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Electra Glide in Blue'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영화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무척. 그런 당신에게 어느 날 영화 연출의 기회가 온다. 사기가 아닌 진짜다. 자,
엉겁결에 감독이 되어 영화를 찍어야할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대체 어떻게
영화를 만들 것인가?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럴 때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책은 무엇일까? 정답은 '뛰어난 촬영 감독을
구하는 것'이다. James William Guercio는 그렇게 했다. 그가 제작사 United Artists로부터
'Electra Glide in Blue' 감독직을 제안받았을 때, 그가 한 일은 당시 최고로 잘 나가는 촬영 감독 Conrad
Hall을 붙잡은 일이었다.
Hall은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의 촬영 감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런 실력있는 인재를 섭외하는 일은 당연히 돈이 많이 든다.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구에르시오는 자신의
감독 급여를 포기했다. IMDb의 Trivia 항목에는 그가 자신의 급여를 1달러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콘래드 홀에게 지급했다고
나와있다. 그 액수가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Directed by'라는 오프닝 크레딧의 그 글자를 지키기 위해 돈
따위에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초짜 신인 감독과 베테랑 촬영 감독, 'Electra Glide in Blue(1973)'는 그렇게 탄생했다. 물론 좋은 촬영
감독을 데려왔다고 해서 영화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연출의 부재는 구에르시오의
감독직 수행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했다. 주연 배우 Robert Blake는 나중에 이 영화는 자신과 촬영 감독이 거의 다 찍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떠들고 다녔다. 구에르시오가 촬영 현장에서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뭔가 '안봐도 비디오'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의 이름이 분명하게 박힌 연출작이다.
그렇다면 왜 제작사 United Artists는 구에르시오 같은 생초짜 신인 감독을 데려다 영화를 찍었을까? 거기에는 메이저
영화사의 수익 악화라는 현실적 요인이 있었다. 1948년, 미국 대법원은 이른바 'Paramount Decision'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 판결은 영화 제작사의 수직계열 통합(제작과 배급에 이르는 일련의 사업체 소유)을 독과점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금지시켰다. 영화에 있어서 가장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극장 소유가 금지되자 제작사들의 상황은 급전직하했다. 군소 제작사들이
매각되거나 해체되었고, 메이저 스튜디오들도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그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그러던 중에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는 제작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오토바이 히피족들의 마약 기행을
그린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수익을 냈다. 새로운 영화 인력의 발굴과 과감한 채용, 1970년대에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모두 이십 대에 감독으로 데뷔했다.
아마도 제작사 United Artists도 신인 구에르시오에게 그런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구에르시오는 뮤지션이자 록
밴드 'Chicago'의 프로듀서로 음악인이었지 영화인이 아니었다. 그가 영화를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존 포드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자신의 첫 연출작에 포드의 서부작에서 느꼈던 아우라를 덧입히고 싶어했다. 과연 그의 바램은 이루어졌을까? 'Electra
Glide in Blue(1973)'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과 감탄이 번갈아가며 터져 나온다. 설득력이 없는 플롯과 크게 비어있는
내러티브는 한심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음악과 촬영 만큼은 거기에 비할 것이 아니다.
영화는 기이한 도입부로 시작된다. 프라이팬에서 두 조각의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떤 남자가
총으로 자살을 하는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제시된다. 그 다음에 이어진 장면에서 주인공 존 윈터그린이 등장한다. 그는 애리조나
고속도로 순찰대의 경찰이다. 윈터그린은 동료인 Zipper와 짝을 이루어 과속 차량을 단속하는데, 그들이 싫어하는 히피족들이
주요한 단속 대상이다. 어느 날 그는 순찰 중, 사막 도로변 허름한 집에 사는 늙은 윌리의 시신을 발견한다. 부검의는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윈터그린은 타살이라고 여긴다. 사건 담당인 풀 형사는 그런 윈터그린을 수사팀에 합류시키고 함께 수사해 나간다. 풀 형사는
범인이 히피족일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막의 히피족 은거지에 가서 그들을 괴롭힌다. 윈터그린은 풀의 그런 행태에 넌더리를 낸다.
그러던 중에 풀은 자신의 아내가 윈터그린과 내연 관계인 것을 알아채고, 윈터그린을 도로 순찰대로 좌천시킨다. 지퍼는 돌아온
윈터그린에게 새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자랑한다. 그것이 죽은 윌리의 돈으로 산 것이라는 지퍼의 말에 둘은 언쟁을 벌이는데...
영화 '이지 라이더(1969)'의 흥행 성공으로 스튜디오들은 그와 비슷한 아류작들을 찍어내는 데에 골몰했다. 'Two-Lane
Blacktop(1971)', 'Vanishing Point(1971)'와 같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Electra Glide
in Blue(1973)'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는 '오토바이'이다. 주인공 윈터그린은
고속도로 오토바이 순찰대원이며, 풀과 윈터그린이 방문하는 히피들의 근거지에도 오토바이가 줄줄이 놓여있다. 윈터그린의 동료 지퍼는
꿈에 그리던 오토바이 'Harley-Davidson Electra Glide'를 사려고 죽은 자의 돈까지 훔친다. 오토바이가
선사하는 속도와 자유로운 질주의 감각은 당시의 젊은 세대에게 소중하게 여겨졌다. 영화 속에서 '이지 라이더'의 포스터가 나오는
것도 볼 수 있다.
거기에 '사막'이라는 공간성이 이 영화에 더해진다. 'Electra Glide in Blue'의 사막에서는 공권력과 히피들이
충돌한다. 과속을 하는 히피들의 오토바이를 단속하는 순찰대에게 히피들은 인생낙오자 같은 한심한 족속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히피들은 록 밴드의 공연에 열광하고(구에르시오는 밴드 Chicago와 함께 이 영화의 음악을 작업했다), 오토바이로
질주의 기쁨을 만끽하며, 사막 은거지에서 자기들끼리 평화롭게 지낼 뿐이다. 그런 히피들에게 경찰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부당한
공권력으로 비춰진다.
'이지 라이더'를 시작으로 쏟아져 나온 일련의 '히피족+오토바이+자동차+고속도로' 영화들이 히피들에게 온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Electra Glide in Blue'에서 히피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성 세대와 맞닿아 있다. 윈터그린의 동료
지퍼가 고속도로 순찰 중에 히피에게 보이는 집요한 괴롭힘, 형사 풀이 히피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들과는 달리
주인공 윈터그린은 히피들에게 다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경찰이기는 해도 그의 삶은 도덕적이지 않다. 수사팀 형사의 아내와
불륜 관계이며, 자신의 업무인 과속 단속은 운전자를 갈구는 흥밋거리일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윈터그린은 지퍼가 전에 괴롭혔던 히피를 과속으로 불러세운다. 그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며 경고와 함께 보내지만,
히피가 잊어버리고 간 운전면허증을 돌려주기 위해 차를 따라잡는다. 그러나 자신들을 추격하는 것으로 오해한 히피는 윈터그린을 향해
총을 겨눈다. 애리조나 사막의 이정표 Monument Valley가 원경에 자리한 화면에, 윈터그린은 무한히 뻗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로의 한 가운데에서 피를 쏟으며 죽는다. 감독 구에르시오가 원했던 존 포드식 감성은 그런 기이한 마지막 장면으로
구현된다.
'Electra Glide in Blue'의 길 잃은 서사와 연출력의 부재는 영화의 완성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당대
최고의 촬영 감독 콘래드 홀이 담아낸 애리조나 사막의 풍광과 오토바이 추격 장면은 이 영화가 가진 모든 결함을 메꾸고도 남는다.
비록 영화 제작에 문외한인 감독으로 촬영 현장에서 이리저리 휘둘려 다녔을 터이지만, 구에르시오는 자신이 잘하는 음악 하나는
기막히게 뽑아냈다. Directed by James William Guercio. 그렇게 그의 유일한 영화는 1970년대 미국
영화사에서 컬트적 지위를 차지했다.
영화 속에서 윈터그린으로 상징되는 공권력은 히피에 의해 죽는다. 그러나 이제 히피들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보수층은 자신들의
불만을 계속해서 축적해 나가면서, 그들의 의견을 대변할 새로운 정권을 모색한다. 권토중래(捲土重來),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는 레이건의 시대는 1970년대 보수 세력의 절치부심 속에 1980년에 마침내 막을 올리게 된다.
'Electra Glide in Blue'의 마지막은 그런 면에서 매우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한 시대의 종언인 셈이다.
*사진 출처: filmpuls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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