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글은 하나의 도형 그림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그림 출처(en.wikipedia.org)
여러분은 위 그림에서 두 개의 주황색 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대다수는 오른쪽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두 점의 크기는 똑같다. 다만 그 주변을 둘러싼 원들의 크기가 보는 이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에빙하우스 착시
또는 티치너 원(Ebbinghaus illusion or Titchener circles)'이라고 불리는 이 도형 그림은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에서 잘 알려진 '맥락 효과(Context Effect)'를 입증한다. 그것은 주변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하나의 자극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의 영화 제작자 세르게이
로즈니차(Sergei Loznitsa) 감독의 2021년작 다큐 'Babi Yar. Context' 제목에 바로 그
'맥락(Context)'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Babi Yar'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Kyiv)에 있는 협곡의
지명이다. 그곳에는 숨겨진 학살의 역사가 자리한다. 1941년 9월 29일부터 30일, 그 이틀 동안 바비 야르에서는 키에프 거주
유대인이 독일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밝혀진 희생자의 숫자만 33,771명이다. 1943년 11월, 소련군이
키에프를 탈환할 때까지 최소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추가로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비 야르 학살은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의 기록 가운데 단시일에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1941년 9월의 끝자락에 키에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개인적인 의문은 그렇게 'Babi Yar. Context' 제작으로 이어졌다.
다큐는 귀를 찢는 듯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시커먼 포연이 한가로워 보이던 키에프 교외의 풍광을
집어잠킬 것만 같다. 1941년 6월, 폴란드를 점령한 데에 이어 독일군은 우크라이나로 진격했다. 황급히 퇴각하던 소련군은
키에프 곳곳에 폭약을 설치했고, 그렇게 망가진 도시를 독일군에게 넘겨줄 심산이었다.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키에프
시민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9월 19일에 키에프를 장악한 독일군은 그것을 유대인 절멸의 기회로 보았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에
재일 조선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그 모든 파괴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자 나치는 신속하게
학살 계획을 수행했다.
당시 키에프에 주둔한 독일군 장병과 장교들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던 카메라와 영사기로
그 일련의 상황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로즈니차는 아주 다양한 경로로 자료들을 입수했다. 흑백과 컬러 사진들, 8mm와 16mm,
35mm 네가티브 필름들의 품질은 제각각이었다. 다큐를 위해 일부는 복원 과정을 거쳤고, 그가 무엇보다 공을 들였던 것은
'사운드'였다. 실제 연설 장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리는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배우나 성우가 아닌 일반인들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사운드를 가공했다. 그러한 사운드 디자인에는 배경 소음도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학살지 근방에 커다란 짐짝처럼
쌓인 유대인들의 옷가지를 찍은 스틸 사진들이 제시될 때,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어간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마치 Babi
Yar 협곡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큐에는 직접적인 학살 장면이 들어있지 않다. 영화의 제목에
들어있는 'Context'가 의미하듯, 이 다큐는 'Babi Yar 학살 사건'의 전후 맥락만을 제시할 뿐이다. 독일군의 키에프
침공과 점령, 유태인들이 나치의 소집 명령에 따라 협곡으로 끌려가는 과정, 그리고 학살이 이루어진 이후의 풍경, 소련군의 키에프
탈환, 그리고 학살 주동자 재판까지 여러 자료 화면들이 겹겹이 덧붙여 이어진다. 내레이션은 없으며, 중간중간 실제 역사적 사실이
자막으로 제시된다. 로즈니차가 보여주는 이러한 편집 방식은 매우 건조하고 중립적이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제작자의
관점을 관객에게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을 독자적으로 발굴한 풍성한 역사적 사료의 제공자로 자처한다. 그러므로 자료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내 목표는 관객들을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마주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건의 주변 분위기를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죠. 나는 그러한 영화적 방식이 일종의 통찰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My aim is to make the spectator 'face' and 'experience' the
events and the atmosphere of the time, as if he/she was there in-person.
I believe that cinema is capable of stimulating and generating this
kind of insight)." - The Times of Israel과의 인터뷰 가운데
'Babi Yar.
Context'에서 관객들이 목도하게 되는 것은 학살 그 자체가 아니라, 학살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다. 키에프에
진입하는 독일군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환영하는 시민들(동원된 관중이 아니라 자발적으로)의 모습은 관객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러시아인들에게 1941년의 그 키에프 시민들은 배신자들이며, 국외자인 관객들에게는 의문의 대상이 된다. 찢겨져 나가는
스탈린의 초상 대신 창문에 빳빳하게 붙여진 히틀러의 사진을 비롯해 독일 장군의 연설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 왜 그들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했는가? 거기에는 국외자가 잘 알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라는 지역이 가진 역사적 특수성과 함께 스탈린의
폭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키에프 시민들은 스탈린의 압제 하에서 굶어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나치 치하에서 보다 나은 생존을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큐는 키에프 시내의 유대인들이 시민들에 의해 건물에서 끌려나오고 모욕과 함께 가혹한
린치를 당하는 장면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구경꾼들은 더러 웃기도 하면서, 포식자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쫓겨난 유대인들 소유의 집과 귀중품들은 그곳의 시민들에게 약탈과 은닉의 대상이 되었다. 학살의
주모자는 분명히 나치 독일군이지만, 다큐는 상당수 키에프 시민들이 적극적 또는 암묵적 동조자였음을 보여준다. Babi Yar 학살
사건은 그러한 시민들의 협조 속에 이루어졌다.
독일군은 키에프 시민들을 동원해 Babi Yar 협곡 주변을
파게 했다. 그곳은 곧 학살지와 거대한 암매장지가 된다. 나치의 공고문에 따라 신분증과 귀중품, 약간의 소지품을 들고 나섰던
유대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협곡으로 실려갔다. 영상에 담긴 대다수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을 예감한 어느 여인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매장을 용이하게 하기 죽기 직전에 옷을 벗게 했으며, 다큐는 그렇게
들판의 무수한 짚단처럼 쌓인 옷가지들로 죽은 이들의 숫자를 가늠하게 만든다.
파이를 굽기 위해 얇은 반죽으로
겹겹이 층을 내듯, 독일군은 한 무리의 유대인들을 총살시킨 후 그 위에 또 다른 무리를 몰아놓고 시신을 쌓아 나갔다. 협곡은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 되었다. 소련군이 키에프를 탈환한 후에 이루어진 학살자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생존자 여성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암매장당한 시신들 속에서 죽은 척 연기를 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쌓인 시신 대부분은 유대인들이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집시와 정신질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소련군 포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치에게는 모두 제거해야 마땅한 열등 분자들이었다.
히틀러의 군대를 환영했던 키에프 시민들의 입장은 1943년 11월에 바뀌었다. 소련군은 키에프를 탈환했고, 1946년 1월에
전범 재판을 열어 주동자들을 키에프의 칼리닌 광장에서 공개처형했다. 다큐 속 영상에는 그들의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나와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로마 시대 콜로세움의 관중들처럼 시민들은 전범들의 처형을 바라본다. 더러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려고 사람들을 헤집고 높은 곳에 매달리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이후 Babi Yar에
묻힌 원혼들의 존재는 잊혀지기 시작했다. 권좌를 지켜낸 스탈린은 어떤 식으로든 전쟁과 학살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계곡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1952년에 Babi Yar가 홍수로 범람하자, 키에프
시는 벽돌 공장에서 나오는 토사 부산물로 계곡 일대를 메꾸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죽은 이들은 오물을 뒤집어 쓰고
세월의 망각 속에 잊혀져 갔다. 로즈니차는 그것을 'Chronocide(time killing, 시간에 의한 죽음)'라고 말한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매몰되길 바라는 것은 가해자와 압제자가 바라는 것이다. 거기에 반대하여 다큐 제작자로서
그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자신이 엄선한 역사적 영상 자료를 가지고 잊혀진 학살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한다. '와서 보고 느끼시오.
키에프의 협곡 Babi Yar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그 어떤 학살의 장면이 나오지 않는, 'context'만으로 구성된
이 다큐를 보는 관객들은 각자가 처한 자신들의 입장에서 'Babi Yar'의 실체적 진실을 인식하게 된다.
*'Babi(y)
Yar'는 러시아어의 로마자 음차 표기이다. 우크라이나어의 로마자 표기는 'Babyn Yar'이다. 벨라루스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러시아 국립 영화학교(VGIK)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현재는 독일에서 거주한다. 그가 왜
우크라이나어식 표기가 아닌 러시아어 음차 표기를 제목으로 썼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인터넷 검색시 'Babyn Yar'로 치면 더
많은 공식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 '스탈린의 장례식'을 다룬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2019년작 다큐 'State Funeral'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great-farewell1953-state-funeral2019.html
****사진 출처: independent.co.uk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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