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Utama(2022)'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5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섬의 시나붕(Sinabung) 화산이 폭발했다. 엄청난 화산 폭발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나는 당시에 화산 지대 주민들을 취재한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다. 화산재로 뒤덮인 마을 뒤로 화산은 여전히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마을에서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마을 주민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그곳은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화산은 마치 신과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는듯 했다. 화산
폭발은 신의 노여움 같은 것이었다. 주민들은 신의 노여움이 풀리면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그러한 주민들의 모습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화산 폭발의 여파로 그곳의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는 극한의 자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왜 그들은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지 않는가? 그 질문은 볼리비아의 감독 Alejandro Loayza Grisi의 영화 'Utama(2022)'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볼리비아의 거친 고원 지대, 오랫동안 라마(Llama)를 키우며 살아온 늙은 원주민 부부가 있다.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Virginio와 Sisa 부부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지독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마을에서 물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Sisa는
매일 먼 곳의 강변으로 물을 길으러 간다. Virginio도 그의 라마 무리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먼 길을 다닌다. 마을 사람들
모두 Virginio와 Sisa 부부처럼 물 때문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도시에 사는 손자 Clever가
부부를 찾아온다. Clever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도시로 가서 함께 살자고 말한다. 과연 Virginio와 Sisa 부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
'Utama'의 서사는 매우 간결하다. 원주민 부부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서 더는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강제하는 가장 큰 원인은 기후 변화(Climate change)이다. 말라버린
강줄기는 마을 주민들에게 절망과 고통을 안겨준다. 이미 그곳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 비어있는 집들 사이로 먼지 바람이 분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기우제에는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라마가 희생 제물로 쓰인다.
라마의 피가 메마른 땅에 물과 함께 흘러서 스며든다. 관객들은 그 주민들의 소원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비가 오지 않는 대지가 죽어가듯이 Virginio도 죽어가고 있다. 심한 기침을 계속 하는 그는 도시에 가서 진료를 받자는
손자의 권유를 뿌리친다. 손주 Clever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Virginio도 손주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Virginio는 원주민의 언어인 케추아어(Quechua)를 쓰지만, Clever는 그 말을 배우지
못했다. Clever는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조상대대로 이어온 전통과 언어는 단절되었다. '가뭄'은 그러한
세태에 쐐기를 박는다.
"콘도르(condor)가 어떻게 죽는지 아느냐? 그 새는 자신의 힘이 다 빠져서 더이상 날지 못하게 될 때, 스스로 날개를 접고 수직낙하하여 돌에 몸을 부딪혀 죽는단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콘도르의 마지막 순간을 알려준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새 콘도르처럼 Virginio와 같은 원주민들의 삶도 위기에 처해있다. 과연
무엇이 그곳의 주민들에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마을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냈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정부는 물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주민들의 탄원을 무시할 뿐이다. 영화 'Utama'는 원주민 노부부에게 닥친 고난을 담담히 응시한다. 마침내
Virginio가 숨을 거둔다. Sisa는 손주를 따라가는 대신에 자신의 땅에서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
영화
'Utama'는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전지구적 파고에 스러지는 개인의 삶을 관조한다. 영화 속 메마르고 황량한 평원의 풍경은
관객들에게 계속적인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더이상 비가 오지 않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그 풍경은 괴로움을 안겨줄
뿐이다.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이러한 양가적(兩價的) 모순은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기후 변화는 거친 산악 지대에서
유목을 하며 살고 있는 원주민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Utama'는 환경파괴를 가속화하고 있는 인류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묵시론적 미래를 펼쳐놓는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