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여름, 김포 공항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들어선다. 튀는 외모와 행동으로 공항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그들. 시드와
그레이스, 크리스는 미국, 세르히오는 멕시코, 클라우스는 독일에서 왔다. 그들을 서울로 오게 만든 여름 캠프의 이름은 이름하여
'재외교포 하계 학교'. 1973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해외 교포 자녀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되었다.
초창기에는 4백 명 정도였던 인원은 1986년에는 2천 백 명에 이르렀다(1986년 중앙일보 기사 참조). 영화 '서울 캠프 1986(Seoul Searching, 2015)'의 감독 Benson Lee는 1986년 참가자였다. 그는 당시의 기억에 상상력을 보태어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캠프 참가자들의 면면은 다채롭다. 펑크 록 가수 Sid Vicious를 흉내낸 반항적인 시드 박(Justin Chon 분),
바른 생활 사나이 클라우스, 유들유들하고 구수한 스페인식 영어를 구사하는 세르히오. 날라리 같은 옷차림에 술 잘 마시는 그레이스,
태권도 실력이 뛰어난 수진, 냉소적으로 캠프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크리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외국 교포 청년들이 주최 측의
1980년대 한국식 통제에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 한밤중에 여학생 방에서 미팅 하기, 술 마시고 널브러지기, 그 와중에 눈맞아
연애하기 등등... 영화는 초반부 에피소드들을 전형적 청춘물의 클리셰로 처리한다.
아마도 그렇게만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이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Benson Lee는 차차 조금씩 캐릭터들의 속내를 펼쳐서
보여준다. 교포 청년들에게 한국은 모국이 아니라 부모의 나라일 뿐이다. 세르히오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김 선생의 질문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김 선생은 질문을 바꾸어 이렇게 묻는다. 멕시칸의 의미를 말해달라고 하자 세르히오의 말문이
터진다. 서예 시간에 한국 이름을 붓글씨로 쓰라는 교사의 요구에 크리스는 한국 이름이 없다고 답한다. 크리스는 '입양아'
출신이었다. 시드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거의 말도 하지 않는다고 김 선생에게 털어놓는다. 씩씩한 태권도 아가씨 수진이 어머니와
미국으로 간 것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캠프에 왔을까? 어떤
이는 정말로 부모의 나라가 궁금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저 놀러 왔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서울 캠프'에서 결국
마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크리스는 생모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긍정할 힘을 얻는다. 클라우스는 크리스를 도우면서,
자신의 부모가 치룬 희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폭력적 남성성에 대한 상처를 지닌 수진은 세르히오에게서 부드러운
남성성을 발견한다.
주연 배우들이 대부분 한국계이고, 거의 모든 대사가 영어이며, 한국에서 촬영한 'Seoul
Searching'은 미국 영화일까, 한국 영화일까? 영화는 그 두 나라의 중간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다. 영화에 흐르는 음악은
마돈나의 노래를 비롯해 1980년대 미국 팝송이다. 부친이 한국인인 주연 배우 Justin Chon은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은
Korean American이 아니라 Asian American의 정체성을 가지고 연기한다고 밝혔다.
'서울
캠프'를 주관했던 우리나라 정부는 교포 청년들이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가길 바랬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참가자들에게 그
바람이 실현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Benson Lee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억의 한 조각, 생각과
느낌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남았다. 그는 다소 우스꽝스럽고, 어설프며, 전형적인 청춘 코미디 영화에 '민족적 정체성'과
'성장 서사'를 끼얹는다. 이 영화가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Seoul Searching'에는 생기가
넘쳐흐르며, 교포 2세가 바라본 1980년대 한국에 대한 문화적 성찰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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