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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고통에 대한 잔혹 동화, 내 몸이 사라졌다(I Lost My Body, J'ai perdu mon corps, 2019)

 

  인생에서 어떤 상실은 결코 회복될 수 없다. Jérémy Clapin의 애니메이션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J'ai perdu mon corps, 2019)'에서 주인공 나우펠에게 일어난 일이 그러하다. 바닥에 내려앉은 파리, 천천히 흐르는 피, 부러진 안경, 쓰러진 남자, 그리고 잘려진 그의 손. 화면은 흑백으로 변하고 어린 소년 나우펠과 그 부모가 보인다. 다시 컬러로 변환된 화면에서는 의학 연구소의 냉장고에서 손이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할 줄 아는 이 똑똑한 손은 거침없이 파리 시내를 질주한다. 고층 둥지에서 자신을 밀어내려는 비둘기의 목을 비틀고, 지하철 정류장에서는 라이터를 켜서 쥐떼의 공격을 막아낸다. 잘려진 손의 여정 위로 청년이 된 나우펠의 이야기가 컬러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흑백의 화면으로 겹쳐진다.

  청년 나우펠의 현재는 고단하기 짝이 없다. 피자 배달부로 일하는 그는 매번 배달에 늦기 일쑤이다. 삼촌에게 얹혀 사는 나우펠에게 집은 길바닥 보다도 못한 곳이다. 비정한 삼촌은 나우펠의 몇 푼 안되는 일당을 빼앗고, 못돼먹은 사촌은 나우펠을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우펠은 가벼운 접촉 사고로 마르티네즈 부인의 피자를 약속 시간보다 늦게 배달하게 된다. 현관 인터폰으로 배달이 늦은 이유를 설명하던 나우펠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 호감을 느낀다. 그 여성의 진짜 이름이 가브리엘이며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우펠. 가브리엘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나우펠은 가브리엘의 삼촌 지지의 목공소에 일자리를 얻는다.

  잘려진 손이 필사적으로 향하는 목적지가 나우펠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진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이후로 나우펠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접촉이 차단된 채 살아왔다. 피아노를 치는 우주인이 되고 싶었던 나우펠의 꿈은 그 비극적인 교통 사고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나우펠에게 가브리엘에 대한 사랑은 삶의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나우펠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심한 나우펠은 한순간의 실수로 손을 잃는다.

  도입부에 등장한 파리는 나우펠의 삶에 수시로 틈입한다. 어린 나우펠은 어떻게 하면 파리를 잡을 수 있냐고 아빠에게 묻는다. 파리에 대한 나우펠의 기묘한 집착은 결국 나우펠의 삶을 뒤틀리게 만든다. 붉은 눈의, 기분나쁘기 짝이 없는 이 파리는 어떤 면에서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불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것, 그리고 나중에 손이 잘리는 사고까지. 한편 파란만장한 도시 탐험 끝에 나우펠의 잘린 손은 잠자고 있는 주인의 곁에 다가간다. 우리는 나우펠의 손이 결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손은 왜 나우펠을 찾아온 것일까?

  잘려진 손은 그 자체로 삶에서 맞닥뜨리는 상실과 고통을 의미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비가역적(非可逆的, irreversible)이다. 그 어떤 것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같은 상태로 복원될 수 없다. 나우펠의 삶에서 부모를 잃은 교통 사고와 손이 잘리는 사건이 그러하다. 우주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은 파리 하층 주거지역에 사는 피자 배달부가 되었다. 거기에다 손마저 잃었다. 이 불행한 청년은 어디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할까? 잘려진 손은 현실의 도시 파리와 나우펠의 과거를 동시에 탐사한다. 흘러넘치는 부모님의 사랑,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들을 카세트 리코더에 담았던 소년 나우펠, 그리고 즐겨들었던 노래들... 손이 기억해낸 나우펠의 과거를 현재의 나우펠도 카세트 리코더를 다시 틀어보며 복기한다. 그렇게 해서 잘려진 손과 어린 나우펠의 기억, 청년 나우펠의 현실은 마침내 조우한다.

  이제 나우펠은 고층 건물의 맨 꼭대기에 홀로 서있다. 관객은 나우펠의 잘린 손목을 감싼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본다. 어떤 상처는 결코 치유될 수 없다. 그래도 바라보고 견디어내야만 하는 것. 이 청년이 하게 될 선택은 손의 필사적인 여정과도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이 어째서 'I lost my hand'가 아니고 'I lost my body'인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제레미 클라팽의 이 기이한 잔혹 동화는 뜻밖의 여운을 남긴다. 'Blender'라는 3D 애니메이션 제작 도구를 사용해 2D와 3D를 합성한 기법상의 혁신도 돋보인다. 덕분에 도시 곳곳을 누비는 손의 활약에서 풍부한 영화적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잘려진 손'의 엽기적 모험담에는 인생의 진실과 함께 희망이 아로새겨져 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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