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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LA 폭동을 다룬 두 편의 다큐: LA 92(2017), Let It Fall: Los Angeles 1982-1992(2017)

 

1992년 LA 폭동을 다룬 두 편의 다큐:


LA 92(2017), Daniel Lindsay and T. J. Martin, 러닝 타임 114분
Let It Fall: Los Angeles 1982-1992(2017), John Ridley, 러닝 타임 144분(TV 방영 버전은 1시간 30분으로 축약됨)


1. 폭동의 기원: 1965년 와츠 폭동, 대릴 게이츠, LA 경찰

  2017년은 'LA 폭동(1992 Los Angeles riots)'이 일어난지 25년이 되는 해였다. 그 해에 폭동을 다룬 2편의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존 리들리의 'Let It Fall'은 당시 LA 주민들과 경찰들,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와 영상 자료들로 엮어졌다. 원래 ABC방송사에서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존 리들리가 폭동에 대한 다큐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사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LA 92'는 자연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National Geographic에서 만들었다. 이 다큐는 철저히 영상 자료와 사진,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자막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Let It Fall'에는 감독 존 리들리의 제작자적 관점이 강하게 반영이 되었다. 그와는 달리 'LA 92'는 영상 연대기적 보고서와 같은 정밀함과 객관성을 보여준다.  
 
  1991년 3월 3일, 신호 위반으로 경찰 검문을 받던 흑인 로드니 킹은 백인 경찰들에게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한다. 당시 길 건너편에서 홈비디오로 그 장면을 찍은 이가 있었다. 구타 장면이 방송을 타고 전해지면서 사건의 파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3월 16일에는 이른바 두순자 사건이 일어났다. 주류점을 운영하던 한인 교포 두순자는 흑인 소녀 라타샤와 시비 끝에 총격을 가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된 두순자는 징역형이 아닌,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판결을 내린 백인 여판사는 인종간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판결은 폭동의 주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한편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찰들도 재판에 넘겨졌다. 1992년 4월 29일은 바로 그 재판의 평결이 나오는 날이었다. 3명의 백인 경찰은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그날 오후부터 South Central 지역을 중심으로 폭력과 약탈, 방화가 시작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폭동으로 기록될 사건의 시작은 그러했다.

  존 리들리는 폭동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1982년부터 LA 시의 주요한 사건을 훑는다. LA는 결코 평화로운 도시는 아니었다. 마약과의 전쟁은 당시 레이건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정책이었다. LA와 같은 대도시는 바로 그 주요한 대상이었다. '천사들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LA는 마약과 갱단들의 폭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978년부터 LA 경찰국의 수장이 된 Daryl Gates는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을 대상으로 하는 폭압적인 검문 검색, 습격 작전을 펼쳤다. 경찰의 공권력 행사와 관련된 흑인 커뮤니티 내부의 긴장과 불만이 높아졌다. 리들리는 이 폭동의 주요한 원인 제공자로 대릴 게이츠를 비중있게 부각시킨다. 시의회에서의 증언, TV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보이는 게이츠의 언행은 고압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당신들이 대체 LA의 범죄 문제에 대해 무얼 안다는 거지? 할 수 있다면 나만큼만 해봐'. 게이츠는 이런 식의 대답으로 뻣덴다.

  게이츠가 이끄는 LA 경찰은 흑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고 준군사 조직의 작전을 수행했다. 'Let It Fall'은 경찰 내부에 만연한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진압, 훈련 방식에 대해 비판한다. 이 점은 'LA 92'도 동일한 관점을 취한다. 그런데 이 다큐는 폭동의 기원을 좀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본다. 1965년, LA에서 발생한 'Watts riots'. 음주 운전 혐의로 검문을 받던 흑인이 경찰들에게 구타를 당했고, 그 일로 흑인들의 시위와 대규모 폭력 사태가 촉발되었다. 후에 경찰국장이 될 대릴 게이츠도 당시 수사관으로 사건을 조사했다. 그의 엄혹한 경찰 병력 운용 방식은 바로 그런 경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인종 폭동인가, 계급 폭동인가?

  LA 시의 고질적인 마약과 폭력 범죄 문제, 경찰 공권력의 과도한 집행은 1992년에 터질 폭동의 원재료들이었다. 거기에 1991년에 일어난 로드니 킹 사건, 두순자 사건이 더해졌다. 'LA 92'는 4월 29일부터 5월 4일에 이르는 폭동의 과정을 TV 생중계 화면과 다양한 비디오 촬영 자료들을 가지고 시간순으로 펼쳐서 보여준다. 폭동의 현장에서 찍은 화면들은 거칠게 흔들리고, 때로 촬영자가 폭도들의 공격을 받아 화면이 중간에 끊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찍은 화면 속에서는 문명화된 선진국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무법천지의 상황이 벌어진다.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고, 약탈을 하며, 차량 운전자들을 공격한다. 그 지옥도의 풍경 속에서 대체 경찰은 어디 있단 말인가?

  폭동이 시작된 4월 29일부터 LA 경찰은 그 어떤 통제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저녁, 주에는 비상 사태가 선포되었다. 하지만 주 방위군과 군 병력이 투입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미 사임이 예정된 게이츠는 사태를 수수방관했고, 경찰들은 몸을 사렸다. 하층 흑인들의 주거지와 한인 상가가 밀집한 South Central은 폭동의 진앙지였다. 한인 교포들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총기로 무장한 한인 자경단이 뉴스에 등장한다. 당시 뉴스 화면 속에서 비춰지는 자경단의 모습에서는 미국 주류 언론의 삐딱한 시선이 느껴진다. 공권력 부재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한인 커뮤니티의 대응이 과도하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높은 실업률과 빈곤에 시달리는 하층 흑인들에게 폭동은 계급적 좌절과 분노의 분출구였다. 일부 학자들은 LA 폭동을 인종 폭동이 아닌 '계급 폭동'으로 보기도 한다. 흑인들보다 좀 더 나은 경제적 위치에 있었던 한인 교포와 가게가 폭도들의 주요한 약탈과 방화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시카고를 비롯한 대도시에 일어난 흑인 폭동도 어떤 면에서는 순수한 인종 갈등에서 야기된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대이주(Great Migration, 1916-1970)'를 통해 흑인들은 차별이 극심한 남부에서 미 중서부, 북부 대도시로 이주했다. 그 지역에서 경제적 우위를 점했던 백인들에게 새로운 흑인 이주민의 유입은 필연적으로 경쟁과 갈등을 불러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1992년의 LA 폭동은 흑인들의 경제적 박탈감이 한인 교포들에게 파괴적으로 투사되었다.

  'Let It Fall'의 감독 존 리들리는 폭동과 그 여파를 매우 인종적인 관점에서 파악한다. 두순자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인터뷰는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또한 다큐는 끝무렵에 나오는 자막에서 폭동의 주요한 희생자가 흑인들이었다고 밝힌다. 흑인 감독으로서 그는 LA 폭동을 일으킨 흑인들의 축적된 분노가 필연적이며, 정의에 대한 요구라는 측면임을 강조한다. 편향된 시각의 그의 다큐는 왜 흑인들이 무지막지한 폭력 대신에, 올바른 정치적 소통의 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어떤 식으로든 폭동을 일으킨 흑인 커뮤니티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대해 'LA 92'는 폭동이 일어나기 전, 흑인 사회 내부에서 폭동을 부추기는 잘못된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흑인 커뮤니티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저항을 촉구한다. 의회에 진출한 흑인 의원들, 그리고 당시 LA시의 흑인 시장 톰 브래들리까지 재판의 부당함을 외치며 인종적 분노의 임계점을 끌어올렸다. 그런 상황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사법 체계와 정부로 향해야할 정의에 대한 목소리는 좀 더 손쉬운 희생양을 찾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한인들은 흑인들이 분노를 쏟아낼 만만한 공격 대상이었다. 




3. 폭동이 남긴 것

  "This is America!"

  비쩍 마른, 흰머리가 성성한 중년의 교포 여성은 불에 탄 자신의 가게를 가로막고, 악에 받혀 폭도를 향해 외친다. 가게 안은 이미 불에 타버렸으며 약탈당했다. 그런데도 폭도들은 더 가져갈 것이 없나 하고 몰려온 상태다. 무리들 가운데 더러는 웃는 사람도 보인다. 모든 것을 잃은 이 한국 교포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그 나라는 1992년의 그 폭동에서 재산도,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지켜주지 못했다.         

  결국 폭동은 군 병력이 투입되면서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LA 전역에는 해질 무렵부터 새벽까지 통금이 내려졌다. 방화로 화염에 휩싸였던 한인 타운의 화재 대부분은 진압되었다. 로드니 킹은 울면서 기자 회견을 했다. 이제 멈추어야 할 때라고, 이렇게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정의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흑인들의 분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폭동으로 끝났다. 63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2300명이 넘었다. 경제적인 피해는 무려 1조 달러로 추산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액수의 대부분은 한인들의 자산이었다.

  폭동의 여진이 가라앉자 비로소 흑인 커뮤니티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빗자루를 들고 거리 청소에 나선다. 그 모습에서 즐겁고 신나게 상점을 약탈하던 폭도들의 이미지가 기이하게 겹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흑인들은 평화와 정의를 외치는 행진을 시작했다. 한인 교포들 또한 시내 중심가를 행진하는 대규모 시위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LA 폭동이 한인 커뮤니티에 남긴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그들의 뜻을 대변할 '정치적 세력'의 필요성이었다.

  'LA 92'의 마지막은 1965년의 와츠 폭동과 1992년의 LA 폭동을 교차 편집한 화면이다. 다큐는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듯 하다. 과연 인종 폭동은 1992년의 LA에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 노예제와 인종 차별. 그러한 인종 문제는 구조화된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나간 역사에서 과오를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이들은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30년이 지났음에도 LA 폭동을 다룬 두 개의 다큐는 진중하고 깊이있는 울림을 가진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LA 폭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Gook(2017)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la-justin-chon-gook2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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