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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코멘치니(Luigi Comencini) 감독의 영화 두 편

모두들 집으로, Tutti a casa(Everybody Go Home, 1960), 120분
과학적인 카드 도박꾼, Lo Scopone Scientifico(The Scientific Cardplayer, 1972), 116분



이 글에는 두 영화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폭압적 파시즘과 전쟁의 기억, Tutti a casa

  제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7월, 시칠리아에 진입한 연합군으로 인해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진다. 무솔리니는 체포되고, 국왕의 명령에 따라 새로 수립된 정부는 연합군과의 휴전을 모색한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은 그 틈을 타서 이탈리아 군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이탈리아 본토 수복에 나선다.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의 1960년작 영화 'Tutti a casa(Everybody Go Home)는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코멘치니 감독은 전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임에도 비토리오 데 시카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같은 세계적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이탈리아 내에서의 그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가 찍은 너무 많은 영화들에서 코멘치니의 분명한 색깔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코멘치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수준높은 영화를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Tutti a casa'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 해변가에 주둔 중인 이탈리아 부대의 하급 부사관 알베르토(알베르토 소르디 분)는 라디오에서 정부가 발표한 휴전 성명을 듣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겨운 전쟁에 지친 부대원들은 모두들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에 휩싸인다. 소집 해제 명령을 기다리는 부대원들과는 달리 군 수뇌부는 뜻밖의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들이 부대를 떠나자마자 어디선가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온다. 연합군에 맞서 이탈리아 장악에 나선 독일군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과연 그들은 꿈에 그리던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주인공 알베르토와 부대원들이 남쪽에 있는 집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목도하게 되는 것은 전쟁의 참상이다. 철로를 따라 걷던 그들은 체포된 유태인들을 실은 기차와 마주한다. 물 좀 달라는 소리와 함께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라는 절규를 듣는다. 참혹한 광경이지만, 부대원들은 남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곳곳에서 밀고 내려오는 독일군들을 피하는 것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코멘치니가 펼쳐서 보여주는 부대원들의 여정은 전후 이탈리아 영화의 사실주의적 사조인 '네오리얼리즘(neorealism)'과 맞닿아 있다. 나치를 피해 달아난 유태인 여성이 결국 신분이 발각되어 총에 맞아 죽고, 굶주린 시민들은 밀가루 포대가 실린 트럭을 강탈해서 서로 가져가느라 정신이 없다. 폭격을 당해 처참하게 부서지고 무너진 도시의 잔해 속에서 어린 꼬마는 배고픔과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다.

  'Tutti a casa'에 펼쳐진 그러한 지옥도는 그럼에도 지나치게 무겁고 비장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코멘치니는 중간중간 가벼운 유머를 섞는다.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 알베르토 소르디가 표현하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병사 알베르토의 모습은 영화의 긴장감과 공포를 상당부분 누그러뜨린다. 완급이 잘 조절된 코멘치니의 전쟁 서사는 의외의 흡인력을 보여준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결코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감독의 역량은 전쟁의 참상과 함께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마침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집에 도착한 알베르토는 부친과 상봉한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도 잠시, 알베르토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현실과 마주한다. 궁핍함에 찌든 아버지는 아들이 다시 파시스트 군대에 입대해서 급료를 받아오길 기대한다. 경제적인 곤궁은 자식마저도 사지로 내몬다. 실망한 알베르토는 집을 떠나지만 곧 부대원 체카렐리와 함께 독일군에 끌려간다. 결국 도망을 치다가 총알이 쏟아지는 길바닥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체카렐리를 알베르토는 결코 외면할 수가 없다. 목숨을 걸고 달려나가 체카렐리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은 전쟁이 훼손할 수 없는 고귀한 인간성을 보여준다.

  모두가 집을 향해 나섰지만, 그 누구도 집에 머물 수 없었던 비극의 여정. 영화의 마지막에 레지스탕스에 합류하는 알베르토를 통해 애국주의를 부각시키면서도 코멘치니는 영화 전체를 통해 냉철한 균형 감각을 유지한다. '1943년 9월 8일'이라는 날짜가 선명한 화면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그 날은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본토를 장악한 독일군은 무솔리니의 괴뢰 정부를 앞세워 전쟁을 이어간다. 이탈리아에서 포성이 멈추려면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코멘치니는 'Tutti a casa'를 통해 폭압적 파시즘과 전쟁의 기억을 옴스라니 복원한다.    


2. 코미디에 숨겨진 계급 갈등과 빈부 격차의 문제, Lo Scopone Scientifico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50)'에는 기묘한 커플이 등장한다. 부유한 노부인과 젊고 잘 생긴 남자. 윌리엄 홀든이 연기한 가난한 극작가 조는 은퇴한 무성 영화 시대의 스타 노마의 재력에 포섭된다. 결국 조의 죽음으로 끝난 영화 속 이 커플이 만약 그대로 나이를 먹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코멘치니의 1972년작 영화 'Lo Scopone Scientifico'에 나오는 베티 데이비스와 조셉 코튼의 모습일 것이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특이한데, 직역하면 '과학적인 스코폰 게임'이란 뜻이다. '스코폰(scopone)'은 독특한 그림의 카드로 하는 이탈리아식 카드 게임이다. 백만장자 노부인은 스코폰의 광팬으로 그 게임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헐리우드의 고전기를 대표했던 배우 조셉 코튼이 베티 데이비스와 짝을 이뤄 나온다. 그 두 배우와 함께 나오는 이탈리아 배우는 'Tutti a casa'의 알베르토 소르디, 그리고 이 영화의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의 아내이며 명배우인 실바나 망가노(Silvana Mangano)이다.

  영화는 미국인 백만장자 노부인이 공항에 도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페피노와 안토니아 부부는 스코폰 게임의 고수로 노부인의 게임 테이블에 초대받는다. 부부에게는 그 무엇보다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리가 불편한 딸의 다리도 고쳐주고, 장의사 일을 돕는 어린 꼬마들의 미래를 위해서 노부인과의 게임에서 이겨야만 한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페피노 부부가 이기기를 기원한다. 부부에게 첫 판돈 백만 리라를 호기롭게 빌려주며 시작하는 노부인, 페피노와 안토니아는 차분하게 게임에 집중하며 연전연승을 이어간다. 마침내 7백만 리라를 부부가 따냈을 때, 페피노는 그만 두고 싶어하지만 안토니아는 기세를 올려 더 많은 돈을 따려 한다. 지는 것을 죽기 보다 싫어하는 노부인도 의사까지 대기시켜 가며 게임을 이어간다. 과연 부부는 스코폰으로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얼핏 보기에 이 영화는 한 편의 즐거운 코미디 같다. 카드 게임을 위해 이탈리아로 날아온 백만장자, 그 게임에 참여하는 가난한 부부, 그리고 부부의 승리를 기원하며 판돈을 거는 빈민가 사람들. 코멘치니는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이 기묘한 조합의 이야기에 당시 이탈리아의 현실을 담아냈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은 전 유럽을 휩쓸었다. 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후 축적된 사회적 모순과 불만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이탈리아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70년대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혼돈과 파괴의 시대를 보내야만 했다. 극좌파와 극우파가 극렬히 대립하며 무차별적인 테러를 자행했다. 거기에 1970년대의 세계적 석유 파동까지 겹쳐 경제난과 빈부격차가 가중되었다. 이른바 '납의 시대(Years of Lead)'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사회의 혼란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다.

  페피노와 안토니아 부부가 살고 있는 빈민가의 판잣집들은 노부인의 거대하고 호화로운 흰색 대저택과 명백히 대비된다. 노부인(영화 속에서는 이름이 없다)이 게임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뉴스를 봐야겠다면서 TV를 켜는데, 거기에서 독일 재무상이 달러 매입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저런 뉴스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페피노가 말하는데, 비서 조지는 노부인의 막대한 자산 증식은 그런 환 거래를 통해 이루어지는 점을 알려준다. 그저 카드 게임에서 딴 돈으로 고물 창고를 매입하는 것이 꿈인 페피노에게 그런 노부인의 재정 상황은 도무지 알아먹지 못할 일이다.

  이 영화에 내재된 계급적 갈등은 단지 노부인과 페피노 부부로만 대변되지 않는다. 부부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빈민가의 사람들을 비롯해 노부인의 시중을 드는 이들도 포함된다. 마치 귀족의 집에 기거하는 하인들의 단정한 복장을 갖춘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부부가 노부인을 이기기를 응원한다. 그들은 심지어 부부가 판돈을 잃었을 때에 자신들이 가진 돈을 기꺼이 내어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가난한 자들의 연대와 맹목적인 희망은 노부인의 승부사적 기질에 산산조각이 난다. 고리대금업자에게 꾼 엄청난 돈까지 날려버린 부부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부부는 가족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인 판잣집을 판 돈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항의 노부인에게 달려간다. 그것으로 마지막 카드 게임을 하지만 그마저도 날린다. 털털거리는 낡은 트럭에 살림살이를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이 가족이 살아야할 삶은 어떤 것일까? 영화가 보여주는 이 비극의 해법은 매우 과격하며 통렬하다. 부부에게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과학적 방법'에 대해 설교하는 자칭 '교수'는 노부인을 이길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육신이 완전히 사라질 때'라고 선언하는 교수의 말을 부부의 어린 딸 클레오파트라는 허투루 듣지 않는다. 쥐약을 넣어 만든 쿠키를 공항에서 노부인에게 선물한 딸은 절망한 부모의 복수를 그렇게 대신한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의 이 두 편의 영화들은 영화가 시대와 호흡하는 텍스트임을 알려준다. 그는 이탈리아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자신만의 성찰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대중 예술로서 영화는 결코 사회와 동떨어진 진공의 텍스트로 존재할 수 없다. 영화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적 틀 안에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코멘치니는 'Tutti a casa'에서는 전쟁과 파시즘을, 'Lo Scopone Scientifico'로 계층 갈등과 구조적 빈부격차에 대해 이야기 한다. 관객들은 그의 영화에서 감독이 그려낸 당대 이탈리아의 조밀한 초상과 마주한다.    


*사진 출처: it.wikipedia.org


**사진 출처: filmaffin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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