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8편


1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1.html
2편, 3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2-3.html
4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4.html
5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5.html
6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6.html
7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7.html



서부 개척 시대의 끝

8편 "One Sky Above Us" (1887-1914), 1시간 58분


  드디어 켄 번즈의 8부작 다큐 'The West'의 마지막 편에 이르렀다. 8편에서는 라코타족 추장 시팅 불(Sitting Bull)의 비극적 최후와 운디드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 몬태나의 광산 개발 열풍, 서부 제일의 도시를 만든 로스 엔젤레스의 수로 공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8편의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주는 것은 콜로라도주에 정착했던 젊은 연인들의 사랑이야기이다. 에델과 존의 만남에서부터 결혼, 농장을 일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부의 역사를 만들어간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간 것이다.       

  1887년, 미 의회는 도즈 법(The Dawes Act)을 통과시켰다. '인디언 일반 토지 할당법(General Allotment Act)'을 통칭하는 도즈 법은 인디언 토지의 소유와 분배에 있어서 미 정부의 권한을 명시한 법안이었다. 인디언들에게 토지는 부족 소유의 공개념의 의미였으나 이 법안은 개인의 사유 재산권과 임대의 권리를 인정했다. 그 과정에서 부족민들은 누가 얼마만큼의 땅을 가질 것이냐를 두고 분란을 겪었다. 거기에다 개인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땅은 미 정부의 소유로 귀속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인디언 소유의 땅 상당 부분이 유실되었다. 서부 백인 정착민들의 땅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에 응한 미 정부의 대책은 인디언 땅의 약탈이었다. 도즈 법 이전에 1억 5천만 에이커였던 인디언들의 땅은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3/2가 사라졌다.

  그 시기, 몬태나주에서는 광산 열풍으로 새로운 도시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1850년대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가 끝난 이후, 서부는 다시 한번 부흥의 시기를 맞이한다. 1858년, 몬태나에서 처음으로 금이 발견된 이후에 1876년에는 은광맥이 발견되었다. 1880년대에 몬태나의 Butte 광산은 금과 은을 비롯해 구리를 쏟아냈다. 광부는 위험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가장 위험한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정착을 찾아 서부로 몰려드는 많은 이들은 광산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매장량은 빠르게 고갈되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도 몬태나의 광산업은 그 지역의 주요한 산업으로 자리했다.

  한편, 라코타족 추장 시팅 불에게는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속적인 인디언 토벌과 도즈 법으로 인한 정착지의 상실까지, 인디언들은 절망과 고통의 날들 속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 Paiute족의 주술사 Wovoka는 'Ghost Dance'를 통해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구성원들이 둥근 원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노래하고 춤추는 고스트 댄스는 점차 타부족민들에게도 퍼져나갔다. 인디언들은 고스트 댄스 의식이 백인들의 총탄까지 막아준다는 주술적인 믿음까지 가졌다. 시팅 불은 무척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희망을 잃은 라코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고스트 댄스가 인디언 저항 운동의 기폭제가 될 것을 두려워한 미 정부는 기병대 2개 부대를 라코타족 보호구역에 급파한다. 1890년 12월 15일, 43명의 라코타족 경찰이 시팅 불의 처소를 둘러쌌다. 그리고 몇 발의 총성이 들렸다. 시팅 불은 미군이 아니라 동족인 라코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미국은 보호 구역의 자치 경비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인디언 자경단을 전부터 양성해왔다. 시팅 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부족민들을 미군이 무장해제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과 오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운디드니 학살로 이어졌다. 250명의 희생자들 대부분은 추운 겨울 벌판에서 춤을 추다 기병대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미군은 구덩이에 얼어붙은 시신들은 마구잡이로 내던졌다. 많은 미국민들은 그 사건을 군대의 가혹한 진압이라고 인식했고,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제 남은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으로 들어가 완전히 격리되었다. 인디언들은 교회에서는 백인들의 신을, 그 자녀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운디드니는 빠르게 잊혀졌고, 동화 정책은 가속화되었다.

  서부 개척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큰 공사가 로스 엔젤레스에서 시작되었다. 갈수록 커지는 도시 LA에서는 물 부족 문제가 대두되었다. LA 시장 Frederick Eaton과 수도국의 William Mulholland는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그들이 주목한 곳은 Owens Valley였다. Owens 강의 물을 끌어와서 도시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멀홀랜드의 사업팀은 오웬스 밸리 인근의 땅들을 비밀리에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905년에 시작된 수로 건설은 1913년에 끝났다. LA는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명실공히 서부 최대의 도시로 발돋움했다.

  켄 번즈는 'The West'의 마지막 편에 젊은 연인의 서부 정착기를 끼워넣었다. 문학을 전공한 여교사 에델은 시골 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신참 목장주 존을 알게 된다. 존은 에델에게 청혼하지만, 도시 출신의 에델은 학교에 돌아가서 학위 공부에 몰두했다. 끊임없는 편지 공세와 한결같은 믿음을 보여준 덕에 존은 결국 에델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렇게 부부는 20세기 초, 거친 서부에서 힘들게 목장을 일구며 세 아이들을 키웠다. 그곳에서 세 아이들을 엔지니어와 화학자, 지리학자로 키워낸 부부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번즈는 서부라는 장소가 꿈을 찾아 떠난 미국인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임을 상기시킨다.

  이렇게 해서 8부작에 이르는 'The West'의 긴 여정을 끝마쳤다. 개인적으로는 웨스턴 장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선택한 다큐였는데, 여러모로 많은 공부가 되었다. 다큐에서는 짧게 다루어지는 부분을 논문과 자료를 찾아보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았다. 결국 미국 근대사에서 서부 개척사는 엄밀히 말하면 인디언들의 문화와 역사를 지우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 과정에서 흘린 무수한 피와 희생의 후유증은 아직도 '인디언 보호 구역(Indian reservation)'에서 이어지고 있다. 빈곤과 문맹, 약물중독과 자살, 치솟는 범죄율과 갱단의 폭력, 그 모든 것은 서부 개척이 인디언 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다.

  개척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피해자는 인디언들 뿐만이 아니다. LA시가 수로 건설을 위해 오웬스 밸리 땅의 소유주들에게서 마구잡이로 헐값에 사들인 땅은 오랜 분쟁의 씨앗으로 남았다. 2017년까지도 소유주들은 LA 시 당국과 땅을 비롯해 물 사용권을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출처, LA Times).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차이나 타운(China Town, 1974)'에는 바로 그 댐과 토지의 분쟁이 삽화적 배경으로 나온다. 착취, 사기, 협잡, 피와 배신, 그리고 무고한 죽음들... 그 모든 것이 미국의 서부 땅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있다. 그 역사를 명확히 바라보고 인식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국외자로서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와 문화, '미국 영화'를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pbs.org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적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The Magic Blade, 1976)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천애명월도'라는 명검을 두고 벌이는 검객들의 혈투인가,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검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의 무기는 공작령(孔雀翎, 공작의 깃모양 무기로 막강한 화력을 지님)이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6)'는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1976)'을 만든 초원 감독의 작품이다.     검객 부홍설(적룡 분)은 강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방랑 중이다. 그는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남비로부터 흑도파의 우두머리 공자우가 공작령을 차지해서 강호제패를 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공작령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연남비와 부홍설, 부홍설은 공작령의 주인이자 공작산장의 우두머리 추수청에게 공작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추수청이 공자우의 밀정에 의해 죽게 되고, 추수청은 딸 옥정을 부홍설에게 부탁한다. 공자우는 자신의 부하 검객들을 보내 부홍설을 죽이고 공작령을 빼앗으려 한다. 그 와중에 연남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추옥정은 납치된다. 부홍설은 공작령을 지키고, 옥정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무협 소설 작가 고룡의 동명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작이 있다. 말하자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성랑자(邊城浪子)'가 그것으로 '부홍설'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천애명월도'는 부홍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바로 연남비와의 대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원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우의 본거지에 부홍설이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많은 자객들이 나오고, 대결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볼거리 위주의, 철저히 흥행을 노린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관객들 시각에서 ...

황량하고 고독한 결혼의 풍경, 아내(妻, Wife, 1953)

  *이 글에는 '아내(妻, 1953)'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카가와와 미네코는 결혼 10년차 부부다. 영화는 부부 각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관객은 결혼 10년 동안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서로 푸념하는 부부의 속내를 듣게 된다. 이 부부에게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들은 별다른 소통도 하지 않고 얼굴을 바라보는 일도 거의 없다. 아내에게 마음이 멀어진 남편은 사무실의 여직원에게 마음이 기운다. 무뚝뚝하며 돈에 집착하는 아내와는 달리, 여직원 사가라는 사근사근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성품을 지녔다. 아내가 아닌 새로운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나카가와.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눈치채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한다. 과연 이 부부는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Wife, 1953)'는 나루세 미키오의 '방랑기(1962)' 원작자이기도 했던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의 '갈색의 눈동자'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는 위기에 처한 부부를 통해 결혼 생활의 황량하고 고독한 풍경을 그려낸다.   나카가와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먹는데, 밥에서 머리카락이 나온다. 미네코는 확실히 살림에는 별 뜻이 없는 듯하다. 그들 부부의 화해를 위해서 미네코의 친구는 장을 봐와서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친구가 본 미네코의 주방은 제대로 된 칼도 없고, 그나마 그 칼도 무딘 상태다. 친구는 자취생의 주방 같다고 말하고, 나카가와는 아내의 음식은 맛이 없다고 답한다. 이 아내는 그렇다고 남편의 심기를 잘 헤아리는 것도 아니다. 저녁에 책 좀 읽고 자려는 남편 옆에서 과자를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먹는다. 식사하고 나서는 젓가락으로 이를 아무렇지 않게 쑤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아내에게 나카가와는 마음이 멀어진다. 그렇다면 미네코의 삶의 낙은 뭘까? 교외에 2층 단독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세를 놓아 살림에...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다룬 다큐 세 편

  1. BBC 다큐 'Francis Bacon : A Brush with Violence(1997)', 1시간19분 2. The South Bank Show 제작 'Francis Bacon(1985)', 55분 3. 미국 휴스턴 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제작, Francis Bacon: Late paintings(2020), 55분 * 위 세 편의 다큐들은 모두 유튜브에서 검색 가능함.   1945년, 런던의 전시회에 걸린 그의 삼면화(triptych, 세 개가 이어진 그림으로 주로 가톨릭의 제단화에 쓰였음)는 관객들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2차 대전이 막 끝난 직후여서 사람들은 가급적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화가는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와 인물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계속해서 변주해 나갔다. 그는 동성애자였으며, 술과 도박에 빠져 지냈고, 그림으로 누릴 수 있는 명예와 부를 생전에 다 누렸다. 죽어서도 그의 그림을 비롯해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 소장품이 엄청난 가격에 팔리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아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그려낸 초상 연작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97년에 BBC에서 제작한 다큐는 화가 베이컨의 일대기와 작품, 그의 주변 지인들의 인터뷰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이 다큐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화가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거칠고 폭력적인 아버지와의 불화, 베를린과 파리에서 지냈던 20대 초반의 시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시작했던 경력의 초창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30대, 그리고 그의 동성 연인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베이컨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에 무척 솔직했다. 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