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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파뇰(Marcel Pagnol)의 영화에 나타난 계층과 여성의 문제: 제빵사의 아내(The Baker's Wife, 1938), 우물 파는 사내의 딸(The Well-Digger's Daughter, 1940)

 

La femme du boulanger, The Baker's Wife(1938)
La Fille du puisatier, The Well-Digger's Daughter(1940)


1. 제빵사의 아내, 마르셀 파뇰의 대표작

  '마농의 샘(Manon des Sources, 1986)''우물 파는 사내의 딸(La Fille du puisatier, 2011)', 두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리메이크 작품이다. 오리지널 영화를 만든 이는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 1895-1974)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극작가로 시작했다. 연극에서 거둔 성공은 영화로 이어졌다. 무성 영화가 이제 막 유성 영화로 전환될 무렵에 파뇰은 자신의 작품들을 영화화하면서 영화계에 안착했다. 그의 1938년작 '제빵사의 아내(The Baker's Wife)'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행운은 '우물 파는 사내의 딸(1940)'로 이어졌다. 파뇰은 두 영화 모두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희곡에서 갈고 닦은 그만의 유머러스한 문체는 영화에서도 돋보인다. 파뇰은 코미디의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당대의 사회를 영화 속에 투영한다.

  '제빵사의 아내(1938)'는 지극히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시골 마을에 빵집을 연 제빵사 에마블레는 맛난 빵을 구워 마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그의 젊은 아내 오렐리가 양치기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다. 상심한 에마블레는 아내를 찾을 때까지 빵을 굽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빵 없이는 살 수 없는 마을 사람들, 급기야 마을 후작의 지휘하에 특별 수색대가 조직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제빵사의 아내를 찾아올 수 있을까...

  에마블레가 빵집을 연 이 시골 마을은 그렇게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교리에 충실한 마을 신부는 좌파주의 교사와 언쟁을 벌인다. 대대로 불화하는 두 집안의 농부는 서로 말하지 않는다. 마을 여자들은 뒷담화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후작은 자신의 성에 세 명의 애첩을 두고 지낸다. 그런 그들의 식탁에 에마블레의 빵이 올라간다. 그런데 그 빵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든 제빵사의 아내를 찾아야만 한다.
 
  마을 농민들은 후작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수색에 나선다. 이 마을은 계층적으로 명백히 구분되어 있다. 후작은 봉건 영주처럼 마을 주민 위에 군림한다. 그는 함께 사는 세 명의 여성을 조카라고 뻔뻔하게 둘러댄다. 신부는 후작을 질책하지만, 낡은 교회를 고쳐줄 수 있는 후작 앞에서는 약자나 다름없다. 후작이 세속의 권력을 대변한다면, 신부는 영적인 권위로 마을 사람들의 내면을 통제한다. 그는 제빵사에게 닥친 불행에 냉담하다. 신부에게 그 일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도덕적 훈화에 적합한 소재이다.

  마르셀 파뇰은 그런 지배 계층과 대비되는 인물로 에마블레를 내세운다. 이 순박하고 고지식한 남자는 절대로 아내의 바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들 그의 아내가 양치기와 떠났다고 말하는데도, 끝까지 아내는 친정에 간 것이라고 우겨댄다. 그가 절절하게 토로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은 마치 신앙과도 같다. 그에게 빵을 굽는 행위는 아내를 위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의 부재는 그가 더이상 빵을 구울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에마블레의 '파업'은 마을을 마비시킨다. 파뇰이 보기에 노동 계급이야말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의 합심으로 제빵사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과정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신부는 오렐리가 제빵사에게 돌아가도록 설득한다. 주저하는 오렐리에게 신부는 신약 성서를 읽어준다. 예수가 돌팔매질을 당할 위기의 간음한 여자를 구하는 부분이다. 제빵사는 아내를 맞이하며 용서한다. 여기에서 드는 한가지 의문은 이런 것이다. 왜 애첩을 세 명이나 둔 후작의 행위는 죄악시되지 않으면서, 오렐리의 불륜은 죄사함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마을 여자들은 제빵사의 아내가 젊고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배척한다. 그들은 오렐리가 자신들의 남편을 유혹할까봐 두려워 한다. 이 영화에서 여성의 매력과 욕망은 사회의 악덕이 되며, 그것은 구제의 대상이 된다.


2. 우물 파는 사내의 딸, Vichy Film이 보여주는 시대의 초상

  '언제든 타락할 수 있는 여성'의 이미지는 1940년작 '우물 파는 사내의 딸'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영화의 이야기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우물을 파는 직업을 가진 파스칼은 홀아비로 여섯 명의 딸을 키운다. 그의 아름답고 착한 첫째 딸 파트리샤는 공군 조종사인 자크와 사랑에 빠진다. 파트리샤가 임신한 사실을 모른 채, 자크는 전쟁터로 떠난다. 파스칼은 자크의 부모에게 딸과 태어날 아기를 받아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파스칼은 딸을 먼 시골로 보내 출산하도록 한다. 그러던 중에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한 자크의 부모는 파트리샤의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이 영화에서도 계층에 대한 파뇰의 시각은 명확하다. 자크의 아버지 마젤은 커다란 상점을 소유한 부자이다. 떠나는 자크는 어머니에게 파트리샤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자기 대신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젤 부인은 파트리샤의 행색을 보고 가난한 집 딸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래서 편지를 전해주지 않고 불태워 버린다. 파스칼이 파트리샤의 아기 문제를 상의하러 왔을 때에도, 마젤 부부는 아들의 핏줄인지 알 수 없다며 모욕을 준다. 파스칼의 직업인 우물 파는 일은 매우 유용하고 가치있는 일임에도 사회에서 그의 계층적 지위는 밑바닥에 위치한다.

  계층에 대한 파뇰의 비판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여성에 대한 시선은 차별적이다. 파트리샤의 임신은 부주의하고 부도덕한 행실로 묘사된다. 파스칼은 딸이 집안에 가져올 불명예에 대해 근심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먼 곳에 보낸다. 그가 다시 딸과 손주를 데려오는 계기가 참 흥미롭다. 파트리샤는 아들을 낳았다. 딸만 여섯인 파스칼에게 아들 손주의 존재는 남다르게 느껴진다. 대를 이을 자손으로서 아이의 존재는 자크의 전사 소식에 상심한 마젤 부부에게도 희망이 된다. 파트리샤의 타락과 일탈은 비로소 사회적 인정의 범주에서 논의되기 시작한다. 영화는 전사한 줄 알았던 자크가 귀환하면서 파트리샤에게 청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결말은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볼 때, 기묘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영화가 제작될 무렵, 프랑스는 독일과 전쟁 중이었다. 영화는 프랑스가 패전하기 직전에 거의 완성되었다. 하지만 극중에는 당시 패전을 선언하는 필리프 페탱의 라디오 연설이 나온다. 패전 후 수립된 비시(Vichy) 정부는 독일의 괴뢰 정권이었다. 그 시절 모든 것은 독일의 손아귀에 있었으며, 영화 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전 검열이 이루어진 영화들만이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영화 속에 삽입된 패전 선언은 프랑스인들에게 비통함과 수치심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와는 달리 점령군 독일의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지위를 명확히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들이 행복한 결혼에 이르는 결말은 이제는 하나가 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비시 영화(Vichy Film)'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영화 '제빵사의 아내'와 '우물 파는 사내의 딸'은 마르셀 파뇰의 영화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그는 재치있고 간결한 대사로 코미디의 묘미를 끌어낸다. 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시선은 무척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파뇰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전근대성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실패했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들이 겪는 곤경은 멜로 드라마의 진부함과 긴밀히 결합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관객에게 파뇰의 영화들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전근대적 단면을 반영하는 영화적 초상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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