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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2의 게시물 표시

생존의 법칙, Playground(Un monde, 2021)

    7살 노라는 오빠와 함께 이제 막 새로운 학교에 들어서는 참이다. 아빠의 품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눈물이 계속 난다. 그래도 오빠가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점심 시간에 급식실에서 오빠와 같이 앉으려는데, 선생님이 그러지 말라고 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란다. 다행히 말을 걸어오는 애들이 있다. 운동장에서 함 께 놀면서 조금씩 친해진다. 저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빠가 있다. 뭔가 분위기가 안좋은 것 같다. 오빠는 가까이 오지 말라며 막아선다. 키 큰 남자애가 오빠를 괴롭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걸 어쩌지...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어린 노라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듯 하다. 학교는 노라와 아벨 남매가 적응해야할 정글이다. 노라가 또래 아이들의 무리에 순조롭게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아벨은 어려움을 겪는다. 신체적 위협과 욕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아벨은 맨 아래로 금새 밀려난다. 어떻게든 오빠를 돕고 싶은 노라는 선생님을 부르고 아빠에게 이야기 한다. 괴롭히는 녀석을 어른들이 혼내주면 오빠가 편해질 거야... 그런데 노라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간다.   벨기에의 신인 감독 Laura Wandel의 데뷔작 'Playground(2021)' 는 어린 남매의 괴로운 학교 생활을 따라간다. 영화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괴롭힘과 따돌림 문제를 사실적으로 직시한다. 물론 교사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다. 교사는 얻어맞는 아벨을 떼어놓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는 주의를 준다. 문제는 교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이다. 괴롭히는 녀석들은 영악하고 교활하다. 적당히 신경을 긁고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지점을 파악해서 행동에 옮긴다. 아벨은 전보다 더 안좋은 처지에 놓인다.   이 영화의 원제는 'Un monde', '세계'라는 뜻이다. 완델은 인간 관계의 심리적 역동성을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완벽하게 구현한다. 강자와 약자, 또래 집단과 인정의 문제

에티오피아에 드리운 절망과 무기력의 베일, Faya Dayi(2021)

    Yirgacheffe.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이 고유한 풍미의 커피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바로 기후 변화(climate change)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부들은 맛이 없어진 커피 대신에 다른 작물을 심고 있다. Khat 는 커피를 갈아엎은 땅을 빠르게 채워가는 중이다. 환각 물질을 함유한 이 나뭇잎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애용된다. 커피보다 물이 적게 들고(커피 생산에는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 재배와 가공 과정도 간소하다. 감독 Jessica Beshir는 어린 시절, 에티오피아 내전을 피해 가족이 멕시코로 이주했고 그 뒤에 미국에 정착했다. 나중에 고국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베시르는 커피 농장이 카트로 가득찬 벌판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Faya Dayi(2021) 는 카트와 에티오피아 사회의 심리 사회적 연관성을 다룬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소설 작법에 나오는 비법 가운데 하나이다. 베시르는 에피오피아 내전과 그 후유증, 카트 산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10년에 걸쳐 촬영된 이 다큐는 어떤 면에서 감독이 바라본 고국에 대한 성찰의 편린들을 묶은 것이기도 하다. 흑백의 화면 속에 펼쳐지는 이 나라의 풍광에서 폭력과 갈등의 그림자를 찾기는 어렵다. 카트 작업장 인부들의 떠들썩한 말소리, 느긋하게 카트를 씹는 나이든 남자들, 강물에서 평화롭게 노는 아이들... 하지만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절망이 묻어난다.   오랜 내전(Ethiopian Civil War, 1974-1991)은 에티오피아 곳곳에 생채기를 남겼다. 2020년에 발생한 북부 티그라이 지역에서의 내전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무려 80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의 복잡한 민족 구성은 정치적 불안정과 연결되어 있다. 청년들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내전에서의 폭력과 살상의 기억이 소환된다. 베시르는 내전이 할퀴고 간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내면을 시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로 담아

중국 현대 여성의 서사와 담배, The Cloud in Her Room(2021)

    Soju movie. 홍상수의 영화는 종종 그렇게 불린다. 이젠 외국 평론가들도 '소주'가 뭔지 안다. 가끔은 외국 리뷰어들의 흥미로운 질문글도 올라온다. 왜 '홍'의 영화에는 소주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가? 그 질문에 댓글을 달아본 적은 없지만, 나라면 이렇게 적겠다. '소주'가 들어가야 카메라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촬영 현장에는 소주가 박스째로 꽤 높게 쌓여있을 것이다. 중국의 신진 감독 Zheng Lu Xinyuan의 영화 'The Cloud in Her Room(2021)' 에도 홍의 소주 같은 매개체가 등장한다. '담배'이다. 여자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이 여성 감독이 골초라는 것도 확인된다.   22살의 여성 Muzi는 춘절을 맞이해 고향 항저우에 온다. 오래전에 이혼한 부모는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무지는 새엄마와 어린 이복 여동생이 있는 아빠의 집에 머무른다. 무지와 또래 친구처럼 친밀한 친엄마에게는 외국 연인이 있다. 별다른 계획도, 할 일도 없는 무지는 가족이 함께 살던 예전의 낡은 아파트를 찾아가서 시간을 보낸다. 베이징에 있던 사진작가 남자 친구가 갑자기 무지를 찾아온다. 그 와중에 무지는 동네 술집 주인과 가벼운 연애를 시작한다.   어떤 영화들은 보고 나면 참 좋은 영화인데 막상 글로 쓰려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반면에 별로인 영화인데 쓰고 싶은 것이 많을 때도 있다. 'The Cloud in Her Room(2021)'은 그 후자에 속한다. 이제 중국 영화 감독의 세대 구분은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내가 그나마 주의깊게 지켜본 감독이 6세대 감독 리위(李玉, Li Yu) 였는데, 한때 눈부셨던 리위도 영화적 재능이 바닥을 드러낸듯 하다. Zheng Lu Xinyuan은 중국 출신으로 미국 USC에서 영화를 전공한 해외파 신진 감독이다.

둑길에 흘려 보낸 것들, 둑길(紅顔, Dam Street, 2005)

    내 이름은 샤오윈. 올해 나이 스물 여섯. 별 볼 일 없는 시골 극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웃음을 팔고 있지.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는 유부남인데, 딱히 죽고 못사는 사이도 아냐. 그냥 마음 둘 데가 없어서 그런 거지. 학교 선생인 우리 엄마는 나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셔. 극단에서 공연하고 버는 돈은 달리 쓸 데도 없고, 그냥 엄마를 드리는데 그걸 싫어하시는 것 같아. 그냥 사는 게 지겹고 그래. 그런데 요새 알게 된 마을의 조그만 녀석 샤오융이 자꾸 날 따라 다니네. 극단 사람들은 걔를 내 '꼬마 애인'으로 불러. 가만 보면, 이 심한 개구쟁이 녀석은 밉지가 않아. 가끔 난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 생각을 하곤 하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들었어. 어쩌면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린 건 그 아이가 생긴 이후부터였을 거야...   중국의 여성 감독 리위의 2005년 영화 ' 둑길(紅顔, Dam Street) '은 16살에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생의 행로가 뒤틀어져 버린 젊은 여성의 삶을 담아낸다. 리위는 2012년작 '로스트 인 베이징( 苹果, Lost in Beijing)'으로 급변하는 중국의 현실과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담하게 담아내었다. 이 작품의 일부 성적인 묘사와 몇몇 장면들은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려서, 리위와 제작사는 한동안 영화 제작을 할 수 없었다. 그 이전 작품인 '둑길'에서는 도시가 아닌 시골, 그곳의 정체된 삶과 전근대적인 가치관 속에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로스트 인 베이징'이 치열한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면, '둑길'에서는 여성 감독으로서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 묘사와 깊이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샤오윈은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 왕펑과 사귀다 임신하게 되고 그 사실이 알려진 후 공개적으로 퇴학을 당한다. '헤픈 여자'라는 손가락질과 비난을 오물처럼 뒤집어쓴 채로 지난 십 년을

집을 찾아가는 여정, 관음산(观音山, 2010)

    "사실 쉬운 건 하나도 없어. 이 큰 도시에서 우리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지."   흐느껴 우는 난펑(판빙빙 분)을 위로하며 친구가 하는 말이다. 난펑은 재혼한 엄마에게 생활비를 보낸다. 술집에서 노래부르고 웃음 팔며 버는 돈이다. 술주정뱅이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술병이 나서 입원한 남자를 찾아온 난펑은 술 마시고 죽어버리겠다고 난동을 부린다. 이렇게 마음 둘 데가 없기는 난펑의 남자 친구 딩보(진백림 분)도 마찬가지. 병으로 죽은 엄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여자 생겨서 재혼하는 아버지가 밉다. 페이저우라는 이름 대신 뚱보로 불리우는 친구는 부모와 불화로 집을 나왔다. 이들 셋은 버려진 빈집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다 집이 철거를 하게 되자, 셋집을 알아 보다 경극을 가르치는 창 여사의 집에 방을 얻는다. 뭔가 잘 어울리지 않을 이 네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같이 살 수 있을까...   '둑길(2005)', '로스트 인 베이징(2007)', 이 두 작품에 이은 리위 감독의 '관음산(2010)'은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인생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를 좀 편하고 쉽게 끌어가려다 보니, 인물들 간의 관계는 헐겁고 내적인 유기성은 떨어진다. 이 영화는 리위 감독에게 중국 내 흥행으로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주연 배우인 판빙빙의 연기도 꽤 좋은 편이어서 이 영화로 동경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대중성을 위해 자신만의 개성을 죽이고 적당히 타협한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다소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영화 속 난펑과 딩보, 뚱보가 직면한 현실의 괴로움은 그들만이 겪는 특출난 것이 아니다. 부모와의 갈등, 진로에 대한 고민, 연애와 생계의 문제,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관음산'의 세 친구들이 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철 지난 히피 시대적 감성, Cryptozoo(2021)

    바쿠(ばく).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아사코(Asako I & II, 2018)' 를 주의깊게 본 관객이라면 이 이름을 기억해낼 것이다.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영화 속에서 바쿠와 료헤이로 1인 2역을 연기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Cryptozoo(2021)' 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그 바쿠이다. 미국의 인디 애니메이터가 만든 영화에 일본의 요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꽤나 흥미롭기는 하다. 중국의 전통 설화에서 유래된 이 요괴는 꿈, 특히 악몽을 먹어버린다. 영화 속에서 바쿠는 귀여운 아기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길다란 코로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과 꿈을 빨아들인다.   마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 동식물처럼 크립티드는 밀렵꾼들에 의해 사냥되고,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수의학자 로렌 그레이는 바쿠와 같은 신화적 생물 cryptid를 구출하는 데에 전력을 다한다. 군 부대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 로렌은 악몽에 시달릴 때 바쿠가 와서 도와준 기억을 갖고 있다. 이런 로렌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이는 부유한 후원자 조앤이다. 조앤은 거대한 Cryptozoo를 만들어서 로렌이 구해낸 크립티드들을 수용한다. 한편 군에서는 바쿠를 이용해서 좌파 시위대를 진압하려고 한다. 바쿠가 시위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없앨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로렌은 조앤의 도움으로 고르곤 피비와 함께 군 부대에 잡힌 바쿠의 구출에 나선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괴한 그림체에 비한다면 내러티브는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좌파적 상상력을 말살시키기 위해 국가 권력이 상상의 요괴를 잡으러 나선다. 그 반대 지점에서 크립티드의 수호자인 로렌이 맹활약을 펼친다. 'Cryptozoo'에는 온갖 다양한 신화와 하위 문화 속에서 차용한 크립티드들이 등장한다. 중국 신화 속의 용부터 시작해서, 일본의 바쿠, 그리스 신화의 고르곤과 사티리콘, 스폰지밥을 연상케 하는 플리니의 모습까지. 크립티드의 형상은 Dash

불안한 삶의 압력을 견디다, Anne at 13,000 Ft.(2019)

    영화는 다소 혼란스러운 도입부로 시작한다. 어린이집 교사인 앤은 부산스러운 애들을 보살피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 앤의 모습과 교차 편집된 장면은 절친의 'Bachelorette Party(결혼을 앞둔 신부와 친구들이 하는 파티)'로 스카이다이빙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헝클어진 금발머리처럼 앤의 표정이나 행동은 어딘지 모르게 들뜨고 불안정해 보인다. 캐나다의 감독 Kazik Radwanski의 2019년작 'Anne at 13,000 Ft.' 은 불안한 젊은 여성의 삶을 포착한다.   이 영화에서 존 카사베츠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핸드 헬드 카메라는 시종일관 거칠게 흔들린다. 관객은 그 화면 속 앤의 모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곧 알아챈다. 앤은 뜨거운 커피는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 치우라는 동료 교사의 충고를 받는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앤은 커피를 개수대에 버리고는 컵을 상대방에게 던진다. 동료 교사는 질책하지만, 앤은 빈 컵을 보여주려는 것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런가 하면 친구의 결혼식에서는 축사를 하다 말고 울어버린다.    'A Woman Under the Influence(1974)' 에서 하층 계급 여성의 내면을 옥죄는 알콜 중독은 이 영화에서 조울증으로 대체된다. 앤은 친구의 결혼 피로연에서 진창 퍼마시고는 화장실에서 구토하고 주정한다. 이는 카사베츠의 'Husbands(1970)' 에 나오는 친구들의 화장실 구토신과 닮았다. 어쩌면 감독 카직 라드완스키는 카사베츠 덕후일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사베츠의 즉흥적이고 자연적인 연출 방식도 흉내낸 것일까? '13,000 피트의 앤'에서 라드완스키는 출연자의 일상을 계속 따라잡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카메라처럼 앤의 모든 것을 근거리에서 담아낸다.       집을 얻어 이제 막 독립한 이 젊은 여성의 삶은 어색하고 서툴기 짝이 없다. 결혼 피로연에서 만나 사귀게 된

서부의 땅에 스며든 핏빛 증오, 몬태나(Hostiles, 2017)

  *이 글에는 영화 '몬태나(Hostiles)'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영화 'Hostiles(2017)' 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892년은 이제 인디언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이다. 이미 1890년 12월에 운디드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 로 250여명의 라코타족이 죽었고, 남은 부족민은 황량한 보호구역에 유폐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블로커 대위(크리스찬 베일 분)는 오랫동안 인디언 전쟁의 제일선에 있었던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서로 대립하는 집단이 같은 방식으로 휘두르는 폭력의 양상을 마주한다. 로잘리의 가족을 습격한 코만치 인디언은 활과 총으로 죽인 것도 모자라 칼로 머리가죽을 벗긴다. 인디언 소탕 작전에 나선 블로커는 여자와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가혹하게 잡아들이고 그들을 짐승 취급한다. 인디언과 백인들 사이에는 오직 적의(hostile)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 질기고 오랜, 피비린내 나는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영화는 처참한 전쟁의 뒤안길을 응시한다. 로잘리의 가족을 도륙한 코만치 인디언들처럼 블로커가 속한 미 연방군 또한 도살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블로커에게 오직 처단해야할 적으로 상정된 인디언들은 죽거나 보호구역으로 보내져 더이상 찾기도 어렵다. 오랜 세월을 군에 몸담아온 블로커가 퇴역을 결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 때 그의 부대원들에게 가차없는 죽음을 안겼던 추장 옐로우 호크도 늙고 병들었다. 그럼에도 블로커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인디언들에 대한 적의가 들끓는다.   추장 옐로우 호크를 부족의 땅 몬태나에 데려다 주는 여정은 블로커에게는 어려운 시험과도 같다. 마음으로는 추장과 일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지만, 상부의 명령을 어기면 군법 회의에 회부되고 퇴역 연금도 없다. 인디언들에게 가족을 잃은 로잘리가 갖게 된 적의는 어떤 면에서는 블로커의 내면과 맞닿아 있다. 오랜 세월 전장에서 보낸 그였지만 부대원들의 죽음만큼은 결코

마법과도 같은 순간, What Do We See When We Look at the Sky?(2021)

  What Do We See When We Look at the Sky?(2021) 조지아어 표기 제목 რას ვხედავთ როდესაც ცას ვუყურებთ? Alexandre Koberidze, 러닝타임 2시간 30분   영화는 하교하는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시끌벅적하던 교문 앞은 어느새 텅 비어있다. 참새 한 마리가 잠깐 땅에 내려앉았다가 사람의 발소리에 놀라서 날아간다. 남자와 여자의 다리 부분만 보이는 쇼트에서 두 사람은 서로 부딪힌다. 여자가 떨어뜨린 책을 남자가 주워서 건네준다. 의대생 리사와 축구 선수 게오르기는 그렇게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아, 여기까지만 보면 로맨스 영화겠군,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좀 특이하다. 리사가 늘 다니던 건널목의 나무, 감시 카메라, 빗물받이, 바람은 리사에게 닥칠 악운을 걱정한다. 그들은 리사에게 그것을 경고하고 싶지만 전할 방법이 없다. 다음날 아침, 리사와 게오르기는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눈을 뜬다. 외모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그들이 가졌던 재능마저도 사라진다. 관객은 곧 그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목소리를 듣는다. 영화 'What Do We See When We Look at the Sky?(2021)'에서 감독 Alexandre Koberidze는 바로 그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를 맡았다.   밤거리의 카페에서 젊은이들은 즐겁게 담소하며 술잔을 부딪힌다. 그 시각, 리사와 게오르기는 약속한 장소인 카페에 가지만 이미 마법에 걸려 외모가 바뀐 그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한다. 약국에서 일하던 리사는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카페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축구부에서 쫓겨난 게오르기는 길거리 공연으로 카페에 손님을 유인하는 일감을 얻는다. 가까운 장소에서 일하는 리사와 게오르기 사이에는 여전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영화, 대체 뭘 이야기하려는 걸까? 영화는 두 주인공의 운명에 무심하지는 않지만, 그보

광기와 불안의 일그러진 궤적, Nitram(2021)

    "그래서 우리 아이가 당신에게 대체 뭐죠? 남편, 아님 아들?"    (So which is he? A husband or a son?)   매우 무심하고 건조한 표정으로 남자의 모친은 중년의 여자에게 묻는다. 남자의 이름은 마틴.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둔중한 체격을 지닌 이십 대 초반의 이 청년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다. 지적 장애에다 정서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 정신과 약물 치료도 받고 있다. 엄마에게 마틴은 언제나 수치심과 고통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여자 친구라면서 헬렌을 데려왔다. 엄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누가 봐도 이상한 저 아이가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호주 감독 Justin Kurzel의 2021년작 'Nitram' 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996년 4월, 호주 태즈메니아 섬의 Port Arthur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당시 스물 여덟의 Martin Bryant. 무려 35명이 사망한 그 사고로 호주에서는 강력한 총기 규제 법안이 마련되었다. 영화는 마틴 브라이언트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의 삶을 들여다 본다. '범죄자의 심리적 해부'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구스 반 산트의 'Elephant(2003)' 와 여러모로 닮았다.   누가 봐도 좀 모자란 청년 마틴.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폭죽을 터뜨려서 주민들에게 원성을 사고, 동네 꼬마들에게는 놀림거리가 된다. 아버지는 그런 마틴을 말리고 달래느라 버겁다. 어머니(주디 데이비스 분)는 마치 진이 다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그 얼굴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틴은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잔디 깎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다들 이 괴상한 청년을 외면하지만 헬렌은 좀 다르다. 한때 배우였다는 이 여자는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가족으로 여기며 산다. 마틴은 곧 헬렌의 일꾼에서 식구가 된다.  

이것은 그린 나이트가 아니다, The Green Knight(2021)

*이 글에는 영화 'The Green Knight(2021)'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1. 이상한 녹색과 죽음의 붉은색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파이프를 그린 그림에 그런 문구가 써져 있다. 그림의 제목은 '이미지의 배신(The Treachery of Images)' , 그림을 그린 이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이다. 영화 'The Green Knight(2021)' 를 보고서 나는 그 그림을 떠올렸다. 이 영화의 원작은 14세기 Gawain Poet 라는 별칭이 붙은 무명 작가의 장시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이다. David Lowery는 그 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해석이라는 것이 정말로 기괴하다. 원작의 시를 읽은 독자라면 로워리의 이 영화에 'The Green Knight'란 제목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를 알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사창가에서 눈을 뜬 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그는 삼촌이 주관하는 성탄 만찬에 참여한다. 그런데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Green Knight'라고 불리는 거대한 장신의 남자는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의 목을 베는 기사에게 녹색의 도끼가 선물로 주어지며, 그 기사는 1년 후에 같은 방식으로 참수의 일격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탁의 기사들 모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가운데 가웨인이 앞으로 나온다. 그는 그린 나이트의 목을 단칼에 벤다. 놀랍게도 녹색의 기사는 잘린 자신의 목을 들고서 웃으며 성을 빠져나간다.   이 초반부의 시퀀스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왜 'Green Knight'는 녹색이 아닌가? 시인이 묘사한 기사의 모습은 피부색과 의상을 비롯해 말 그대로 녹색 그 자체

1992년 LA 폭동을 다룬 두 편의 다큐: LA 92(2017), Let It Fall: Los Angeles 1982-1992(2017)

  1992년 LA 폭동을 다룬 두 편의 다큐: LA 92(2017), Daniel Lindsay and T. J. Martin, 러닝 타임 114분 Let It Fall: Los Angeles 1982-1992(2017), John Ridley, 러닝 타임 144분(TV 방영 버전은 1시간 30분으로 축약됨) 1. 폭동의 기원: 1965년 와츠 폭동, 대릴 게이츠, LA 경찰   2017년은 'LA 폭동(1992 Los Angeles riots)' 이 일어난지 25년이 되는 해였다. 그 해에 폭동을 다룬 2편의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존 리들리의 'Let It Fall' 은 당시 LA 주민들과 경찰들,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와 영상 자료들로 엮어졌다. 원래 ABC방송사에서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존 리들리가 폭동에 대한 다큐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사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LA 92' 는 자연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National Geographic에서 만들었다. 이 다큐는 철저히 영상 자료와 사진,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자막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Let It Fall'에는 감독 존 리들리의 제작자적 관점이 강하게 반영이 되었다. 그와는 달리 'LA 92'는 영상 연대기적 보고서와 같은 정밀함과 객관성을 보여준다.       1991년 3월 3일, 신호 위반으로 경찰 검문을 받던 흑인 로드니 킹은 백인 경찰들에게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한다. 당시 길 건너편에서 홈비디오로 그 장면을 찍은 이가 있었다. 구타 장면이 방송을 타고 전해지면서 사건의 파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3월 16일에는 이른바 두순자 사건이 일어났다. 주류점을 운영하던 한인 교포 두순자는 흑인 소녀 라타샤와 시비 끝에 총격을 가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된 두순자는 징역형이 아닌,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판결을 내린 백인 여판사는 인종간 갈등이 심

1986년의 서울 캠프가 Benson Lee에게 남긴 것, Seoul Searching(2015)

     1986년 여름, 김포 공항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들어선다. 튀는 외모와 행동으로 공항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그들. 시드와 그레이스, 크리스는 미국, 세르히오는 멕시코, 클라우스는 독일에서 왔다. 그들을 서울로 오게 만든 여름 캠프의 이름은 이름하여 '재외교포 하계 학교'. 1973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해외 교포 자녀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되었다. 초창기에는 4백 명 정도였던 인원은 1986년에는 2천 백 명에 이르렀다(1986년 중앙일보 기사 참조). 영화 '서울 캠프 1986(Seoul Searching, 2015)' 의 감독 Benson Lee는 1986년 참가자였다. 그는 당시의 기억에 상상력을 보태어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캠프 참가자들의 면면은 다채롭다. 펑크 록 가수 Sid Vicious를 흉내낸 반항적인 시드 박(Justin Chon 분), 바른 생활 사나이 클라우스, 유들유들하고 구수한 스페인식 영어를 구사하는 세르히오. 날라리 같은 옷차림에 술 잘 마시는 그레이스, 태권도 실력이 뛰어난 수진, 냉소적으로 캠프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크리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외국 교포 청년들이 주최 측의 1980년대 한국식 통제에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 한밤중에 여학생 방에서 미팅 하기, 술 마시고 널브러지기, 그 와중에 눈맞아 연애하기 등등... 영화는 초반부 에피소드들을 전형적 청춘물의 클리셰로 처리한다.   아마도 그렇게만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이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Benson Lee는 차차 조금씩 캐릭터들의 속내를 펼쳐서 보여준다. 교포 청년들에게 한국은 모국이 아니라 부모의 나라일 뿐이다. 세르히오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김 선생의 질문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김 선생은 질문을 바꾸어 이렇게 묻는다. 멕시칸의 의미를 말해달라고 하자 세르히오의 말문이 터진다. 서예 시간에 한국 이름

LA 폭동에 대한 Justin Chon의 미시사적 성찰, Gook(2017)

    흑백 화면 속에서 가게는 불타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흑인 소녀는 팔을 흐느적거리며 춤을 춘다. 영화 'Gook' 은 그렇게 기이한 도입부로 시작한다. 그 장면이 지나가고 나서 관객이 만나는 인물은 한국계 미국인 일라이이다. 한적한 길가에서 그는 이제 막 신발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넘겨받으려는 참이다. 그런데 멀리에서 차 소리가 들린다. 뭔가 당황한 일라이는 물건 받는 것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 지나가는 일라이를 보더니 차에 탄 남자들이 욕설을 퍼붓는다. 일라이는 다소 겁에 질린 표정이지만, 그래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한다. 차에서 내린 히스패닉 남자 둘은 일라이를 흠씬 두들겨 패고는 자리를 뜬다.     1992년 4월 29일, 그날은 그동안 미뤄졌던 로드니 킹 사건의 평결이 내려지는 날이었다.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LA는 폭력과 방화가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장소가 되었다. 한국계 미국인 Justin Chon은 바로 그 LA 폭동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배우로도 활동하던 그는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일라이 역을 연기했다. 그의 아버지도 영화 속 김씨 아저씨로 나온다. 이민자인 그의 부친은 실제로 신발 가게를 하기도 했었다. 영화 'Gook'은 여러 면에서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셈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일라이는 아무 이유없이 히스패닉에게 구타당한다. 그의 동생 다니엘 또한 길을 걷다가 흑인들에게 얻어맞고 신고 있던 운동화를 뺏긴다. 이런 장면들은 당시 LA의 한인들이 겪어야 했던 인종 차별의 실체를 드러낸다. 일라이가 히스패닉을 마주할 때, 다니엘이 흑인들을 지나칠 때, 그들은 직감적으로 자신들에게 생길 일들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제목 'Gook'은 아시안계 미국인들을 폄하하며 지칭하는 단어이다. 누군가 일라이의 차에 스프레이로 써놓은 그 글씨는 당시 LA에서 한인들이 처한 열악한 인종적 지위를 보여준다. 다른 유색 인종에게

뿌리내리기 위하여, 미나리(Minari, 2020)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야."   모니카(한예리 분)는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 분)에게 그렇게 불만을 표현한다. 사방이 드넓은 풀밭인 외딴 곳에 덩그라니 있는 이동식 주택은 모니카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그곳은 그렇게 이 부부의 새로운 출발지가 된다. 부부에게는 두 자녀, 첫째 앤(노엘 케이트 조 분)과 둘째 데이비드(앨런 킴 분)가 있다. 남편의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 아내도 같이 작업장에서 일한다. 갓 부화한 병아리의 항문의 모양새를 보고 수평아리를 감별해 내는 직업이다. 그 직업군에서 한국인들은 뛰어난 감식안으로 전세계로 진출했다. 제이콥도 그렇게 1970년대에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Minari, 2020)'은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영어의 미나리에 해당하는 'dropwort' 대신에 'minari'라고 썼다. 아마도 감독에게 '미나리'란 식물은 결코 다른 언어로 대체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들어있으며, 그의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미국으로 가져와서 심었다고 한다. '미나리'는 그에게 혈연과의 연결고리가 되며, 그의 근원이 되는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어린 아들 데이비드는 심장이 약해서 부부의 근심거리인데, 가뜩이나 병원과 먼 곳의 시골 깡촌에 왔다고 생각하는 모니카는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그곳에 커다란 농장을 일굴 생각이다. 한국인 이민자들을 위한 농산물을 심어서 근처 대도시에 내다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병아리 감별사 일과 병행하는 농장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낮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다. 모니카는 자신의 어머니(윤여정 분)를 모셔오기로 한다. 영어를 하지 못하

스케이트보드가 알려준 희망, Minding the Gap(2018)

    "데니스는 어떤 사람이죠?"   "그가 누군지 넌 잘 알고 있잖아?"   "난 아직도 정말 모르겠어서 그래요."   인터뷰를 위해 엄마의 집을 찾은 아들 Bing Liu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다. 데니스는 그의 계부였다. 그는 계부가 자신을 자주 때린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엄마에게 묻는다. 이젠 다 지난 일이잖니, 엄마는 이야기를 돌리려 애쓴다. 이 다큐, 시작은 스케이트보드 신나게 타는 어린 친구들을 보여주더니 어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뭔가 심각해진다. 중국계 미국인 Bing, 백인 하층민 Zack, 흑인 Keire, 이 세 친구는 나이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스케이트 보드 하나로 친구가 되었다. 다큐 'Minding the Gap(2018)' 은 세 친구가 어른의 삶에 진입하면서 일어난 변화를 담는다.      스케이트보드로 자유롭게 거리를 질주하는 일은 즐겁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Zack은 여자친구 니나의 갑작스런 임신으로 덜컥 애아빠가 된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전전하는 Zack,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영 쉽지 않다. Keire는 음식점 서빙일을 하며 진로를 모색하는 중이다. Bing은 14살 때부터 만져온 카메라로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찍고 있다. 그 과정에서 Bing은 친구들의 상처와 마주한다. 성장 과정에서 계부의 폭력을 경험했던 Bing처럼 Zack도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다고 고백한다. Keire도 마찬가지. 그들이 살고 있는 일리노이주의 도시 Rockford는 오랜 경기 침체로 낙후된 곳이다. 또한 높은 범죄율로 늘 불안과 폭력이 공존한다. 그곳에서 세 친구가 경험한 가정 폭력과 가난.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도 스케이트보드는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세 친구는 '남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거멀못과 같이 내면을 옥죄고 있는 어그러진 남성성과 마주한다. Zack은 아이 아빠, 남편의 역할을 감

Ramon Zürcher의 영화적 수수께끼, The Strange Little Cat(2013)

    시작은 'www.lecinemaclub.com'에서 본 이번 주 상영작 'Reinhardtstrasse(2009)' 에서부터 였다. lecinemaclub은 단편을 위주로 다양한 영화들을 일주일에 한 편씩 선정해서 무료로 상영한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젊은 영화 창작자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꼭 챙겨 본다. 상영작들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라인하르트 거리'도 그러했다. 러닝타임 34분 동안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드는 희한한 영화였다. 그러고 나서 어쩌다 고른 영화가 'The Strange Little Cat(2013)' . 이 영화도 기이했다. 그런데 기막힌 우연으로 그 두 작품을 만든 이는 '라몬 취르허'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고양이가 식당 밖에서 닫힌 문을 긁고 있다. 그런데 여자 아이의 괴성이 들린다. 이 집의 막내딸 클라라가 내는 소리이다. 아무도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관심하고 냉랭한 표정으로 엄마 제니는 식탁에 앉아있는 클라라를 바라본다. 이 가족, 정말 뭔가 이상하다. 엄마 제니는 얼마 전 영화관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을 이야기한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이야기에서 제니는 옆자리의 낯선 남자가 자신의 발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 제니의 말에 남편을 비롯해 큰딸 카린도 무덤덤하다. 제니는 밥먹는 고양이 머리를 눌러버리려는 것처럼 천천히 발을 내리려다가 큰딸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다. 도대체 이 영화, 장르는 무얼까...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관객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가 '소리'임을 알아챈다. 개수대 옆에서 혼자 저절로 돌아가는 빈병이 내는 기괴한 소리, 커피 머신의 굉음, 그 소리에 반응하는 클라라의 괴성,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소리,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모형 전동 비행기가 작동하는 소리... 그런 사물들이 내는 소리는 인물들의 대화에 계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 The Social Dilemma(2020)

    요새 EBS 클래스 e에서 박중근의 '90년생과 일하는 법'을 보고 있다. 강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꼰대' 70년생이 어떻게 하면 '자기 중심적'인 90년생과 더불어 잘 일해나갈 수 있는지를 다룬다. 강의의 외피는 회사의 인적 관리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뭔가 세대 분석론 같기도 하고 의외로 재미가 있다.   가끔 주변에서 듣는 요즘 회사의 풍경은 확실히 낯설게 느껴지기는 한다. 부하 직원에서 일을 시키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구요."   생각해 보고, 그 업무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세대. 내가 들은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상사는 물론 동료와의 대화 녹음이 일상화 되어서, 조금이라도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인사팀에 발췌한 녹음 파일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고발 때문에 인사팀에서는 속된 말로 '돌아버릴 지경'인 듯하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장착된 녹음 기능이 요새는 그렇게 쓰이는가 보다. 하긴, 요새 대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필기를 안 한 지 오래고, 많이들 녹음을 해간다고 듣기는 했다.   다큐 'The Social Dilemma(2020)'를 보면서 그 90년생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성장기에 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가 세대적 특성을 규정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했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셜 미디어로 무엇이든 즉시 연결되며, 소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연결망 안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완벽하게 잘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과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온 기성 세대들이 같이 일하면서 겪는 갈등은 비단 한국만의 경우는 아닌 모양이다. 외국의 회사들도 비슷한 세대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다큐는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이용자의 정

Bo Burnham의 진정한 재능, Eighth Grade(2018)

Bo Burnham: Inside(2021) 1시간 27분 Eighth Grade(2018) 1시간 34분 Make Happy(2016)  1시간  1. 시작, 'Bo Burnham: Inside'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 의 단편 소설 '여학생' . 서른 살의 남성 작가는 십 대 여학생에 빙의한 것처럼 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여학생의 내면 풍경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읽는 이들을 놀라게 만든다. 미국의 스탠드 업 코미디언 Bo Burnham 의 2018년작 영화 'Eighth Grade' 를 보면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렸다. 27살의 청년은 8학년(우리나라의 중학 3학년에 해당) 여학생 케일라의 내면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그려낸다. 코미디언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처음엔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등을 곧게 펴고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이 젊은 친구의 진정한 재능은 코미디가 아니라 영화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작은 'Bo Burnham: Inside(2021)' 였다. Covid-19 전염병이 휩쓰는 시기에 번햄은 LA 집 작업실에서 자기 혼자 공연한 영상들을 그러모았다. 이 작품의 구성 방식은 간명하다. 각각의 소주제가 있고, 번햄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을 부른다. 때로 독백과 해설도 들어간다. 단순한 틀 안에서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매우 다양하다. 번햄이 주의깊게 다루는 부분은 인터넷 문화이다. 백인 여성이 올리는 흔한 인스타그램에 대한 뒤틀린 유머, sexting을 비롯한 SNS의 일그러진 단면, 아마존의 수장 제프 베이조스에 대한 신랄한 풍자... 물론 그 비판과 풍자의 중심 소재는 자기 자신이다. 번햄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자조적 성찰, 고립된 상황에서 겪는 불안과 우울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젊은 친구가 혼자서도 잘 노는구만!'하고 큭큭거리며 'Bo Burnham

짝퉁의 품격, CODA(2021)

    '출발! 비디오 여행'의 인기 코너인 '영화 대 영화'. 김경식의 맛깔나는 해설은 언제 들어도 즐겁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전창걸의 구수한 입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영화 'CODA'를 보면서 그 코너에 딱 맞는 영화네, 싶었다. 이 영화는 2014년에 만들어진 '미라클 벨리에(La Famille Bélier)' 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작이다. 과연 'CODA'는 원작 영화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이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그냥 마음을 내려놓는 편이 낫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지는 범작이기 때문이다.   작은 어촌 마을, 루비에게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오빠가 있다. 아빠와 오빠를 따라 뱃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 씩씩한 아가씨는 가족의 대변인 노릇도 하고 있다. 루비의 부모가 병원에 가는 일, 어촌의 조합 일을 비롯해 집안의 대소사는 말을 할 줄 아는 루비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일들이 버겁기는 해도 루비는 묵묵히 해낼 뿐이다. 학교의 동급생들은 루비가 CODA(Child of deaf adult, 청각 장애인을 부모로 둔 아이) 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리며 무시한다. 그런 상황에서 별 생각없이 들어가게 된 합창반. 지도 교사 베르나르도는 루비의 재능을 발견하고 음대 진학을 권유한다. 하지만 집안의 생계가 걸린 뱃일은 루비의 도움이 없으면 해나가기 어렵다. 자신의 진로와 가족 사이에서 루비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루비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원작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주인공 폴라의 가족이 사는 농촌 마을은 어촌으로, 남동생은 오빠로, 파리의 음악 대학은 버클리 음대로 바뀐다. 내가 놀란 것은 등장인물들의 분장과 스타일링까지도 판박이처럼 베꼈다는 사실이다. '미

에드워드 즈윅의 진정성 있는 남북 전쟁 탐구, 영광의 깃발(Glory, 1989)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을 공포한다. 링컨의 선언문은 선포 당시 실질적 효력을 갖지는 못했다. 1865년에 수정 헌법 13조가 비준되고 나서야 흑인 노예들은 진정한 자유민이 될 수 있었다. 그 선언문은 남부 연맹에 대한 일종의 심리전술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이 선언문이 절실히 필요한 쪽은 링컨과 북부 연합이었다. 북부의 초기 전황은 불리했다.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야만 했다. 흑인 군대에 대한 아이디어가 그렇게 나왔다. 1월의 선언문 발표에 이어 3월에 흑인 병사로 구성된 연대가 조직되었다. 에드워즈 즈윅 감독의 1989년작 'Glory'는 매사추세츠 54 지원병 연대(54th Massachusetts Infantry Regiment) 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소심하고, 무언가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은 젊은 장교를 보게 된다. 로버트 쇼(매튜 브로데릭 분)는 전투에서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가를 받는다. 그런 그에게 매사추세츠 54 연대를 지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군 역사상 흑인 병사들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부대였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지만, 등장하는 흑인 병사 캐릭터들과 그 이야기는 거의 허구에 가깝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류의 전쟁 영화를 만나면 무언가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영화가 실제와는 또 얼마나 다르게 조미료를 치고 가공했는지, 그걸 다 찾아보고 나면 허망해질 때가 많다. '영광의 깃발'도 그런 면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않다.   오합지졸과 같은 초짜 흑인 병사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점차 진짜 군인이 되어간다.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병사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곁들여진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이러하다. 쇼의 어린 시절 친구로 기꺼이 부대원이 되는 토마스, 노예 출신으로 거칠고 반항적인 트립(덴젤 워싱턴 분), 부대원 가운데 연장자로 온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