 꾸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물론 많은 위인전이 그러하듯 밀러도 단번에 성공의 정점에 오르지 않는다. 밀러의 신생 악단은 어려움 속에 연주 여행을 이어가지만 결국은 파산 위기에 처하고 만다.  

폐쇄적 공간성에 구현된 시대와 정치, The Tall Target(1951)

    추리 소설 팬들에게 기차를 배경으로 하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일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74년작 영화도 있다. 크리스티는 또 다른 작품 '패딩턴발 4시 50분(1957)'에서도 '기차'의 공간성을 치밀하게 이용한다. 일본의 추리 소설 작가 마츠모토 세이초도 '점과 선(1957)'에서 기차를 전면에 내세워 사건을 전개시킨다.   1950년대에 제작한 일련의 서부극으로 유명한 앤소니 만(Anthony Mann) 감독이 1951년에 'The Tall Target'을 내놓았을 때, 관객들은 물론이고 평론가들도 낯설게 느꼈던 모양이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앤소니 만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그다지 주목받는 작품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1861년의 어느 기차를 배경으로 하는 이 흥미진진한 영화는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다.   1861년 2월, 뉴욕 경찰 존 케네디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링컨에 대한 암살 첩보를 입수한다. 그는 링컨이 볼티모어에서 워싱턴 D.C.로 이동할 때 타게 될 기차가 암살범들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직감한다. 그러나 케네디의 보고는 묵살되고, 분개한 그는 혼자서 암살 시도를 저지하기로 마음먹는다. 기차에서 자신의 동료와 만나기로 한 케네디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버린 형사를 발견한다. 분명히 기차 안에서는 어떤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그 많은 승객들 가운데 암살범을 찾아낼 것인가? 케네디는 과연 링컨을 구할 수 있을까...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있었던 링컨은 늘 암살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영화 'The Tall Target'은 링컨을 둘러싼 그런 음모들 가운데 한 가지를 주요한 플롯으로 취한다. 선거 운동을 위해 이동하는 그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는 형사는 오직 혼자의 힘으로만

루이지 코멘치니(Luigi Comencini) 감독의 영화 두 편

모두들 집으로, Tutti a casa(Everybody Go Home, 1960), 120분 과학적인 카드 도박꾼, Lo Scopone Scientifico(The Scientific Cardplayer, 1972), 116분 이 글에는 두 영화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폭압적 파시즘과 전쟁의 기억, Tutti a casa   제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7월, 시칠리아에 진입한 연합군으로 인해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진다. 무솔리니는 체포되고, 국왕의 명령에 따라 새로 수립된 정부는 연합군과의 휴전을 모색한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은 그 틈을 타서 이탈리아 군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이탈리아 본토 수복에 나선다.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의 1960년작 영화 'Tutti a casa(Everybody Go Home)는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코멘치니 감독은 전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임에도 비토리오 데 시카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같은 세계적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이탈리아 내에서의 그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가 찍은 너무 많은 영화들에서 코멘치니의 분명한 색깔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코멘치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수준높은 영화를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Tutti a casa'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 해변가에 주둔 중인 이탈리아 부대의 하급 부사관 알베르토(알베르토 소르디 분)는 라디오에서 정부가 발표한 휴전 성명을 듣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겨운 전쟁에 지친 부대원들은 모두들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에 휩싸인다. 소집 해제 명령을 기다리는 부대원들과는 달리 군 수뇌부는 뜻밖의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들이 부대를 떠나자마자 어디선가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온다. 연합군에 맞서 이탈리아 장악에 나선 독일군들의 반격이

전쟁이 여성에게 드리운 긴 그림자 , Beanpole(Дылда, 2019)

    여자는 긴장증(緊張症, catatonia)을 앓고 있다. 어느 순간 몸이 돌처럼 굳어버리고, 주위의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증상. 전쟁 중 군인으로 복무했던 여자는 부상을 입어 머리를 다쳤다. 여자를 괴롭히는 그 증상은 그때부터 생긴 것이다. 여자에게는 세 살짜리 어린 아들이 있다. 어느 날 저녁, 아들과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여자에게 긴장증이 도진다. 마침 아이는 마루 바닥에 누워있었다.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버린 엄마의 몸에 아이가 깔린다. 영화 'Beanpole(2019)'의 초반부에 나오는 그 장면은 매우 짧지만, 관객에게는 극도의 공포와 고통을 유발한다. 러시아의 신예 감독 칸테미르 발라고프(Kantemir Balagov)는 이 영화에서 전쟁이 여성에게 남긴 깊은 상흔에 대해 탐구한다.   키가 무척 큰 일랴는 사람들에게 '키다리(beanpole)'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 비극적인 사고로 아들을 잃은 직후, 일랴는 전선에서 돌아온 친구의 방문을 받는다. 마샤는 일랴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런데 마샤와 일랴가 나누는 대화에서 관객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은 아이는 일랴가 아닌 마샤의 아들이었다. 군 복무 중이었던 마샤는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먼저 제대한 일랴에게 보냈다. 일랴는 그렇게 마샤의 아이를 잃었다. 이후 일랴와 마샤 사이에는 우정과 죄의식이 범벅이 된 애증의 관계가 이어진다. 일랴는 마샤가 사귀는 남자를 질투하고 적대시한다. 그런 일랴에게 마샤는 아이를 더이상 낳을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아이를 낳아달라고 요구하는데...   벨라루스의 구술문학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Svetlana Alexievich)는 1985년, 한 권의 구술사 책을 펴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The Unwomanly Face of War)'라는 제목의 책은 소련의 '대조국 전쟁(The Great Patriotic War

풋내기 다큐 제작자의 흥미로운 데뷔작, The Amazing Johnathan Documentary(2019)

    한때 잘 나가던 코미디언이 있었다. 순회 공연, 방송을 통해서 많은 인기와 부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점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그는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 2014년, 그의 나이가 56살이 되었을 때이다. 그는 대중들에게 자신이 1년 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코디미언의 이름은 John Edward Szeles, 본명보다 '어메이징 조나단(Amazing Johnathan)'이란 별칭으로 유명했다. 풋내기 다큐 제작자 Ben Berman은 2017년에 그런 그를 찾아가서 다큐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전직 코미디언은 선뜻 오케이 사인을 내주었다. 마침 지리하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견디다 못한 조나단은 복귀 공연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버먼은 자신의 첫 장편 다큐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던 중에 조나단이 흘리듯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말이야, 날 찍겠다는 다큐 팀이 새로 오기로 했거든. 아주 유명한 제작자야. 'Man on Wire(2008)'하고 'Searching for Sugar Man(2012)'을 만든 팀이라고 하더만. 거 아카데미 상도 탄 작품 있잖아. 난 죽어가고 있는데, 많이 찍어서 남길 수 있으면 좋잖아."   '뭐라고, 당신을 찍는 새로운 다큐 제작팀이 온다고? 그럼, 난 뭐가 되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황망한 표정의 버먼과는 달리 조나단은 아주 여유롭다. 조나단의 공연장에는 그렇게 버먼과 다른 다큐팀이 기이한 경쟁을 하면서 각자의 다큐를 찍는다. 그런 상황이 초짜 다큐 제작자 버먼에게는 영 익숙하지가 않다. 그런 그에게 조나단은 계속해서 놀람 상자를 선물한다. 하루는 분장실 뒷편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카메라를 든 웬 남자가 버먼에게 다가온다. 그는 버먼에게 나가달라고 정중히 요청

Ashik Kerib(1988), The Power of the Dog(2021)

  1.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아름다운 유작, Ashik Kerib     어린 시절부터 그는 병약했다. 부유한 귀족이었던 할머니는 그런 손주의 건강을 위해 코카서스 지방에 보내어 요양을 하게 했다. 9살 소년의 마음은 광대하게 펼쳐진 코카서스의 자연 풍광에 매혹되었다. 그는 이후로도 여러 번 코카서스에 머물며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렇게 코카서스는 그의 영혼의 일부분이 되었다. 문학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틈틈이 시와 소설을 썼다. 그다지 적성에 맞지 않는 군대에 들어가서 방탕한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좋은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다.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운 불같은 성미에 제멋대로였다. 동료를 짖궃게 놀려대다가 결투 신청을 받았다. 자신의 고르지 못한 성미로 인한 댓가는 죽음이었다. 그 때의 나이가 스물 여섯, 생전에 많은 시와 소설을 썼으나 출판된 시집은 단 한 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러시아 문학사에 빛나는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시인 미하일 레몬토프(Mikhail Lermontov, 1814-1841)의 이야기이다.   조지아(Georgia) 태생의 세르게이 파라자노프(Sergei Parajanov)는 레몬토프가 쓴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Ashik Kerib(1988)'은 파라자노프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업 중이던 영화를 미처 끝내지 못하고 1990년에 세상을 떴다. 파라자노프는 소련 영화계의 이단아였다. 자신만의 영화 미학으로 영화사에 분명한 각인을 남겼지만, 그 생애는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소련 정부는 당국의 예술 창작 원리에 따르지 않는 파라자노프를 철저히 탄압했다. 동성애를 비롯해 여러 범죄 혐의를 뒤집어 씌우며 감옥과 수용소행을 강제했다.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1964)', '석류의 빛깔(The Color of Pomegranates, 1969)'은 그런 악전고투 속에서 남긴

PBS 3부작 다큐멘터리 Ken Burns의 '금주법(Prohibition, 2011)' 3편

  1편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pbs-3-ken-burns-prohibition-2011-1.html 2편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pbs-3-ken-burns-prohibition-2011-2.html 되찾은 자유의 감각 3편: A Nation of Hypocrites 1시간 45분   콜럼버스, 워싱턴, 링컨, 볼스테드. 누군가 미국 역사는 이 네 명의 인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볼스테드 법은 금주법의 시대를 열었다. 무려 13년 동안 미국인들에게 음주는 불법이었다. 자유롭게 술을 마실 권리, 이제 누군가는 그 대의명분을 위해 나서야만 했다. 1926년 6월, 뉴욕의 공화당 의원은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정치인들도 금주법이 가진 폐해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들의 마음이 변했던 것이다. 1920년대의 미국은 급변하고 있었다. 대도시들이 급속도로 성장했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자유의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흑인 음악으로 시작한 재즈가 일반 대중의 삶으로 스며들었다. 클럽은 재즈 음악과 춤추는 젊은 남녀들로 미어터졌다. 거기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물론 몰래 파는 술이었다.   주류 산업은 지하 세계에서 번성하고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에 70만개의 증류소에 50만 명이 그 사업에 종사했다. 'speakeasy'라고 불리는 무허가 술집이 얼마나 많은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뉴욕의 밤문화를 지배한 비밀 술집은 경찰의 단속에 의해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문을 열기를 반복했다. 술집에는 남자 손님만 있지는 않았다. 젊은 독신 여성들에게도 술은 인기였다. 금주법 이전 시대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여성은 매춘부로 여겨졌다. 세대가 변했고, 여성들은 훨씬 더 술에 관대해졌다.   시카고에서는 한바탕 피바람이

PBS 3부작 다큐멘터리 Ken Burns의 '금주법(Prohibition, 2011)' 2편

Last Call 이후의 세상 2편: A Nation of Scofflaws 1시간 50분   1920년 1월 16일, 마침내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발효 알콜의 제조, 판매, 운송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18조는 미국을 알콜 중독의 재앙에서 구할 법으로 여겨졌다. 금주법의 시행 이전에 술집들은 마지막 재고 세일 간판을 내걸었다. 'Last Call'이라는 간판 앞에 사람들은 줄지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부자들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엄청난 술을 사들여 창고에 쌓아두었다. 위스키 증류소를 비롯해 양조장도 문을 닫을 채비를 했다. 수많은 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금주법은 주류 관련 산업 전체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    수정헌법 18조에는 '취하게 하는 음료'라고 명시가 되어있을 뿐, 알콜 도수를 명시하지 않았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후속 법안이 필요했다. 법안을 입안한 의원의 이름을 딴 'Volstead Act'는 알콜 도수를 0.5%로 제한했다. 법안을 실제로 기획한 이는 'The Anti-Saloon League'의 웨인 휠러였다. 그는 미국에 남아있는 술 한 방울까지도 다 말려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금주법의 본격적인 시행에도 예외는 있었다. 의사들은 치료 목적에 한해 술을 처방할 수 있었다. 종교적인 목적의 술 소비도 인정되었다. 가톨릭의 미사주, 유대교의 제례에 쓰이는 술이 그러했다. 의사들은 술 처방전 장사로 갑자기 돈방석에 앉았고, 유대교는 급증하는 신자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웃지못할 촌극이었다.   많은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금주했으나, 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대도시 뉴욕은 곧 밀주업자와 무허가 술집의 천국이 되었다. 뉴욕은 캐나다 국경과 가까워서 술의 밀수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밀주업자들은 공무원과 경찰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뇌물을 살포했다. 볼스테드법의 더 엄격한 뉴욕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Mullan-Gage La

PBS 3부작 다큐멘터리 Ken Burns의 '금주법(Prohibition, 2011)' 1편

1편: A Nation of Drunkards 1시간 34분 1. 들어가며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의 조커를 특징짓는 것은 입 가장자리부터 눈가에 이르는 긴 흉터이다. 금주법 시대의 악명높은 갱 '알 카포네(Al Capone)'에게도 그와 같은 흉터가 있었다. 그가 풋내기 갱이었던 시절, 젊은 형제 일행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 일로 카포네의 얼굴에는 조커와 비슷한 흉터가 생겼다. '스카페이스(Scarface)'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카포네는 말 그대로 금주법 시대를 대표하는 '무법자'였다. 그는 온 나라가 술을 금지하는 시대에 술로써 자신의 제국을 세웠으며, 결국 그 술로 인해 몰락했다. 'Prohibition'이라는 영단어를 '금주법'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만든 시대. 미국인이 아닌 국외자의 시선으로 보아도 그 시대는 매우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시대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자신의 역사이기도 했던 현대의 미국민들에게도 그러하다.   "지금을 사는 미국인들에게도 금주법의 시대란 놀랍게 느껴져요. 어떻게 국가가 나서서 전국민의 음주를 금지시킬 수 있었을까요? 정말이지 그런 정신나간, 미친 시대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지거든요."   그 시기는 무려 13년 동안 이어졌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Ken Burns는 미국의 공영방송 PBS와의 협업을 통해 미국 역사에 대한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을 선보였다. 재즈 음악의 연대기를 다룬 10부작 'Jazz(2001)'와 서부 개척기를 다룬  8부작 'The West(1996)'는 그의 대표작이다. '금주법(Prohibition, 2011)'은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러닝 타임이 5시간이 넘는 이 다큐를 통해 번즈는 많은 미국인들이 그다지 들여다 보고 싶어하지 않는 그 '정신나간 시대'

엘모어 레너드가 수정주의 웨스턴에 드리운 빛, Hombre(1967)와 Valdez Is Coming(1971)

*이 글에는 두 영화의 결말 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1886년 3월, 아파치족의 위대한 전사이며 지도자였던 제로니모(Geronimo)가 미군 토벌대의 조지 크룩(George Crook) 장군에게 붙잡혔다. 인디언 전쟁(American Indian Wars)은 막바지에 달했다. 미군은 제로니모에게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했으며, 결국 제로니모와 부족민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포로들을 인계하는 과정에서 미군은 아파치 부족 사이에서 남다른 외모의 소년을 발견한다. 소년은 인디언의 복식을 하고 있었으나 백인임이 분명했다. 아파치족에게 납치되어 그들과 함께 지낸 것처럼 보였다. 미군은 소년을 데려가서 헤어진 가족과 만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년은 완강히 거부했다. 자신은 아파치족을 떠나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소년의 이름은 Jimmy Mackin, 나이는 12살이었다. 소년이 아파치 인디언들에게 납치당한 것은 1885년 8월, 함께 있었던 17살 형은 죽었다. 소년이 인디언들과 함께 지낸 시간은 고작 6개월이었다.   그 사건은 작가 엘모어 레너드(Elmore Leonard)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소설 집필에 착수했고, 1961년에 'Hombre'를 내놓았다. 마틴 리트(Martin Ritt) 감독은 그 소설을 가지고 폴 뉴먼을 주연으로 영화를 찍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두운 피부색의 인디언으로 분장한 폴 뉴먼이 등장한다. 이 특별한 외모의 남자를 결코 인디언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의 '푸른 눈'에 있었다. 원작에서도 주인공 존 러셀은 푸른 눈(blue-eyed)을 가진 백인으로 나온다. 이렇게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볼 때, 각색 과정에서 생략된 서사의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다소 번거롭고 까다롭기까지 하다. 그런 경우에는 할 수만 있다면 원작을 구해서 보는 것이 낫다. 엘모어 레너드의 이 소설은 번역본이 없어서, 영문본의 e-book을 찾아서 읽었다. 'Valdez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