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 나가던 코미디언이 있었다. 순회 공연, 방송을 통해서 많은 인기와 부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점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그는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 2014년, 그의 나이가 56살이 되었을
때이다. 그는 대중들에게 자신이 1년 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코디미언의 이름은 John Edward Szeles,
본명보다 '어메이징 조나단(Amazing Johnathan)'이란 별칭으로 유명했다. 풋내기 다큐 제작자 Ben Berman은
2017년에 그런 그를 찾아가서 다큐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전직 코미디언은 선뜻 오케이 사인을
내주었다. 마침 지리하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견디다 못한 조나단은 복귀 공연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버먼은 자신의 첫 장편
다큐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던 중에 조나단이 흘리듯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말이야, 날 찍겠다는 다큐 팀이 새로 오기로 했거든. 아주 유명한 제작자야. 'Man on Wire(2008)'하고
'Searching for Sugar Man(2012)'을 만든 팀이라고 하더만. 거 아카데미 상도 탄 작품 있잖아. 난 죽어가고
있는데, 많이 찍어서 남길 수 있으면 좋잖아."
'뭐라고, 당신을 찍는 새로운 다큐 제작팀이 온다고? 그럼, 난 뭐가 되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황망한 표정의
버먼과는 달리 조나단은 아주 여유롭다. 조나단의 공연장에는 그렇게 버먼과 다른 다큐팀이 기이한 경쟁을 하면서 각자의 다큐를
찍는다. 그런 상황이 초짜 다큐 제작자 버먼에게는 영 익숙하지가 않다. 그런 그에게 조나단은 계속해서 놀람 상자를 선물한다.
하루는 분장실 뒷편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카메라를 든 웬 남자가 버먼에게 다가온다. 그는 버먼에게 나가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전 조나단의 다큐를 찍고 있거든요."
아니, 아카데미팀 말고 또 다른 다큐 팀이 또 있는 거야? 대체 조나단 이 화상아, 다큐를 몇 개를 찍으려는 거냐... 벤 버먼
감독의 2019년작 다큐 'The Amazing Johnathan Documentary'는 도입부에서부터 코미디가 따로 없다.
관객은 웃음이 빵빵터지지만, 감독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이다. 버먼은 이미 2년이 넘게 조나단에 대한 다큐를 찍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 말고 새로운 제작팀이 조나단에게 따라 붙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대안 1번)
에잇, 조나단 이 신의없는 인간아, 더러워서 안찍는다. 아카데미상이 그렇게 탐난단 말이냐. 난 갈테니까 잘해봐. 대안 2번)
아니, 아카데미팀은 내가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나까지 포함해서 세 팀은 좀 그렇잖아. 사실 순서로 치면 내가 제일
먼저 시작했는데, 어떻게 나하고 잘 찍으면 안될까?
버먼은 그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저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아버지를 비롯해
절친은 2년 동안 찍어온 것이 아깝지 않느냐며 버먼에게 다른 다큐팀과 차별화될 수 있는 전략을 짜내보라고 말한다. '차별화',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러나 버먼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그런 버먼에게 조나단은 연타를 날린다. '사실은 나를 찍는 팀이 하나 더
있어...'
다큐가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관객의 반응과는 정반대로 다큐 속의 감독 버먼은 심신이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자기
관리가 안되어서 체중이 늘었고, 집안에는 설거지와 쓰레기가 수북히 쌓여있다. 버먼을 좌절하게 만든 것은 자신 보다 먼저 조나단을
찍고 있었다던 4번째 다큐팀의 촬영 테이프였다. 버먼이 입수한 테이프 속 조나단의 자기 고백과 일상의 모습들이 마치 버먼의
촬영분과 판박이처럼 비슷하게 찍혀있었다. 조나단은 그 모든 다큐 제작 과정을 하나의 '공연'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이, 버먼, 그냥 때려쳐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버먼은 강철같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는 그 시점에서 과감하게
제작 방향을 전환한다. 바로 조나단의 다큐를 찍는 자신을 찍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The Amazing Johnathan
Documentary'는 예기치 않게 메타 다큐멘터리(Meta-documentary)가 되어버린다. 그 즈음 버먼의 연락을 계속
씹어버리는 조나단, 버먼은 아카데미팀이 캐나다에서 다큐의 첫 시사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는다. 버먼은 캐나다로 날아간다.
시사회 상영관에서 한 관객이 질문 답변 시간에 제작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다큐가 이전에 제작한 'Man on Wire'와 'Searching for Sugar Man'과 다른 점이 뭡니까? 그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만."
그 질문에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제작진을 보며 버먼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질문을 던진 관객은 버먼이 현지에서
섭외한 전문 연기자였다. 버먼은 그렇게 아카데미팀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고, 이제는 직접 프로듀서를 찾아가 담판을 벌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찍던 다큐 제작에 참여하는 거 어때요?' 그렇게, 프로듀서 Simon Chinn은 버먼과 한 팀이
된다.
'Amazing
Johnathan'을 찍기로 했던 다큐는 감독 버먼의 이야기가 합쳐져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흘러간다. 버먼은 그 과정 내내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왜 자신이 죽어가는 코미디언의 이야기를 다큐로 찍기로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
다큐를 통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촬영 대상자인 조나단을 자신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큐는 그 질문들에 대해 버먼이
답을 찾는 여정이 담겨있다. 아마도 이 다큐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강렬한 장면은 버먼이 조나단에게 매우 솔직하게 마음 속 의심을
털어놓을 때일 것이다. 조나단의 동료는 버먼에게 조나단이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한 말을 정말로 믿냐고 묻는다. 그는 조나단은 노련한
코미디언이며 그 모든 상황을 이용하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버먼은 언제부터인가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조나단에 대한
의심과 대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조나단, 당신이 1년 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팬들 앞에서 그랬잖아. 그런데 그 이후로 당신은 4년째, 어쨌든 살아있어. 정말 죽을 병 걸린 거 맞아?"
결국 버먼과 조나단의 관계는 어떻게 끝났을까? 버먼은 자신의 첫 다큐를 완성했다. 그리고 유능한 프로듀서 덕분에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를 상영할 기회도 얻었다. 조나단을 찍던 나머지 세 개의 다큐 가운데 한 편은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다큐는
전적으로 코미디언 조나단에 대한 것이다. 버먼의 'The Amazing Johnathan Documentary'는 조나단의
이름이 제목에 있지만,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정작 들어있지 않다. 이것은 첫 다큐를 찍는 풋내기 제작자 벤 버먼의 고행기인
동시에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실험적 시도와 자기 성찰적 유머의 집합체이다.
이 다큐는 과연 버먼이 생각하고 원했던 작품이 되었을까? 가끔 인생은 예기치 않은 장소로 우리를 이끈다. 비록 그곳이 원래 가고자 했던 목적지가 아닐지라도, 때론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충분히 아름답고 멋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풋내기 다큐 제작자는 그렇게 해서 꽤 괜찮은 첫 작품을 갖게 되었다.
*사진 출처: vox.com 버먼과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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