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fast는 북아일랜드의 동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은 '강의 입구'라는 아일랜드어에서 유래했다. Kenneth
Branagh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태생으로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라났고, 9살 무렵에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9살
소년 버디가 주인공인 영화 '벨파스트'에서 브래너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펼쳐놓는다. 영화는 현재의 벨파스트 발전상을 보여주는 컬러
화면에서 1969년 8월의 과거로 들어가면서 흑백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브래너의 선택은 매우 탁월하고 효과적이었다. 브래너는
흑백 화면이 실제의 현실과는 다르지만 훨씬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촬영했다고 밝혔다(출처: ew.com과의
인터뷰). 그리고 그의 말대로 관객은 이 흑백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놀랍도록 생생하고 핍진성있게 다가옴을 느낀다. 그렇다면
1969년 8월, 소년 버디와 가족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버디는 집앞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위대가 몰려들고 화염병과 돌덩이가 날아든다. 버디의 집을 비롯해 근처의 집들은 파괴되고 불탄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1969년 8월 12일부터 16일 사이에 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교도 주민들과 프로테스탄트
주민들 사이에 극렬한 폭동이 발생했다. 벨파스트는 그 중심 도시였다. 1922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에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주민들이 점차적으로 이주해 오면서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1969년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버디의 가족은 프로테스탄트 교도이다. 폭동 기간 동안
양측은 서로의 집과 건물을 테러의 대상으로 삼았다. 폭동은 영국군이 개입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영화는 버디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와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9살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쓰는 도구는 TV와 영화이다. 게리 쿠퍼가 나오는 'High Noon(1952)'과
같은 서부극 영화는 버디에게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나뉜 세계를 인지시킨다. 버디에게는 프로테스탄트인 자신의 가족들을 박해하는
가톨릭계 주민들은 서부극의 악당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것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북아일랜드의
첨예한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소년 버디의 시점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게 말하면 관조적인 것이지만
비판적으로 본다면 논쟁을 비켜가는 영리한 수법이다.
TV 서부극과 영화관에서 가족과 함께 보는 즐거운 모험 영화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버디.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소년을 둘러싼 세계는 바뀌어 간다. 버디는 영국으로의 이주를 두고 벌이는 부모의
말다툼을 목격한다. 카메라는 그 장면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버디를 불안하게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따라간다. 하나의
쇼트에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과 그것을 무심한 표정으로, 하지만 주의깊게 듣는 버디의 얼굴이 함께 담기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어른들과 주변의 세계를 탐색하고 이해해 나간다.
캐네스 브래너는 '벨파스트'가 역사 영화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임을 강하게 주지시킨다. 버디는 생의 황혼기에도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조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버디의 부모는 가족의 미래를 두고 서로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사랑으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9살 소년은 풋풋한 사랑의 감정도
예쁜 여자친구 캐서린에서 느낀다. '1969년의 벨파스트'라는 시대적 배경이 없다면 이 영화는 그저그런 가족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벨파스트'라는 지역의 역사성은 어린 버디에게 여자 친구와의 이별을 강제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버디의
할머니가 영국으로 떠나는 아들 내외와 손주 버디를 따라가지 않고 그곳에 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생의 동반자였던 남편이 세상을
뜨고 오롯이 홀로 살아내야 함에도 할머니는 자신의 고향땅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왜 분쟁
지역의 사람들은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가? 아마도 주디 덴치가 연기한 버디 할머니의 선택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영화 '벨파스트'는 벨파스트라는 지명이 가진 역사성과 의미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캐네스 브래너의 이 영화는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의 현대사 한 부분에 설탕물을 입힌 안온한 가족, 성장 드라마처럼 보인다. 역사적 사실을 첨언하자면 이러하다.
1969년 8월의 폭동 기간 동안 압도적 피해를 입은 지역은 개신교 주거 지역에 둘러싸인 가톨릭 교도들의 주거지였다. 폭동의
여파로 벨파스트에서 이주한 이들은 가톨릭 교도들이 1505명, 프로테스탄트가 315명이었다. 가톨릭 교도들이 아예 아일랜드로
이민을 떠난 것에 비해 프로테스탄트들은 인근 도시로 이사했다(출처 en.wikipedia.org).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에 무얼 그리 정확하고 대단한 역사성을 바라느냐, 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뭉뚱그려서 투영하는 과거의 기억이 사실 그 자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문제는 이런 것이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아이의 관점을 채택했다 하더라도 성찰적 사유가 들어있는가에 관한 문제. '벨파스트'는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매우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카를로스 사우라가 '까마귀 기르기(Raise ravens, 1976)'에서
보여준 은유적이지만 명징한 현실 인식과 역사성을 보라. 8살 소녀 아나의 이야기를 통해 사우라는 독재자 프랑코의 폭압적 지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북아일랜드의 역사적 상흔으로 가득한 벨파스트의 과거와 현재를 보려는 이들은 캐네스 브래너의 이 영화가 아닌 'I Am Belfast(2015)'를
보는 것이 더 낫다. Mark Cousins가 만든 이 다큐는 도시를 노파로 의인화해서 그의 입을 통해 벨파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린넨 제조 산업과 조선소로 흥했던 벨파스트의 과거, 1969년 이후 극심해진 갈등과 폭력, 오늘날에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는 분쟁의 상처에 이르기까지 다큐는 시적인 방식으로 벨파스트라는 도시를 조망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임에도 '벨파스트'에서 괜찮았던 점은 버디 역을 연기한 Jude Hill의 존재였다. 이 귀여운 꼬마 배우는
정말이지 영화를 스스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영화가 여기저기서 받은 상들을 어떻게 나눌 수 있다면, 그 절반은 이 친구의
몫으로 주어야 한다. 주드 힐은 역사적 성찰이 결여된, 안일하고 평범한 회고담을 한 소년의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로 만들어 버린다.
캐네스 브래너가 이 놀라운 아역 배우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2022년 아카데미상 수상작 리뷰
감독상, The Power of the Dog(202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ashik-kerib1988-power-of-dog2021.html
국제 장편 영화상, Drive My Car(202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drive-my-car-2021.html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The Long Day Closes(1992), 테렌스 데이비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long-day-closes1992.html
가을이 올 때(秋立ちぬ, The Approach of Autumn, 1960), 나루세 미키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approach-of-autumn-1960.html
감마선은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The Effect of Gamma Rays on Man-in-the-Moon Marigolds, 1972), 폴 뉴먼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effect-of-gamma-rays-on-man-in-moon.html
남쪽(El Sur, 1983), 빅토르 에리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9/el-sur-1983.html
이반의 어린 시절(Иваново детство, 1962),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19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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