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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공화국의 이상, Les Misérables(2019)

 

  영화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2018년,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주인공 소년 Issa도 프랑스 국기를 몸에 휘감고 친구들과 기쁨을 나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이사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련이 펼쳐친다. Ladj Ly의 2019년작 영화 'Les Misérables'은 러셀 크로의 견디기 힘든 노래가 나오는 2012년작 뮤지컬 영화와는 제목만 같다.

  감독 라지 리는 말리 태생의 프랑스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영화 속 배경인 파리 교외의 Montfermeil에서 자랐다. 이 감독은 논쟁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2011년에 '납치'와 '불법 감금'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지역 공동체와 사람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죠. 나 또한 내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하고 싶었어요(cineuropa.org와의 인터뷰 가운데)"

  2005년, 파리 교외의 Clichy-sous-Bois에서 두 명의 무슬림 청소년들이 감전사로 죽었다. 경찰의 불시 검문검색을 피해 달아나려다 숨어든 곳이 변전소였다. 이 사건으로 약 3주간에 걸쳐 파리 근교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방화와 폭력사태가 촉발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었다. 외형적으로는 무고한 청소년들의 죽음에 분노해서 일어난 폭동이었지만, 거기에는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인 이민자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영화는 그 사건을 모티프로 취했다.  

  이사가 사는 동네는 전형적인 슬럼가로 매우 '거친 곳'이다. 아이들은 훔치고 뺏는 것이 일상이며,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지역 갱단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경찰들도 그런 곳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무법자처럼 행동한다. 상스러운 욕설은 기본이며, 검문검색을 이유로 여학생을 희롱한다. '내가 곧 법이다'라고 소리치며 주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경찰 크리스, 그리고 그것을 방조하는 동료 그와다의 행태는 온건한 신참 스테판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런 경찰들에게 서커스단의 사라진 새끼 사자를 찾아내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그들은 곧 이사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사를 체포하려는데 같이 있던 아이들이 난리를 친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와다는 실수로 고무탄을 이사의 얼굴에 쏜다. 이사는 목숨을 건졌지만, 경찰들은 공중에 떠있는 드론이 자신들을 찍었음을 알고 패닉에 빠진다. 촬영자를 찾아나선 경비대장 크리스, 과연 그들은 드론의 주인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실수를 무마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이사가 사는 몽페르메일의 주민들은 대부분 이민자들, 서북부 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인들이다. 범죄와 폭력이 일상인 그곳에서 크리스를 비롯한 경찰들의 부조리하고 폭압적인 모습은 생존의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극은 그런 곳에서 사는 이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에 있다. 주인공인 이사는 그곳의 흔한 아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도둑질과 갈취, 마약과 폭력이 공기처럼 스며든 곳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경찰은 실체화된 악이며 반대자이다. 얼굴에 부상을 입은 자신을 내팽개치고, 오히려 입막음을 하려는 경찰에게 이사는 분노한다. 그 분노는 원초적인 형태의 복수로 나타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세 명의 경찰들은 아이들의 근거지를 순찰하다가 건물에 갇혀 죽을 위기에 내몰린다.

  감독 라지 리는 이러한 구조화된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드론을 이용한 항공 촬영 장면이다. 드높은 상공에 떠있던 드론은 점차 수직으로 하강하며, 거시적인 시점에서 미시적인 시점으로 이동한다. 드론은 일종의 움직이는 현미경인 셈이다. 관객들은 드론이 보여주는 화면을 통해 도시의 숨겨진 이면을 마주한다. 작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잘 정비된 풍광의 도시는 온갖 불평등과 가난, 범죄와 폭력으로 점철된 복마전(伏魔殿)과 같은 장소이다. 아마도 라지 리는 그런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면서 이렇게 묻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방리유(Banlieue)가 뭔지나 알어?'

  사실 이 영화가 프랑스 사회의 고질적인 '방리유(Banlieue, '교외'라는 뜻의 프랑스어)' 문제를 다룬 첫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 '증오(La Haine, 1995)'의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카소비츠도 '증오'에서 방리유의 문제를 다루었다. 파리 근교의 이민자와 하층민 주거지를 뜻하는 '방리유'가 사회 문제로 고착화된 것은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방리유는 범죄의 근원지로 인식이 되었는데, 이미 1981년 여름에 이민자 청소년들이 무려 수백 대의 차량을 전소시키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연말에 차량에 불을 지르는 것은 그곳의 연례 행사처럼 여겨질 정도이며, 방리유의 일부 지역은 아예 마약 도시로 경찰의 진입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 역사와 이민사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1850년대 제정 프랑스 시절부터 외국의 값싼 노동력 도입이 정책적으로 이루어졌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였던 서북부 아프리카 지역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다른 튀니지와 모로코와 같은 식민지와는 다르게 '프랑스령 알제리'는 본토로 인정되는 곳으로 알제리로부터의 상당수 이민자들이 프랑스에 정착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재건과 산업 인력의 수요로 인해 195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이민이 장려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들의 주거지 문제를 방리유의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로 해결했다. 그러나 방리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분리 구역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곳은 곧 계층과 직업, 종교, 인종에 있어서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열악한 주거지로 전락했다.

  라지 리가 '레 미제라블'에서 보여주는 방리유의 문제는 어쩌면 최신판의 모습일 것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목도하는 폭력과 함께 몽페르메일 이민자 사회 내부의 모습에도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독특한 이국적 복식을 비롯해 토착 풍습인 '계'를 하고 있는 여성들이 나오는 장면은 과연 저곳이 프랑스가 맞나,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제 방리유의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특징들은 파편화된 게토(ghetto)로 자리잡았고, 그것이 프랑스가 직면한 사회 갈등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자유, 평등, 우애, 라는 공화국의 이상을 기치로 내걸고, 그 어떤 종교적 예외나 배려를 인정하지 않는 세속주의(laïcité)는 이슬람 이민자들을 더 분파적이고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2015년에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테러 사건은 그 극단의 예를 보여준다.

  “세상에는 그 어떤 잡초도, 무가치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나쁜 농부만 존재할 뿐입니다(There are no weeds, and no worthless men. There are only bad farmers).”

  영화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한 귀절을 인용하면서 끝난다. 결국 라지 리는 영화 속에서 펼쳐 보여준 모든 악덕과 폭력의 원흉으로 프랑스, 그것을 통치하는 지배 계층, 더 나아가 공화국의 이상을 지목한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우애로 연대하는 그런 나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고 그는 외친다. 그의 '레 미제라블'은 공화국의 이상에 더이상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이민자들과 하층민들인 셈이다. 자신의 이야기로 '우리의 문제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감독의 바램은 그렇게 실현되었다.


이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

1. 증오(La Haine, 1995), 마티유 카소비츠
2.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1989), 스파이크 리
3.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 1966), 질로 폰테코르보


*사진 출처: readthespir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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