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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장례식; Great Farewell(1953), State Funeral(2019)



1. Lullaby(1937), 58분
2. Great Farewell(1953), 1시간 5분
3. State Funeral(2019), 2시간 15분


(1번과 2번 작품은 유튜브에서 검색 가능함. 자막은 제공되지 않는다)


  1937년, 러시아 혁명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는 '자장가(Lullaby)'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러닝타임 58분의 이 다큐멘터리는 품에 안은 아기를 어르는 젊은 엄마를 비춰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다큐는 러시아 혁명의 위업을 이어받는 새로운 세대의 희망을 노래한다. 러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과 아이들이 산업과 교육, 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이 다큐는 '러시아'라는 국가가 지닌 생명력, 모성에 대한 찬양을 드러내고자 베르토프 특유의 몽타주 기법으로 정교하게 편집되어 있다.

  정치적 선전물인 프로파간다(propaganda) 영화로서 '자장가'에는 당시 국가 원수였던 스탈린이 부수적인 이미지로 삽입된다. '부수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다큐에서 스탈린이 등장하는(초상화 장면까지 포함해) 부분이 10여 분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다큐에서 스탈린은 권위적인 국가 지도자가 아닌 '자애로운 아버지'의 이미지로 강조된다. 생명과 희망을 대변하는 위대한 모성으로서의 러시아와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아버지 스탈린이 자리한다. 베르토프의 필모그래피 끝자락에 위치한 이 다큐는 발표 직후 5일만에 영화사 선반에 얹히는 신세가 되었다. 아마도 이 작품에 대한 스탈린의 비호감이 주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후 베르토프는 경력의 내리막길에 접어들며 쓸쓸히 영화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로즈니차(Sergei Loznitsa) 감독의 2019년작 다큐 'State Funeral'을 보고 있노라면, 스탈린이 소련 인민들에게 차지했던 '나라의 아버지'로서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1953년 3월 5일,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사망했다. 당시 소련을 대표하는 영화계 인사 6명이 스탈린의 장례식을 기록하는 영상물 촬영 책임을 맡았다. 세르게이 게라시모프(러시아 국립 영화 학교 VGIK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를 비롯해 지가 베르토프의 아내 엘리자베트 스빌로바, 에이젠슈타인의 초기 공동 작업자인 그리고리 알렉산드로프가 그 책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전역을 비롯해 동유럽 공산권 국가, 중국, 북한에서 스탈린을 추모하는 장면이 흑백과 컬러로 촬영되었다. 이것은 'Great Farewell(1953)'이란 제목의 1시간 5분 정도의 기록 영화로 남았다.

  그러나 스탈린 우상화에 대한 반감과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소련의 지도부는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자마자 황급히 봉인해 버린다. 그렇게 'Great Farewell'은 1988년까지 어둠 속에서 잊혀졌다. 로즈니차 감독은 Krasnogorsk에 자리한 러시아 국가 영화 사진 기록 보관소에서 그때의 촬영 필름들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 영상 자료들에 로즈니차 감독은 강하게 매료되었다. 그는 그것을 '보물을 찾았다'는 말로 표현했다(mubi.com과의 인터뷰 참조). 그 보물을 가지고 로즈니차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편집한 '스탈린 장례식' 다큐를 만들었다.

  러닝타임 2시간 15분에 달하는 'State Funeral'을 보는 관객들은 엄청나게 선명한 과거 자료 화면의 화질에 놀랄 것이다. 당연하게도 당시에 최고 품질의 필름과 우수한 촬영 인력이 투입된 기록물 작업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특히 독일에서 개발된 아그파 컬러 필름(Agfacolor)의 진가는 스탈린의 관 색깔인 빨강색에서 드러난다. 로즈니차는 흑백과 컬러를 절묘하게 이어붙이면서 수시로 색상 전환을 시도한다. 다큐는 소련 전역에서 시민들이 스탈린의 사망 소식을 접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성대한 모스크바의 장례식에 이르는 과정을 치밀하고 촘촘하게 직조해 나간다.

  국가가 제작했던 'Great Farewell'이 뉴스릴의 내레이션 방식을 채택한 것과는 달리, 로즈니차는 'State Funeral'에서 일체의 설명을 배제했다. 오직 장례식에 쓰인 클래식 음악(모짜르트의 레퀴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그리그의 '오제의 죽음'을 비롯해 장송곡 음악)만으로 다큐는 그 흐름을 이어간다. 당시 소련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는 관객들에게 로즈니차의 다큐는 매우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장례식을 주도하는 소련 정치인들의 면면을 비롯해 주요한 정보는 제시되지 않는다. 또한 로즈니차는 스탈린 장례식과 관련된 자료를 소련 국내로만 한정해서 편집했다. 이는 각국의 조문 사절단을 비롯해 공산권 국가(동유럽, 중국, 북한, 몽골)에서 이루어진 추모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는 'Great Farewell'과는 차별되는 점이다.

  로즈니차 감독은 왜 그런 방식을 채택했을까? 그는 'Great Farewell'이 강조한 스탈린 장례식의 정치적 장엄함 보다는, 당시 소련 민중이 스탈린의 죽음에 반응하는 것에 더 촛점을 맞추고 싶어했다. 'Great Farewell'에서 장례식 조사를 낭독하는 소련 권력의 핵심 인사들은 'State Funeral'에서는 하나의 뭉뚱그러진 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흐루시초프, 말렌코프, 베리야, 몰로토프의 순서대로 낭독된 'Great Farewell'의 공식 장례식 장면은 그들 사이에 내재된 정치적 긴장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로즈니차의 관심사는 정치권력 보다는 민중에 있다. 자발적 비통함, 그것이야말로 로즈니차가 의문을 품고 파고드는 지점이다. 다큐 전체를 압도하는 스탈린에 대한 추모의 감정은 절대로 강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피의 숙청으로 도살장의 짐승처럼 죽어나갔고, 스탈린 치하에서 발생한 기아는 거의 학살에 가까운 범죄와도 다름없었다. 그 모든 것을 주도한 독재자의 죽음에 당시의 소련인들은 진정으로 애도했다. 끝도 없이 바쳐지는 꽃과 추모의 행렬은 마치 잘 연출된 한 편의 거대한 장례식 영화를 연상케 한다. 아마도 어떤 이들에게는 로즈니차의 이 다큐는 스탈린의 장례식을 미화한 텍스트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러나 'State Funeral'은 결코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며, 그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왜 그들은 저렇게 비통해 하는가? 독재자 스탈린은 과연 저런 성대한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어도 합당한가?'

  'Great Farewell'은 스탈린이 공산권에서 가진 절대적인 위상을 강조한다. 마오쩌둥은 천안문 광장에서 직접 추모식을 집전하며, 2인자 저우언라이를 사절단 대표로 보냈다. 북한의 추모 행렬 또한 비중있는 장면으로 들어간다. 소복을 입고 조문하는 여성들을 비롯해 변경 군인들의 추모 장면들은 꽤 인상적이다. 몽골 초원에서 애도하는 유목민의 모습도 편집되어 들어간다. 그와는 달리 로즈니차가 다큐에 사용한 자료 화면을 소련 지역으로만 한정한 것은 소련 인민들과 스탈린의 관계를 부각시켜서 보여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다큐 속의 소련인들에게 스탈린은 위대한 소련의 아버지처럼 보인다. 그들은 지도자이며 아버지인 사람을 잃었다.

  명백하게 독재자이며 살인마인 사람을 추모하는 이 무시무시한 사기 협잡극 같은 장례식을 보는 이들은 착잡한 감정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State Funeral'은 독재자의 화려하고 장엄한 장례식을 가능하게 한 것의 토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한 장례식을 기획한 것은 스탈린의 정치적 수하들이었지만, 소련 인민들은 그것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로즈니차는 독재자의 철권 통치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그 민중들이며, 장례식에 모인 모든 이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침내 구슬픈 '자장가(Matvey Blanter 작곡, Mikhail Isakovskiy 작사)'가 흐르는 가운데 스탈린이 매장된 영묘를 보여주며 다큐는 끝난다. 자신의 아기를 잠재우며, 그 어떤 슬픔과 두려움도 맛보지 않을 거라고 어머니가 부르는 이 자장가는 베르토프의 다큐 'Lullaby(1937)'와 기이한 댓구를 이룬다. 'Lullaby'에서 인자로운 국부(國父)를 태연하게 연기했던 독재자는 과연 무덤에서 아기처럼 평화롭게 잠들 수 있을까? 방부처리되어 레닌 영묘에 합장되었던 그의 시신은 1961년에 꺼내어져 매장되었다. 'State Funeral'은 이제는 땅에 묻힌 독재자가 드리운 길고 음울한 역사적 그림자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cineuro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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