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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에다 히로카즈가 묻는 '가족'의 의미,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 2018)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13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Like Father, Like Son)'에서 혈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 평범한 회사원 남자는 어느 날, 자신의 친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뀌어 다른 집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놀랍고 당황스러운 것은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도 마찬가지. 서로 뒤바뀐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두 집안은 당분간 시간을 갖기로 한다. 남자는 정기적으로 먼 거리를 운전해서 아들을 만나고 온다. 그가 차로 지나는 고속도로 장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길게 이어진 전선주의 선들이었다. 그것이 꽤 흥미롭게 보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선들로 '혈연'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 가족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그런 질문에서 더 나아가 그는 2018년작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에서 혈연이 아닌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도쿄의 비좁고 낡은 어느 주택, 그곳에서 사는 쇼타에게는 할머니와 부모, 이모가 있다. 그런데 쇼타와 아버지가 동네 마트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영 이상하다. 아버지 오사무는 아들에게 마트의 물건들을 훔쳐오게끔 수신호를 보내 지시한다. 자신이 직접 훔치는 것도 아니고, 아들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아버지라니 참으로 몹쓸 사람이다.

  훔치는 것은 쇼타의 엄마도 마찬가지. 세탁부 일을 하면서 세탁물에서 나오는 소소한 물건들을 죄다 챙긴다. 오사무는 어느 날, 쇼타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베란다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유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유리를 데리고 있으면 문제가 될 줄 알면서도,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에게는 다시 돌려보낼 수 없어서 그렇게 유리는 '린'이라는 이름의 막내딸이 된다. 곧 집안의 막내 린은 쇼타와 짝을 이루어 동네 문방구에서 도둑질을 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영화의 일본어 제목 '万引き家族' 그대로 '도둑질 가족'이 되는 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기이한 집안의 가족들이 지닌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쇼타는 부부의 친아들이 아니며, 오사무와 노부요도 진짜 부부가 아니다. 할머니 하츠에와 이모 아키도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판 남이다. 어쩌다 보니 그냥 모여서 살게된 이들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학대당하는 동네 꼬마 유리를 거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보살핀다. 이 가족이 여름의 해변가에서 즐겁고 평화롭게 한 때를 보내는 장면에 이르면, 그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견고해 보이는 이 가족의 유대감이 얼마나 얄팍하고 위선적인가는 할머니 하츠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드러난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그나마 보탬이 되었던 하츠에의 연금 때문에 가족은 그 죽음을 숨기기로 한다. 마당에 암매장을 한 후 계속 연금을 타내며, 쇼타와 린의 도둑질도 계속 된다. 쇼타는 시간이 갈수록 어른들의 위선과 좀도둑인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다. 과연 이 가족의 일상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에서 '혈연'의 의미,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옥죄는 '경제적 궁핍'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다. 남남으로 맺어진 쇼타의 가족은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가족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혈연'으로 맺어졌느냐가 아니라, '돈'이다. 막노동을 하는 오사무가 다리를 다쳐 일을 쉬게 되자 집안의 경제는 타격을 받는다. 거기에다 아내 노부요까지 해고당하면서 이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된다. 어린 쇼타와 린이 도둑질을 해야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성인 전용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돈을 버는 아키의 경우도 딱하기는 마찬가지. 과연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족'의 이상은 얼마만큼의 현실성을 갖고 있는가? 코레에다 히로카즈가 보여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이란 대명제는 '핏줄'이라는 불가침의 전제 보다 더 엄혹한 '돈'의 지배를 받는다.

  삶의 괴로움을 아이에 대한 학대로 드러내는 유리의 친부모에게서 볼 수 있듯, 혈연은 가족의 절대적 성립 요건이 아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쇼타의 '가짜 가족'이 해체되면서 '린'으로 지내던 유리도 친부모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무관심과 학대로 추운 겨울에 베란다에서 떨고 있었던 유리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유리는 베란다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얼른 나와 본다. 그리고 밖을 바라보는 유리의 눈빛에는 그리움이 담겨져 있다. 유리는 오사무와 쇼타가 그 베란다에서 자신을 데려가 주었던 것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코레에다 히로카즈는 그 어떤 것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닫는다. 영화는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만이 진짜 가족'이라든지, '가족이 행복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은 돈이 아니다'라든지 하는 것들. 그에 대한 답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관객의 마음 속에 그 답에 대한 생각의 파문을 던지는 것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뜻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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