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중년의 한 남자가 모니터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신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고아원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나름 숭고한 봉헌의 기도인데, 첫 장면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래요. 홍상수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진실하다고 생각하고,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은 주인공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게 되지요. 그 균열의 지점이 나에게는 늘 흥미롭습니다. 홍상수가 '인트로덕션(Introduction, 2021)' 에서 보여줄 등장인물들의 삶 속 균열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영화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영화의 제목 'Introduction'처럼 앞으로 등장할 인물들에 대한 '도입부'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신의 전 재산을 고아원에게 기부하겠다고 기도한 중년의 남자는 한의사입니다. 그에게는 청년이 된 아들 영호가 있지요. 영호는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은 것처럼 보입니다. 영호는 여자 친구 주원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한의원에 왔습니다. 영호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지요. 따로 떨어져 사는 아들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한의원에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좀 이상합니다. 그는 급한 환자도 아닌 지인을 먼저 만나고 아들에게는 그냥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지인은 유명한 배우(기주봉 분)입니다. 아버지는 지인에게 침을 놓아주고는, 영호를 만나는 대신에 자신의 방으로 가버립니다. 그렇게 1부는 영호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2부에서는 영호의 여자 친구 주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원은 패션 공부를 하겠다면서 이제 막 독일로 유학을 왔죠. 지원은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있습니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화가 친구(김민희 분)를 소개해 주려고 합니다. 화가 친구가 당분간 딸의 숙소를 제공해 주기로 했거든요. 영화의 제목 'Introd
전쟁미망인 숙희(최은희 분)에게는 대학생 딸 경희(엄앵란 분)가 있습니다. 둘은 얼핏 보기엔 엄마와 딸 사이라기 보다는, 자매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세상의 풍파가 비껴간 것처럼 보이는 고운 외모의 미망인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일까요? 네, '돈'입니다. 숙희는 양장점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가게를 정리한 상태이지요. 그런 숙희에게 출판사 전무 상규(김진규 분)는 숙희의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돈을 빌려줍니다. 어려운 때에 자신을 도와준 상규에게 숙희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사랑의 감정이겠지요. 그건 상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규도 숙희를 나름 연모하는 것처럼 보여요. 상규와 숙희,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영화 '동심초(Dongsimcho, 1959)' 는 신상옥 감독 의 대표작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듯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 보니, 1959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더군요(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or.kr).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동심초'에는 결코 낡지 않은 주제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말입니다. 그렇다면 숙희와 상규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숙희의 처지를 좀 살펴보죠. 숙희의 큰 문제는 '돈'이에요. 숙희는 상규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그 돈은 그냥 받은 돈이 아닙니다. 갚아야 할 돈이지요. 물론 숙희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상규는 숙희에게 빚 독촉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숙희가 상규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어찌 보면 좀 통속적이지 않나요? 사랑이란 감정이 '돈'이 가진 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 '돈'은 중요한 내러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