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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가족,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1962)

 

  어느 막장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한때 잘나가던 연극배우로 엄청나게 큰 돈을 모았으나, 지독한 수전노가 되어서 가족들의 원망을 듣고 있다.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연극 배우에게 반해서 결혼했으나, 출산 후유증 때문에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다. 첫째 아들은 술고래에 주색잡기로 인생을 망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가 선원으로 떠돌아다니다 폐결핵을 얻어 돌아왔다. 술에 취한 첫째 아들은 부모를 노랭이, 약쟁이로 부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 4명의 가족이 여름 별장에서 보낸 하루 동안의 이야기, 바로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이다.

  TV와 연극 연출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시드니 루멧의 첫 영화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이었다. 배심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이야기를 다룬 그 작품은 매우 성공적인 데뷔작이었다. 인물과 공간을 다루는 그의 솜씨가 연극 연출에서 기인했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밤으로의 긴 여로(1962)'를 비롯해 '갈매기(The Sea Gull, 1968)', '에쿠우스(Equus, 1977)' 만듦으로써 연극에 대한 그의 애정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가장 찬사를 받은, 주목할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캐서린 햅번은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랄프 리처드슨과 제임스 로바즈, 딘 스톡웰은 공동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대결뿐만 아니라, 루멧의 연출과 영화적 감각도 눈부시게 빛난다.

  유진 오닐의 자전적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는 작가 자신이 사후 25년 동안 출판과 공연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표명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오닐이 사망한 후 3년 뒤인 1956년에 출판이 되었고, 루멧은 1962년에 희곡을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한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50분에 이른다. 뒤틀리고 어긋난 티론 일가의 고통스런 애증의 관계가 처절하게 펼쳐지는데, 루멧은 그것을 결코 단조로운 화면에 담지 않았다. 다양한 쇼트들, 카메라의 위치를 바닥에 둔 쇼트들부터 미디엄, 롱 쇼트, 그리고 여러대의 크레인(crane)을 사용한 장면들이 눈길을 끈다. 카메라 렌즈도 장면에 따라 광각렌즈(wide-angle lens)와 장초점 렌즈(long-focus lens)를 사용해서 복잡한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주로 거실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장면들을 카메라가 매우 역동적이고 다채롭게 담아냈다. 단순히 연극 공연을 찍듯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루멧은 이 영화의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그런 몰이해에 굉장히 분노했다.

  이 영화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은 어쩌면 연극학도에게 더 매력적인 작업일 것이다. 영화를 분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영화적인 것'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메리 티론을 연기한 캐서린 햅번은 불안과 회한, 원망이 뒤엉킨 약물 중독자의 모습을 섬세하고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낸다. 가난에 대한 상처와 배우로서 좌절된 경력을 지닌 제임스 티론 역은 랄프 리처드슨이 맡았는데 그의 연기는 다소 '연극적'이며 어느 부분에서는 과장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첫째 아들 제이미 역의 제임스 로바즈의 연기도 뛰어나다. 그는 브로드웨이 연극 공연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연기하기도 했다. 나는 막내 에드먼드 역을 맡은 딘 스톡웰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생산적인 것'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쟁쟁한 연기 경력의 대선배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스톡웰의 강단있는 연기는 그가 칸 영화제 공동 남우 주연상을 받기에 충분했음을 입증한다.

  이 영화의 음악은 앙드레 프레빈이 맡았다. 날카롭고 음울한 음악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 중간 중간 들어가는 피아노 음악은 장면의 전환를 알리는 역할도 한다. 프레빈은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명성이 드높지만, 그의 음악 세계는 클래식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재즈 애호가들에게 프레빈은 뛰어난 재즈 피아니스트로 기억된다. 클래식 음악계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재즈 음악에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음에도 그가 남긴 재주 음반들은 상당하다. 그의 재즈 연주를 듣다 보면 프레빈은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클래식의 심장과 재즈의 심장, 그런 재능을 가진 이는 아마도 그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우디 앨런의 아내 순이 프레빈은 그가 미아 패로와 결혼 기간 중에 입양한 딸이다.

  영화 속 4명의 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들추고 과거를 헤집는 모습은 마치 전갈들이 독침으로 적을 찌르며 하이에나가 시체를 물어뜯는 것을 연상케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티론 일가의 오래된 곪은 상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밤 속에서 마침내 터져버린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 막장 가족의 처절한 비극 밑바닥에 혈연의 뜨거운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밤으로부터의 긴 여로'는 피하고 싶고 부인하고 싶은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드리운 고통과 슬픔의 뿌리를 들여다 보게 만든다. 조상과 부모로부터 이어진 그 내력, 그것이 주는 빛과 어두움, 환희와 절망에서 온전히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영화에서 여러 번 들리는 고동 소리는 무적(霧笛), 안개가 끼었을 때 선박이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배나 등대에서 울리는 소리이다. 별장이 자리한 곳은 동부 코네티컷 해안가로 안개가 수시로 끼는 곳이다. 4명의 인물들은 과거의 상처라는 안개 속에 갇혀서 삶의 방향성을 상실했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다. 무적 소리를 들으며 배들은 충돌을 피할 수 있지만, 티론 일가의 사람들은 서로를 들이받으며 고통스럽게 침몰한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메리는 모르핀에, 가장 제임스와 두 아들 제이미와 에드먼드는 술에 중독되어 있다. 이 안개 속의 가족을 시드니 루멧은 흑백의 화면 속에 정교하고 밀도있게 담아낸다.


*영화를 보기 전에 희곡을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한다.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사진 출처: filmcomm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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