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청춘의 구부러진 길: Bronco Bullfrog(1969), Private Road(1971)

 

청춘의 구부러진 길, 영국 감독 Barney Platts-Mills(1944-2021)의 영화 두 편

Bronco Bullfrog(1969), 1시간 26분

Private Road(1971), 1시간 29분


  영국의 감독 Barney Platts-Mills'Bronco Bullfrog(1969)'는 하마터면 다시는 관객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개봉 당시에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배급사는 영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에 마스터 네가티브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걸 매립지행에서 구해낸 사람은 영화사 직원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살아남았다(출처 theguardian.com). 'Bronco Bullfrog'에 출연한 이들은 하층민 출신의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Stratford의 Theatre Royal에서 지역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 마련한 연기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저예산에 아마추어 배우들을 데리고 플래츠 밀즈는 자신의 첫 영화를 찍었다.

  델, 로이, 크리스, 제프. 4명의 십 대 청소년들은 잽싸게 카페의 창문을 깨고 가게 이곳저곳을 뒤진다. 기껏 갖고 나간다는 것이 케이크 몇 조각. 어째 하는 걸 보니 녀석들은 초짜 도둑들 같다. 싸구려 변두리 영화관에서 시간을 죽이더니, 길가던 남자한테 주먹질로 시비를 건다. 버려진 건물 아지트에서는 도색 잡지를 보면서 키득거린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Bronco Bullfrog 조가 무리에 합류하면서 녀석들의 비행은 범죄로 나아간다. 그 와중에 델은 또래 아이린과 연애를 시작한다.

  가난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가진 돈이 없으니 갈 데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훔친 오토바이로 시내 질주하기, 무너진 건물 아지트와 근교 숲에서 시간 때우기... 맘놓고 서로를 안을 장소도 찾기 어렵다. 궁리 끝에 연인들이 찾아간 곳은 친구 Bronco Bullfrog의 허름한 하숙방이다. 훔친 물건들로 채워진 비좁은 침실에서 델과 아이린은 침대에, 조는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감독 바니 플래츠 밀스의 이 데뷔작은 모든 일에 어색하고 서투른 십 대 연인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하지만 놀라운 생기가 영화 곳곳을 가득 채운다. 사실적이고 자연스런 연출, 주변부 청춘과 하층민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에서 이 감독의 재능을 짐작할 수 있다.  

  2년 뒤에 내놓은 'Private Road(1971)'는 얼핏 보기에 평범한 로맨스 영화 같다. 이제 막 첫 소설을 낸 피터는 출판사 직원 앤과 연애를 시작한다. 이 젊은 연인들은 서로에게 푹 빠진다. 중산층인 앤의 부모는 가난한 글쟁이 피터가 영 마뜩잖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스코틀랜드 시골로 여행을 떠난다. 시골 오두막에서의 목가적인 생활도 잠깐, 앤은 임신하고 책임감을 느낀 피터는 결혼을 생각한다.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광고 회사에 취직한 피터. 원치 않는 일을 하려니 자괴감만 커진다.

  감독 Barney Platts-Mills는 두 연인의 사랑과 이별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집요하게 계층의 문제를 다룬다. 전작인 'Bronco Bullfrog'에서도 그러한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 델의 아버지는 아이린을, 아이린의 엄마는 델을 싫어한다. 그들은 같은 하층민이면서도 서로의 배경을 경멸하고 무시한다. 돈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Private Road'에서 앤의 부모가 피터를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앤도 차츰 자신과 피터 사이에 존재하는 계층적 차이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된 피터는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에 찌들어 간다. 경제적인 압박감은 앤과 피터의 삶에 조금씩 균열을 가한다. 거기에 피터가 이어온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도 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피터는 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약쟁이 친구가 집에 맘대로 드나드는 것을 감싼다.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앤은 피터를 떠나 부모의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앤이 둘 사이의 아이를 포기하게 되면서 젊은 연인의 짧았던 좋은 날도 끝난다. 다시 작가의 생활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피터는 친구와 함께 회사의 타자기를 훔친다.

  영화는 청춘의 구부러진 뒤안길을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계층간의 격차는 사랑으로 극복되지 않으며, 예술가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Private Road'는 'Bronco Bullfrog' 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작품성 면에서는 데뷔작을 능가한다. 두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영국 젊은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한 Barney Platts-Mills는 작년 10월에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올해 초에 디지털로 새롭게 복원된 'Bronco Bullfrog'가 고인의 영화 세계를 알고픈 관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사진 출처: observer.com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theguardian.com    감독 Barney Platts-Mills


****영국의 Kitchen Sink Drama Film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196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6/saturday-night-and-sunday-morning-1960.html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적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The Magic Blade, 1976)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천애명월도'라는 명검을 두고 벌이는 검객들의 혈투인가,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검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의 무기는 공작령(孔雀翎, 공작의 깃모양 무기로 막강한 화력을 지님)이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6)'는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1976)'을 만든 초원 감독의 작품이다.     검객 부홍설(적룡 분)은 강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방랑 중이다. 그는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남비로부터 흑도파의 우두머리 공자우가 공작령을 차지해서 강호제패를 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공작령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연남비와 부홍설, 부홍설은 공작령의 주인이자 공작산장의 우두머리 추수청에게 공작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추수청이 공자우의 밀정에 의해 죽게 되고, 추수청은 딸 옥정을 부홍설에게 부탁한다. 공자우는 자신의 부하 검객들을 보내 부홍설을 죽이고 공작령을 빼앗으려 한다. 그 와중에 연남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추옥정은 납치된다. 부홍설은 공작령을 지키고, 옥정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무협 소설 작가 고룡의 동명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작이 있다. 말하자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성랑자(邊城浪子)'가 그것으로 '부홍설'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천애명월도'는 부홍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바로 연남비와의 대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원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우의 본거지에 부홍설이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많은 자객들이 나오고, 대결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볼거리 위주의, 철저히 흥행을 노린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관객들 시각에서 ...

자작시: 다래끼

  다래끼 무지근한 통증은 너와 함께 온다 나는 네가 절대로 그립지 않다 너 없이도 잘살고 있다 하지만 너의 부드러운 눈길을 기억한다 아주 약한 안약에서부터 센 안약까지 차례대로 넣어본다 나는 너를 막아야 한다 나은 것 같다가 다시 아프고 가렵다 나는 조금씩 끈기를 잃어가고 있다 너는 물기를 머금은 염화칼슘처럼 끈덕지게 내 눈가를 파고들며 묻는다 이길 수 있니? 곪아서 터지게 내버려둘 자신이 없으므로 열심히 눈을 닦아주며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대로 그렇게 잠들어 줄 수 있다면 그래,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

자작시: 하이엔드(high-end)

  하이엔드(high-end) 싸구려는 항상 냄새가 나 짜고 눅진한 부패의 냄새 썩은 감자의 냄새는 오천 원짜리 티셔츠의 촉감과 비슷해 등고선(等高線) 읽는 법을 알아? 만약 모른다면 안내자를 찾는 것이 좋아 안내자의 등에 업혀 이곳에 올 수도 있지 더러운 수작, 아니 괜찮은 편법 차별하고, 배제하고, 경멸을 내쉬어 우리가 서 있는 곳 우리가 가진 것 우리들만의 공론장(公論場) 즐겁고 지루한 유희 불현듯 당신들의 밤은 오고 부러진 선인장의 살점을 씹으며 낙타가 소금 바늘귀를 천천히 바수어내는 하이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