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치쿠(Shochiku, 松竹) 영화사의 이상한 모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곤충대전쟁(昆虫大戦争, Genocide, 1968), 니혼마츠 카즈이
흡혈귀 고케미도로(吸血鬼ゴケミドロ, Goke, Body Snatcher from Hell, 1968), 사토 하지메(佐藤肇)
3. 괴수(怪獣) 영화 속 탈색된 패전의 기억: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
'광대한 우주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주제가가 도입부에 흐른다. 니혼마츠 카즈이(二本松嘉瑞) 감독의 '우주 대괴수 기라라(宇宙大怪獣ギララ, The X from Outer Space, 1967)'는 우주 탐험의 미래로 관객을 데려간다. 1960년대, 쇼치쿠(Shochiku, 松竹)
영화사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 TV의 등장과 보급으로 인해 영화 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
키노시타 케이스케와 같은 감독들이 보여준 소시민적인 현대극(現代劇)은 한물간 낡은 것으로 여겨졌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쇼치쿠는 과감한 모험을 시도한다. SF 영화와 공포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이는
여성 관객 위주의 기존 관객층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TV가 보여줄 수 없는 것,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스튜디오의 세트장은 다양한 특수 효과를 위한 실험실이 될 터였다.
일본인 승무원과 미국인 과학자로 구성된 우주선 AAB 감마는 화성 탐사를 위해 일본의 우주 기지에서 발사된다. 화성에 도착하기
전에 UFO의 방해를 받은 우주선은 정체불명의 포자들에 둘러쌓인다. 포자의 연구를 위해 지구로 귀환한 우주선과 승무원들. 그런데
실험실에 보관된 포자 샘플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우주 기지 주변에 괴물이 출현한다. '기라라(ギララ)'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이 대괴수는 닥치는 대로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점차 도쿄로 향하는 기라라. 자위대 전투기를 비롯해 군
병력이 총동원되지만 기라라를 막지는 못한다. 우주선 선장 사노와 기지의 과학자들은 기라라를 제압할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괴수 '기라라'의 모습에서 영화 '고지라(ゴジラ, Godzilla, 1954)'를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고지라'는 방사능의 피폭으로 탄생한 괴물이며, '기라라'는 우주 포자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원폭 투하의 트라우마가 선명한 영화 '고지라'와는 달리 '우주 대괴수 기라라'에서는 그러한 흔적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 일본은 우주 탐사를 주도하는 국가이다. 우주선 승무원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달 기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원폭으로 일본을 패배시킨 나라 미국은 동등한 협력자가 된다. 미국인 여자 과학자 리사는 우주선 선장
사노를 흠모한다. 달 기지 승무원 미치코 또한 사노를 좋아한다. 이 SF 영화는 로맨스와 기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두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선장 사노는 대괴수 파괴의 선봉에 선다. 영화 '고지라'로부터 13년, '우주 대괴수 기라라'는 패전의 기억을
탈색시켜 버린다.
기라라의 거침없는 진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핵폭탄 투하가 거론된다. 영화 속에서 일본 우주 기지의 책임자는 미국이 원폭
투하의 과거 때문에 그러한 개입을 꺼린다고 말한다. 미국은 일본에 다시는 핵을 쓸 수 없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일은 미국의 과오로 비쳐진다. 이제 일본은 괴수 기라라가 야기한 위기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기라라의 에너지를 차단할 수 있는
물질을 가지고 선장 사노와 승무원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마침내 기라라가 파괴되고, 사노와 미치코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석양의 풍경 속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평화롭다.
영화 '고지라'는 일본을 침략 전쟁의 가해자에서 원폭 투하로 고통받은 피해자의 위치로 재설정한다. '우주 대괴수 기라라'는
그러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구 너머의 괴생명체를 끌여들여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각국의 뉴스는
'기라라'를 전지구적 재앙으로 보도한다. 일본은 우주 괴물 '기라라'를 처치함으로써 지구를 구하는 국가가 된다. 가해자에서
피해자, 거기에서 더 나아가 지구를 대파괴와 혼돈에서 구하는 일본의 국가 이미지는 SF 괴수 영화와 긴밀히 결합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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