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ju movie.
홍상수의 영화는 종종 그렇게 불린다. 이젠 외국 평론가들도 '소주'가 뭔지 안다. 가끔은 외국 리뷰어들의 흥미로운 질문글도
올라온다. 왜 '홍'의 영화에는 소주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가? 그 질문에 댓글을 달아본 적은 없지만, 나라면 이렇게 적겠다.
'소주'가 들어가야 카메라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촬영 현장에는 소주가 박스째로 꽤 높게 쌓여있을 것이다. 중국의 신진
감독 Zheng Lu Xinyuan의 영화 'The Cloud in Her Room(2021)'에도 홍의 소주 같은 매개체가 등장한다. '담배'이다. 여자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이 여성 감독이 골초라는 것도 확인된다.
22살의 여성 Muzi는 춘절을 맞이해 고향 항저우에 온다. 오래전에 이혼한 부모는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무지는 새엄마와
어린 이복 여동생이 있는 아빠의 집에 머무른다. 무지와 또래 친구처럼 친밀한 친엄마에게는 외국 연인이 있다. 별다른 계획도, 할
일도 없는 무지는 가족이 함께 살던 예전의 낡은 아파트를 찾아가서 시간을 보낸다. 베이징에 있던 사진작가 남자 친구가 갑자기
무지를 찾아온다. 그 와중에 무지는 동네 술집 주인과 가벼운 연애를 시작한다.
어떤 영화들은 보고 나면 참 좋은
영화인데 막상 글로 쓰려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반면에 별로인 영화인데 쓰고 싶은 것이 많을 때도 있다. 'The Cloud
in Her Room(2021)'은 그 후자에 속한다. 이제 중국 영화 감독의 세대 구분은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내가
그나마 주의깊게 지켜본 감독이 6세대 감독 리위(李玉, Li Yu)였는데, 한때 눈부셨던 리위도 영화적 재능이
바닥을 드러낸듯 하다. Zheng Lu Xinyuan은 중국 출신으로 미국 USC에서 영화를 전공한 해외파 신진 감독이다.
미국에서 작업하다가 지금은 중국에서 제작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첫 번째 결과물로, Zheng의 고향 항저우에서
촬영했다.
앞서 언급한 시놉시스가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The Cloud in Her
Room(2021)'은 비선형적인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 무지의 고향에서의 기억과 현재는 다층적으로 뒤엉킨다. 거기에
네거티브(陰畫)이미지로 들어간 쇼트들과 스마트폰으로 찍은 셀카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영화 중간에는 무지에 대해 말하는 남자친구의
인터뷰 장면도 있다. 외국물 먹은 신세대 여성 감독이 중국 영화에 불어넣는 나름의 실험적이고 새로운 바람인가?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고백의 흔적이 강하게 느껴진다. 중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자신은 미국과는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고
작업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외로움은 여자 주인공에게 그대로 투사된다.
무지는 틈만 나면
부모와 함께 살았던 낡은 아파트를 유령처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 아파트는 생의 방향 감각을 잃은 이 여성에게 한때 안온했던
자궁과도 같은 장소이다. 다른 파트너와 새로운 삶을 꾸리는 부모를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고
원망스럽다. 무지는 밤의 길거리에서 굴러다니는 생수병을 신경질적으로 짓밟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남자 친구를 놔두고 유부남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고향 항저우의 서호(西湖)가 만들어낸 습기는 겨울의 도시를 안개 속에 가둔다. 항저우의 뿌연 겨울 밤거리를
하릴없이 헤매는 이 여성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무지가 끊임없이 피우는 담배는 꽉 막힌 청춘의 시간에
구멍을 내어 흐르게 만든다. 천천히 퍼지고 스며드는 담배 연기는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물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빗물이 넘쳐흐르는
도로를 카메라는 유영하듯 미끄러져 간다. 수영장과 욕실에서 무지가 시간을 보내는 장면,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거칠게 굽이치는
물결이 네거티브 이미지로 제시된다. 자의식 과잉의, 슬픔과 외로움에 방황하는 22살 여성의 서사는 모호하고 공허하다.
Smoking movie.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것은 '담배' 밖에 없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기이하게 인상적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담배'가 여성주의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루는지 궁금한 이라면 볼 법도 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중국 6세대 영화 감독 리위(Li Yu)의 영화들 리뷰
관음산(观音山, 2010)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2011.html
둑길(紅顔, Dam Street, 2005)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dam-street-20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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