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 아이가 당신에게 대체 뭐죠? 남편, 아님 아들?"
(So which is he? A husband or a son?)
매우 무심하고 건조한 표정으로 남자의 모친은 중년의 여자에게 묻는다. 남자의 이름은 마틴.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둔중한 체격을
지닌 이십 대 초반의 이 청년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다. 지적 장애에다 정서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 정신과 약물 치료도 받고
있다. 엄마에게 마틴은 언제나 수치심과 고통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여자 친구라면서 헬렌을 데려왔다. 엄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누가 봐도 이상한 저 아이가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호주 감독 Justin Kurzel의 2021년작 'Nitram'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996년 4월, 호주 태즈메니아 섬의 Port Arthur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당시 스물 여덟의 Martin Bryant. 무려 35명이 사망한 그 사고로 호주에서는 강력한 총기 규제 법안이
마련되었다. 영화는 마틴 브라이언트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의 삶을 들여다 본다. '범죄자의 심리적 해부'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구스 반 산트의 'Elephant(2003)'와 여러모로 닮았다.
누가 봐도 좀
모자란 청년 마틴.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폭죽을 터뜨려서 주민들에게 원성을 사고, 동네 꼬마들에게는 놀림거리가 된다.
아버지는 그런 마틴을 말리고 달래느라 버겁다. 어머니(주디 데이비스 분)는 마치 진이 다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그 얼굴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틴은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잔디 깎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다들 이 괴상한
청년을 외면하지만 헬렌은 좀 다르다. 한때 배우였다는 이 여자는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가족으로 여기며 산다. 마틴은 곧
헬렌의 일꾼에서 식구가 된다.
젊은 청년과 중년의 여자. 그들 사회에서 '추방자(outcast)' 같은 존재인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헬렌에게 마틴은 반은 아들, 반은 남편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마틴은 엄마에게 헬렌이
'친구'라고 말한다. 확실히, 그 친구의 존재는 마틴에게 일종의 버팀목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계는 광기를 잠재우지는 못한다.
영화는 헬렌의 집 벽에 생긴 큰 균열처럼, 점차 망가지고 무너져내리는 마틴의 내면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광인,
그것도 나중에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의 내면을 묘사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까다롭다. 자칫 잘못하면 범죄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Nitram'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꽤 능숙하게 해낸다. 관객은 마틴의 내면에서 증폭되어가는
광기를 관찰자적 시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고장난 기계에서 나오는 소음을 듣는 것과도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서 사운드는 중요한 내러티브적 요소가 된다. 마틴은 집의 외벽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는 벌들의 웅웅거리는 소리에 매혹된다.
헬렌이 비운의 사고로 죽은 뒤에는 LP플레이어를 오작동시켜서 그 굉음을 듣는다. 수시로 폭죽을 터뜨리고, 아버지의 차에서 미친듯이
경적을 울린다. 마틴이 연주하는 피아노는 불협화음을 낼 뿐이다.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소음에 집착하는 마틴이지만, 그가 견디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 바로 'Nitram', 친구가 마틴(Martin)의 이름 철자를 거꾸로 발음하는 그 조롱의 소리는 참을 수
없다.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것, 그건 마틴이 사회에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헬렌의 죽음을 겪으며 마틴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총기를 무지막지하게 사모으며 사격 연습을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틴의
엄마는 아들의 집을 찾는다.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집을 떠나려는 엄마는 집안을 둘러본다. 그 표정은 매우 공허하고
불안하다. 이제까지 아들이 안겨준 괴로움보다 더한 무언가가 찾아올 거라는 직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려는 그
순간에서 멈춘다. 그러한 결말은 사건의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해 영화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마틴 역을 연기한 Caleb Landry Jones의
연기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하다. 말 그대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연기로 그는 2021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어떤 경쟁자라도 이 배우를 밀쳐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주 리뷰어들은 호주식 영어 억양을 완벽하게 구사한 이 미국
배우를 칭찬했다. 여러 다양한 영화에서 조연으로 쌓아온 내공이 마치 잭팟처럼 터진다. 감독 Justin Kurzel에게 어쩌면
자신의 인생작으로 남을 영화, 'Nitram'은 치유되지 못한 광기와 불안이 비극에 이르기까지의 일그러진 궤적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총기 난사범들의 부모를 취재한 다큐 Raising School Shooter(2021)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barkfors-raising-school-shooter2021.html
***마틴의 모친을 연기한 주디 데이비스 출연작 My Brilliant Career(1979)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australian-new-wave-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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