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www.lecinemaclub.com'에서 본 이번 주 상영작 'Reinhardtstrasse(2009)'에서부터
였다. lecinemaclub은 단편을 위주로 다양한 영화들을 일주일에 한 편씩 선정해서 무료로 상영한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젊은 영화 창작자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꼭 챙겨 본다. 상영작들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라인하르트 거리'도 그러했다. 러닝타임 34분 동안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드는 희한한 영화였다. 그러고 나서 어쩌다 고른 영화가 'The Strange Little Cat(2013)'. 이 영화도 기이했다. 그런데 기막힌 우연으로 그 두 작품을 만든 이는 '라몬 취르허'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고양이가 식당 밖에서 닫힌 문을 긁고 있다. 그런데 여자 아이의 괴성이 들린다. 이 집의 막내딸 클라라가 내는
소리이다. 아무도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관심하고 냉랭한 표정으로 엄마 제니는 식탁에 앉아있는 클라라를
바라본다. 이 가족, 정말 뭔가 이상하다. 엄마 제니는 얼마 전 영화관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을 이야기한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이야기에서 제니는 옆자리의 낯선 남자가 자신의 발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 제니의 말에 남편을 비롯해 큰딸
카린도 무덤덤하다. 제니는 밥먹는 고양이 머리를 눌러버리려는 것처럼 천천히 발을 내리려다가 큰딸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다. 도대체 이
영화, 장르는 무얼까...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관객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가 '소리'임을
알아챈다. 개수대 옆에서 혼자 저절로 돌아가는 빈병이 내는 기괴한 소리, 커피 머신의 굉음, 그 소리에 반응하는 클라라의 괴성,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소리,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모형 전동 비행기가 작동하는 소리... 그런 사물들이 내는 소리는 인물들의
대화에 계속해서 틈입하며 때론 대화를 중단시킨다. 사실 이 가족이 나누는 이야기는 대화라기 보다는 '독백'에 가깝다. 제니의
영화관 이야기처럼 가족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있었던 경험을 말하지만 그 누구도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 엄마 제니는 감독자
내지는 방관자처럼 가족을 바라본다.
집에는 방문자들이 계속 들어온다. 고장난 세탁기를 고치러 제니의 오빠와
조카가 온다. 나중에는 제니의 노부모가 식사를 하기 위해 집에 온다. 그렇다면 가족 영화인가? 이 특이한 가족 영화에는 따뜻한
관심, 애정, 소통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라몬 취르허는 프레임 안에 인물을 가두고 대화와 소리가 프레임 밖에서 흐르도록
만든다. 이 영화에서 소리가 내러티브의 주요한 요소인 것처럼 사물도 그러하다. 티백이 넣어진 찻잔, 주방의 흰벽에 붙어있는 나방,
플라스틱 병들이 담겨진 천가방,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세탁물, 담배곽, 노란공... 그렇게 사물들을 비추는 싱글 쇼트들이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간다. 인물, 대화, 소리, 사물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이 영화는 마치 정교하게 구성된 서커스를 보는 느낌이
든다.
'The Strange Little Cat'은 결코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영화가 아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기괴하고 난해한 실험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많은 비평가들에게도 이 영화는 다소 골치아픈
숙제처럼 여겨졌다. 취르허가 첫 장편으로 내놓은 이 영화를 분석하기 위해 카프카를 비롯해 영국의 현대 극작가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 1930-2008)까지 동원되었다. 확실히 영화의 분위기로 본다면 핀터의 'Dumb Waiter'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취르허 자신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짧게 언급했다. 우리는 커다랗고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를 기억한다. 가족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무시하고 외면했다. 카프카의 부조리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소설 속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소외된 존재이다.
취르허가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족들도 식당과 비좁은 복도, 방들을 오가며 이야기를
하고 시선을 맞추지만 결코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소통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닫혀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억압된 분노와 적대감이 느껴진다. 그러한 단절 속에서 검정색 개, 그리고 영화의 제목을 당당하게 차지하는 노랑색 고양이도
분투한다. 개와 고양이는 닫힌 문을 긁고, 비우호적인 가족들 사이를 오가며, 때로 내쫓김을 당한다. 이 집에서 파생되는 관계의
불협화음은 수시로 제시되는 짧은 테마곡 'Pulchritude'의 분위기와 일치한다.
취르허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첫 관람에서 놓친 부분을 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출처
cineuropa.org와의 인터뷰). 아니, 이 괴상한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보라고? 그런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시 영화를
보았을 때, 이 감독이 세밀하게 설계한 이미지와 소리의 세계가 나의 눈에 비로소 들어왔다. 심지어 단편
'Reinhardtstrasse(2009)'를 한 번 더 보았다. 이 단편에는 '이상한 작은 고양이'로 나아가기 위한 취르허의
청사진이 들어있다. 떠나는 룸메이트(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음)를 위해 세 명의 친구들은 작별 파티를 준비한다. 그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들은 계속 끊기고, 다양한 소리와 사물들이 유기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이상한 작은 고양이'를 보고 나면 이 단편은 더
쉽게 이해된다.
때로 어떤 영화는 '좋거나/나쁘거나'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라몬 취르허의 영화는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 기이한 매혹을 선사한다. 그것을 느끼려면 다소 번거로운 탐색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취르허가 낸 수수께끼들을 푼
관객들은 영화적 발견의 기쁨 누린다. 나는 그의 2021년작 '소녀와 거미(The Girl and the Spider)'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단편 'Reinhardtstrasse(2009)'는 이번 주 동안 lecinemaclub.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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