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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Dongsimcho, 1959): 사랑과 돈

    전쟁미망인 숙희(최은희 분)에게는 대학생 딸 경희(엄앵란 분)가 있습니다. 둘은 얼핏 보기엔 엄마와 딸 사이라기 보다는, 자매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세상의 풍파가 비껴간 것처럼 보이는 고운 외모의 미망인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일까요? 네, '돈'입니다. 숙희는 양장점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가게를 정리한 상태이지요. 그런 숙희에게 출판사 전무 상규(김진규 분)는 숙희의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돈을 빌려줍니다. 어려운 때에 자신을 도와준 상규에게 숙희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사랑의 감정이겠지요. 그건 상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규도 숙희를 나름 연모하는 것처럼 보여요. 상규와 숙희,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영화 '동심초(Dongsimcho, 1959)' 는 신상옥 감독 의 대표작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듯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 보니, 1959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더군요(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or.kr).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동심초'에는 결코 낡지 않은 주제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말입니다.   그렇다면 숙희와 상규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숙희의 처지를 좀 살펴보죠. 숙희의 큰 문제는 '돈'이에요. 숙희는 상규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그 돈은 그냥 받은 돈이 아닙니다. 갚아야 할 돈이지요. 물론 숙희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상규는 숙희에게 빚 독촉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숙희가 상규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어찌 보면 좀 통속적이지 않나요? 사랑이란 감정이 '돈'이 가진 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 '돈'은 중요한 내러티브

여사장(A Female Boss, 1959): 로맨틱 코미디에 반영된 퇴행적 가부장제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TV를 틀었습니다. 오래된 한국 영화가 나오네요. 한형모 감독의 영화 '여사장(A Female Boss, 1959)' 입니다. 한형모 감독은 전후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 '운명의 손(1954)' 과 '자유부인(1956)' 에는 해방 이후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묘사로 가득 차 있어요. '여사장(1959)'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겠군요.   이 영화는 원작 희곡이 있습니다. 원작자 김영수(1911-1977) 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희곡과 시나리오, TV 드라마까지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김영수는 해방 직후에 자신이 쓴 희곡을 공연할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여사장 요안나(1948)' 도 그 시절에 쓴 희곡이지요. 이 희곡은 '김영수 희곡 ·시나리오 선집 2(출판사 연극과 인간)'에 실려있습니다. 나는 '여사장' 영화를 보고, 원작이 궁금해서 책을 주문해 보았습니다. 2007년에 펴낸 책이라 혹시 절판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요. 그런데 아주 멀쩡한 새책으로 잘 받을 수 있었어요. 아마 잘 안팔렸을 거에요. 이런 책은 관련 전공자들이나 볼 법한 책이지요.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책을 펴낸 출판사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에 대한 설명은 이쯤 해두지요.   영화는 여사장 요안나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용호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화려한 양장 차림의 요안나(조미령 분)는 기다리는 뒷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 통화 중이지요. 짜증을 내던 뒷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용호만 남습니다. 용호는 요안나의 면전에 대고 싫은 소리를 하지요. 요안나가 용호를 무시하자, 용호는 요안나가 애지중지하는 강아지 마리오를 냅다 발로 차버립니다. 아주 고약한 첫 만남이지요? 대개의 로맨틱 코미디의 도입부가 그렇잖아요. 기분 나쁜 첫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