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 The Social Dilemma(2020)

 

  요새 EBS 클래스 e에서 박중근의 '90년생과 일하는 법'을 보고 있다. 강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꼰대' 70년생이 어떻게 하면 '자기 중심적'인 90년생과 더불어 잘 일해나갈 수 있는지를 다룬다. 강의의 외피는 회사의 인적 관리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뭔가 세대 분석론 같기도 하고 의외로 재미가 있다.

  가끔 주변에서 듣는 요즘 회사의 풍경은 확실히 낯설게 느껴지기는 한다. 부하 직원에서 일을 시키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구요."

  생각해 보고, 그 업무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세대. 내가 들은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상사는 물론 동료와의 대화 녹음이 일상화 되어서, 조금이라도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인사팀에 발췌한 녹음 파일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고발 때문에 인사팀에서는 속된 말로 '돌아버릴 지경'인 듯하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장착된 녹음 기능이 요새는 그렇게 쓰이는가 보다. 하긴, 요새 대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필기를 안 한 지 오래고, 많이들 녹음을 해간다고 듣기는 했다.

  다큐 'The Social Dilemma(2020)'를 보면서 그 90년생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성장기에 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가 세대적 특성을 규정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했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셜 미디어로 무엇이든 즉시 연결되며, 소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연결망 안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완벽하게 잘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과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온 기성 세대들이 같이 일하면서 겪는 갈등은 비단 한국만의 경우는 아닌 모양이다. 외국의 회사들도 비슷한 세대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다큐는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이용자의 정보를 토대로 극도의 상업적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문제를 다룬다. 끊임없이 이용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과정이 마치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비슷하며, 그것을 이윤 창출의 상업적 방편으로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 회사들의 비윤리성을 지적한다. 그것을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적 규제, 그리고 이용자 스스로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distraction)시키는 그런 소셜 미디어에 비판적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단순한 요약 같지만, 다큐에서 제기하는 소셜 미디어의 주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은 어렵고 암울해 보인다.

  특히,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주 연령대인 십대에서 정서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다룬다. 이 부분은 심리학에서 아주 관심있게 연구하고 있는 주제들이고, 그 연구 결과들도 많이 나온 상태다. 다큐에서 인터뷰한 실리콘 밸리의 임원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소셜 미디어 이용을 극도로 엄격히 제한, 또는 금지하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뭔가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도구들이 무서운 괴물의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다큐는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의 핵심 파트에서 일했던 주요 경영진들, 관련 분야 학자들의 인터뷰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이 말하는 무거운 이야기들을 보다 쉽게 보여주기 위해 가상의 가족이 등장하는 영화적 설정을 넣었는데, 그 부분도 꽤나 흥미롭다. 한마디로 현재적 시점에서 소셜 미디어의 문제점을 다룬, 아주 잘 만들어낸 시사 다큐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thenewsminute.c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적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The Magic Blade, 1976)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천애명월도'라는 명검을 두고 벌이는 검객들의 혈투인가,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검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의 무기는 공작령(孔雀翎, 공작의 깃모양 무기로 막강한 화력을 지님)이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6)'는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1976)'을 만든 초원 감독의 작품이다.     검객 부홍설(적룡 분)은 강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방랑 중이다. 그는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남비로부터 흑도파의 우두머리 공자우가 공작령을 차지해서 강호제패를 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공작령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연남비와 부홍설, 부홍설은 공작령의 주인이자 공작산장의 우두머리 추수청에게 공작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추수청이 공자우의 밀정에 의해 죽게 되고, 추수청은 딸 옥정을 부홍설에게 부탁한다. 공자우는 자신의 부하 검객들을 보내 부홍설을 죽이고 공작령을 빼앗으려 한다. 그 와중에 연남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추옥정은 납치된다. 부홍설은 공작령을 지키고, 옥정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무협 소설 작가 고룡의 동명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작이 있다. 말하자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성랑자(邊城浪子)'가 그것으로 '부홍설'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천애명월도'는 부홍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바로 연남비와의 대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원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우의 본거지에 부홍설이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많은 자객들이 나오고, 대결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볼거리 위주의, 철저히 흥행을 노린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관객들 시각에서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3편: 전후 일본 사회가 마주한 고통과 혼란,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

    노로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그는 과속을 하는 트럭을 피하려다 손을 다친다. 그가 받는 빠듯한 봉급으로 단칸 월세방 돈 내는 것도 힘든데 병원비까지 나가게 생겼다. 그는 학교에서 그의 봉급을 올려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깡패같은 고등학교 이사장은 노로에게 야간 고등학교 강의까지 더하라고 강권한다. 천성이 유약한 노로는 '아니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노로. 그는 자신의 제자가 권유한 반정부 시위에 나가보기로 한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무참히 진압되었다. 노로는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난다. 하지만 이 일을 빌미로 이사장은 노로를 해고한다. 전후의 어려운 시절, 노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 감독의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는 고등학교 선생 노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만화가 있다. 만화가 요코야마 타이조(横山泰三)는 1950년부터 1953년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에 4컷 만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를 연재했다. 4컷 만화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 때문에 만화는 연재 중단의 압력을 받았다. 이치카와 곤은 그 만화에서 영화의 주요한 소재를 차용했다.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는 명확한 서사 대신에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영화의 그러한 구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여러 면면들을 부각시킨다.    노로는 다친 손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다. 그런데 의사는 노로의 몸을 진찰하더니 '영양실조'라면서 잘 먹어야 한다고 처방을 내린다. 젊은 의사는 환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노로가 의사에게 손을 치료받고 싶다고 하자, 의사는 병원의 X-ray 기계가 고장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전후

아, 홍상수: 물안에서(In Water, 2023)

    오래전, 영화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경을 긁는듯한 소음이 계속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강의실 뒷문으로 나와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섰다. 영상원 본관 3층의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침내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열린 교수 연구실 안쪽에, 희끗희끗한 머리의 한 남자가 이상한 악기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홍상수였다. 그는 매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기를 두들기던 그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약간 당황했는지, 잠시 연주를 멈추었다.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동남아시아인지, 아프리카인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악기 소리는 내가 다시 강의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해 가을, 홍상수가 영상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홍상수의 강의는 영화과 학생들에게 악명이 자자했다. 거의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상수가 영상원을 떠날 무렵에는, 자신의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교수직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형편없이 어그러졌다. 나는 홍상수의 그 지치고 지루했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결국 떠날만한 때에 떠났다. 그건 학생들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결정이었다.     어제, 홍상수의 2023년 작 영화 '물안에서'를 보았다. 러닝타임 61분의 이 영화는 대부분의 화면이 초점이 나간 상태(ouf of focus)로 흐릿하게 나온다. 처음에는 또렷했던 화면이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나오니, 관객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등장인물은 세 명. 배우로 활동하던 승모는 자신의 단편 영화를 찍겠다며 섬에 왔다. 승모와 동행한 사람은 촬영을 맡은 친구 상국, 연기를 할 여배우 남희이다. 승모는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돈 300만 원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정작 그는 시나리오조차 쓰지 않았다. 상국과 남희는 승모가 찍을 영화가 어떤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