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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를 통해 바라본 사람과 세상, Le Kiosque(The Kiosk, 2020)

 

  2미터가 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여자는 하루를 보낸다. 파리 16구, 빅토르 위고 거리의 신문 가판대(kiosk)는 4대에 이르는 여자 집안의 가업이었다. 여자는 대학에서 장식 미술을 전공했지만, 예술로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버거운 일이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잠깐 돕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은 6년 동안 이어졌다. 감독 알렉산드라 피아넬리(Alexandra Pianelli)는 자신의 첫 장편 다큐 'Le Kiosque(The Kiosk, 2020)'를 바로 그곳, 키오스크에서 찍었다. 감독이 머리에 두른 GoPro(액션캠)와 카운터에 세워둔 iPhone 카메라에는 키오스크를 찾는 다양한 이들이 찍힌다. 새벽 5시, 키오스크의 셔터 문이 열리고 도시의 소음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다큐는 시작된다. 피아넬리는 자신이 서있는 카운터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한다. 벽에는 온갖 메모와 주의 사항, 단골 손님들의 캐리커쳐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거스름돈이 있는 돈통에는 그 자리를 거쳐간 가족의 손가락 자국들이 마치 오래된 화석처럼 남아있다.  

  키오스크의 첫손님은 노숙자 다미엔이다. 고양이를 안고 온 남자는 늘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어디선가 또 주워오는 것 같다. 금발의 노부인 마르셀은 유쾌한 대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레를 배우는 어린 꼬마 숙녀도 엄마와 함께 온다. 길을 묻는 청년도 있다. 매일 가게를 찾는 단골들과의 대화는 유쾌하고 정겹다. 달달한 간식을 들고와서 나누어주는 영감님도 있다. 여러 손님들이 오가는 가운데 피아넬리는 키오스크에서 자신이 처리해야하는 일들을 설명한다. 300개가 넘는 잡지의 위치, 가격을 숙지해야하는 것은 기본이다. 단골 손님들의 구매 선호도를 잘 알고 있으면 판매에 도움이 된다. 말을 걸어오는 온갖 손님들에게 적절히 응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러는 무례한 이도 있고, 추근대는 남자 손님도 있다. 카운터에 와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인간도 있다. 과일 노점상을 하는 이슬람 이민자는 경찰의 단속을 피해 팔던 과일을 키오스크에 숨겨놓기도 한다.

  피아넬리가 보여주는 키오스크의 풍경에는 사람 사이의 온기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온다. 감기에 걸린 피아넬리를 위해 중국인 단골 손님은 집안의 상비약을 챙겨서 준다. 신용카드만 가진 여자 손님은 지하철표는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는 말에 좌절한다. 2유로가 없어서 난처해하는 손님을 위해 노숙자 다미엔은 친절하게 잔돈을 건넨다. 노숙자의 도움을 받게된 여자 손님의 표정과 말에는 당혹감이 묻어져 나온다. 과일 노점을 하는 이슬람 상인은 자신의 모국어로 구슬픈 노래를 한참 동안 부른다.   
 
  피아넬리는 수동적으로 카메라에 키오스크의 사람과 풍광만을 담지는 않는다. 장식 미술 전공자답게 골판지로 직접 만든 미니어처를 비롯해 다채로운 그림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집안의 가업인 키오스크는 잡지 업계의 구조 조정과 파업으로 어려움에 처한다. 그렇다. 종이로 만든 잡지와 신문을 찾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당연히 키오스크의 매상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잡지 출판업계의 디지털로의 전환은 어렵게 이어오던 가업에 결정타를 날린다. 피아넬리의 개인적인 다큐는 이제 시대의 변화를 담는 영상사회학적인 탐구가 된다.

  마침내 폐업이 결정된다. 피아넬리와 모친은 단골 손님들과 송별회를 연다. 단순히 잡지와 신문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와 삶이 있었던 키오스크는 해체된다. 피아넬리의 카메라는 비로소 가판대의 카운터를 떠나 밖에서 키오스크의 최후를 담는다. 그 쓸쓸한 마지막에 비감한 소식이 더해진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노숙자 다미엔은 거리에서 삶을 마감했다. 키오스크의 비좁은 카운터에서 동동거리며 버거운 하루를 보냈던 피아넬리의 6년은 그렇게 끝났다. 이 놀랍고도 생생한 생활밀착형 다큐에는 웃음과 눈물, 감동과 함께 날카로운 사회학적 통찰이 곁들여져 있다. 감독 알렉산드라 피아넬리는 다큐 'Le Kiosque(2020)'로 키오스크에 대한 조밀하고도 다채로운 영상 보고서를 써낸다. 



*사진 출처: film-documentaire.fr





**이 다큐는 https://www.lecinemaclub.com 에서 일주일 동안 무료로 상영된다. 영어 자막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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