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게 네가 도와줘."
뇌졸중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딸에게 그렇게 부탁한다. 갑작스럽게 그 말을 들은 딸은 놀라움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François Ozon 감독의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 2021)'는 매우 민감한 윤리적 주제를 다룬다.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를 원하는 아버지 앙드레의 요청을 과연 딸 에마뉘엘은 수락할까?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Emmanuèle Bernheim는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남겼다. 작가의 부친은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이라는 과정을 통해 삶을
마감했다. 영화 '다 잘된 거야'는 딸 에마뉘엘이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은 안락사와는 좀 다른 개념의 죽음이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직접 치사량의 약물을 삼켜야 한다. 지난 9월 13일에 스위스에서 타계한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도
그렇게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3명의 사람이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그러한
방식의 죽음이 갖고 있는 윤리적 논란과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둔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프랑수와 오종은 깔끔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가족이 속한 계층적 배경이 '중산층'이라는 데에 있다.
에마뉘엘의 아버지 앙드레는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이며, 어머니는 조각가이다. 에마뉘엘도 작가로서 나름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병고는 이 가족의 삶에 불편을 끼치기는 하지만 뒤흔들 만한 재앙은 아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모친은 비서를 두고 힘겹게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는 안락사로 삶을 끝내고 싶어한다. 딸은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의지를 확인하고 현실적인 절차를 밟기 시작한다. 스위스의 관련 단체를 알아보고, 만약을 대비해 변호사에게 법률적인 조언도 듣는다.
정해진 이별의 날짜를 앞두고 아버지는 가족과 지인을 불러 호화로운 만찬을 즐긴다. 손주가 연주하는 음악회에도 참석한다. 마침내
아버지와 두 딸이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곳은 앰뷸런스 안이다. 노인은 홀로 낯선 곳에서 죽기 위해 떠난다.
프랑수와
오종의 이 영화는 조력 자살에 대한 영상 팸플릿(pamphlet) 같다는 인상마저 준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관객은 성장(盛裝)을
한 모습으로 침대에 오롯이 누워있는 앙드레를 본다. 그 최후를 참관한 이는 에마뉘엘에게 전화를 건다. '모든 게 잘되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선택할 수 없는 이 죽음에는 당연히 큰 돈이 든다. 또한 법적인 문제를 비롯해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당신이라면 이런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건가요? 또한 당신의 가족이 그런 마지막을 원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영화는 마치 관객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그 질문에 내포된 근원적 성찰은 단순히 윤리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세상에는 부유한 앙드레가 선택한 '조력 자살'의 방식과는 다른 자발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가난과 외로움,
병고에 시달린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더이상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다 잘된 거야'는 계층과
죽음의 문제를 '가족애'라는 주제로 안전하게 환원시킨다.
가스파 노에(Gaspar Noé)의 영화 '소용돌이(Vortex, 2021)'는
그 지점에서 더 사실주의적으로 파고든다. 영화는 노부부의 마지막 날들을 건조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가스파 노에는 질병과 불안이
가족 내부에서 어떻게 파괴적으로 기능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집안과 바깥을 끊임없이 배회하며 일상의
세계와 유리된다. 심장병이 있는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살피는 데에 무력하다. 그들 부부의 유일한 아들은 마약중독자이다. 그
아들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는데, 애 엄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부모의 안위를 걱정하던 아들은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도 버겁다며
부모 앞에서 흐느껴 운다. 아들이 요양원을 알아보는 사이에 부부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다.
"도대체 왜 죽어요? 산다는 건 좋은 거잖아요." 'Everything
Went Fine'에서 앰뷸런스 운전 기사는 앙드레에게 그렇게 묻는다. 앙드레는 허허로운 표정으로 그 남자를 응시한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죽으러 가는 노인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Vortex'에서 거리의 약쟁이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늙는 것과 약쟁이가 되는 것, 둘 중에 넌 뭘 선택할래?" 두 가지 모두 쉽게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는 뜻일 게다. 그 영화들을 보고서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그렇게 영화는 타인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관조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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