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uel(1971),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계시
그는 12살에 자신의 첫 홈무비를 찍었다. 나중에 영화학과에 들어갔으나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사의
TV 프로덕션 부서에 입사했다. 23살 때의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첫 TV 방영용 영화를 찍은 것이 25세,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자 제작사는 영화 상영을 위해 추가 촬영을 해서 극장에 내걸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작품 'Duel(1971)'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스필버그가 지닌 영화적 재능은 천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명하다. 중년의 샐러리맨 데이비드는 고객과의 만남을 위해 장거리 출장길에 나선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그는
거대한 탱크로리와 마주친다. 길을 막아서는 탱크로리를 어렵사리 추월하고 가려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탱크로리가 데이비드를
계속해서 따라잡으며 위협을 가한다. 그렇게 데이비드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탱크로리 기사와의 고속도로 '결투(Duel)'가
시작된다. 오직 두 대의 차가 벌이는 숨막히는 추격전, 주인공과 탱크로리 기사의 심리전, 스필버그는 러닝타임 90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Duel'에서 집채만 한 탱크 로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며 주인공의 차를 따라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스턴트맨이 낸 속도는
'30mph', km로 환산하면 '48km/h'이다. 그러니까 스필버그는 오직 촬영과 편집만으로 위압적인 속도를 창출해낸
것이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경주로 생각했던 샐러리맨은 죽일 듯이 달려드는 트럭에 공포감을 느낀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다. 악마같은, 미친 운전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는 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영화에서는
그 당시 미국 중산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사회적 피로감이 감지된다. 'Duel'에서의 기계들의 대결은 스필버그의 출세작
'죠스(Jaws, 1975)'의 인간과 식인 상어와의 대결로 비슷하게 재현된다.
스필버그의 'Duel'은 어떤 면에서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 이전에 존재한 선구자격의
영화는 있었다.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형사 스릴러물 '블리트(Bullitt, 1968)'는 잘 짜여진 플롯과 함께 스릴 넘치는
멋진 자동차 추격 장면이 들어있다. 피터 예이츠 감독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시내에서 교외로 이어지는 놀라운 추격신을 보여준다.
자동차 안에서 실제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촬영된 장면은 관객들에게 마치 자신이 운전자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즈음
촬영 장비들의 휴대성과 성능이 좋아짐에 따라 감독의 연출 폭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제작비의 열 배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낸
'블리트'의 성공은 메이저 스튜디오에 영감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2. 속도에의 열망
'블리트'가 보여준 볼거리로서의 차가 가진 가능성은 1970년대 영화에서 내러티브의 주요한 축으로 확장된다. 그런 면에서
1971년에 나온 두 편의 영화는 마치 영혼의 쌍둥이처럼 보인다. 몬티 헬만의 'Two-Lane Blacktop(1971)'과
리처드 C. 사라피안의 'Vanishing Point(1971)'는 자동차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두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사도
거의 없다. 그들에게 자동차와 운전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별 의미도 없는 경주에 자신을 내던지며 도로를 달린다. 식음도
전폐해 가며 도로를 내달리는 이들, 그들은 자동차가 내는 속도에 중독되어 있다.
이러한 '속도에의 열망'을 보여주는 일련의 영화들의 시작점에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 'Easy Rider(1969)'가
자리한다. 히피 오토바이족들의 일탈을 그린 이 로드 무비는 젊은 관객들의 취향과 크게 공명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길바닥에 달리는
무언가만 세워놓아도 돈이 될 것만 같았다. 제임스 구에르시오의 'Electra Glide in Blue(1973)'에 나오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히피족들의 초상은 그 단적인 예이다. 오토바이 영화의 짧은 전성기는 끝났지만, 자동차 영화는 자신의
제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속도가 주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이러한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동차 회사들의 적극적 마케팅도 작용했다. 그 시기 영화들에
나오는 차들의 차체는 오늘날의 차들에 비해 훨씬 크고, 연비가 아닌 주행 속도에 맞추어 개발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하면 더 크고
멋진 차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했다. 'Two-Lane Blacktop'의 '70 Pontiac GTO,
'Vanishing Point'의 '70 Dodge Challenger와 같은 클래식 카들은 아직도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회자된다.
오늘날, 이런 자동차 영화들을 면밀하고 주의깊게 다루는 매체는 의외로 자동차 관련 잡지들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만 같았던 자동차 산업은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1973년 가을에 시작된 '석유 파동(Oil
crisis)'이었다. 중동 전쟁이 촉발한 심각한 세계 경제적 위기 속에서 미국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함으로써 석유 소비량을 줄이고자 했다. 그해에 이미 여러 주에서 속도 제한 법령을 도입했고, 1974년에는 닉슨의 승인으로
미국 전역에 '전국 최고 속도 제한법(National Maximum Speed Law, 제한 속도 55 mph)'이 시행되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차체를 줄이고, 속도 보다는 연비 향상에 신경을 썼다. 베트남전의 패배가 남긴 상처, 석유 파동이 가져다준
경제적인 한파, 그 모든 것이 미국인들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3. 문화와 감성을 덧입힌 자동차 영화
어려운 시절에 잘 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조지 루카스는 그 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만든
'American Graffiti(1973)'는 정확히 그 10년 전인 1963년의 좋았던 시절로 미국인들을 안내했다. 영화는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자동차와 향수 가득한 팝송이 흐르는 이 영화는 기록적인 흥행 수익을
냈다. 루카스는 돈방석에 앉았고, 그것을 밑천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내놓을 수 있었다.
'American Graffiti(1973)'는 자동차 영화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자동차 영화에서 '속도'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특수한 '감성'과 계층 '문화'를 담는 것이 보다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어떻게든 돈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것은 197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생존 과제였다. 영화는 더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었다. TV 앞으로 몰려간
사람들은 영화관으로 좀처럼 오지 않았다. 수익성의 확대를 위해 관객층을 세분화한 제작 마케팅이 이루어졌다. 흑인 관객층을 겨냥한
'Blaxlpoitation' 필름이 그 단적인 예였다. 마이클 슐츠(Michael Schultz)의 1976년작 'Car
Wash'는 바로 Blaxploitation 자동차 영화였다.
영화 속 배경은 LA의 'Dee-Luxe'란 이름의 세차장이다. 'Car Wash'는 당시 흑인 하위 문화를 총집합해 놓았다.
영화 내내 세차장에서 틀어놓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 DJ의 걸쭉한 입담과 노래들은 자동차와 대중 음악의 밀접한 문화적 연결성을
입증한다. 흑인 동성애자 직원, 창녀, 흑인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사기꾼 설교자, 거만하고 수선스러운 중년의 백인 여성 손님,
'Car Wash'는 세차장을 통해 미국 사회의 주변부를 조망한다.
백인 사장과 흑인 종업원들의 관계는 미국
사회 내부의 인종적, 계층적 갈등을 암시한다. 마오쩌둥의 어록을 들고 다니며 직원들과 함께 하려는 사장 아들의 행태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영화는 피상적인 이상주의로 접근하는 백인 지식인들에 대한 멸시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것은 결근을 이유로 해고당한
흑인 직원 압둘라가 총을 들고 세차장을 털려고 하는 장면과 대비된다. 혁명가를 자처하는 압둘라의 과격함을 막아서는 것은 나이 많은
온건한 흑인 동료이다. 그는 압둘라를 체제 순응적인 삶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할 니드햄 감독의 'Smokey and the Bandit(1977)'은 'Car Exploitation' 영화가 가진 관객
확장성을 극대화시켰다. 8만 달러를 받고 맥주 400상자를 로데오 경기장에 총알 배송하기 위해 두 명의 친구가 나섰다. 트럭 기사
친구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 도로를 달리는 동안, 'Bandit(버트 레이놀즈 분)'은 자신의 자동차로 단속 경찰을 따돌리는
임무를 맡는다. 그는 가는 도중에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신부(샐리 필드 분)를 태운다. 신부의 시아버지가 되는 보안관은 그 둘을
필사적으로 쫓는다. 이 간단명료한 줄거리의 영화가 그해 미국 영화 수익률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1등이 그 유명한 '스타
워즈'였다.
버트 레이놀즈가 보여주는 유쾌하고
신나는 방랑자 캐릭터, 희화화된 시골 보안관, 끊임없이 이어지는 트럭과 자동차들의 질주, 'Smokey and the
Bandit'은 자동차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오락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제작사 Universal Pictures는 욕심을
부렸고, 추가로 제작된 2편과 3편 또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짭짤한 수익을 냈다. 20세기 폭스사가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사와
손잡고, 감독 할 니드햄을 내세워 만든 영화가 'The Cannonball Run(1981)'이다. 우리나라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성룡의 캐논볼'로 기억에 남은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인기가 있어서 추가로 후속편이 두 편 더 제작되었다.
4. The Driver(1978), 작가주의적 관점과의 결합
'Bullitt(1968)'의 조감독 보조(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음)로 참여한 월터 힐(Walter Hill)은 당시 피터
예이츠의 자동차 장면 연출 방식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8년에 자신만의 자동차 영화를 내놓았다.
'The Driver'는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영화의 플롯은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의 '사무라이(Le Samouraï, 1967)'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알랭 들롱이
연기한 살인 청부업자 제프는 라이언 오닐의 'driver' 역으로 대체되었다. 'The Driver'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영화는 그러한 도시인의 익명성과 함께 도시의 차가움과 고독함을 재현하는 데에 촛점을 맞춘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가 그림으로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보여준 것처럼, 월터 힐은 공동체와 단절된
개인과 금속 덩어리인 자동차를 결합해 그것을 보여준다.
'Love Story(1970)'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라이언 오닐에게 이 영화는 실질적인 경력의 끝자락에 자리한다. 자기
관리에 실패했고, 자신에게 맞는 배역이 더이상 들어오지 않으면서 이 배우의 전성기는 너무나 빨리 끝나버렸다. 그 때문인지 'Le
Samouraï'의 알랭 들롱이 보여준 냉혹함과는 달리, 오닐에게서는 무거운 침울함이 번져나온다. 그가 연기한 영화 속
'driver'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극한의 자동차 스턴트로 구현된 장면들에서이다. 'driver'는 신출귀몰할 운전
실력으로 강도들의 도주를 돕는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강도들에게 그들의 차를 미친 듯한 운전으로 망가뜨려가며 납득을
시킨다. 월터 힐은 엉성한 플롯의 빈자리를 자동차를 이용한 놀라운 추격 장면으로 메꾸어 넣었다.
'The Driver'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는 모두 절제되어 있다. 심지어 음악조차 별로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자동차'이며, 그것이 내뿜는 모든 것이다. 관객의 귀를 강타하는 거친 차량 배기음, 그것들이 충돌할 때에 내는 폭발음,
차체에 반사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도시의 네온 불빛, 그 모든 것들이 내러티브가 된다. 'driver'를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된 형사는 그를 '카우보이(cowboy)'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영화들은 모두 '서부극(Western)'이라고 한
월터 힐의 말과 연결된다. 이 영화는 서부의 공간성을 '도시'로, 카우보이의 총을 '자동차'로 치환한다. 가족도, 정해진 주거지도
없는 떠돌이 카우보이처럼 'driver'는 그렇게 도시를 부유한다. 그의 유일한 소지품은 '자동차'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과 맞선다.
월터 힐의 이
미니멀리즘 도시 서부극은 당시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낯설고 재미없는 것이었다.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 영화의 결말을 포함해
'The Driver'에는 허무주의가 베어져 나온다. 그리고 이는 1970년대 미국인들이 느꼈던 국가와 자유주의에 대한 실망감과
맞닿아 있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집결했고, 레이건의 시대가 열릴 참이었다. 정체성을 찾고,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며 길 위로 쏟아져 나왔던 미국인들과 그들의 자동차, 그 영화의 시대는 분명 저물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Go home!"
영화 속 'driver'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강도를 제거한 후, 풋내기 부하를 살려 보내며 그렇게 말한다.
'Bullitt(1968)'의 차가운 도시 남자와 자동차의 물리적 결합은 월터 힐의 작가주의적 각인이 찍힌 'The
Driver'로 재탄생했다. 동시에 그것은 자동차 영화 시대의 고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한 속도에 묶여버린 무한 질주에의 욕망,
경제 침체, 확장된 개인주의, 그러한 요인들을 자양분으로 1970년대의 자동차 영화는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자동차 영화들은 단순히 멋진 기계로서의 자동차들의 전시와 질주가 아니라, 시대적 욕망과 사회적 풍경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그 영화들을 보는 것은 1970년대 미국의 펄떡이는 심장부로 직진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tcm.com 'Bullitt(1968)'의 스티브 맥퀸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에드워드 호퍼 'Nighthawks(1942)', 시카고 미술관 소장
***본문에서 언급한 영화들
Le samouraï(1967), 장 피에르 멜빌
Bullitt(1968), 피터 예이츠
Easy Rider(1969), 데니스 호퍼
Two-Lane Blacktop(1971), 몬티 헬만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1970-two-lane-blacktop-1971.html
The Duel(1971), 스티븐 스필버그
Vanishing Point(1971), 리처드 C. 사라피안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at-full-speed-vanishing-point-1971.html
Electra Glide in Blue(1973), 제임스 구에르시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hippie-movement-electra-glide-in.html
American Graffiti(1973), 조지 루카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american-graffiti-1973.html
Car Wash(1976), 마이클 슐츠
Smokey and the Bandit(1977), 할 니드햄
The Driver(1978), 월터 힐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