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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22의 게시물 표시

AI 시대, 인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The Mitchells vs. the Machines, 2021)

    20분의 법칙. 언젠가 읽은 시나리오 작법 책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20분 안에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한다'. Sony Picutres의 2021년작 애니메이션 영화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The Mitchells vs. the Machines, 2021)' 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 기준을 살짝 넘어간다. 20분이 지나도록 이 애니메이션은 좀 심심하다. 미첼 가족의 구성원들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로 그 중요한 20분을 흘려 보낸다. 그러다 23분이 될 때에 갑자기 사건이 터진다. AI(인공 지능) 로봇이 인간을 공격한다. 그렇다. 이 애니메이션은 제목 그대로 AI 로봇 군단에 맞서는 미첼 가족의 좌충우돌 모험담 이다.    애니메이션의 도입부는 딸 케이티와 아빠 릭의 소원해진 사이를 부각시킨다. 영상물 제작을 좋아하는 케이티는 영화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케이티는 가족이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주길 원한다. 하지만 아빠는 영화로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물으며 케이티를 실망시킨다. 상심한 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릭은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대륙 횡단 여행을 계획한다. 케이티는 내키지 않지만 하는 수 없이 여행에 동참한다. 한편 기업가 마크 보우먼은 새로운 로봇 라인을 발표한다. 그런데 발표회장에서 반란을 일으킨 로봇들은 인간들을 마구 공격하고 포획한다. 그 시간, 공룡 테마 파크에 머물고 있던 미첼 가족은 로봇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다. 아빠 릭, 엄마 린다, 딸 케이티, 아들 애런. 초능력자도 아닌 이 평범한 미첼 가족은 로봇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내러티브의 한 축은 미첼 가족 내부의 갈등으로 이루어진다. 또 다른 한 축은 로봇 군단을 이끄는 우두머리 AI PAL과 미첼 가족과의 대결이 차지한다. 복잡하게 꼬인 가족 모험 서사의 종착지는 당연히 로봇 군단의 패배이다. 하지만 그러한 결말에 이르면 관객은 이 애니메이션의 진정한 주제는 결국 '가족주의'

상실과 고통에 대한 잔혹 동화, 내 몸이 사라졌다(I Lost My Body, J'ai perdu mon corps, 2019)

    인생에서 어떤 상실은 결코 회복될 수 없다. Jérémy Clapin 의 애니메이션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J'ai perdu mon corps, 2019)' 에서 주인공 나우펠에게 일어난 일이 그러하다. 바닥에 내려앉은 파리, 천천히 흐르는 피, 부러진 안경, 쓰러진 남자, 그리고 잘려진 그의 손. 화면은 흑백으로 변하고 어린 소년 나우펠과 그 부모가 보인다. 다시 컬러로 변환된 화면에서는 의학 연구소의 냉장고에서 손이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할 줄 아는 이 똑똑한 손은 거침없이 파리 시내를 질주한다. 고층 둥지에서 자신을 밀어내려는 비둘기의 목을 비틀고, 지하철 정류장에서는 라이터를 켜서 쥐떼의 공격을 막아낸다. 잘려진 손의 여정 위로 청년이 된 나우펠의 이야기가 컬러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흑백의 화면으로 겹쳐진다.   청년 나우펠의 현재는 고단하기 짝이 없다. 피자 배달부로 일하는 그는 매번 배달에 늦기 일쑤이다. 삼촌에게 얹혀 사는 나우펠에게 집은 길바닥 보다도 못한 곳이다. 비정한 삼촌은 나우펠의 몇 푼 안되는 일당을 빼앗고, 못돼먹은 사촌은 나우펠을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우펠은 가벼운 접촉 사고로 마르티네즈 부인의 피자를 약속 시간보다 늦게 배달하게 된다. 현관 인터폰으로 배달이 늦은 이유를 설명하던 나우펠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 호감을 느낀다. 그 여성의 진짜 이름이 가브리엘이며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우펠. 가브리엘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나우펠은 가브리엘의 삼촌 지지의 목공소에 일자리를 얻는다.   잘려진 손이 필사적으로 향하는 목적지가 나우펠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진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이후로 나우펠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접촉이 차단된 채 살아왔다. 피아노를 치는 우주인이 되고 싶었던 나우펠의 꿈은 그 비극적인 교통 사고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나우펠에게 가브리엘에 대한 사랑은 삶의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운다. 하지

셰프의 주방에서 끓어넘치는 모든 것, Boiling Point(2021)

    아주 오래전, 백화점에서 잠깐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하다 들어간 곳이 아주 길고 좁은 복도였다. 유니폼을 입은 여점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벽에 등을 기대어 선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직원들의 휴게실 같은 곳이었다. 화려한 백화점의 가려진 곳에는 그런 공간이 있었다. Philip Barantini 의 영화 'Boiling Point(2021)' 는 관객을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 뒷편으로 안내한다. 거기에는 고성과 비난, 연민과 격려, 분노와 짜증이 공존한다. 앤디(Stephen Graham 분)는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의 수석 셰프이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관청의 위생 담당 검사관에게 화가 치미는 소식을 듣는다. 검사관은 주방의 위생 상태 불량으로 안전 등급이 별 5개에서 3개로 강등되었다고 통보한다. 분노한 앤디는 주방 요리사들을 혹독하게 질책한다. 부주방장 칼리는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해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 손님들이 몰려들고 주방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과연 레스토랑 Jones & Sons의 직원들은 이 날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감독 필립 바랜티니는 이 영화를 싱글 테이크(a single take), 즉 하나의 쇼트로 찍었다. 무려 92분 동안 카메라는 끊기지 않고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간다. 이러한 촬영 방식이 주는 긴장감은 극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보일링 포인트'는 마치 리얼 타임 고급 레스토랑 탐험기 같다. 영화는 앤디의 출근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계속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앤디의 목소리와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이 사람은 무언가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검사관으로부터 받은 불쾌한 통보, 신참 요리사들의 실수, 거기에 레스토랑 매니저는 예약 손님을 너무 많이 받아놓았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앤디를 진정시키는 것은 부주방장 칼리. 차분하고 이성적인 칼리는 앤디를 대신해 주방 직

디즈니가 문화적 다양성을 포장하는 특별한 방법, 메이의 새빨간 비밀(Turning Red, 2022)

    남자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이 거대하고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중편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 비슷한 일이 13살 소녀 메이에게도 일어난다. 메이는 벌레가 아닌 붉은 털을 지닌 레서 판다(Lesser panda)로 변한다. 거울에 비친 낯선 자신의 모습에 메이는 혼비백산할 지경. 그런데 신기하게도 붉은 판다였던 자신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메이에게 일어난 것일까? 중국계 캐나다인 애니메이터 Domee Shi 감독의 '메이의 새빨간 비밀(Turning Red, 2022)' 은 13살 소녀의 일상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도미 시가 2018년에 내놓은 10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Bao(중국어로 '만두'라는 뜻)' 의 주인공은 중년 여성이다. 그 단편은 장성한 아들과 멀어진 엄마의 내면을 응축적으로 담아내었다.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 에 시달리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에서 도미 시는 13살 소녀 메이의 삶으로 들어간다.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 . 메이의 일상은 엄마의 철두철미한 계획표에 의해 진행된다. 엄마 밍은 메이가 미래의 UN 사무총장이 될 거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착하고 순종적인 메이는 그런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메이는 그런 엄마를 따르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사춘기,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비밀을 엄마한테 말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동네 오빠, 즐겨듣는 아이돌 그룹 4*Town의 노래... 딸의 일상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살피는 엄마에게 메이의 비밀은 곧 탄로난다. 밍은 딸이 좋아하는 남학생을 찾아가 모욕을 주고, 아이돌 그룹의 노래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메이는 그런 엄마가 미우면서도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4부: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쇼치쿠(Shochiku, 松竹) 영화사의 이상한 모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니혼마츠 카즈이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사토 하지메(佐藤肇) 4. 지구 멸망의 비관적 세계관: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우주 대괴수 기라라(1967)'를 만든 그 이듬해, 니혼마츠 카즈이 감독은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을 내놓았다. 영화는 '원자 폭탄의 발명은 인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대학살(Genocide)' 이라는 영어 제목이 암시하듯, '곤충대전쟁'에는 비관적 세계관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지구 멸망의 단초가 되는 것은 '독충'이다. 핵폭탄을 싣고 베트남으로 향하던 미군 수송기는 곤충 무리의 갑작스런 습격을 받고 아남 군도에 추락한다. 미군 수뇌부는 비밀리에 생존자와 핵폭탄의 행방을 조사한다. 두 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한 명의 생존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미군의 죽음이 독충과 관련있다고 믿게된 곤충학자 나구모 박사는 독충의 근원지를 찾아나선다. 마침내 나구모 박사는 살인 곤충을 만들어낸 장본인과 마주하게 되는데...   '곤충대전쟁'에는 당시 일본이 바라본 국제 관계의 역학이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미국은 오만한 패권 국가로 비춰진다. 미군 수사대는 무죄한 섬 주민을 미군 살해범으로 몰아간다. 그들이 나구모 박사를 비롯해 일본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강압적이고 무례하다. 일본은 패전 이후 연합군 총사령부(GHQ) 의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3부: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쇼치쿠(Shochiku, 松竹) 영화사의 이상한 모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니혼마츠 카즈이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사토 하지메(佐藤肇) 3. 괴수(怪獣) 영화 속 탈색된 패전의 기억: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광대한 우주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주제가가 도입부에 흐른다.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감독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는 우주 탐험의 미래로 관객을 데려간다. 1960년대, 쇼치쿠 (Shochiku, 松竹) 영화사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 TV의 등장과 보급으로 인해 영화 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 키노시타 케이스케와 같은 감독들이 보여준 소시민적인 현대극(現代劇)은 한물간 낡은 것으로 여겨졌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쇼치쿠는 과감한 모험을 시도한다. SF 영화 와 공포 영화 를 제작한 것이다. 이는 여성 관객 위주의 기존 관객층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TV가 보여줄 수 없는 것,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스튜디오의 세트장은 다양한 특수 효과를 위한 실험실이 될 터였다.   일본인 승무원과 미국인 과학자로 구성된 우주선 AAB 감마는 화성 탐사를 위해 일본의 우주 기지에서 발사된다. 화성에 도착하기 전에 UFO의 방해를 받은 우주선은 정체불명의 포자들에 둘러쌓인다. 포자의 연구를 위해 지구로 귀환한 우주선과 승무원들. 그런데 실험실에 보관된 포자 샘플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우주 기지 주변에 괴물이 출현한다. '기라라(ギラ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2부: 하우스(ハウス, House, 1977)

  2.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집     *이 글에는 영화 '하우스(1977)'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TV의 등장과 보급으로 인한 영화 산업의 침체기는 197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일본의 영화사들은 그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로망 포르노와 야쿠자 영화로 활로를 찾았던 니카츠(Nikkatsu, 日活) 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는 유사한 니카츠 영화들에 관객들은 슬슬 진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과 특촬(特撮) 영화가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주력 사업이 되었다. 쇼치쿠(Shochiku, 松竹) 는 뜻밖의 노다지를 발견했다.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 의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 1969–1995)' 연작이 그것이었다.   불황의 시기에 사람들은 더 안전한 투자를 선호한다. 해외에서 성공한 영화를 베끼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었다. 1976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록키(Rocky)' 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 수익을 냈다. 이 영화를 보고 도에이(東映) 영화사는 비슷한 권투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영화가 테라야마 슈지 감독 의 '복서(ボクサー, The Boxer, 1977)' 였다. 도호(東宝)도 빠질 수 없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Jaws, 1975)' 같은 것을 만들어 보자! 그 뜻밖의 결과물은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宣彦) 감독 의 '하우스(ハウス, House, 1977)' 였다.   주인공 여고생 오샤레 는 다가올 여름 방학을 설레임으로 기다린다. 해외에 나가있는 아빠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아빠는 딸을 실망시킨다. 딸에게 새엄마가 될 여자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상심한 오샤레는 엄마의 고향 가루이자와에 있는 이모에게 편지를 쓴다. 이모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여름 방학을 보내고 싶다는 것. 이모는 기꺼이 승락

전후 일본의 트라우마와 공포 영화 1부: 공포의 저택(怪談せむし男, House of Terrors, 1965)

  1. 악령의 집에 구현된 일본 사회의 내면   여자는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깨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여자의 남편 신이치는 정신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남편의 장례식, 여자는 주치의로부터 남편이 죽기 전에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지막으로 여자가 남편의 얼굴을 보고 돌아서려는데, 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두 눈을 부릅뜬 시신은 무섭기만 하다. 여자는 남편의 입에 꽂아둔 국화꽃을 빼내려 하지만, 단단하게 맞물린 망자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 변호사가 여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남편이 여자에게 남겼다는 별장의 열쇠를 건넨다. 갑자기 미쳐서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던 남편이 언제 그런 별장을 샀단 말인가? 여자는 그 별장에 가보기로 한다.   별장에는 곧 방문객들이 속속 도착한다. 미망인 요시에, 요시에의 조카 카즈코, 요시에의 삼촌이며 정신 병원 원장인 무네카타 박사, 주치의 야마시타, 야마시타의 여자 친구 아키코, 변호사, 그리고 자신이 요시에 남편의 애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까지. 그들이 머물게 된 이 별장은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끼익거리면서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문들, 현관 중앙에 자리한 괴수의 동상, 어디선가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사람을 공격하는 까마귀, 별장의 꼽추 관리인은 유령처럼 이곳저곳에 출몰한다.   사토 하지메(佐藤肇) 감독의 영화 '공포의 저택(House of Terrors or The Ghost of the Hunchback, 1965)' 이 제작될 무렵에 일본 영화계는 전환기에 놓여 있었다. TV의 등장은 영화 산업계에 닥친 천재지변과도 같았다. 이제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는 대신에 거실의 안락한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것을 택했다. 헐리우드는 TV 화면이 보여줄 수 없는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와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역사극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렇다면 일본의 영화사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영화와 인생, 그 기묘한 이중주: 시작(Начало, The Beginning, 1970)

    "두고 봐요. 난 위대한 여배우가 될 테니까."   작은 도시에서 공장 여공으로 일하고 있는 파샤(인나 추리코바 분)의 일상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여가 시간에는 마을 광장에서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지켜본다. 파샤는 누군가와 간절히 춤을 추고 싶지만 평범한 외모의 파샤에게 눈길을 주는 남자는 없다. 착하고 자기 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파샤에게 친구들은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에 바쁘다. 이혼한 친구는 자신이 데이트하러 나갈 동안 아이를 돌봐달라고 한다. 이웃 청년은 여자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파샤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한다. 파샤는 그런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파샤의 유일한 취미 활동이라면 동네 극단에서 연기를 하는 것. 파샤는 Baba Yaga(러시아 민담의 마귀 할멈) 역을 맡아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다. 다른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부럽게 쳐다보던 어느 날, 파샤에게 한 남자가 춤 신청을 한다. 파샤는 첫눈에 이 남자 아르카디에게 반한다. 파샤는 아르카디에게 자신이 언젠가 유명한 여배우가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런 파샤를 아르카디는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과연 파샤의 꿈은 허황된 것일까?   글렙 판필로프(Gleb Panfilov) 감독의 영화 '시작(Начало, The Beginning, 1970)' 은 독특한 도입부를 가지고 있다. 오프닝 크레딧이 없는 이 영화는 잔 다르크의 심문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종교 재판관으로부터 혹독한 심문을 받는 잔 다르크는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내보인다. '잔 다르크'는 영화 '시작'에서 영화 속 영화인 셈이다. 짧은 머리를 한 여배우는 촬영이 끝나자 만족한 표정으로 촬영장을 떠난다. 화면 위로 그 여배우의 어린 시절, 소녀 때의 사진이 차례로 겹쳐진다. 그리고 나서 영화는 사진 속 주인공 파샤의 현실로 들어간다. 이렇게 영화 '시작'은 시골 여공 파샤와 여배우 파샤의 모습을 교차 편집으로 엮는다.   잔

파계(破戒, Apostasy, 1948), 파계(破戒, The Outcast, 1962)

  하나의 소설, 다른 관점의 두 영화 파계(破戒, Apostasy, 1948),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 파계(破戒, The Outcast, 1962), 이치카와 콘 감독   국민학교 선생인 세가와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는 부라쿠(部落) 출신이다. 부라쿠민은 전근대 일본의 신분제에서 최하층을 일컫는 말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신분제가 철폐된 이후에도 부라쿠민(部落民)에 대한 차별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일본의 자연주의 소설가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이 1905년에 발표한 소설 '파계(破戒)' 는 바로 이 부라쿠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 은 1948년 에 소설을 영화화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4년 후, 이치카와 콘 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파계'를 만들어 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올해, 이 소설은 또 다시 영화로 만들어져서 일본의 관객들과 만났다. 이것은 소설 '파계'가 지닌 문제의식이 100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일본 사회를 관통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학교에서 숙직을 서던 세가와(이치카와 라이조 분)는 밤하늘 너머 울리는 부친의 목소리를 듣는다. 무언가 안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그는 비밀리에 고향땅을 밟는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부친은 집 나간 황소를 찾아다니다 황소의 뿔에 받혀 절명하고 말았다. 숙부는 조카의 신분이 드러날까 염려하며 얼른 돌아가기를 재촉한다. 평생 부라쿠 출신임을 철저히 숨기고 살 것. 아들만은 차별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기를 바랬던 아버지의 간절한 염원은 그러했다.   세가와는 부라쿠민 출신의 사회운동가 이노코 렌타로의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부라쿠민임을 드러내는 단서가 될까봐 세가와는 책조차 숨겨가면서 읽는다. 마을을 찾은 이노코 렌타로를 만난 자리에서도 세가와는 마

길을 잃은 사람들, Rain People(1969)

  *이 글에는 영화 'Rain People' 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그 여자, 임신했어요(She is pregnant)."   여자는 수화기 너머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묻는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여자는 남편에게 그렇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린다. 여자의 이름은 나탈리. 아내로서, 아이 엄마로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느낀 여자는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영화 'Rain People(1969)' 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의 범상치 않은 초기작이다. 이 영화가 나온 해에 'Easy Rider(1969)' 가 나왔다. 'Rain People'은 'Easy Rider'와 기이한 영화적 댓구를 이룬다. 길 잃은 청춘들의 일탈적 로드 무비와 집을 뛰쳐나온 가정 주부의 뒤틀린 여행기가 같은 해에 나온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어쩌면 그 시대의 미국인들은 어디론가 간절히 떠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비오는 날 아침, 나탈리는 식탁에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떠난다. 목적지도, 누구를 만나야겠다는 계획도 없다. 나탈리는 차를 몰고 가다가 히치 하이킹을 하려는 젊은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자신을 'Killer'로 부르라며 해맑게 웃는다. 대학을 그만 둔 전직 미식 축구 선수와 집 나온 가정 주부는 그렇게 동행이 된다. '킬러'의 과거는 단편적인 몽타주로 제시된다. 그는 경기에서 뇌를 다쳤다. 대학 당국은 그에게 보상금을 쥐어주며 방출해 버렸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킬러에게 나탈리는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나탈리에게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은 점차 부담으로 다가온다. 나탈리는 어떻게든 킬러를 자신의 여정에서 밀쳐내려고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킬러에게 알맞은 일자리를 찾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